2008년 7월호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외계인’ 선수군단… 군림의 카리스마 지고 ‘맏형님’ 뜬다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donga.com

    입력2008-07-08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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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감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주인’ 선수들과 매순간 살을 비비대야 한다. 이들을 이끌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 패배는 곧 ‘목이 달아남’이다. 절박하다. 좋든 싫든 선수와 한마음이 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감독은 선수의 마음을 낚아야 하고, 선수는 감독의 뜻을 읽어야 한다. 옛날 방식으론 새로운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없다. 잘나가는 프로 스포츠 감독 10인의 리더십 분석기.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나는 인의 장막을 쳐놓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말단 병사도 나를 부를 때는 이름만 부르면 됐다. 나는 내 뺨에 화살을 쏜 적이나 포로까지 만나 함께 일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사나이답게 호탕하게 살았으므로 그것으로 족하다.”(칭기즈 칸)

    영화배우 최민수의 눈빛은 강렬하다. 검은 정장차림에 목을 꼿꼿이 세우고 목소리를 낮게 깔면 그야말로 ‘짱’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최민수는 말한다.

    “카리스마란 가슴속에 칼이 들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칼이 가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카리스마는 사라진다.”

    원로배우 이순재는 고개를 젓는다.

    “배우의 카리스마란 역할의 카리스마일 뿐이다. 결코 개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다. 그 배우에게 카리스마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은 관객이 판단한 일이다. 스스로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국민감독’ 김인식 “다 내 탓이야”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모르겠다. 어쨌든 최민수는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하루아침에 ‘우스운 카리스마’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슴 밖으로 칼을 드러낸’ 탓이다. 그는 요즘 어느 산속에서 ‘자숙하겠다’며 홀로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 과연 그의 카리스마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따뜻한 카리스마’의 리더가 뜨고 있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강골 리더’는 점점 빛을 잃고 있다. 강골 리더는 추진력이 강하고 그때그때 대응이 빠르다. 그는 조직의 슈퍼맨이요 영웅이다. 웬만한 위기에는 눈도 깜짝 안 한다. 칼 같은 판단력과 단호한 결단력은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지만 강골 리더도 사람이다. 자아가 강하다. 자칫 독선에 빠지기 쉽다. ‘도’ 아니면 ‘모’식의 충동적 정책을 좋아한다. 조직도 그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그만 쳐다본다.

    넬슨 만델라는 세계 최고의 카리스마 지도자다. 그는 24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하다가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눈에 살기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감옥에서 나와 그의 동포들 앞에서 한 첫마디도 한없이 겸손하기만 했다. “저는 선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하찮은 종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라며 ‘국민의 종’임을 자처했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절대로 선수 탓을 하지 않는다. 설령 선수가 번트를 대지 못해 지더라도 “다 내 탓이여~” 한마디하고 끝이다. 감독이 잘못 가르쳐서 그랬으니 당연히 감독 탓이라는 논리다. 그는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한 선수도 없다고 본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실수한 선수는 그 누구보다 크게 자책하고 있을 텐데, 거기에다가 감독이 왜 또 소금 뿌리는 말을 하느냐며 입을 다문다.

    그렇다고 김인식 감독에게 카리스마가 없는 건 아니다. 8개 구단 그 어느 감독보다 카리스마가 강하다. 다만 그 카리스마가 부드럽고 따뜻할 뿐이다. 팬들은 언젠가부터 그를 ‘국민감독’이라고 부른다.

    귀 열고 봄바람 된 ‘차붐’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프로축구 수원 차범근 감독. 그는 요즘 젊은 선수들과도 허심탄회하게 어울린다.

    차범근 프로축구 수원 감독은 ‘최고 1등주의’를 지향한다. ‘프로는 애들 키우는 데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최고의 선수들이 와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현역시절 뛴 것처럼 선수들에게도 ‘최고의 열정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차범근이 누구인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 동안 활약하면서 308경기에서 98골(A매치 127경기 55골)을 넣은 세계적인 스타다. 요즘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1골 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면 현역시절 차범근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스타 출신이라고 해서 꼭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프로 스포츠 감독 중에는 스타 출신보다는 현역 때 이름 없던 선수 출신이 훨씬 많다.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렇다. 그들은 현역 땐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우뚝 섰다.

    차 감독은 아직 지도자로서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1991년 울산현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팀에서 우승 트로피는 들어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1998년 프랑스월드컵 국가대표감독 당시 대회 도중에 경질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차 감독이 K리그에서 우승한 것은 2004년 수원삼성을 이끌고 딱 한 번뿐이다.

    왜 그럴까.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차붐’이라는 카리스마에 주눅이 든다. 차 감독도 선수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않는다. 차 감독은 ‘선수들은 프로니까 말 안 해도 당연히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K리그는 분데스리가가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이탈리아 리그는 더더욱 아니다. 차 감독만큼 잘할 수 있는 스타는 거의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선수들과 감독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소통이 안 된다.

    그러던 차 감독이 올 시즌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귀를 활짝 열었다. 눈높이를 낮추고 새파랗게 젊은 선수들에게까지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차 감독은 여태까지 자신이 지명했던 주장을 선수들끼리 투표로 뽑게 했다(송종국). 이것도 모자라 20대 초반(하태균), 20대 중후반(곽희주) 등 연령대별 주장제도까지 도입했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들 눈높이에 맞춰 듣겠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차 감독은 그동안 뱅뱅 겉돌며 팀을 떠나려 하던 신영록을 찾아가 허심탄회한 대화로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코치들에게도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조병득·페차이올린 코치, 서정원·이임생 트레이너에게 경기 전에 3-5-2, 3-4-3, 4-4-2 세 가지 포메이션에 맞춰 각각 엔트리를 적어내게 했다. 차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베스트 11을 짰다.

    엘리트주의를 버려라!

    올 시즌 수원삼성은 정규리그(10승1무)와 컵대회(4승1무)를 합쳐 16경기 무패행진(6월10일 현재)으로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팀이 어려울 때마다 신영록 등 ‘젊은 피’들이 펄펄 날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차 감독은 경기 후 “젊은 선수들의 사기가 잔뜩 올라 있고 신인과 중·고참 선수들 간 믿음과 신뢰가 더욱 돈독해지면서 경기력도 나아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서포터스 그랑블루에 감사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예전의 뻣뻣하고 자존심 강한 ‘엘리트주의자’ 차범근이 사라진 것이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일 잘하던 부하직원이 상사가 된다고 다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부하로 있을 때의 조직과 그 조직의 리더가 됐을 때의 조직 파악은 하늘과 땅 차이다. 부하일 땐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러나 리더는 조직의 크고 작은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알아야 한다.

    리더가 되면 자신의 과거 빛나는 실적은 다 버려야 한다. 자신의 업적만 믿고 덤비다간 큰코다친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면 백이면 백 모두 실패한다. ‘내가 손금 보듯이 훤히 아는데, 부하직원들도 나 같이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다가는 백전백패다.

    ‘국보투수’ 출신 선동열 프로야구 삼성 감독은 말한다.

    “일본에서 생애 처음으로 2군 생활을 한 것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때 백업선수들이나 2군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삼성에서도 그때 생각을 하면서 선수들을 다독이고 역경을 이겨냈다. 2군 생활 때 유니폼 빨래를 직접 하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빨래를 하려면 일찍 가서 대기해야 했는데, 좀 늦으면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프로에 들어와 한 번도 빨래를 해본 적이 없는 데다 외국인 선수이다 보니 후배들이 대신 해줄 리 만무했다. 그때 겪은 서러움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큰 힘이 됐다.”

    ‘원시인 감독’과 ‘우주인 선수’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의 프로야구 삼성 선동렬 감독(왼쪽). 감독이 아니라 친구 같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사람이 휙휙 바뀌고 있다. 요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은 해와 지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생각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서로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들에게 신세대는 ‘우주인’이나 마찬가지다. 신세대에게 기성세대는 ‘꼰대’를 지나 ‘원시인’이나 같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나 그런 ‘우주인’들이 해마다 ‘새 피’로 수혈되고 있다. 우주인과 기존 원시인이 동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것도 원시인이 리더로서 우주인을 끌고 가야 한다. 바로 그 최전선에 스포츠 감독들이 있다. 그래도 기업엔 원시인과 우주인 사이에 스펀지 노릇을 할 수 있는 중간층이 두텁게 자리 잡고 있다. 시간도 비교적 넉넉하다.

    그러나 스포츠 감독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주인들과 매순간 살을 비비대야 한다. 이들을 이끌고 나가 싸워서 이겨야 한다. 패배는 곧 감독의 목이 달아남을 뜻한다. 그렇다고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1년, 잘해야 2년 정도다. 절박하다. 기업에서 실패하면 한직으로 밀려나겠지만 웬만해서 목까지 달아나진 않는다.

    스포츠 세계에선 좋든 싫든 감독과 선수가 한마음이 되지 못하면 그 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감독은 선수의 마음을 낚아야 하고, 선수는 감독의 뜻을 읽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면 리더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옛날 방식으로는 새로운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없다.

    부드러운 감독들은 대부분 소통에 뛰어나다. 선수들의 마음을 한눈에 읽고 스킨십을 잘한다. 소통은 말을 많이 한다고 잘되는 게 아니다. 말은 어눌해도 진심이 담기면 슬슬 풀린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아는 것이 아무리 깊고 넓어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사실이 아닌, 사실에 대한 타인의 인식이 진실인 시대다”라고 말한다. ‘현대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도 고개를 끄덕인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소리’와 ‘기대’다. 누군가 듣는 사람이 없으면 소리가 없는 것과 같다. 커뮤니케이션도 그렇다. 발신자가 아무리 발신을 해도 수신자가 듣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은 없는 거나 같다. 대체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며 듣고자 하는 것만을 듣는다. 수신자가 바라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무시당하거나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의 경험에 맞춰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목수와 얘기할 때는 목수가 사용하는 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가 수신자의 언어 혹은 수신자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수신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아야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수신자의 기대를 깨뜨려 ‘각성’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의 커뮤니케이션과 수신자를 설득하려 할 때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 접근 방법부터 다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와 전혀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이 ‘지각’인 반면 ‘정보’는 논리다. 정보는 정서, 가치관, 기대, 지각 같은 인간적인 속성이 없을수록 그 신뢰성이 높아진다. 이에 비해 가장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한 논리도 필요 없는 ‘순수한 경험의 공유(shared experience)’다.”(‘넥스트 소사이어티’ 중에서)

    전창진 감독의 눈높이 대화

    남자프로농구 동부의 전창진 감독은 선수들과 수시로 이야기한다. 힘들어하는 선수, 슬럼프에 빠진 선수, 앞에서 끌고 가야 할 고참 선수 등을 따로 불러 밥을 사며 이야기를 나눈다. 위축돼 있는 선수에겐 직접 쓴 편지를 건네며 등을 두드려준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선수들은 감독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간접대화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수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는 것이다.

    “잘못하는 선수에게 ‘쟤 바꿔!’ 하면 선수생명이 끝난다. 대신 ‘무슨 일 있어?’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반드시 문제가 나온다.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선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독에게 감동한다. 난 벤치 멤버에게도 못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식스맨들도 마음을 한번 열면 죽어라 뛴다.”

    결국 전창진 감독의 따뜻한 리더십은 동부의 2007~2008시즌 우승으로 이어졌다. 가족 같은 끈적끈적한 팀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주전 가드 표명일은 “우리 팀의 강점은 선수들 모두 욕심을 내지 않고 단합해서 뭔가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챔피언 결정 3차전에서 패한 뒤 힘들어할 때 감독님이 문자 메시지로 격려해줬다.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러면서 배운다. 괜찮다’고 답글을 보내줬다. 사소한 일도 세세하게 챙겨주기에 선수들이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간판 슈터를 맡았던 강대협도 “우리 팀은 형, 동생처럼 지낼 정도로 서로 잘 대해 준다. 여러 팀을 거친 선수도 있어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고액 연봉자와 저액 연봉자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동료애가 돈독해지면 조직력도 살아난다. 한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이름으로 농구하는 시기는 지났다. 팀워크가 맞아야지 조직력도 더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김인식의 ‘기다림의 미학’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프로야구 롯데 로이스터 감독. 맏형이 따로 없다.

    우승의 주인공 김주성은 “최고의 감독인데도 일일이 선수들을 챙기면서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편지도 써줘 힘이 됐다. 내게는 주로 ‘늘 고생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네가 잘 해야 팀이 잘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한번은 봉투를 건네기에 용돈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뜯어보니 ‘힘내라’는 편지였다”며 웃었다.

    따뜻한 감독은 선수들을 수시로 ‘찬양’하고 ‘고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우울증환자도 덩실덩실 춤추게 만든다. 그런 감독들은 선수가 기대에 좀 못미치더라도 진득하게 기다려준다. 속이 썩고 또 썩어도 꾸욱 참고 믿음을 보낸다.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 가슴에 상처가 될 말은 절대 안 한다. 꼭 싫은 말을 해야 될 때도 “사람이 던지는 공인데 그걸 못 쳐?” 하는 식으로 빙 돌려서 말한다. 그는 선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주고 끈질기게 기다린다. 감독이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언젠가 그 기대에 꼭 보답한다고 믿는다.

    그는 작전을 잘 내지 않는다. 작전 없는 작전이야말로 최고의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노 스트라이크 스리볼이나 원 스트라이크 스리볼일 때도 타자에게 마음껏 치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작전을 걸면 타자는 나쁜 볼에도 할 수 없이 방망이를 휘둘러야 되는데 그건 감독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은 편안하게 쳐야 잘 맞는다고 굳게 믿는다.

    김 감독은 1991년 8월14일 쌍방울팀 시절 9연속 패전에 허덕이던 고졸신인 김원형 투수(현 SK)를 광주 해태전에서 또 선발로 내보냈다. 상대는 당대 최고투수인 선동렬. 감격한 김원형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던졌다. 결과는 9이닝 2안타 10탈삼진으로 1-0 승리.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어떻게 하든 그 친구를 쌍방울 기둥투수로 만들고 싶었다. 기대대로 김원형은 그 뒤부터 펄펄 날았다.”

    믿음은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나 춤추게 한다. 올 시즌 초반 한화는 5연속 연거푸 패배를 당했다. 그런데도 김인식 감독은 태연했다. “이럴 때는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수밖에 없어. 감독이 승패에 일희일비하면서 야단치고 안절부절못하면 선수들은 주눅이 들어”라고 조용히 되뇔 뿐이었다.

    칭찬과 믿음이라면 로이스터 롯데 감독도 못 말린다. 그는 꼴찌에서 헤매던 ‘꼴데’ 롯데를 올 시즌 일약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2000년 이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이 없어 봄에만 반짝한다는 ‘봄데’ 롯데를 강팀으로 바꿔놨다. 그는 경기 전 선수들과 미팅할 때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그는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감독들이 경기를 좌지우지(manufacturing) 하는 한국 야구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올 시즌 롯데 라커룸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다. 난 선수들에게 ‘좋은 공이면 초구부터 마음껏 휘두르라. 프로선수라면 타점을 올려야 돈을 번다. 돈을 벌어라’고 말한다.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 상대에게 약하게 보인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무조건 1루로 뛰어나가야 한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트레이너가 달려 나와 스프레이를 뿌려줘야 일어서서 부축을 받고 나간다.”

    믿고 칭찬하고 고무하라!

    로이스터는 삼진을 당하고 들어와도 “상대 투수를 괴롭혔다”며 박수를 쳐준다. 삼진을 당했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덕아웃에 들어오면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며 등을 두드려준다. 그는 끊임없이 선수들을 자극한다. “그냥 서서 삼진 당하지 말고 방망이를 맘껏 휘둘러라” “투스트라이크 스리볼이라도 볼을 고르려 하지 마라” “3, 4, 5번 타자는 스리볼 노스트라이크에서도 쳐라. 볼 고르라고 그 자리에 둔 것이 아니다”….

    번트를 실패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투수를 교체할 땐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등을 토닥이며 애썼다고 말한다. 서정환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은 “난 5년간 감독생활을 하면서 투수교체 때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직접 올라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대부분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다.

    지난 4월13일 KIA전 때는 투수 강영식이 무사 1루에 몰리며 당황하자 로이스터 감독이 마운드에 성큼성큼 올라가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면 된다(Just do it what you do)”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강영식은 나머지 3타자를 삼진-내야플라이-내야땅볼로 처리했다.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3년 만에 헹가래를 받고 있는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그는 선수를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1군 선수들은 거의 2군에 내려 보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전들의 체력 안배에 더 신경 쓴다. 1군과 2군 엔트리를 바꾸지 않고 하루는 포수 강민호 대신 최기문, 또 하루는 유격수 박기혁 대신 이원석을 기용하는 식으로 변화를 준다. 그러면서 틈틈이 선수들을 따로 불러 “너희가 최고다. 진다는 생각을 버려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다. 1군에 있는 선수들은 코칭스태프가 뽑은 베스트다. 계속 믿고 기회를 주겠다”며 격려한다.

    “나는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공격적으로 하라(Do aggressive). 둘째, 집중력을 높여라(Be focusing). 셋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Don´t be afraid of failure). 한국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패다. 한국 투수들은 너무 많은 볼넷을 내준다. 수비도 모자라다. 희생번트도 너무 많이 댄다. 희생번트는 점수를 내는 좋은 무기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를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희생번트는 다음 타자가 안타를 쳐야 성공으로 끝난다.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점수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들 스스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 선수들을 프로로서 존중한다. 한국엔 프로야구팀이 8개밖에 없는데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선수라는 뜻이다. 특별한 선수들인 만큼 그들을 존중하려고 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에이스 손민한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한국의 최고 투수일 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의 그렉 매덕스(42·샌디에이고)에 버금간다고 말한다. 매덕스는 6월1일 현재 통산 350승(218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하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은 떼어놓은 당상일 정도로 컴퓨터 제구력을 자랑하다.

    김호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감독도 선수들을 믿고 칭찬한다. 그는 최근 K리그 감독 사상 첫 200승 고지에 올랐다. 이 팀 저 팀 방랑하던 고종수를 품에 안아 꽃을 피우게 한 것도 바로 그였다. 그 어느 감독도 다루지 못한 야생마 고종수를 오직 김 감독만이 훌륭하게 숙성시켜 써먹고 있다.

    “운동은 선수가 하는 것”

    “선수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선수의 장점이 표출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해시키고 대화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경기 당일에는 별 이야기를 안 한다. 감독은 10만 관중이 와도 그 속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신치용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은 ‘훈련독사’다. 그는 “나는 선수이름은 믿지 않는다. 믿을 것은 훈련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2007~2008시즌에 확 변했다. 시즌 초 갑자기 “난 이제 너희들 앞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훈련도 A, B그룹으로 나눠 실시했다. A그룹은 30대 중반 및 주전선수, B그룹은 신인 및 후보 선수로 구성했다. A그룹은 신 감독과 한솥밥 먹은 지 10년이 넘는 선수들로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율에 맡겼다. 대신 B그룹은 신 감독이 직접 챙겼다. 경기 전 상대 팀 비디오 분석 때도 들어가지 않았다. 선수들끼리 알아서 토론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알아서 감독 있을 때보다 훈련을 더했다. 신 감독이 “훈련 좀 그만해라”고 해도 선수들이 알아서 기를 쓰고 과외훈련을 했다. 그 결과는 달콤한 우승이었다.

    “결국 경기도 우승도 사람이 하는 것이더라. 지난 2년간 준우승하면서 배구도 사람이 하는 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효율적인 지도임을 절감했다. 스포츠에서 최고의 과학은 심리다. 체력이나 분석, 기술적인 면은 누구나 다 안다. 아는 걸 실천하는 건 결국 선수의 몫이다. 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선수들에게 잔소리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결국 운동은 선수들이 했고 나는 약간 도와줬을 뿐이다. 위기 때 그걸 해결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우리 주전선수는 모두 애 아버지들이다. 세상을 알 만한 나이다. 그들을 예전처럼 무작정 내가 앞서 끌고 갈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힌트를 던져주고 해결책은 알아서 찾으라고 한 것이다. 정말 올 시즌을 치르면서 배구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렇다고 주전급 7명 외의 젊은 선수들에게까지 자율훈련을 하라고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강한 훈련을 시켜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시즌 초 배구 전문가들은 삼성화재를 단연 꼴찌 후보로 꼽았다. 신진식, 방지섭, 김상우 같은 베테랑들이 은퇴한 데다 외국인 선수 안젤코를 뺀 주전 평균나이가 31.4세나 됐기 때문이다. 그런 노장들로 과연 7라운드까지 벌이는 장기 레이스에 버틸 수나 있을지 모두들 고개를 흔들었다.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조성준 남자하키 국가대표 감독.

    하지만 신 감독은 그 사실을 거꾸로 선수를 자극하는 충격요법으로 썼다. 선수들에게 “우리 팀이 꼴찌 후보란다. 삼성은 김세진, 신진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팀인가 보다”라며 틈만 나면 선수들 자존심을 긁어댔다. 선수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로이스터 감독도 선수들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를 하도록 북돋운다. 훈련시간도 짧다. 죽어라 시켜서 하는 훈련이 아니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는 야구는 즐기는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알아야 멋진 플레이가 나온다고 믿는다. 마해영은 말한다.

    관리는 필요할 때 해야

    “우리 감독의 야구는 스스로 야구가 쑥쑥 느는 야구다. 가르쳐서 잘하는 게 아니라, 직접 투수와 싸우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는 야구다. 작전이 많아지면 수동적이 되고 자신의 능력보다는 감독 지시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너희 스스로 알아서 싸우라고 하면 자신이 알아서 상대 투수의 상태를 판단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야구가 자꾸 는다. 감독은 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조성준 남자하키 국가대표 감독도 형 같은 감독이다. 그는 지방 전지훈련 땐 승합차를 빌려 직접 운전기사 노릇까지 한다. 여태까지 한국 남자하키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 이후 눈에 띄게 하향세를 보이더니,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는 8위로 미끄럼을 탔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역 하키’가 문제였다.

    조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을 듣는다. 상대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도 선수들과 토론으로 그 대비책을 마련한다. 한국 남자하키는 이제 세계 4강권에 들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더니 지난해 5년 만에 세계 6강이 겨루는 챔피언스 트로피 대회에 나가 당당히 4위에 올랐다. 세계 1위 호주를 1-0으로, 세계 3위 네덜란드를 6-2로 이기기도 했다. 어쩌면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형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조 감독은 말한다.

    “이제 강압적인 외부자극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경기력을 질적으로 높이려면 선수들 스스로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김성근 SK 감독은 관리야구로 유명하다. 그가 요즘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 난 특별히 하는 게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경기 전 선수들의 훈련 때도 김 감독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즌 개막 후 연패에 빠졌을 때, 선수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관리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관리야구에서 믿음과 자율의 야구로 바뀌고 있는 낌새다. 물론 팀이 슬럼프에 빠지면 예전의 관리야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도 김 감독을 아는 사람들에겐 대단한 변화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작전을 많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요즘 보면 예전에 비해 작전 내는 빈도수가 확 줄었다. 피도 눈물도 없던 그에게 지난해 우승 이후 ‘2%’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난 요즘 작전을 지시한 적이 별로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어떨 땐 ‘아! 이제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관리라는 것이 전면에 나서서 해야 할 때가 있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 다음 이를 유지하는 것은 참모들 몫이다. 지금은 참모들이 조직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큰 흐름만 짚어주고 지켜보는 것이다.”

    가족처럼, 또 솔직하게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선수들에게 늘 ‘우리는 한가족’임을 강조한다. 그는 선수들 이름뿐만 아니라 선수 가족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외운다. 지난 4월27일 삼성과의 홈경기가 끝난 뒤엔 덕아웃에 선수들 가족을 초청해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도무지 감추는 게 하나도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보여준다. 부끄러운 약점도 감추지 않는다. 작전에 실패했을 땐 “허 그것 참, 내가 잘못 판단했어”라며 솔직히 인정한다.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일부러 제스처를 쓰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는 말한다.

    “뭐든 계산적이면 안 된다. 솔직한 게 최고다.”

    전창진 동부 감독은 ‘세계적 주무’로 유명하다. 삼성전자 농구단 시절 무려 8년 동안이나 주무 생활을 했다. 선수단 스케줄 관리로부터 후배들 심부름까지 자질구레한 일을 지극 정성으로 챙겼다. 감독인 지금도 구단 직원들의 가정 대소사를 일일이 빠뜨림 없이 챙긴다. 식당 아주머니든 버스 기사든 누구에게나 마음을 쏟는다. 자신과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는 절대 잊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그래서 전 감독 주변에는 유난히 형님 아우가 많다. 그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도 많다.

    “4월18일 삼성과의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2분 정도 남겨놓고 20점 가까이 점수차를 벌렸을 때 시쳇말로 쪽팔렸지만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우승에 이르기까지 힘든 과정에서 엄청나게 고생한 선수들을 생각하니 감정이 복받쳤다. 바로 옆에 방송사 ENG카메라 3대가 바짝 붙어 촬영하고 있고 사나이가 눈물을 보이면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고…. 처음 엉엉 울었다. 전에 두 번의 우승도 물론 감격스러웠지만 눈물을 비치진 않았다. 잘 참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엔 정말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사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걸로 유명하다. 사내 체육대회에서 “임원들부터 망가져라”며 자신은 각설이 옷을 입고 나타나 사원들의 배꼽을 뺐다. 그는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도 늘 신세대 노래만 부른다. 어느 임원이 ‘두만강 푸른 물에~’를 부르다 혼쭐이 났다.

    토론을 즐겨라

    진화하는 ‘스포츠 리더學’

    선수들과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는 프로농구 삼성 안준호 감독(가운데).

    프로농구 삼성 안준호 감독은 상황에 따라 선수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 도사다. 때로는 어수룩한 것 같다가도, 때로는 엄하게 선수들을 휘어잡는다. 작전타임 때 안 감독이 작전을 설명하는 도중, 선수인 이상민이 말을 끊는 경우도 많다. “감독님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안 감독은 “좋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팬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이상민 감독 나왔다”며 박장대소한다. 안 감독은 “그게 뭐 대수냐”며 씩 웃고 만다. 그럴 땐 꼭 물렁한 고문관 같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런 안 감독을 형님처럼 잘 따른다.

    네덜란드 축구선수들은 토론을 즐긴다. 작은 부상을 입어도 더는 못 뛰겠다고 벤치에 사인을 보낸다. 스무 살도 안 된 풋내기 선수도 자신이 감독만큼 축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을 놓고 감독과 다투는 선수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선수들밖에 없다. 감독은 작전을 세운 뒤 우선 선수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그 스스로 생각하면서 공을 차게 하면 그들은 환상적인 축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땐 엉망이 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유로2004에서 독일과의 경기(1-1 무승부)를 앞두고 반 니스텔루이, 필립 코쿠, 프랑크 데부르, 에드가 다비즈 등 4명의 고참선수를 불러 전술적인 문제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독일전에서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잉글랜드 같으면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영국 축구팀에서 선수가 감독과 언쟁을 벌인다면 그 선수는 조만간 보따리 쌀 각오를 해야 한다. 영국에서 축구선수는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하는 장기판의 말과 같다. 그래서 선수들은 감독을 ‘보스(boss)’라고 부른다. 행여 형편없는 경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집합시켜놓고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다.

    그래도 영국 선수들은 군말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영국선수들은 상급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그들은 군인과 다름없다. 경기 중 머리가 깨져도 붕대로 싸맨 뒤 계속해 공을 찬다. 이른바 잉글랜드식 ‘붕대투혼’이다. 잉글랜드 대표 선발 땐 이런 근성과 투지가 선발기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은 감독도 많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프랑스 출신 웽거 감독 같은 외국인 출신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선수의 정당한 의견은 잘 들어주는 편이다.

    어느 팀이나 빼어난 한두 명의 스타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팀은 한두 스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하는 여러 선수의 숨은 희생이 없다면 팀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허물어진다. 밤하늘에 보름달만 있으면 밤하늘이 아니다. 은 싸라기를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와 수많은 크고 작은 별이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밤하늘이 된다.

    팀워크를 망치는 것은 불과 몇 사람이다. ‘작은 히딩크’ 박항서 프로축구 전남 감독은 이들을 꼭 집어 ‘관리 대상자’라고 부른다. 축구의 경우 엔트리에 드는 20명 이후부터 10명 정도가 이 범주에 든다는 것. 30등 밖에 있는 선수들은 스스로 ‘실력부족’을 인정한다.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는 13명(교체 2명)을 제외한 나머지 7, 8명을 그 대상자로 본다.

    김인식 감독의 생각도 비슷하다. 프로야구의 경우 엔트리 30명 중 중간층인 13, 14, 15번째 선수가 문제라는 것. 이들은 “주전에 비해 내가 못한 게 뭐 있느냐”며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언젠가 감독이 나를 써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한 400~500번 져봐야 선수 보는 눈이 좀 생긴다. 그래서 전력이 약한 팀엔 경험 많은 감독이 좋다.”

    마음을 열면 외계인이 보인다

    요즘 광장마다 ‘젊은 외계인’들로 차고 넘쳐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촛불을 들고 모여든다. 야구장이나 축구장도 외계인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왜 몰려드는가. 이들에게 엄숙한 것은 딱 질색이다. 시위도 놀이요 축제다. 광장에는 즐기러 간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으려 간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도 좋지만, 설령 지더라도 소리 지르고 춤추며 한바탕 신나게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가슴 따뜻한 연대를 확인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재미없으면 안 한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도 자신이 재미없으면 미련 없이 그만 둬버린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말한다.

    “촛불시위는 엄숙주의를 벗어난 발랄하고 즐거운 혁명이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운동의 운동권력이 사라졌다.”

    외계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지난 여름에 한 일뿐만 아니라, 이 세상 과거 현재 미래까지 죄다 알고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검색은 권력’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겐 밥 먹는 거만큼이나 평범한 일이다. 광우병사태에서 보듯, 누구나 장관 대통령보다 많이 알고 있다. 이실직고해야 한다. 연출이나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솔직하지 않으면 이들과 함께 갈 수 없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외롭다. 시멘트 방(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 시멘트 집(아파트)에서 살았다. ‘사각의 DNA’에 묻혀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원한다.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비인간적인 것은 못 참는다. 따뜻하게 말 한 마디 걸어주는 사람에게 감동 먹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리더에게 마음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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