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나는 지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다”

백백교에서 구원파, 신천지까지 소종파 연구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4-05-16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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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이 벌어진 와중에 기독교계 소종파 한 곳이 질타 대상이 됐다. 기독교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이 종파와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계열), 생명의말씀선교회(이요한 계열)를 묶어 ‘구원파’라고 통칭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이하 구원파)의 지도자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병언 일가가 신도의 헌금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 혐의 등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한국에서 기독교계 일부 소종파의 폐해를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두 집단이 있다. 다미선교회와 오대양이 그것이다. 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携擧)가 온다고 주장한 소종파다. 8000명 넘는 신도가 생업을 내팽개치고, 천국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오늘밤 예수님이 세상으로 오시고 우리는 들림을 받습니다.”

    그날, 신도들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에 모여 예수가 재림할 자정을 기다렸다. 함성이 벼락을 쳤고, 울음이 홍수를 이뤘으나, 예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장림 목사가 이 소종파를 이끌었다. 검찰은 소동이 벌어지기 한 달 전(1992년 9월) 사기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1993년 출소 후 ‘이답게’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서울 마포구 C교회에서 목회한다. 이답게 목사는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오대양 사건은 일제강점기 백백교가 저지른 만행 다음으로 충격적인 종교 관련 참사(慘事)다. 백백교는 동학에서 갈라져 나온 소종파. 교주(敎主) 전정운(1868~1919)은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백교를 믿으면 신선의 땅에서 불로장생한다”고 가르쳤다. 전정운은 제자들과 함께 부녀자를 빼앗은 후 남자들을 죽였다. 백백교는 살해한 이가 450명을 넘는 희대의 사교집단으로 종교사에 기록돼 있다.

    1987년 8월 29일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 용인공장에서 사주 박순자 씨와 직원 31명이 죽은 채로 발견돼 충격을 준 일이 오대양 사건이다. 박순자는 종말론을 내세우면서 교주로 행세했다. 유병언 계열 구원파에 속했다가 갈라져 나왔다. 검찰은 이 사건을 박순자 등이 사채 빚 탓에 저지른 집단자살로 결론지었다. 박순자가 신도들에게 170억 원을 뜯어낸 일도 밝혀냈다.

    유병언은 박순자 등의 집단자살 배후라는 의심을 받았다. 죽은 오대양 직원 상당수가 구원파 출신인 데다, 유병언과 박순자가 돈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은 연루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기 혐의로만 유병언을 구속했다. 검찰은 당시 구속영장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유병언은 자신의 가르침에 맹종하는 신도들의 종교적 열광 분위기를 이용해 돈을 내서 회사를 살려야 천국에 간다, 회사를 번창시키는 것이 복음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한 뒤 34명의 피해자로부터 11억6545만 원을 편취했다.”

    대법원은 1988년 9월 유병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숟가락 하나라더니…”

    구원파는 종교면서 기업이다. ‘기업은 곧 교회’였으며 ‘하나님의 일’이었다. 탈퇴 신도 K씨는 이렇게 주장했다.

    “유병언 회장이 벌이는 사업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기에 동참하는 것이 기도고 예배다. 교리가 그렇다. 교단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었다. 그렇다보니 신도들은 박봉을 받으면서 일했다.”

    구원파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속았다, 착취당했다고 말했다. J씨의 주장이다.

    “10년 넘게 활동했다. 탈퇴하기도 어렵다. 사탄의 자식이 된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협박한다. 빚을 내 살더라도 공중들림을 받으면 하나님이 갚아주신다고 했다. 구원파를 믿으면서 가정이 파탄났다. 집단생활 하면서 예배당 공사 등을 했는데, 돈을 거의 받지 않았다. 탈퇴한 신도가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않는 것은 무서워서다. 일단 구원을 받으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괜찮다는 게 구원파 교리다. 구원파 교회 안에서만 구원받고 휴거된다고 가르친다.”

    구원파 교리를 더는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해 탈퇴한 신도들의 증언은 과장됐을 소지가 없지 않지만, 이들의 주장을 통해 유병언 일가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 탈퇴 신도는 “유병언은 재산이 없다, 숟가락몽둥이 하나만 있다고 했다. 그게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월 1만 명 소종파로 넘어가”

    한국의 기독교계 소종파는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로 분류된다. 신비주의 쪽이 신도 수가 가장 많다. 신비주의는 △귀신론 분파 △기도원 분파 △직통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뉜다.

    통일교에서 분파한 소종파로는 생령교회, 청수교회, 생수교회, 구세영우회, 통일원리파, 우주신령학회 등이 있다. 전도관 계열은 한국기독교에덴성회, 대한기독교전도관, 한국증상교회, 재창조교회, 동방교, 영생교, 하나님성회 등이다. 장막성전 분파도 크게 보면 전도관 계열이다. 장막성전 계열 분파는 15개가 넘는데, 개중엔 통일교 원리강론의 교리를 끌어들인 곳도 있다. 성락교회, 여호와새일교단도 계보를 형성했는데, 이초석, 한만영이 성락교회의 귀신론을 공유했다.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진용식 상록교회 목사의 주장이다.

    “한국에서 이단에 빠진 사람이 200만 명에 달한다. 개신교인이 850만 명인데, 200만 명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정부의 인구조사 때 대부분 개신교인이라고 응답한다. 매달 정통 교회 신도 1만 명이 사이비 종교로 넘어간다는 통계가 있다. 20년 이내에 이단에 더 많은 교인이 있게 될 것이다.”

    소종파 신도 수는 추정에 따른 것으로 과장된 것일 수 있으나 이 발언을 통해 기독교 주류 교단이 느끼는 현재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개신교계 신학자, 목회자들과 다르게 종교학자들은 ‘이단’이라는 표현 대신 ‘섹트’ ‘소종파’ 같은 중립적 표현을 사용한다.

    정부가 보기에도 소종파는 특정 종교의 분파일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A 종무관은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단 시비는 특정 종교 내부에서의 논란일 뿐이다. 어떤 교리든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다. 법을 어겼을 때만 국가가 개입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는 ‘무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포교·개종할 자유’를 포함한다.

    보혜사 성령, 이만희

    ‘신천지 출입금지’

    4월 27일 서울 도봉구의 한 교회 입구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은 기성 교단의 공적 1호다. 이 교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천지는 정통 교회를 씨를 뿌려놓은 추수밭으로 여긴다. 추수꾼을 정통 교회에 보내 신자들을 빼간다. 우리 교회 성도 수가 100명이 안 되는데, 신천지 쪽은 1000명이 넘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신천지가 기성 교회에 파견해 자신들의 신앙을 전도하는 이들을 추수꾼이라고 한다. 작은 교회가 신천지에 통째로 넘어가기도 한다. 신천지 출신 목사와 전도사가 신도로 들어와 교회 전체를 신천지로 바꿔버리는 것으로 ‘산 옮기기’라고 한다. 신천지대책전국연합이 입수한 신천지의 내부 교육자료엔 ‘세상은 우리의 연극무대다’ ‘대본대로 자신감 있게 하라’ ‘귀신까지도 속이라’는 문구가 있다. 신천지에서는 ‘거짓말도 전도 방법’이라고 가르친다는 게 신천지대책전국연합의 주장이다.

    신천지는 장막성전 분파 중 교세가 가장 크다. 15만 명이 넘는 신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신자를 상대로 공격적 전도를 한다. 신도들은 이만희 총회장을 보혜사 성령, 약속의 목자라고 여긴다. 신천지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신천지 교리는 종말론을 강조하는 신종파가 대부분 그렇듯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20세기 한국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4장의 영계 조직대로 4명의 부서장, 7명의 교육장, 24명의 부장으로 조직됐으며, 12지파가 1만2000명씩 열매를 맺어 14만4000명 무리가 완성되면 순교자들의 영혼과 성도들의 육체가 하나 돼[영육일체(靈肉一體), 신인합일(神人合一)] 영생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 맞은 거룩한 성에 들어온 성도는 만국을 소성시키고 다스리는 제사장 나라가 되므로 영원한 진리로 왕 노릇하는 권세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만희 보혜사’를 포함해 1910년 이후 한국에 등장한 ‘재림주’‘하나님’‘성령’이 120명이 넘는다. 그중 신도를 모아 그 나름의 세(勢)를 이루는 데 성공한 이만 70명가량이다. ‘재림주’‘하나님’‘성령’은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거나, 신도를 미혹해 사익을 챙겼다고 비판받는다.

    신앙촌으로 일반에 알려진 천부교(옛 전도관)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니라 박태선(1917~ 1990) 총회장이다. 일부 천부교인들은 ‘박태선 하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여호와는 천부교에서 사탄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통일교 문선명(1920 ~2012) 총재는 통일교의 메시아면서 참부모다.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 총재도 성신(聖神)이면서 후(後)해와로 추앙받는다. 문선명 사후 한학자 신격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문선명, 박태선은 과거에 존재했거나 현재도 활동하는 신비주의 계열 기독교계 소종파의 ‘재림주’ ‘하나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각 소종파의 역사를 타고 과거로 가면 어김없이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종교탄압 그만하라”

    소종파의 난립은 종교 현상이면서 사회 현상이다. 종교학자들은 한국처럼 재림주, 하나님을 자처하는 이들이 쏟아져 나온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불교의 미륵사상, 샤머니즘의 입신체험, 정감록의 정도령 사상이 기독교의 메시아와 융합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견해가 많다.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비교종교학)의 분석은 결이 다르다. 한국 기독교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교가 전 세계적으로 보면 별종 중 별종이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근본주의 신앙이 대부분이다. 근본주의의 특징이 문자주의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가르친다. 한국에서 1970~80년대 그리스도교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그중 대부분이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 90% 넘는 그리스도인이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근본주의 신앙은 현재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에서도 TV 전도사들 탓에 세가 큰 것으로 보이지만 남부 지역 중심의 소수일 뿐이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특징은 이기주의다. 신앙을 복을 받는 수단으로 여기는 기복신앙이 많다. 내가 잘되게 해달라는 이기적 목적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종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근본주의, 이기주의 탓에 이웃 종교 심지어 기독교 내의 다른 교파도 배척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또한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읽어 문자를 다르게 해석하면 누구나 자기가 ‘보는 대로’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성경은 ‘보는 대로’가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대로’가 돼야 한다. 수많은 재림주, 하나님이 등장하고, 교주가 성경을 멋대로 해석한 후 그것이 문자 그대로라면서 믿으라고 가르치는 소종파가 난립한 근본 원인에 한국 그리스도교의 이 같은 근본주의, 이기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문제가 되는 소종파들은 더욱 극단으로 나가 자신들의 독특한 성경 해석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한국에는 엉터리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교 교단이 많다. 말썽을 일으키는 대형 교회 또한 적지 않다. 과한 얘기일 수 있으나 말썽을 일으킨 교회들과 요즘 문제가 되는 구원파가 질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구원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넘어가자.

    “1977년 마지막으로 권신찬 씨를 만났을 때 권씨는 사위 유병언 씨를 예수님에 비유했다.”

    구원파에 몸담았다 1977년 탈퇴한 J 목사가 ‘현대종교’209호(1991년 9월)에 발표한 구원파 관련 15쪽 분량의 문건에 이 같은 대목이 나온다.

    J 목사는 세월호 사건 이후 신문 잡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월급 4만 원 주면서 예배 대신 일만 시켰다” “구원파 교리는 노동착취다” “국정원 검찰 경찰에도 구원파가 포진해 있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간 언론의 구원파 관련 보도 핵심 취재원이 J 목사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2010년 J 목사 또한 사이비(似而非)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한기총은 ‘성교를 통해 거룩해질 수 있으며 성교가 창조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되는 기쁨’이라는 책을 추천 및 전파했다고 J 목사를 비판했다.

    J 목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이 날조됐다고 반박했다.

    J 목사와 일부 탈퇴자가 구원파 신도들이 유병언을 ‘살아 있는 성령’ ‘살아 있는 예수’로 추앙했다고 증언하지만, 구원파는 ‘한국에 나타난 재림주, 하나님’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신비주의 계열 소종파와 교리가 다르다.

    4월 28, 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구원파 신도들의 집회가 열렸다. 신도들은 무채색 옷을 입고 ‘종교탄압 out’ ‘인권탄압 out’이라는 글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언론 보도를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일부 신도는 박해받은 유대인과 자신들을 비교했다. “갈 곳은 아우슈비츠밖에 없단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구원파 측은 “유병언 회장은 형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 신도는 “유병언 회장을 통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그가 교주냐?”고 말했다. “성경에 대해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신도들은 언론이 구원파에서 유병언이 신격화한 존재라는 식으로 보도한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1~2세기 영지주의에서 유래

    구원파는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의 큰 갈래 중 어느 하나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에 따르면 구원파는 1960년대 권신찬, 유병언이 함께 만들었으며, ‘죄를 깨달아 한번 구원받으면 그다음부터는 육신의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권신찬, 유병언, 박옥수 등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독립선교사 케이스 클라스, 딕 욕에게 배웠다. 딕 욕은 “제자가 한국에 10명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박옥수, 다른 하나가 권신찬의 사위 유병언”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도 딕 욕의 영향을 받았으나 유병언과 함께 활동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요한은 1983년 헌금을 사업에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고 유병언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인 후 생명의말씀선교회(대한예수교침례회)로 독립했다.

    유병언의 장인 권신찬은 1970년대 극동방송에서 구원파 교리를 전파하다 퇴출됐다. 구원파 쪽은 극동방송에 운영비를 대면서 이 방송을 지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기독교계는 당시 권신찬의 설교 외에 최태민의 구국선교단도 문제 삼았다.

    구원파의 핵심 교리는 기독교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전 존재한 영지주의(靈知主義·Gnosticism)에서 비롯했다. 영지주의는 기원 후 200년가량 세를 넓히다 현재의 기독교에 밀렸다. 기독교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초기에 이단으로 정죄(定罪) 받았다. 유럽 영지주의자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생각이 정통이며 현재의 기독교가 오히려 이단이라고 여긴다. 현재의 기독교가 세를 얻기 전까지는 영지주의가 정통이었다는 것이다.

    정통파 기독교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나 영지주의는 구원이 ‘영지(靈知, gnosis, 그노시스)’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깨달음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과 유사한 면이 있다.

    구원파는 성경을 신문(新聞), 일간지와 잡지를 구문(舊聞)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독립 이후 중동 사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종말관은 보통의 교회와 거의 같다. 다만 ‘기성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 ‘십일조 강요는 율법적이다’ ‘교회에 안 나가도 어디에서나 하나님 모신 곳이 교회다’ ‘구원받은 사람은 기도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일부 비교종교학자는 “영지주의의 영육이원론은 받아들일 수 없으나 믿음보다 영지, 그러니까 깨달음을 중시한 전통은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가 불교 등 타종교와의 소통에 장점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나는 지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다”
    새주파, 원산파가 뿌리 격

    1910년 이후 2014년까지 한국에 등장한 ‘재림주’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거나 지금도 문제시되는 기독교계 소종파의 거의 대부분이 신비주의 계열이다. 한국인 재림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계 소종파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다. 1910년대 정도교의 창교자가 메시아를 자처했다. 1920년대에는 남방여왕, 한에녹이라는 인물이 스스로 재림주라고 칭했다.

    △기도원 분파 △직통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의 뿌리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성도의 새주파, 유명화의 원산파와 마주한다. 두 여인은 모두 신을 몸에 받아들이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성도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새주’로 칭하면서 재림예수로 여겼다. 새주파는 새로운 주를 믿는 교파라는 뜻도 갖고 있다. 김성도는 자신의 몸에 들어온 예수로부터 “인류의 죄가 음란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같은 교리는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전도관을 거쳐 정명석의 JMS로 이어진다.

    새주파는 북중교라는 이름으로 1940년대까지 존재했다. 새주파는 ‘예수는 죽지 않고 뜻을 이뤄야 했다’ ‘재림주는 조선으로 오며, 조선이 신앙의 종주국이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를 실패한 메시아로 여기며 ‘한국에 여인의 몸을 타고 온 재림주가 등장하고 한국이 구원의 땅이 된다는 것’은 현재 신비주의 계열 소종파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김성도가 받았다는 계시는 삼각산기도원 정득은의 ‘생의 원리’, 이스라엘수도원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 등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정득은, 김백문은 문선명, 박태선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준다. 김성도가 1944년 사망하면서 남겼다는 예언이 흥미롭다.

    “하나님께서 다른 구원자를 보내 뜻을 이룰 것이다. 구원자는 음란집단으로 오해를 받아 핍박을 당하고 옥고를 치를 것이다. 오해받는 그곳을 찾아가라.”

    유명화는 원산의 감리교회를 다니다 예수가 몸에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교회의 부흥회에서 신내림굿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예수의 영이 유명화의 몸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백남주 이호빈 등 신학교를 나온 엘리트가 유명화를 따랐는데, 이들은 유명화에게 예수가 임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유명화를 따르던 백남주 등은 1933년 ‘새 생명의 길’을 발표하면서 구원의 과정을 구약시대·신약시대·새 생명의 길로 나눴다. 신천지의 실상시대·말씀시대·계시록시대, 통일교의 성약시대·복귀섭리완성시대·부활완성섭리시대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근본원리’를 쓴 김백문은 백남주의 제자다. 김백문은 김성도의 새주파와 유명화의 원산파에서 모두 활동했다. 새주파의 성주교 창립 예배 때 사회를 맡기도 했다. 하와가 사탄과의 성관계를 통해 사탄의 씨를 낳았다는 게 김백문의 타락론이다. 지금도 소수의 계승자가 김백문의 사상을 전파한다.

    백남주는 유명화의 원산파에서 성적인 문제를 일으킨 후 김성도의 새주파를 찾아간다. 제자인 김백문과 함께 새주파 소속 교회에서 설교했다. 백남주는 1949년 죽었다. 예수의 영이 몸에 들어온 두 여인의 신비주의는 백남주를 거쳐 김백문으로 이어졌다. 김백문은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신비주의파 신도를 모아 이스라엘공동체를 창립하고 이생렬수도원을 이끌었다. 1945년 스물다섯의 문선명이 김백문을 찾아와 6개월가량 김백문을 받들었다. 김백문은 “어린 양(羊)의 혼인잔치”를 치르면서 스스로 메시아로 자리매김한다.

    문선명의 ‘원리강론’은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와 핵심 개념이 거의 같다. 문선명이 김백문의 교리를 베꼈다는 의혹에 대해 통일교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기독교 근본원리’는 예수의 영이 몸에 들어온 김성도의 신비체험을 체계화한 것이다.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는 세계기독교신령협회의 약칭이다. 백남주, 김백문 등의 신비주의파를 당시에는 신령파라고 불렀다.

    얽히고설키며 교리 정립

    1930년대 한반도에 나타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재림주’로 황국주가 있다. 황국주 또한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황국주는 생김새도 예수를 묘사한 그림들과 닮았다고 한다.

    황국주에 따르면 어느 날 예수가 나타나 황국주의 목을 떼고 예수의 머리로 바꿔 붙여줬으며 몸의 피 또한 예수의 것으로 바꿔줬다. 여인들은 황국주를 예수로 숭배하면서 돈과 정조를 바쳤다. ‘예수’로부터 피가름을 받은 것이다. 피가름 교리로 최근까지 물의를 일으킨 곳으로 정명석의 JMS가 있다. 정명석은 2009년 강간치상, 준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황국주의 제자 중 정득은이라는 여인이 있다. 1947년 정득은이 김백문을 찾아왔다. 정득은은 성신의 불을 받아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정득은은 기도 중 “손을 잘라 피를 김백문에게 먹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정득은은 김백문에게 계시 내용을 전하고 실현하려 했으나 김백문이 거절했다. 신비주의 교파에서 나타난 피가름은 주술적 믿음에 가까워 보이지만, 정득은에게는 “뱀의 더러운 피를 받은 이래 인간의 몸에는 그러한 피가 섞여 흐르는데, 그것을 깨끗하고 성스러운 성신의 피로 정화하는 방법”이었다.

    정득은의 이 같은 영체교환을 구원의례로 여긴 사람 중 하나가 천부교의 하나님 박태선이다.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는 피가름 교리로 1950년대 구설에 올랐다. 박태선은 그것에 대해 부인했고, 문선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득은은 김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서 만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삼각산기도원을 세웠다. 그녀는 원죄가 성적 타락에서 비롯한 것이며 구원받으려면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피’는 정득은 자신의 피를 의미했다.

    정득은은 그녀의 추종자이던 박태선 집에서 신도들과 영체교환 의식을 치렀다. 문선명과 정득은이 만난 것은 정득은이 김백문을 찾아오기 1년 전인 1946년이다. 문선명은 평양의 신령파 교회를 찾아 월북했고, 그곳에서 정득은을 만났다.

    문선명의 ‘원리강론’,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 정득은의 ‘생의 원리’, 통일교에서 갈라져 나간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의 핵심 내용은 지금 활동하는 신비주의 계열 소종파의 교리에 스며들어가 있다. JMS 정명석은 통일교에 입문한 후 반공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1978년부터 문선명의 사명은 끝났고 자신의 사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1980년 애천교회를 세우고 교세를 키웠다. JMS는 정명석이 계시 받았다는 30개론이 ‘원리강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비주의 계열 소종파는 이렇듯 교리와 인맥 역사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나름의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

    5월 4일 서울 강북의 한 교회 앞에서 만난 신천지 신도 K씨와의 일문일답.

    ▼ 왜 신천지 교회를 다니나.

    “성경 계시와 일치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 일반 교회도 다녀봤지만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헌금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일반 교회는 타락해 있다.”

    ▼ 영생한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육체의 영생, 영의 영생이 있는데, 성경이 육체 영생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 영생을 주장한 사람들이 과거에도 있었는데, 다 죽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될 때 영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들어선다.”

    ▼ 이만희 총회장이 영생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일은 없다. 성경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들은 대로 이 땅에 천국을 만들고 계신다. 성경 그대로 증거하고 계시는 것이다.”

    ▼ 14만4000명만 왕 노릇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

    이렇듯 신천지를 포함한 전도관 및 장막성전 계열 소종파 교리엔 한국적 신비주의 전통에 한국을 구원의 땅으로 여기는 종말론이 결합해 있다. 육체의 영생을 강조하는 곳도 많다.

    조희성의 영생교는 신도 납치 살인이 드러나 교단 간부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조희성도 육체의 영생을 주장했다. 조희성은 2004년 범인 도피 혐의 등으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조희성은 전도관 박태선의 신도였다. 이만희도 1957년 지금은 천부교가 된 전도관에 입교했다. 성령의 계시에 따라 입교했다는 게 신천지 쪽 주장이다.

    에덴성회의 이영수는 “박태선은 씨를 뿌리는 감람나무이며 나는 알곡을 거두는 감람나무다. 박태선은 모세의 성령을 받았는데 나는 여호수아의 성령을 받았으며 모세의 사명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에덴성회는 현재 본원인 가평의 알곡성전 외에 전국에 30개의 교회가 있다. 감람나무(이영수)를 통해 하나님의 군대를 완성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설립됐다고 가르친다.

    박태선은 1957년부터 신앙촌이란 이름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주의 보혈을 받은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나중에 ‘이긴 자’ ‘영모님’이 됐다가 ‘하나님’의 반열에오른다.

    “나는 지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다”

    육체 영생을 주장한 영생교 교주 조희성

    전도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소종파는 20개가 넘는다. ‘제2감람나무’라거나 ‘이긴 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독립해 또 다른 교파를 세운 것이다.

    박태선 또한 이스라엘수도원에서 김백문에게 수련을 받았다. 박태선과 정득은의 관계는 1950년대까지 계속됐는데, 정득은의 신앙적 관심사는 ‘누가 감람나무인가’였다. 박태선은 자신이 감람나무라고 주장했으나 정득은이 이를 받아들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비슷한 시기, 문선명은 예수를 ‘영적 구원’만을 이뤄낸 이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육적 구원’을 이뤄낼 메시아로 암시하기 시작했다.

    전도관은 기성 교회를 ‘마귀의 전당’이라고 비판하면서 신앙촌에 들어와야 말세에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소사신앙촌(경기 부천시), 덕소신앙촌(경기 남양주시), 기장신앙촌(부산 기장군)을 꾸렸으나 소사신앙촌과 덕소신앙촌 일대가 재개발되는 바람에 현재는 기장신앙촌만 남아 있다.

    전도관은 구원파와 마찬가지로 신도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부를 쌓았다. 지금도 곳곳에서 천부교인들이 만든 물품을 판매하는 신앙촌상회를 찾아볼 수 있다. 신앙촌 상품은 영남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천부교의 기업들은 시온그룹으로 성장했다. 문선명의 통일교도 종교이면서 기업(통일그룹)인 형태로 나아갔다.

    “성서 98%가 가짜”

    박태선이 자신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선언한 것은 1980년이다. 하나님 선언 후 교단 명을 전도관에서 천부교로 바꿨다. 이 사건 이후 다수 신도가 이탈했으며, 1990년 ‘하나님’이 죽은 이후 세가 약화했다.

    박태선은 ‘14만4000명’으로 의인의 숫자를 제한했다. 박태선의 이 교리는 전도관 및 장막성전 계열 분파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박태선은 하나님을 선언하면서 ‘성서는 98%가 가짜다’ ‘아브라함이니 다윗이니 전부 개XX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의 나이가 5700세이며 영생한다고 했다. 천부교인들은 심판의 때 낙원의 왕이 되고자 한다. 천부교 교리에 따르면 의인의 수가 14만4000명이 되면 지구는 지상천국이 된다.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박태선)이 마지막 날을 결정한다. 14만4000명은 제2천국에서 왕이 된다.

    박태선 사망 이후 다수의 신도가 흔들린 것은 그를 통하지 않은 구원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천부교 목회자들은 박태선의 재림을 설교하기도 한다. 박태선과 함께 영생하자는 약속은 교주 사망 이후 지상천국뿐 아니라 저세상의 천국을 소망하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14만4000명’ 교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특별한 무리 14만4000명이 하늘에 가서 하나님과 영생하는 특권을 누린다고 가르친다.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 나라가 곧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1918년, 1920년, 1925년, 1941년, 1975년 등이 지정됐으나 심판은 없었다. ‘그날’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증언한 진리를 받은 사람만이 낙원에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 ‘14만4000’은 여호와의 증인 등 여러 곳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소종파의 특징 중 하나가 요한계시록을 임의로 해석해 절대화한 후 강요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에 넣을지, 말지 논란이 있었던 책이다. 상징적인 문구가 많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천지 신도들 또한 영생을 누리면서 왕 노릇하는 14만4000명 안에 들어가는 게 신앙의 목표다.

    女신도로 이뤄진 12천사

    유재열은 한국 소종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재림주’다. 1949년생으로 17세에 교주가 됐다. 장막성전 계열 소종파들의 시초에 그가 있었다. 일례로 이만희는 1971년 박태선의 전도관을 탈퇴하고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입교했다.

    유재열은 하나님의 마지막 종으로 자임했으며 심판이 될 때 밀실에 숨게 되는 이가 14만4000명이라고 가르쳤다. 장막성전이 바로 그 밀실이다.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신도들은 청계산 자락의 장막성전에 모여 심판의 날을 기다렸으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유재열은 아버지 유인구와 함께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을 다녔다. 김종규를 축출하고 교권을 장악한 후 장막성전을 세웠다. 김종규는 신도들에게 ‘주님’ ‘아버님’이라고 불렸다. 교리는 전도관과 비슷했다. 신도들도 주로 전도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다. 말세의 심판이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지상천국이 건설된다고 믿었다. 피난처가 호생기도원이었다. 여신도로 구성된 12천사가 교주를 모셨다.

    유재열은 1966년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이 이뤄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신비체험을 목격한 27명의 제자는 1966년 3월 14일을 하느님의 계시에 따른 성탄절로 삼는다. 신천지의 창립기념일도 3월 14일(1984년)이다.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를 요한계시록의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들은 성령으로 믿는다.

    유재열은 자신과 아버지 유인구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두 증인이라고 주장했다. 7천사 아래 12전도사→24장로→48집사→72문도→14만4000신도의 계급으로 종교 조직을 구축했다. 신천지의 현재 조직과 거의 같다.

    장막성전은 유재열이 내부자의 투서로 구속되면서 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유재열은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넘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현재는 한국에서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유명 가수 P씨가 유재열의 사위다.

    장막성전에서 유재열을 신봉하던 이들은 책 받아먹은 자, 계시 받은 자 등을 자처하면서 독립했다. 이만희의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김풍일의 새빛등대중앙교회, 구인회의 천국복음전도회, 홍종효의 증거장막성전, 심재권의 무지개증거장막성전, 정창래의 증거장막성전, 백만봉의 솔로몬재창조교회 등이 현재도 교리를 전파한다.

    이 중 천국복음전도회의 ‘재림예수’ 구인회는 사망했다. 구인회 계열로 현재 활동하는 곳은 최총일의 재림예수교회천국복음전도회와 박인수의 한국예수교천국복음전도회가 있다. 최총일은 ‘어린양 재림예수 구인회의 아내’로 자신을 규정한다. 박인수는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한다. 교회명을 새빛등대중앙교회에서 세광중앙교회로 바꾼 김풍일은 ‘신천지 반대 대책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이만희는 1971년 장막성전을 탈퇴한 후 솔로몬재창조교회에서 백만봉을 따랐다. 백만봉도 당연히 재림주를 자처했다.

    장막성전 계열 소종파 교리의 골격은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계승된 것이다. 신천지에는 통일교 교리도 스며들어가 있다. 통일교를 이탈한 전진화가 세운 생령교회 출신 인사들이 저술하고 신천지가 출간한 ‘신탄’이 초기에 교리서로 쓰였다. 신탄은 문선명의 원리강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현재는 교리서로 사용하지 않으며, 교리서였던 것도 부인한다.

    신천지는 장막성전의 분열과 신천지의 등장이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본다. 유재열을‘배도자’로 규정한다. 유재열에게 장막성전을 넘겨받은 기성 교단의 오평호는 ‘멸망자’다. 이만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에 따라 배도자(유재열)와 멸망자(오평호) 다음에 오는 구원자인 것이다.

    신천지에서 이탈해 또 다른 장막성전을 세운 이들도 있다.

    신비주의 계열과 성격이 다른 소종파로 최근 교세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교회도 주목받는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다. 안상홍은 1948년 침례를 받고 전도를 시작해 1964년 부산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 과정이 성경 예언대로 이뤄졌다고 본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교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지만, 하나님의 교회 측은 “성경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박명호를 믿고, 따르는 한농복구회(엘리야복음선교원)는 안식교 출신을 중심으로 세워진 소종파다. 박명호는 이 소종파에서 엘리야다.

    안식교는 엘렌 화이트(1827~1915)라는 여인을 말세를 위한 하느님의 예언자로 믿는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인지, 사탄의 추종자인지 판결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여긴다. 한국에서는 위생병원, 삼육대학, 시조사, SDA 영어학원 등을 운영한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기독교 소종파로는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외에 모르몬교가 있다. 미국에 세워질 하느님의 나라에는 모르몬교 침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죽은 사람도 침례 받을 수 있다. 2012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이던 미트 롬니가 모르몬교도다.

    표층종교 vs 심층종교

    김흥수 목원대 교수(신학)는 “통일교, 전도관의 1950년대 종교운동은 먹고살기 힘들었던 당시 민중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을 열어준 면이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전통적 기독교 교리 차원에서 판단하면 전도관과 통일교의 신학적 상상력은 이단이지만, 6·25전쟁 직후의 사회적 조건에서 한국인의 생존 욕구를 독특한 성서 해석과 의례로 채워주려 한 신학적 상상과 구성은 평가할 만하다. 신비적 기독교 전통에 기반을 두고 한국의 종교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적 기독교를 세우려 한 실험적 종교운동의 일면을 지녔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권화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에서 신비주의는 기독교든, 불교든 가장 심층적인 면의 종교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주의는 내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것이다. 왕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표층종교가 대부분이다. 잘살게 해달라, 천국 가겠다는 기복 신앙이다.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찾는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소종파의 상당수가 심층종교가 아닌 극단의 표층종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 같은 소종파와 그 종파 탓에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의 논박이 한창이다. 대부분 소종파와 관련해 피해자 혹은 탈퇴자 모임이 구성돼 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속았다”고 여기는 이들과 가족이 신도인 사람들이다. 아내가 소종파를 믿는 남성의 수도 적지 않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고, 신도는 그들보다 다수인 터라 인터넷 논박에서는 소종파 쪽이 피해자 모임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다. 세를 이룬 소종파는 인터넷팀을 따로 운영한다. 허위사실일 경우엔 포털 사이트에 요청해 글을 삭제하게 하기도 한다. 명예훼손 혐의로 글을 올린 탈퇴자를 고발한다. 피해자, 탈퇴자 모임에서는 고발 안 당하고 공격하는 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소종파를 믿는 아내를 보통의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감금, 구타해 고발당한 사례도 많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배우자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피해자 모임은 탈퇴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이때도 주의가 요구된다. 교권 다툼을 한 세력이나 또 다른 ‘재림주’가 피해자, 탈퇴자 모임에서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피해 사례는 가출, 이혼, 학업 중단, 경제적 곤란이 대부분이다. 교주가 여신도를 추행했다는 사례도 몇몇 소종파에서 등장한다. 과거처럼 전 재산을 바쳤다거나 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출, 이혼, 학업 중단, 경제적 곤란은 소종파 측에서 강제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옳든 그르든 개인의 믿음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도 목표를 달성하고자 생업을 팽개치고 시간을 소비한 것은 누구 탓일까. 종교 생활에만 집중해 경제난을 겪는다면 그것은 누구 탓일까.

    일부 소종파는 오히려 헌금 문제, 교회 세습 문제 등으로 기성 교회를 공격한다. 일례로 신천지 측은 2007년 검찰 조사 때 감금, 폭행, 가출 조장, 배임 횡령 등에서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려진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한국 교회가 비리로 몸살을 앓는데, 신천지처럼 조사를 받아 무혐의 결론을 얻을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소종파의 난립은 사회적 현상이면서 증상(症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저소득층이나 삶이 고단한 사람이 극단적 영성 추구의 욕망을 갖는 사례가 많다고 본다. 초월을 향한 욕망은 삶이 고통스럽거나 시대가 위기라고 여길 때 강해지게 마련이다. 더는 잃을 게 없거나, 희망이 사라진 이들에게 종말의 심판은 매력적일지 모른다.

    오강남 명예교수는 “낙인, 배타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온다. 안목을 넓게 하고 소종파와도 종교 간의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참고문헌 |

    단행본 오강남‘그리스도교 이야기’/ 민경배 ‘한국교회의 신비주의사’/ 최중현 ‘한국메시아운동사 연구’/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사’/ 김백문 ‘기독교 근본원리’/ 문선명 ‘원리강론’/ 이만희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요한계시록의 예언과 성취’/ 신천지증거장막성전 편 ‘신천지발전사’

    논문 장석만 ‘한국기독교와 이단 생산의 사회’/ 김흥수 ‘이단 또는 한국적 기독교’ ‘한국 기독교 이단의 역사적 고찰’/ 임웅기 ‘한국 개신교계 신종교의 윤리성에 대한 비판적 접근’/ 황근배 ‘한국사를 통해 본 기독교 이단 활동 및 그 영향에 관한 연구’

    [알립니다]

    기쁜소식선교회 측은 ‘나는 지상천국의 왕이 될 것이다’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기쁜소식선교회는 구원파가 아니고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구원파’라는 것은 일부 교단에서 명확한 조사 없이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라고 알려왔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세월호 참사 후 관련 보도 내용 중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오대양 사건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일부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유병언 전 회장은 ‘루브르 등에서 사진 전시회를 하기 위해 수십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없으며, 특정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바 없을 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던 무기류는 수집용으로 실사용이 불가능하고 김혜경씨는 유 전회장의 재산관리인이 아니다’고 밝혀왔습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유 전 회장의 도피 계획을 총괄했다고 알려진 ‘김엄마’는 교단 소속의 평신도일 뿐 특별한 직책이나 역할을 맡은 바 없고 구원받은 사람은 기도가 필요없다거나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교리는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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