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20대 리포트

‘마이너스 노동자’ 무급 인턴

“개인 돈 들여 허드렛일만 해줘”

  • 입력2018-08-0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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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40만 원 교통비·식비 지출

    • 업무 경험 쌓을 기회 없어

    • ‘일할 사람 많다’…으름장

    서울시내 모 대학 재학생 A씨는 지난해 휴학을 하고 한 해외 정부기관에서 무급 인턴으로 근무했다. 어렵게 지원해 합격한 인턴 자리였기에 그녀는 시작 전부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비록 무급이지만 좋은 직장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해외 정부기관에서 해보니…”

    하지만 실제로 A씨가 수행한 일은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 힘든 것은 업무가 주어지지 않아 혼자 덩그러니 책상 앞을 지키는, 무안하고 무료한 나날이 연속되는 점이었다. 

    “무급 인턴이니 보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업무 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는데, 가끔 주어지는 업무라고는 복사나 전화 응대에 불과했다. 이런 일이나 하려고 무급으로 수개월 동안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몇 년 전 ‘열정 페이’ 논란으로 한동안 사회가 시끄러웠다. 한 유명 의상 디자이너의 작업실에서 직원들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지급해온 사실이 공개됐다.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서 인턴이나 수습직원의 노동력을 가혹하게 사용하는 문제가 공론화됐다. 그러나 취재 결과, 지금도 별다른 경력을 쌓지 못한 채 무급으로 일하는 ‘마이너스 노동자’가 많았다. 

    이들은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경력을 쌓기 위해 인턴에 도전한다. 내 사비를 들여서라도 경력을 쌓기 위해 무급도 자청한다. 그러나 실제론 실무 경력도 얻지 못하고 존중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고용한 회사나 기관은 ‘일할 기회를 주는 게 어디냐’며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열정 페이의 끝판왕’ 격인 무급 인턴 중 상당수는 식비와 교통비마저 지급받지 못한다. 열정 페이 논란 이후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이 강화됐지만 국내에 주재하는 해외 기관 중 몇몇은 아직 공공연히 무급 인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관과 국제기구에서 무급 인턴 생활을 한 몇몇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학생 L씨는 한 국제기구 연관 조직에서 4개월간 무급 인턴으로 근무했다. 지원할 때 교통비나 식비가 일절 지급되지 않는다는 조건은 알았지만 “막상 근무기간이 지속될수록 줄어드는 통장 잔액에 조바심이 났다”고 한다. L씨가 매월 출퇴근을 위해 지출한 돈은 10만 원이었고 점심 값으로 쓴 돈은 30만 원이었다. 그는 “싼 음식점이 많은 대학가와 달리 회사가 밀접해 있는 지역이라 외식비가 더 들어 부담이 많이 됐다”고 했다. 

    한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한 K씨도 비슷한 고충을 이야기했다. K씨는 “구내식당도 없었기에 매일 외식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비용만 많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아르바이트 병행 고충”

    이들은 모두 무급 인턴 생활을 하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생활비를 벌었다고 밝혔다. K씨는 “학기 중에 하던 과외수업 강사를 계속했다. 무급 인턴을 해보니 과외 수입이 큰 보탬이 됐다”고 했다. L씨는 “무급 인턴을 하는 다른 동료 중에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며 “나는 새벽에도 근무할 수 있는, 비교적 근무시간이 유연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무급 인턴과 도저히 병행하기가 어려워 두 달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고 했다. 

    부모의 용돈 지원 없이는 무급 인턴을 지속하기가 불가능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L씨는 “무급 인턴의 자격요건이 능력과 열정보다는 무급으로 수개월간 버틸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료 무급 인턴들 거의 모두가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이 무급을 감수하고 근무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실무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업에서 이들이 기대한 수준의 교육이나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K씨는 “인턴들을 상대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1시간 이내 교육이 진행됐다. 그러나 업무가 주어지면 참석하지 못했다. 교육에 참석하는 게 눈치가 보였다. 명목적인 교육이었고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L씨는 “인턴을 위한 멘토링이 있었으나 부서나 상사별로 천차만별이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인턴에게 제공되어야 할 교육 내용이 따로 규정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노동부가 무급 인턴을 위한 7개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선 보상을 지급할 것, 훈련 목적임을 분명히 할 것, 업무가 인턴을 위한 내용일 것, 정규직원 업무 대체용으로 고용하지 말 것, 인턴 운영으로 인한 기업 측의 즉각적 혜택이 없을 것, 인턴 종료 후 취업을 보장할 필요는 없음, 무급 여부에 대해 사전에 양측이 동의할 것 등이다.

    임금 없어 근로자 아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무급 인턴에 대한 제도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무급 인턴은 임금이 없어 근로자로서의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인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몇 년 전 근로기준법을 일부 개정하는 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으나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무급 인턴을 체험한 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무급 인턴을 다시 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무급 인턴에 지원했을 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망과 후회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한 학생은 “무급을 상쇄해주는 차별적 가치가 없어 부당함을 느꼈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실무교육’수업 수강생이 신성호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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