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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韓中 5000년

高麗의 거란 견제 덕에 宋, 통일 대업 이뤄내다

  • 백범흠|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高麗의 거란 견제 덕에 宋, 통일 대업 이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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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할 것 같던 제국 당(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안·사의 난은 내란이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전이었다.
  • 발해와 거란이 호시탐탐 당의 빈틈을 노렸으며
  • 신라는 당이 혼란기에 접어들자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高麗의 거란 견제 덕에 宋, 통일 대업 이뤄내다

경제 번영과 상업 발달로 큰 도시가 출현한 송대(宋代)의 그림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

쿠틀룩 빌게를 수령으로 한 몽골고원의 위구르족은 745년 바스밀, 카를룩 등 여타 부족과 함께 아쉬나 부족의 후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제국을 세웠다. 위구르제국은 동으로는 다링허 유역, 서로는 카스피 해까지를 영토로 해 840년까지 번성했다. 747년 쿠틀룩 빌게가 죽은 후 모옌초르가 승계했는데, 모옌초르 통치기인 751년 고선지의 당나라군과 사라센군 간 탈라스 전투가 벌어졌다.



唐의 몰락

위구르제국은 안·사의 난(755~763) 때 당나라를 지원했으며, 당나라가 약화된 틈을 타 간쑤(甘肅)와 신장(新疆)으로 진출했다. 840년 기근과 내란으로 약화된 위구르제국은 같은 돌궐계 키르기스족에게 정복당했다. 간쑤와 신장 일대로 대거 이주한 위구르인들은 농경민화했다. 오늘날 신장-위구르 지역엔 1000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계 위구르인이 거주하며 중국 중앙정부와 대립한다.

당(唐)은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해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가 통치했다. 당의 추락을 재촉한 안·사의 난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

755년 11월 중앙아시아 부하라(安國) 출신을 선조로 둔 범양(허베이)-평로(랴오시)-하동(산시·山西) 절도사 안록산(安祿山)은 부장(部長) 사사명(史思明)과 함께 오늘날의 베이징인 위양(漁陽)에서 반기를 들었다. 안록산의 병력은 당나라 병력의 3분의 1인 15만 명에 달했다. 안록산은 동라돌궐(5대 10국 시대 때 주인공이 되는 사타돌궐이 속한 부족), 거란·해(奚), 실위(室韋) 등 북방민족을 포함한 15만 대군을 이끌고 12월 초 황허를 건너 12월 중순 장안으로 진군하다가 곽자의(郭子儀)가 이끄는 돌궐군 주축 삭방군(朔方軍)에 패하자 일단 위양으로 후퇴했다.

이즈음 발해는 안록산이 당나라 공격에 실패할 경우 자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수도를 북만주 상경(上京)으로 옮겼다. 발해의 우려와 달리 756년 초 다시 서쪽으로 진군한 안록산군은 농우·하서 절도사 가서한(哥舒翰)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장안 동쪽 관문 동관(潼關) 밖에서 대파했다. 안록산군이 장안에 접근해오자 현종은 쓰촨으로 파천했다.

현종을 대신해 아들 숙종(肅宗)이 즉위한 후인 756년 8월 당나라는 위구르군의 지원을 받아들였다. 757년에 들어서면서 안록산군의 상황도 급변했다. 안록산의 큰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이복동생이 후계자로 지명될 가능성이 커지자 1월 안록산을 독살하고 황제에 등극했다. 안경서군은 그해 4월 당나라군을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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