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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스톡홀름 항구의 화려한 ‘문화 등대’

스웨덴국립미술관

  • 최정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스톡홀름 항구의 화려한 ‘문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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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에 뒤지지 않는 스웨덴 화가들

Alexander Roslin, ‘The Lady with the Veil’, 1768

Alexander Roslin, ‘The Lady with the Veil’, 1768

스웨덴 면적은 남한의 4.5배이지만 인구는 5분의 1에 불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 달러로 한국의 거의 세 배다. 중세 이후부터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고, 17·18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후 점점 기울다가 1809년에는 그간 지배해오던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긴다. 대신 1814년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넘겨받아 1905년까지 연방으로 유지한다. 그 이후부터는 현재의 국경선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른다.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3국 중 가장 크고 앞선 나라다. 면적도 가장 넓고 인구도 가장 많다. 산업화의 역사도 오래고 공업도 발전했다. 문화예술의 역사도 두 나라보다 더 오래됐다. 

한국과도 문화 쪽으로 특수한 인연이 있다. 1926년 일본을 방문 중이던 황태자 구스타프 공작이 경주의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것이다. 그때 신라금관이 출토되는데, 고고학자인 황태자가 손수 채집했다. 이 금관에 세 마리의 봉황 모양이 장식돼 있기 때문에, 스웨덴[瑞典]의 ‘서(瑞)’자와 봉황의 ‘봉(鳳)’자를 따서 이 왕릉을 ‘서봉총(瑞鳳冢)’이라고 했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가 워낙 걸출해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노르웨이의 미술이 가장 앞선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스웨덴 화가들이 일찍부터 국제 무대에 알려졌고 그 숫자도 많다. 스웨덴에는 17세기에 이미 서유럽에서 화가 수업을 받은 작가가 있었고, 18세기부터는 유럽 화단에 이름을 알린 화가들도 속속 나왔다.

다비드 클뢰커(David Klo‥cker Ehrenstra˚hle·1628~1698)는 17세기에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화가 수업을 받았다. 스웨덴으로 돌아와 궁정화가로 임명됐을 뿐 아니라 귀족 칭호까지 받았다. 스웨덴 미술 역사가 서유럽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웨덴 미술사에서 클뢰커 이후의 대표적 작가를 열거하면 알렉산더 로슬린(Alexander Roslin), 요한 세젤(Johan Tobias Sergel), 카를 힐(Carl Fredrik Hil), 에른스트 조셉슨(Ernst Josephson), 카를 라슨(Carl Larsson), 앤더스 조른(Anders Zorn) 등이다. 모두 서유럽 작가들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다.

국립미술관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는 작품은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 로슬린(1718~1793)의 ‘면사포 여인(The Lady with the Veil)’이다. 로슬린이 1768년 자기 부인을 그린 초상화다. 이 그림은 누가 보아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림도 예쁘고, 그 속의 여인도 예뻐서 저절로 눈이 간다.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서인지 밝게 그려진 얼굴과 가슴이 더욱 돋보이고 매혹적이다. 접이식 부채를 든 것도 특이하다.

로슬린은 당대 유럽 최고의 초상화 작가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양을 보여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16세 때 궁정화가의 조수가 돼 수많은 초상화 작업에 참여했다. 29세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접했고, 34세 때 파리로 옮겨가 거기서 평생을 살았다.

로슬린은 파리에서도 곧 두각을 나타냈고, 마흔한 살 때(1759) 16세나 어린 파스텔 화가 마리-수잔(Marie-Suzanne Giroust)과 결혼했다. ‘면사포 여인’은 그로부터 9년 후에 그린 그림이다. 당시 로슬린은 쉰 살로 화가로서 최고의 기량과 개성을 발휘할 때였다.



‘스웨덴의 행복’

Carl Larsson, 
‘Breakfast under the 
Big Birch’, 1896

Carl Larsson, ‘Breakfast under the Big Birch’, 1896

그는 파리에서 최고의 초상화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귀족들이 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몰려들었다. 그는 프랑스 왕족도 그렸고,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와 그 형제도 그렸다. 당시 로슬린으로부터 초상화를 그려 받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1771년 로슬린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부터 연금을 받고 무료 아파트도 제공받았다. 스웨덴으로부터는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스웨덴에서 파리를 방문하는 이들은 로슬린을 찾아보는 것이 도리이고 영광이었다. 이때 주프랑스 스웨덴 대사였던 테신은 로슬린과 아주 친한 친구였다.

1772년 부인이 죽자 로슬린은 2년 후 잠시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고국에서 그는 왕립예술원 회원으로 뽑혔고, 머무는 동안 스웨덴 왕가의 초상화와 유력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러 여황제 예카테리나와 그곳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예카테리나는 로슬린에게 러시아에 머무르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최고의 부자 화가로 등극했다.

로슬린은 1753년부터 파리살롱에 작품을 18회나 전시했다. 1725년부터 시작한 파리살롱은 정부 주최 미술전으로 당대 유럽 최고의 미술 행사였다. 그는 인물의 옷과 장식물을 아름답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내면 세계까지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였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그 인물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 

카를 라슨(1849~1919)은 스웨덴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작가다. 특히 그의 작품 ‘큰 버치나무 아래서의 아침식사(Breakfast under the Big Birch·1896)’는 행복한 가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생활용품 등에 많이 패러디되고 있다. 크기는 32×43cm로 자그마한 수채화지만 그 속에 많은 것이 그려져 있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집 뜰 버치나무 아래에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곳에서 온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라슨은 그림을 그리느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의 자리는 비어 있다. 강아지까지 함께 식사한다. 어린 막내딸은 그림 그리는 아빠를 쳐다본다. 그림 그 자체가 가족의 행복이다. 라슨은 가족을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라슨은 매우 곤궁한 유년기를 보냈다. 스톡홀름 최악의 빈민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서전에서 “몸과 영혼이 황폐해졌다”고 표현했다. 막노동꾼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라슨은 아버지로부터 언어 학대를 받았다. 어머니가 온종일 세탁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라슨은 열세 살 때 빈민학교 선생의 주선으로 왕립예술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유년기의 상처 때문에 어려운 적응 시기를 거쳤으나 점점 두각을 나타냈고, 나중에는 누드 드로잉 대회에서 1등을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한동안 잡지와 신문에 캐리커처를 그리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스물넷(1877)의 라슨은 파리로 건너가지만 거기서는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당시 파리는 인상주의라는 미술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급진적인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레 등이 주도하는 예술촌인 바르비종에도 머물러보았으나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다. 대신 파리 교외에 스웨덴 화가들이 만든 예술촌에서 그들과 함께 작업했다. 거기서 부인 카린(Karin Bergoo)을 만나는데, 이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라슨은 그동안의 유화 작업을 접고 유화 기법과는 아주 다른 수채화에 몰두했고, 많은 명작을 남긴다. 부인 카린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는데, 라슨 작품 속에 나오는 인테리어는 카린의 작품이다. 

라슨은 독일에서 출간한 화집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여유가 생겼다. 이 화집은 2001년까지 40판 이상을 찍었다. 

라슨은 가족의 행복을 매우 중요시했다. 가족과 집은 오랜 시간 작품의 소재였다. 이들 작품에는 가족에 대한 그의 무한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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