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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취재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발상전환’ 비주류, ‘미국중시’ 주류에 KO승!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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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서운 싸움.’ 석 달 전 한 청와대 관계자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둘러싸고 외교부 내에서 벌어진 갈등을 두고 했던 말이다. 날이 갈수록 악화된 이 갈등은 결국 신년 벽두 장관의 목을 날린 ‘외교부 파문’의 진원지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과연 이 싸움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고 그 배경은 무엇인가.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이번 정권은 끝나는 것이다.” “김정일 호감세력이 노무현 지지세력이라는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의 발언은 맞는 말 아니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간의 청와대 발표를 종합해보면, 이 정도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비롯한 현직 간부들이 장시간 조사를 받았고 결국은 윤영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썼다. ‘외교안보라인 경질설’이 있을 때마다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말을 갈아탈 수 없다”며 부인하던 청와대가 말 몇 마디 때문에 외교안보라인의 수장을 갈아치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림이 맞지 않는다.

의구심은 계속된다. “그 동안 참여정부의 외교노선에 혼선과 잡음이 있었고 … 외교부 일부 직원들은 과거의 의존적인 대외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참여정부가 제시하는 ‘자주적’ 외교정책의 기본방향을 충분히 시행하지 못한 채….” 1월15일 윤 장관 교체를 발표하며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이 밝힌 사표수리 이유다. 정리하면 윤 장관체제가 참여정부가 원하는 외교정책을 실현하기에 부적합했다는 뜻이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부적합했다는 이야기일까.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NSC)와 외교부의 갈등설, 이라크 파병문제 등 갖가지 일들이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외교부 주변에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두고 첨예화된 외교부내 북미국-조약국 사이의 갈등을 지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적절한 발언’ 파문의 발단 정도로 치부됐던 이 문제가 사실은 한미관계와 외교노선을 둘러싼 ‘거대한 싸움’이었다는 것. 정찬용 보좌관이 말하는 ‘과거의 의존적인 대외정책’과 ‘자주적 외교정책’의 갈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였다는 설명이다.

두 차례 마라톤 조사

지난해 11월 하순의 어느 날 밤, 외교부 청사 6층에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오후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비롯해 안보관련부서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는 시종 격론이 오갔다. 미 국방부와의 용산기지 이전협상 과정과 정부 부처들의 보고태도를 조사하기 위해 소집된 이 회의의 핵심논점은 한 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국장 등 협상 실무팀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다.

이전협상을 둘러싸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이 조사는 그 의미나 강도가 사뭇 달랐다. 장시간 논의로도 결론을 내지 못해 회의를 다시 소집, 역시 장시간의 논쟁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일부 문제점은 있지만 현실을 인정해 협상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논쟁의 전선은 주로 이전협상의 실무를 맡고 있는 북미국과 협상결과의 법적 검토를 담당하는 조약국 사이에 그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조약국이 공격하고 북미국이 방어하는 형국이었다는 것. 조약국 관계자들은 “국민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게 될 이전합의를 국회 비준 없이 국방장관 명의의 합의서로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북미국에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비준 통과는 불가능하며, 이는 향후 한미관계에 이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현실론으로 맞섰다고 한다.

“조약으로 바꿔야” vs “국가 신의 문제”

이 같은 대립을 이해하려면 먼저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살펴볼 것은 1990년 6월25일 이상훈 당시 국방장관과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이 서명한 ‘서울도심 미군부대 이전을 위한 기본 합의각서’와 ‘서울도심 미군부대 이전을 위한 합의각서(1990년 6월 25일)에 관한 양해각서’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공개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와중에 체결된 이 각서는 이후 ‘사상 최악의 불평등 협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전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물론 ▲모든 건물은 미국 기준에 따라 한국에서 짓고 ▲주한미군 가족 및 모든 정규·비정규 고용인들의 이사 비용 등도 한국이 부담하며 ▲이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기지 내 각종 복지시설 사업자들의 손실 또한 한국이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결 후에도 각서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고 이후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분노를 살까봐 못 내놓는 것 아니냐”고 비판해 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용산기지 이전문제 협상은 이 합의·양해각서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협의를 통해 독소조항이 상당 부분 제거되었다는 게 국방부와 외교부의 공식설명이지만, 근본적으로 1990년 각서의 효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북미국을 비롯한 협상팀과 조약국 사이의 대립 역시 1990년 각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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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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