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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 ①

남북 수십 리, 동서 사오 리… 비옥한 토지에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50만 고려인 역사의 첫 장 연 지신허(地新墟) 마을

  • 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남북 수십 리, 동서 사오 리… 비옥한 토지에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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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굶주림과 일제의 폭압을 피해 러시아로 떠났던 한인들.
  • 그 후손들은 140년이 흐른 지금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흩어져 조선족 또는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러시아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의 결과다.
  • 한때 600여 개에 달했던 연해주 일대의 한인마을들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러시아 한인마을을 찾아 불행했던 초기 러시아 한인이민사를 되짚어본다.(편집자)
남북 수십 리, 동서 사오 리… 비옥한 토지에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지신허(Tizinkhe)’. 1863년경 생겨나 1937년을 전후해 사라진 러시아 연해주 남쪽지역에 위치해 있던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 이름이다. 지신허는 구(舊)소련에 머물던 50만 고려인의 연원지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마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반세기에 걸친 냉전시대에 러시아 지역과 접촉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들은 물론이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로부터 사할린,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알마아타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 중에서도 지신허라는 마을을 알고 있는 이들을 찾기는 어렵다. 그만큼 지신허는 역사문헌이나 고지도(古地圖)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현대의 지도에서는 사라진 지명이다.

필자는 이 마을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고려인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지신허’는 역사학자인 필자의 오랜 화두였다. 그러다 마침내 2년 전인 2001년 7월 국가보훈처 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지신허’ 마을의 옛터를 발굴·조사해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조사단은 관련 문헌자료들은 물론, 러시아의 고지도와 현대지도, 9세기말 간행된 조선지도 등 각종 자료들을 참조해 ‘지신허 발굴’이라는 개가를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TV와 주요 일간지에 크게 보도됐다.

그로부터 1년19개월이 지난 2003년 2월, 필자는 5명으로 구성된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지신허 마을을 다시 찾았다. 2월4일부터 18일까지 약 2주에 걸친 조사단의 연구과제는 블라디보스토크, 파르티잔스크, 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 일대의 연구소, 대학, 기록보존소 등을 방문해 한국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고려인과 러시아 노인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사과와 보드카로 조상의 넋 위로

2월9일 아침 8시10분경 우리 일행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호텔을 나섰다. 이번 답사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한국교육원의 박희수 원장과 교포신문인 ‘연해주소식’의 김광섭 사장이 동행했다. 필자가 이들 현지 교포인사들에게 동행을 권유했던 것은 지신허 마을을 단순히 학술적인 조사 대상에 머무르게 할 게 아니라, 현재의 고려인 사회에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일행을 실은 미니버스는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산과 들을 양옆으로 내치며 눈길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알촘, 라즈돌리노예, 바라바쉬를 거쳐 오후 1시20분경 마침내 지신허 마을로 들어가는 길 입구인 비노그라드나야강(Rechka Vinogradnaia)에 도착했다. 이 강의 이전 명칭은 지신허강(Rechka Tizinkhe)이었다.

비노그라드나야강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진 입구에서 약 15분쯤(2km) 들어가니, 2년 전에 찾았던 농가가 나타났다. 닭, 젖소, 거위들이 낯선 이방인들의 출현에 놀라 푸드덕거리며 한꺼번에 울어대자 한 농민이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2년 전 필자에게 역사 속에 묻힌 지신허의 존재를 확인해줬던 시디코프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Sidikov Boris Aleksandrovich)씨였다. 그와 나는 끌어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그에게 일행을 일일이 소개했다. 군복무 시절 이 지역에 마음이 끌려 제대 후 이곳에 정착했다는 시디코프씨는 젖소를 기르며 우유공장에 우유를 공급하고 있다.

2년 전 시디코프씨는 필자에게 한인들의 집터와 연자매 맷돌, 항아리 파편을 보여주면서 지신허 마을에 관해 중요한 증언을 해줬었다. 그는 한인 유적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날 시디코프씨는 그동안 새롭게 발견된 또 다른 집터와 연자매 맷돌 한 짝, 아래받침돌 등을 보여주었다. 일행은 연자매 맷돌 위에 가져간 사과와 보드카를 올려놓고 김광섭 사장의 주재로 제사를 올렸다. 오래 전 이곳에서 살았던 고려인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강제이주로 마을은 사라지고

필자는 2년 전 장마와 우거진 잡초 때문에 확인해보지 못했던 비노그라드나야강 상류지역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국경지역이라 러시아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시디코프씨의 기억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곳에는 집 두 채가 남아 있었다. 종전 후 러시아 농가 40채가 들어서면서 소프호스(국영농장)가 만들어졌고, 현재 자기 집 위치에 국영농장의 책임자가 살았다고 한다. 소 200마리를 기르는 목장이 있던 이 마을의 명칭은 ‘우로치쉐 비노그라드노예(Urochishche Vinogradnoe)’. 목장 이외에 포도나무, 살구나무 등 과실나무를 많이 재배한 데서 비롯된 명칭일 것이라는 게 시디코프씨의 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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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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