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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 군사 무지렁이 유럽연합의 얼굴

경제통합 대진전, 군사·외교 난제 수두룩

  • 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 군사 무지렁이 유럽연합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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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 국민은 회원국 어느 나라에도 거주할 수 있으며 직업을 구할 수 있다. 비자도 필요 없다.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노동력, 자본도 회원국간에 자유롭게 이동된다. 15개 회원국이 단일시장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경제분야에서의 통합은 크게 진전됐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왜 경제통합을 먼저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독일이나 베네룩스 3국처럼 통합에 적극적인 나라의 경우 ‘유럽합중국’이 통합의 종착역이며, 경제통합을 먼저 달성하게 된 것은 연방국가라는 정치통합의 목표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그러나 영국이나 덴마크 등 통합에 소극적인 회원국의 입장은 다르다. 특히 영국의 경우 유럽통합이 가속화될수록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자국의 자랑스런 역사가 끝나고 유럽합중국의 한 주(州)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나 EU 법원이 영국의 주권에 시시콜콜 간섭한다는 것이다. 영국 언론은 브뤼셀에 있는 EU기구가 영국이라는 국가기구 위에 군림한다고 해서 이를 ‘유럽의 초국가기구(European Supe rstate)’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영국에 유럽연합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주요 회원국이 유럽연합을 보는 시각 차는 크다. ‘유럽합중국’을 종착역으로 여기는 회원국에게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보유한 유럽연합군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유럽연합군도 없으면서 어떻게 연방국가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EU를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기구로 보는 회원국에게 유럽연합군은 불필요한 존재다. 국방이라는 핵심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으며, 민족국가의 기능이 거의 없어지고 유럽연합이라는 연방국가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군의 필요성에 관한 이런 입장 차이는 통합과정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1950년대 형성된 냉전체제는 1990년에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붕괴됐다. 이후 전개된 유럽공동체 또는 유럽연합의 안보·군사 분야 협력과정을 알아보기로 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서유럽동맹

1948년부터 1년여간 계속된 소련의 베를린 봉쇄, 그리고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서유럽에 소련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다.

그러나 패전국 독일의 재무장 없이 나토가 소련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록 전쟁으로 주요 시설이 파괴되고 동·서독으로 국토가 분단되었지만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은 컸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독 재무장에 대한 프랑스의 끈질긴 반대였다. 1870년의 보불전쟁과 1914년의 1차대전, 1939년의 2차대전을 겪으며 독일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프랑스에게 독일의 재무장은 소련의 위협보다 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이 서독의 재무장을 계속 추진하자 프랑스는 두 개의 카드를 꺼냈다. 하나는 전쟁수행에 절대적인 전략물자 석탄과 철을 공동관리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은 수용되어 1951년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했다. 독일 루르 공업지대와 자르 지역의 풍부한 석탄과 철, 그리고 다른 회원국의 전략자원을 고위기관이라는 기구에서 공동관리하게 되었다. 즉 서독이 다시 강성해져 전쟁을 일으킬 여지를 아예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유럽방위공동체(EDC)였다. 서독의 재무장을 허용하는 대신, 서독군 전체를 유럽군(European Army)에 소속시키고, 대신 프랑스나 베네룩스 3국, 이탈리아의 경우 군의 일부만을 이 유럽군에 배속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954년 8월 프랑스 의회는 EDC 비준을 거부했다. 미국은 프랑스가 독일의 재무장을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유럽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미국의 정책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직설적으로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영국이었다.

당시 앤터니 이든 영국 외무장관은 독일 재무장에 관한 프랑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영국의 육군과 공군을 서독에 주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전까지 유럽대륙에 군대를 주둔시킨 적이 없는 영국으로서는 획기적인 정책전환이었다. 이 약속은 실현되어 영국은 독일 통일 전까지 육군 5만명과 공군 1만명을 서독에 배치했다. 이어 1948년 영국과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이 주로 독일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맺은 브뤼셀 조약이 개정되어 서유럽동맹(Weste rn European Union: WEU)이 결성됐다. 서독과 이탈리아는 WEU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듬해인 1955년 서독과 이탈리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서독은 나토의 회원국이 되면서 핵무기, 생화학무기의 제조를 포기했고 서독군 전체가 나토의 통합사령부에 통합되었다. 즉 서독군은 나토의 동맹군으로서만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결국 서독과 이탈리아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설립되었던 WEU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었다. 유럽방위공동체의 좌절과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기억하는 유럽 정치인들에게 WEU는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미국과 캐나다가 나토의 회원국으로 서유럽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소련의 위협을 억제하고 있는데 구태여 유럽공동체 회원국들이 공동안보나 국방문제를 논의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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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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