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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라는 이름의 명약

  • 일러스트·박진영

‘블로그’라는 이름의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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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가슴속에 담아둔 하고 싶은 말들을 문자로 형상화해서 세상에 외칠 수 있다는 건 마치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한다는 건 어쩌면 살아 있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예전엔 한 분야에서 수 십년 일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한 기분이 들었는데 요즘은 결국 사람은 ‘하던 일을 죽을 때까지 하며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어쨌거나 블로그에 뜻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부지런히 구경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기가 질렸다. 그들은 너무도 화려했다. 블로그의 달인들은 세상에 넘쳐났다. 뒤늦게 뛰어든 내가 한없이 작게 여겨졌다. 이제까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별로 꿀릴 것도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우리같이 글줄이나 간신히 올릴 줄 아는 올드 세대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아서 좌절감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내용물’로 승부를 가리자는 ‘생뚱맞은(?) 야심’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나는 블로그 마니아가 되고 말았다.



요즘 신세대들과 경쟁할 자신은 애초부터 없었다. 단지 웬만큼 인생을 살아낸 남들이 다 가진 평범한 저력, 그러니까 ‘나이가 주는 힘’으로 한번 해보자는 엉뚱한 배짱까지 생겨났다.

거의 블로그 중독 증세까지 나타났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블로그가 생각나 얼른 컴퓨터 앞으로 복귀했고, 세상에 지나다니는 말 하나하나에서도 ‘블로그 감’을 사냥하느라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내가 꼭 그런 꼴이었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블로그 생각만 했다. 사람이 변변치 못하다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루에 한 건씩 ‘껀수’를 올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엔 한 20여 명 안팎의 방문객수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신기했다. 그러다 어느 날 최초의 ‘정기구독자’가 생겼을 때 그 기쁨이란!…. 방문객이 점점 늘어나고 정기구독자도 늘어났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은 물론이고 도쿄 호주 태국 스웨덴 등지에 사시는 교민들까지 ‘정기구독자’가 되었을 땐 정말로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었다.

저혈압 기운 탓도 있었지만 예전엔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저조한 날이 더 많았는데 블로그에 뜻을 세우고 매일매일 블로그 작업에 공을 들이다보니까 생활의 활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음의 힘이 생겼다.

두려울 게 별로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 탓에 여러 가지로 움츠러들기만 했던 심드렁해진 일상에 ‘애인 같은 블로그’가 나타나면서 운명이 바뀐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가족의 후원도 대단했다.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고 그날그날 올린 블로그에 애정 어린 촌평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을 춘다는데 나 같은 소시민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야말로 블로그는 내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렸고, ‘너는 내 운명’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난 한 해는 블로그와 함께 울고 웃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렸다.

블로그 테크닉이 전혀 없는 푼수라 그냥 우직하게 오리지널 에세이만을 써서 올렸다. 영화나 소설 그리고 시사에 이르기까지 그날그날 내가 쓰고 싶은 이슈를 정해서 ‘1인 편집회의’를 거쳐 바로 글쓰기에 돌입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세상 시름은 다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한 1년 지나고 보니 어느 새 200편이 훨씬 넘는 오리지널 에세이가 나의 블로그에 쌓이게 되었다. 어떤 보석이 있어 블로그만큼의 기쁨을 주겠는가 싶었다. 200번째 에세이를 블로그에 올리던 날 ‘각계’에서 온정(?)이 답지했다. 찬사 일변도의 격려와 박수가 쏟아졌고, 어떤 지인은 200이라는 숫자로 삼행시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청주에서 소아과를 개업하고 있는 친구는 바쁜 시간 틈틈이 격려성 모니터링으로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제일 무서운 독자는 가족! 타인들은 해줄 수 없는 신랄한 비평을 보약처럼 먹이려들어 언쟁으로 번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블로그는 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 채 나에게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근원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2%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주는 존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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