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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_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아니 하면 안 될 일이기에 목숨 걸고 싸웠다”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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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 공동묘지’는 우리 근현대사를 살다 간 다양한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자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다. 수필가 김영식씨는 이곳의 비석들을 생생한 교재로 삼아 고인들의 행동과 생각을 읽는 작업에 매달려왔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영역인 ‘비명(碑銘)문학’ 연구의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의 작업 일부를 연재하기로 한다. 그 첫 회는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과 삼학병의 사연으로 시작한다. 망우리공원 한켠 조봉암 선생의 묘소 비석에는 글이 없다. 공원의 안내문도 그가 왜 여기에 묻혀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아들만이 목 놓아 절규한다. 좌우의 갈등과 시대의 아픔을 말없이 증언하는 무덤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삼학병의 묘도 그곳에 있다.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1979년 망우리 공원묘지 풍경과 죽산 조봉암 선생의 글 없는 비석(왼쪽 위).

서울과 지방의 사이

죽어 말 없는 사람과

살아 생각 없는 사람 사이

어제와 오늘의 사이

그와 나 사이의 능선을 걸어가다

서울시 중랑구 망우1동 산 57번지. 우리가 흔히 ‘망우리묘지’라고 부르는 공원묘지가 그곳에 있다. 1980년대 대학시절, 그 가까운 동네에 살 때 공원까지 산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본 묘지의 풍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을 지배하며 편린으로 박혀 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도 너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

어느 비석에는 일찍 죽은 아들을 기리는 글이, 그 옆에는 비석조차 세울 형편이 못 됐는지 ‘아버님 잠드신 곳’이라고 쓴 비목만이 검은 페인트를 덮어쓴 채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비껴선 그 너머 어느 무덤 앞, 소주병을 옆에 두고 ‘꺼이꺼이’ 울고 있던 청년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던가. 산 밑을 내려다보니 이곳 묘지는 이리 조용한데, 저 멀리 차 소리가 도시의 심장 소리처럼 시끄러웠다. 세상은 역시 산 사람들의 것. 죽은 이들은 말이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이후로 20여 년이 흘러 그 기억을 카메라에 담고 박인환 시인과 동료 선배 문인들의 묘도 보고 싶어 망우리묘지를 다시 찾았다. 망우리의 묘지는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망우리공원은 1991년 서울시설공단이 서울시로부터 묘지관리 업무를 인수받아 서울시설공단 장묘문화센터 ‘망우리묘지’라 칭했고, 1998년 공원화 작업을 마친 이후 ‘망우리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무덤이라고 어찌 무사했겠는가. 그동안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 시야를 가렸고, 길도 넓혀지고 바뀐 듯 옛 기억 속의 무덤들이 어디쯤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새로운 기행에 나서야 했다. 기억 속의 비석은 이장을 했는지 찾지 못했지만, 그 대신 유명한 이들의 비석을 포함해 ‘글’이 있는 비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연보비가 설치된 유명인은 문일평, 박인환, 방정환, 서광조, 서동일, 서병호, 오긍선, 오세창, 오재영, 유상규, 장덕수, 조봉암, 지석영, 한용운으로 14명(가나다 순)이고, 최학송의 묘엔 우리문학기림회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중섭과 김정규는 연보비는 없지만 최근 새로 세워진 공원안내판에 표시되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학병, 박승빈, 박찬익, 박희도, 아사카와 다쿠미, 이인성, 차중락, 채동선, 함세덕의 묘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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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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