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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

  • 김상순 / 일러스트레이션·박진영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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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
인간의 수명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것일까.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고픈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고 염원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산다면 병마의 위협을 모르는 축복받은 삶이다. 허나 천성적인 결함이든 본인의 관리 잘못이든, 중요 신체기관 질환으로 기능이 불완전하여 생명을 위협받게 되면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두려움의 연속인 나날이 이어진다.

의사는 환자가 생명과 건강을 전적으로 내맡긴 상대이니만큼 절대적인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환자의 건강회복에 온갖 정성을 쏟는 의사라고 해도 환자나 그 가족의 눈에는 불만스럽게 보이게 마련이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환자에게, 의사는 때로는 권위적이고 편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기대만큼 회복에 이르지 못할 때는 가슴 아프도록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의 아픈 곳을 치료해 생명을 구하고 간호사가 상처에 붕대를 감아 건강한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헌신적인 노력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훨씬 더 숭고하고 위대하다. 의사와 환자 사이는 이기적인 관계라기보다 오로지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건강한 정신과 따스한 인간애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 아내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심박조절기)를 다섯 번이나 교환했고, 간과 폐는 3분의 1을 절단했으며, 심장 판막도 수리했다. 담낭은 아예 제거해버렸다. 신체 주요 기관의 심각한 질환으로 입원과 수술을 열두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길고 긴 질병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아내와 차를 몰고 골프를 즐기며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의사들의 위대함과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1948년생인 아내는 불과 다섯 살부터 병마의 고통에 시달렸다. 과식을 하지 않는데도 가끔 복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가워진 몸이 식은땀으로 젖으며 자지러질 때마다 부모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이불을 덮어 애써 외면하곤 했다고 한다. 의원이 달려와 청진기를 갖다 대고 급체라는 진단과 함께 주사를 처방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면 아내는 신기하게도 자지러지던 울음을 멈추고 이내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움직임도 없이 너무 오래 자는 아이에게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가슴이 철렁한 부모는 가끔 이불을 걷어 숨소리를 확인해봐야 했다.

“그 의원 용하기도 하더라. 금방 숨 넘어가는 애가 주사 한 방에 울음을 뚝 그치고 잠을 새록새록 자는 거야. 어찌나 깊게 자는지 혹시나 하고 겁이 날 정도였다니까. 가끔 깨끗한 옷을 꺼내놓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지.”

결혼할 무렵 장모님이 가끔 내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결혼 후에도 고열과 복통은 내내 아내를 괴롭혔다. 금방 숨 넘어가는 복통으로 자지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소화불량 수준의 고통을 힘겹게 견뎌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의원이 달려와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지만, 증상을 정확히 검사하고 진찰해 내린 처방이라기보다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주사약을 고열엔 이것, 복통엔 저것 하는 식으로 내린 조치였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곁에서 보는 사람조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복통에 시달리던 아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씻은 듯이 나아 방긋방긋 웃는다는 것이다. 마치 꾀병을 앓기라도 한 것처럼.

두 번째 출산

“선생님, 이 산모 맥박이 이상해요!”

둘째 아기 출산을 위해 분만대에 누운 아내를 최종점검하던 간호사가 놀라 소리쳤다. 정상인의 맥박수가 72인데 아내의 맥박은 38을 밑돌았다. 의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재어봤지만 불뚝거리는 맥박은 변화가 없었다.

“이 상태로는 유도분만이 불가능합니다. 분만 중 심장이 어느 순간 멈춰버리면 산모 생명이 위험해요. 멎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심실재세동기 설비가 있는 서울대병원이나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빨리 옮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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