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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 뉴 밀레니엄 18년의 기억

빈곤과 불평등을 넘어서

부모가 쥐여준 수저로 운명 정하는 사회

  • |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학부 교수 yunkim@korea.ac.kr

빈곤과 불평등을 넘어서

  • ● ‘출산율 최저·자살률 최고’ 덫에 걸린 한국
    ● 세습자본주의 분노 들끓어
    ● 국세청 소득세 통계로는 불평등 심각
    ● 노동 유연화·부실한 재분배, 불평등 키워
    ● ‘포용적 성장’ 길 닦아야

동아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2016년 1월, 만 10〜15세의 수도권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6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아DB]

동아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2016년 1월, 만 10〜15세의 수도권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6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아DB]

보릿고개가 있던 1960년대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빈곤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불평등이 가장 큰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시기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다. 대기업 회장과 임원의 연봉은 급격하게 오른 반면, 근로자 평균 임금은 제자리걸음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지나치게 커졌다. 부자와 빈자가 가진 집값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즉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되고 있는 셈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신약 성경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유명 과학자가 무명 과학자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현실을 두고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불렀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마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추락했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로 치솟았다. 어디 그뿐이랴.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잉 경쟁이 넘쳐난다. 학벌, 미모, 돈을 숭배하고 사교육, 성형수술, 과시 소비에 몰입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원하는 걸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갖지 못한 자’의 자존감은 쪼그라들고 설움은 커지니 우울증이 사회적 질병이 돼버린 지경이다.


빈곤은 자유가 박탈된 조건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은 어린 시절 인도의 기근을 목격하고 빈곤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센은 빈곤이 “결핍의 상태뿐 아니라 개인의 역량, 즉 자유가 박탈된 조건”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빈곤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 보건, 교육, 고용, 공동체의 참여 등 여러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자료의 한계를 이유로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을 측정한다. 

한국에서는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후 최저생계비를 측정했고, 2015년부터는 상대적 방식으로 바뀌었다. 상대적 빈곤율에서 사용되는 기준은 중위소득의 50%다. 2017년 4인 가구 기준 한국의 중위소득은 월 447만 원인데, 그 50%에 해당되는 소득을 가진 인구가 상대적 빈곤층이다. 한국의 빈곤율은 1990년대 이후 지속 상승하고 있다. 2015년 빈곤율은 13.8%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3번째로 높았다. 이는 OECD 평균 11.7%에 비해 더 높고, 가장 낮은 덴마크(5.5%)에 비하면 2.5배에 이르는 수치다. 특히 노인 빈곤율은 50%에 육박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이탈리아 사회학자 코라도 지니가 제시한 방법이 널리 쓰인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와 2007년 세계금융위기 직후 급격히 높아졌다가, 2010년 이후 다소 낮아졌다. 2015년 지니계수는 0.295로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17번째 순위에 자리했다. 또 OECD 평균인 0.314보다 낮았다. 스웨덴(0.278), 독일(0.283) 등이 한국보다 지니계수가 낮았다. 미국(0.390), 영국(0.360)의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높았다. 

지니계수가 가구소득의 전반적 불평등 수준을 측정한다면, 10분위배율은 소득 양극 집단의 평균 변화를 측정한다.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점유율(22.0%)은 하위 10% 소득점유율(2.2%)의 10배에 달했다. 1980년대 당시 격차가 약 7배 수준이었던 걸 고려하면 크게 증가한 셈. OECD 국가 중에는 멕시코(21.4배), 미국(18.3배)의 소득 격차가 가장 컸다. 스웨덴(6.5배), 독일(6.7배), 프랑스(6.9배)는 평균보다 낮았다. 한국의 불평등은 OECD 기준 중간 수준일까? 

하지만 가계소득 통계가 고소득층의 응답 회피로 신뢰도를 의심받으면서 납세 통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상위 1%, 10%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분석했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최고 소득자가 다른 계층보다 엄청나게 높은 수입을 벌어 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세청 납세 자료 통계를 분석해 불평등 양태를 파악했다. 이에 따르면 1979~2012년 한국의 상위 10% 가구소득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03%에서 44.87%로, 최상위 1% 가구의 소득 비중은 7.17%에서 12.23%로 상승했다. 17~18% 수준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피케티 교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세습된 부에 의해 과두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도 급기야 부모가 쥐여준 금수저나 흙수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했다는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는 인터넷을 휩쓸었다. 

상장사 상위 1% 주식 부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보면, 재벌 2·3세의 비율이 3분의 2를 넘는다. 패션에서 라면, 부동산까지 문어발식 경영을 확장한 LF그룹(구 LG패션) 구본걸 회장의 아들인 14세 소년(재벌 4세)은 2010년에 98억 원 넘는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조롱의 대상이 됐다. 재벌 4세의 상속이 북한의 3대 세습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이 많지만 후안무치한 재벌이 스스로 바꾼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술 진보, 불평등의 직접 원인 아냐

빈곤과 불평등은 인간이 만든 것인가? 자연이 만든 것인가? 신이 만든 것인가? 한국의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랫동안 가난은 개인의 숙명처럼 인식돼왔다. 그러나 세상에 식량과 자원은 풍부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걸 확보할 수단이 없다. 문제는 사회구조인 셈이다. 

학계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이 증가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구분한다. 첫째, 구조적 관점은 지구화와 기술 진보 같은 구조적 변화가 빈곤과 불평등을 늘렸다고 본다. 둘째, 정치경제적 관점은 정부의 부자 감세, 기업의 노동 유연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력, 정치체제의 특성에 주목한다. 

먼저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기술 진보에 따른 탈산업화를 언급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제2의 기계시대’에서 디지털 기술은 성장의 엔진이면서 격차의 엔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미국 총소득의 절반 이상을 상위 10%가 차지했다. 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수의 정보 엘리트가 주도하는 승자독식 경제가 탄생하면서 재분배 시스템보다 디지털 기술이 불평등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된 배경이다. 

그러나 기술 결정론은 투자 결정, 고용 전략, 노사 관계의 역학을 무시한다. 만약 기술 진보가 불평등의 주요 변수라면 경제 발전의 수준, 산업구조, 교육과 직업훈련이 비슷한 국가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정작 유사한 산업 및 교육 구조를 갖춘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불평등 수준은 상이하다. 

한국의 경우 재벌 대기업의 공장 자동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비스 산업의 고용 비중은 상승하지만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다. 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산업은 금융업, 사회서비스업, 제조업 순서다. 가장 낮은 산업은 개인 서비스업이다. 하지만 산업구조 간 불평등이 사회 전체의 불평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약하다. 오히려 같은 산업 안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는 시간제, 임시직이 증가하는 노동 유연화와 밀접히 맞물려 있다.


‘보이는 손’에 의해 초래된 불평등

대형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소재로 한 영화 ‘카트’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대형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소재로 한 영화 ‘카트’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노동 유연화는 기업의 인사관리 전략으로 도입됐는데,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해 불평등이 커지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는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만든 결과다. 한국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 철강, 조선 등 핵심 산업 노동자를 제외한 노동자 대부분이 유연화로 인한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게 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거의 2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외환위기 이전 비정규직 비율은 10% 수준이었는데, 최근 30%를 넘었다. 영세자영업, 특수고용을 포함한 비정형 노동자 비율은 거의 5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비정규직을 채용한다는 논리 역시 진실과 거리가 멀다. 

노동조합 약화도 불평등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다. 지난 30년 동안 선진 산업국가에서 노조 조직률은 꾸준히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노조 조직률은 1989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현재 10% 수준에 불과하다. 노조 가입률이 낮아지면서 노동자의 단체교섭 역량이 약화됐다. 단체교섭은 기업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세와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으며, 비정규직은 아예 배제된다.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은 자신의 대표가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5년 IMF의 보고서 ‘불평등과 노동시장 제도’에 따르면 선진 산업국가들에서도 경제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노동조합이 미치는 영향력이 작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정부의 조세정책과 사회정책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스웨덴을 비교한 결과가 단적인 사례다. 두 국가의 시장소득 격차는 크지 않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보편적 교육·보육과 국가보건 서비스, 연금, 관대한 실업급여 등 보편적 성격을 지닌 사회보험이 불평등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복지제도가 빈곤 감소에 일정한 효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악화되는 불평등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예산 비율은 10.4% 수준으로 OECD 평균 21%에 비해 크게 낮다. 덴마크(28.7%), 스웨덴(27%), 노르웨이(25%)에 비하면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19.4%)도 OECD 회원국 평균(25%)에 비하면 매우 낮다. 가장 낮은 국가를 나열하자면 멕시코, 칠레, 한국 순서다. 즉 한국에서 재분배 효과는 미약하고 분배적 정의는 왜곡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20~30%를 복지에 지출하는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에서는 대체로 지니계수 개선 효과가 좋은 반면, 한국은 공적 이전과 조세에 의한 지니계수의 개선 효과가 네 번째로 낮다. 

선거제도 역시 불평등 악화의 변수 중 하나다. 많은 학자는 유럽과 미국의 정치제도가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웨덴과 덴마크, 독일 등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는 대부분 비례대표제, 대선거구제, 다당제의 특성을 지닌다. 합의 민주주의에서는 연정이 구성돼 정치적 결정 과정에 다양한 소수 정당이 참여한다. 덕분에 노동조합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도입돼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이 채택된다. 

반면 미국과 영국처럼 최다 득표자를 당선자로 정하는 다수제 민주주의는 양당제를 만든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권력을 독점한다. 이런 제도하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도 다수제 민주주의와 소선거구제를 통해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재생산해왔다. 그 탓에 지역 개발에만 관심을 두고 사회복지는 뒤로 밀려났다. 재분배 정치가 발전할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신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배제의 정치가 강화된다.


과한 불평등과 민주주의 양립 못 해

빈곤과 불평등을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지난 30년 동안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영향력이 작아지면서 정치권에서 기업과 부자를 옹호하는 힘이 너무 커졌다. 옥스팜이 지적한 대로 불평등이 커지는 이유는 부자 편향 정책, 조세 회피, 복지를 삭감하는 긴축정책 등이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부실한 재분배 장치가 빈곤과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을 촉발한 ‘삼성-국민연금-박근혜 커넥션’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 대기업이 정부와 정책의 영역에 개입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불균형은 모든 공화국의 가장 오랜 치명적 우환”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부유층과 기업인이 모이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세계의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소득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임금 주도 성장론’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호응을 얻고 있다. 

2009년 세계은행에 이어 OECD도 불평등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포용적 성장’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부유층 증세, 최저임금 인상, 사회안전망 강화를 각국 정부에 권고했다. 만약 정부가 증가하는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결국 경제에 커다란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다. 빈곤과 불평등은 신이나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효율적이지만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리가 필요하다. 

재벌의 탈세, 불법 상속, 불공정거래, 문어발식 경영을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국가가 마태 효과를 통제해야 민주주의가 산다. 국가의 역할은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민도 국가가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적극 수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나친 불평등과 민주주의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학부 교수 yun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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