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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푸른 바다의 전설’? 해녀는 현실의 삶 그 자체”

‘제주 해녀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산파역 와이진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푸른 바다의 전설’? 해녀는 현실의 삶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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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 ‘아마(あま)’ 아닌 한국 ‘해녀’
  • ● 한국 여성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사진작가
  • ● 멸종 위기 상어 위한 다큐 찍을 것
  • ● ‘해피 해녀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푸른 바다의 전설’? 해녀는 현실의 삶 그 자체”

[지호영 기자]

2016년 11월 30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부터 낭보가 날아들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제주 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한 것. 유네스코 측은 제주 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토록 하며,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등재로 2015년의 ‘줄다리기’에 이어 ‘농악’ ‘김장문화’ ‘아리랑’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등 총 19개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급속한 산업화·지구화 과정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려 만든 제도. 따라서 등재 확정은 전 세계인이 보전해야 할 인류 모두의 가치로 거듭났음을 뜻한다. 2007년부터 제주 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우리 정부는 2014년 3월 등재 신청 이후 2년 8개월 만에 성과를 거뒀다. 그 이면엔 정부 못잖게 ‘바다의 어멍(엄마)’이라 불리는 제주 해녀와 그들 특유의 문화를 국제사회에 알리려 애써온 주역이 있다. 한국 여성 최초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을 딴 수중사진작가 와이진(38·Y.Zin, 본인 요청으로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이다.

해녀라는 ‘신세계’

와이진이 제주 해녀에 몰입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서울 태생으로 동덕여대 의상학과(98학번) 출신인 그는 2학년 때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재학 시절부터 방송 스타일리스트와 코디네이터로, 드라마·영화 포스터와 유명 연예인들의 화보, 광고사진 등을 촬영하는 사진작가로 분주히 활동했다. 그러다 2008년 수중사진을 시작해 2년 후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도 하게 됐다. 하지만 사진작가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고민하다 2011년 여름 슬럼프에 빠졌고,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지인들과 우도로 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신세계’를 접했다.

“날씨가 너무 안 좋고 파도도 심해 안전상 다이빙을 해선 안 된다는 말에 산책 삼아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였어요. 검은색 고무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이 물질(해녀가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하러 테왁(해녀들이 물질할 때 가슴을 얹고 헤엄치는 데 쓰는 도구) 하나씩 달랑 들고 일렬횡대로 쭉 걸어와선 거침없이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더라고요. 다이버인 우린 안전장비를 갖추고도 못 들어가는데, 전혀 두려운 기색조차 없다니! 너무 놀라 순간 멍해졌죠. ‘아, 이렇게 멋있고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을 수중촬영하고 기록해야겠다. 해녀들의 세상이 ‘푸른 바다의 전설’이 아닌 현실의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부끄럽다”

“‘푸른 바다의 전설’? 해녀는 현실의 삶 그 자체”

와이진이 2011년 제주 우도에서 만난 해녀들(왼쪽). 와이진은 한국 여성 최초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사진작가다. [사진제공·와이진컴퍼니]

그러나 ‘신세계’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카메라를 챙겨 다시 우도를 찾았지만, 해녀들로부터 한동안 박대를 당했다.

“해녀들이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가 셔터를 눌러대니 막 고함치며 화를 내는 거예요. 뭣 하러 찍느냐고, 찍지 말라고. 테왁으로 물을 뿌리기까지 했어요. 카메라를 뺏긴 적도 있고요. ‘내가 육지에서 와서 그런가?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하지?’ 그런 울컥하는 마음에 상처받아 많이 울기도 했어요.”

와이진은 처음엔 자신의 행동이 해녀들의 일에 방해가 돼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해녀들 스스로 본인의 모습과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해녀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녔어요, 카메라 없이. 그러곤 ‘어머니, 제가 사진 찍는 게 왜 싫은지 이야기해주세요. 뭐가 문젠지 말해주세요’ 하고 졸라댔죠. 99%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어요. ‘부끄럽다.’ 어릴 때부터 해녀는 바닷가에서, 집 밖에서 옷을 갈아입는 천한 직업으로 제주 내에서조차 천시돼온 걸 보고 자라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거예요.”

와이진은 해녀들 설득에 나섰다. 말 안 듣는 딸처럼, 손녀처럼 떼를 쓰다시피 하면서.

“‘어머니가 5시간이나 물질하는 동안 난 사진도 안 찍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어. 나 배고파. 혼내더라도 밥 먹이고 욕해’ ‘어머니, 오늘은 뭐 잡았어? 한번 보여줘 봐’…. 그러다 제가 찍은 해녀들 사진을 당사자에게 직접 보여주며 ‘어머니, 할머니, 너무 멋있다’고 하면 ‘내가 이러냐고. 사진 보니 멋있네’라고들 하셨죠. 그들도 여자잖아요. 메이크업 없이 그냥 물에서 나오면 알몸뿐인데, 처음엔 그런 모습이 찍히는 게 너무 싫은 거였어요. 좀 더 친해지니 해녀들이 제가 증정용 사진 프린트를 드릴 때 ‘다리 좀 늘려달라’ ‘입술 더 진하게 해 달라’고들 하셨죠. 그래서 ‘어머니들, 제가 사진 찍어서 외국 사람들에게 해녀라는 자랑스러운 직업을 꼭 알리고 싶다. 외국에선 한국에 이런 해녀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되레 한국 해녀가 일본 해녀인 ‘아마(あま)’에서 비롯된 줄 잘못 알고 있다’라고 거듭 얘기하니 해녀들이 점차 마음을 열더라고요.”

해녀들과 소통하게 된 와이진은 이후 수시로 제주를 찾아 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우도에서 시작해 성산포, 서귀포, 마라도, 도두항 등지를 돌며 해녀의 삶을 촬영하는 동안 그들과 정도 담뿍 들었다. 하루 평균 5시간 물질하며 전복, 소라 등을 60kg가량 짊어진 고된 몸을 이끌고 뭍으로 막 나온 해녀가 30kg 정도의 수중촬영 장비와 다이빙 장비, 공기탱크를 주렁주렁 매단 키 160cm도 채 안 되는 작은 체구의 와이진을 되레 안쓰러워하며 부축해줄 때면 서로를 위한 배려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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