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령당원’ 명부·자술서 원본, 허위 견적서 ‘신동아’에 첫 공개
- 이석기를 인정 않는 사람이 결정적 제보
- 부정회계 폭로 자술서엔 “가격 최대한 부풀려 신고”
- CNC-사회동향연구소-민중의 소리 ‘트라이앵글’ 개입
- 민주주의 부정한 패권파와의 싸움…“끝까지 간다”
- ‘장군님 상중(喪中) 금주’ 발언은 누가 책임질까요?
부산 부곡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청호 구의원.
9월 8일 오후 부산 부곡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부산 금정구의회 이청호 의원(42)은 기자를 보자 헛웃음부터 쳤다.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와 정장근 통합진보당 부산시당 금정구위원장이 자신의 징계를 요청해 오전에 ‘소명’을 하고 왔다고 했다.
▼ 제소 이유가 뭔가요?
“몇 가지 있는데요, 이른바 ‘유령당원’ 명부를 공개해 당 기밀인 당원명부를 유출했고, 동아·조선·중앙일보와 종합편성채널 기자들과 개별접촉을 했고, 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삽질’이라는 단어를 써 건설노동자를 폄하했다는군요. ‘삽질’은 헛된 일을 했을 때 이르는 비유어 아닌가요? ‘MB 삽질’이라고 쓸 때는 말을 않더니….”
▼ 어떻게 소명했습니까?
“당원명부를 언론에 유출한 적도 없어요. 내가 7월 26일 국회에서 손에 들고 기자들에게 보여준 당원명부는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암영 처리해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어요. 그리고 메이저 신문과 인터뷰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진실을 호도하고 알리지 않는 게 더 문제죠. 적어도 이번 통진당 사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가장 ‘팩트(사실)’에 가까운 보도를 했어요.”
▼ 특정 기자에게만 정보를 흘렸나요?
“아뇨. 저는 모든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했어요. 그런데 ‘한겨레신문’이나 ‘시사IN’은 한 번도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진실을 알려야 합니까? 가만히 있을까요? 사실, 부산시당에서 ‘보수 신문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결정문을 낸 뒤에는 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당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게 두려웠던 거죠. 내 글을 언론에서 인용 보도하니까요. 남아 있는 주체사상파(주사파)들 심정은 이해됩니다. 뭐, 제명되면 중앙에 항소해야죠.”
제명되는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는 세월 좋게 날씨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으로 5개월간 내분을 거듭한 통합진보당 사태가 9월 10일 강기갑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탈당 선언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12월 5일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가 10개월간의 논의 끝에 출범시킨 통합진보당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원내 제3당의 침몰, 그 중심에는 이청호 의원이 있었다.
지난 4월 18일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을 처음 폭로한 이후 이른바 ‘유령당원 명부’ 공개, 이석기 의원이 설립한 CN커뮤니케이션즈(CNC)의 선거비용 부풀리기 의혹 등을 잇달아 폭로한 것도 그였다. 그의 칼끝은 시종일관 이석기 의원 등 당내 경기동부연합을 겨눴다. 당은 진상조사위원회와 새 지도부를 꾸려 진화와 재기에 나섰지만,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와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불발’로 결국 ‘통진당 엑소더스’ 사태를 맞았다. 마법사 ‘강달프’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됐군요. 참 허탈합니다. 그런데요, 통진당 사태의 본질은 계파 갈등이 아닙니다. 비례대표후보 선거에 부정이 있었는데, 이를 부정하고 권력투쟁으로 몰고 간 사람들, 다시 말해 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한 세력인 패권파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끝까지 싸워야죠.”
시곗바늘을 돌려 5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4월 18일 당 홈페이지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를 규탄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언론은 이 글을 ‘2012년 통진당 사태 일지’의 첫 장에 기록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비례대표 1번과 2번 당선자는 부정선거와 소스코드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 과정에 전산투표를 관리하는 운영업체가 3번이나 소스코드를 열어봤다. 이석기 후보가 1등 하면 그대로 가고, 아니면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려고 했나? 비례대표 투표 전산관리를 한 업체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전산관리를 해온 업체라고 한다. 10년 넘게 민주노동당 덕에 밥 벌어 먹고 살아온 업체에 맡길 수 있나?”
동시에 비례대표 인터넷 선거에서 앞서던 오옥만 후보가 현장투표에서 윤금순 후보에게 역전당했다며 현장투표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30인 이상 사업장이나 지역의 요청이 있을 때 지역위원장도 모르는 현장투표가 있었다. (이 경우) 투표관리인은 (구)민주노동당계 1명뿐이었으니 ‘박스떼기’ 하나 들고 표를 주우러 다닌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금정구 공동지역위원장인 나조차 30인 이상이 신청하면 이동투표함(현장투표소)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총선 뒤에 알았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는 여성 1등이 1번, 남성 1등이 2번, 청년대표 3번 등으로 순서를 정해놓았다. 오 후보는 현장투표에서 역전당해 여성명부 2위가 됐고, 전체 9번에 배정됐다.
▼ 소스코드 문제는 어떻게 알았나요?
“소스코드가 열렸다는 것은 투표 중에 투표함을 열어봤다는 뜻이잖아요?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한 당원이 올린 글을 보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내가 실명으로 다시 올렸어요. 나는 항상 실명으로 씁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이 펄쩍 뛰더라고요.”
펄쩍 뛴 사람들
▼ 펄쩍 뛰다니요?
“당시 이석기 당선자의 공보담당이라는 금영재 씨가 전화를 했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금 씨가 누군지, 이 당선자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왜 아무 관련도 없는 이석기를 건드리느냐’며 사과하라고 하더라고요. ‘왜 사과해야 하냐’고 맞받아쳤더니, 그날 오후 5시부터 내 전화통에 불이 났습니다. 1시간 동안 모르는 사람들 전화가 줄기차게 오는 거예요.”
▼ 왜요?
“전화를 한 사람들은 남자들이었어요. 아주 젊잖게 이야기를 해요. ‘제보자가 누구냐’ ‘소스코드 열어봤다는 근거가 뭐냐’ ‘열렸다면 언제 몇 번 열었냐’고 묻는 겁니다. 화도 안 내요. 그런데 6시 지나니까 오는 전화가 딱 끊겨요. 이상하잖아요?”
▼ 그렇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한 사람들이 ‘당에서 이청호를 제명해야 한다’고 당게시판에 계속 글을 올렸어요. 인터넷에 강한 참여당 출신 당원들이 글 올린 사람 IP를 추적해보니 이석기 의원 캠프와 사회동향연구소로 나온 겁니다. 그때 무릎을 쳤죠.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금 씨가 보낸 e메일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로 검색해보니 금 씨는 이 의원의 CNP전략그룹(현재의 CNC)을 물려받아 대표가 됐다는 것도 알았죠.”
▼ 뭔가가 있다? 이석기 의원 측을 의심한 거군요.
“그땐 몰랐어요. 다만 누군가가 있다는 정도? 비례대표 선거할 때도 제가 아는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석기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경기동부가 알아서 밀었으니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몰랐던 거죠.”
▼ ‘이석기는 유시민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았나요?
“며칠 뒤에 금 씨가 다시 전화를 했기에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석기가 당신들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당을 망쳐가면서까지 커버하려고 하냐’고요. 그랬더니 ‘그분은 우리들에게는 참여당의 유시민 같은 존재’라고 했어요. ‘유시민은 대외 활동도 있고, 대중적 인지도도 있는데 이석기는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 그래서요?
“(경기동부연합은) 총선에 출마하는 파트와 내부에서 지원하고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파트로 나뉘어 있다. 이 당선자는 10여 년간 신념을 바꾸지 않고 내부 출마자를 지원해왔다’더군요. 그때 이 의원의 위상을 처음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는 금 씨와 통화한 후 이석기 의원의 존재와 위상을 알렸고, 당시 언론은 이 의원과 경기동부의 실체 파악에 나섰다. 이 의원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역지부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권파의 사실상 수장이라는 것과, 2005년 자본금 4억 원에 CNP전략그룹을 설립해 지난해까지 1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웠고, 지난 2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대학(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후배인 금 씨가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CNC는 여론조사 회사인 사회동향연구소와 여행업을 하는 길벗투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4·11 총선에서 통진당 후보 20여 명의 홍보를 대행해 12억여 원을 보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청호 의원의 문제제기로 꾸려진 통진당 비례대표후보선출선거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조준호)는 지난 5월 “조사 결과, 비례대표 후보 선거가 선거관리 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라고 규정한 바 있다. 조 전 위원장은 “현장 투표소 조사 결과 다수의 투표소에서 위반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며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이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 당과 수령의 결정은 오류가 없다”
“솔직히 저는 보수 언론에서 말하는 주사파는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조사할수록 통진당 사태 핵심에 있는 그들이 주사파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주사파들 때문에 통진당 문제가 틀어진 겁니다. 이석기는 그들에게 수령 같은 존재예요. 저는 그들이 주사파라고 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대한민국 정당이라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활동해야 하잖아요? 경기동부 패권파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소양이 전혀 없어 깜짝 놀랐습니다. 잘못을 하면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조직적으로 막고 방해를 하니…. 주체사상의 핵심이 ‘당과 수령의 결정은 오류가 없다’인데 패권파는 자신들이 곧 당이고 수령으로 생각하는가봐요.”
이 의원은 6시간 인터뷰 내내 옛 민족해방(NL) 계열 정파 중 경기동부연합 측을 ‘패권파’라고 지칭했다. 당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 패권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 CNC의 선거비용 부풀리기 의혹도 제기했는데요.
“총선 비용을 부풀리기 위한 담합이 있었어요. 총선이 끝나고 4월 중순 광주시당 총무실장이 광주지역 후보 측 회계 관계자들에게 교육을 했어요. CNC와 협의해 가격을 최대한 부풀리자는 취지의 회계교육을 한 거죠.”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던 7월 26일 오전, 그는 국회에서 ‘유령당원’ 명부와 CNC 회계부정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이석기 의원 측과 CNC는 회계부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회계부정을 지적하는 구체적인 증언과 진술이 나온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날 한 장의 자술서를 들어보였다.
▼ 자술서가 있었죠? 작성자는 누구인가요?
“당원이 쓴 건데요, 지금은 말하기 곤란합니다.”
▼ 이유가 뭔가요?
“작성자가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어요.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거든요. 원본에 쓰인 글씨체로 누군지 알 수 있으니까요. 기자회견 때에도 일시, 장소, 참석자 이름 등 중요 부분을 지운 뒤 워드로 재작성한 자술서 일부를 공개했어요. 원본은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어요.”
광주 8개 선거캠프 회계교육
▼ 원본 좀 보여주시죠?
“….”
▼ 이 의원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하잖아요?
그는 깍지를 낀 손을 아래위로 흔들더니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뒤 ‘(글씨체가 보이는) 사진 게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했고, 기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A4용지 3장 분량의 자술서 원본은 각 장마다 3개 단락으로 나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작성돼 있었다. 잘못 쓴 부분은 두 줄 긋고 날인을 했고, 회계 관계자들과의 모임 장소와 내용, 참석자 이름 등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었다. 실제 현장에 있지 않으면 모를 건물 내부 형태와 참가자 좌석 배치, 회의 진행 순서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신고비용을 부풀려 국고를 편취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음은 자술서 요약.
“총선 이후 광주 8개 선거캠프의 회계책임자들이 모여 회계처리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4월 23일에 선거자금 보전 청구서를 제출해야 해서 일주일 전 광주시당 사무소에 모였다. 당시 모인 회계 관련자는 광주지역 핵심당원으로, 출마 후보자들과 친분이 있거나 당직을 맡은 자들이다. 광주시당 양경렬 총무실장은 2010년 7·28 재보궐선거 남구 국회의원 후보였던 오병윤(현 통진당 의원) 선거 캠프에서 선관위에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바탕으로 회계 방법을 설명했다. CNP(현재의 CNC)와 거래를 기본 전제로 ‘CNP측과 합의해 가격을 최대한 부풀려 신고하라’고 지시했다. 7·28 재보궐선거 당시 CNP에서 발급한 세금계산서 및 계약서 사본을 보여주며 협상가에 맞춰서 계약서와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으라고 말했다. 계약서 사본 ‘대표자 정보’에는 이석기라는 이름이 있었다. CNP와 협의를 통한 거래가격 부풀리기가 그전(이석기 대표 시절)부터 있어온 것으로 이해됐다. 가격대가 높은 유세차량과 공보물은 ‘통으로 부풀릴 수 있는 것들’이라며 500만 원이나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 밖의 사용내역에 대해선 법정 선거비용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풀리기해 전체 금액을 맞추도록 지시했다. 부풀린 금액은 ‘미지급금’으로 남겨 신고하되, 6월 10일 전후 보전금이 나오면 그 돈으로 업체에 지급하면 된다고 했다. 보전금이 지급되면 선관위에서 미지급금 집행 내역에 대해 추적하지 않으니, 일단 (비용청구를 하는 데 제출할) 세금계산서와 계약서만 이상 없이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청호 의원은 ‘유령당원 명부’라며 또 다른 자료를 공개했다. 그가 입수한 80여 장의 당원명부에는 주민번호 앞자리가 ‘000000’으로 시작하거나 남자가 주민번호 뒷자리 ‘2’로 시작하는 성별오류, 주민번호가 같은 당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희 전 대표 등 패권파는 이들(유령당원)이 공무원 등 특수직 종사자라고 했지만, 확인해보니 기아차와 금호고속 등 일반직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정당 후원 연말세액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당원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민번호 ‘000000’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정당 가입은 거부한 조합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당원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비례대표 경선에서 이석기 의원 대리투표에 동원됐을 걸로 보는 거죠. 이 문제는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죠. 이런 부정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어요.”
▼ 전국 곳곳?
“제가 폭로한 이후 수시로 제보가 접수되고 있어요. 자술서 외에 CNC 부정회계 통장 사본까지 있으니까요.”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충청도의 어느 지역에서는 CNC 직원이 직접 (서울에서) 내려와 ‘선거비용 회계부정 하는 법’을 교육했습니다. 녹취파일과 녹취록도 있고요. 선거 기간 쓰일 유세차량 임차비용이 3500만 원인데 실제로는 2700만 원에 계약하고 계약서는 3500만 원으로 발급한 예도 있습니다. 대구의 경우 선거비용 특정 항목을 2배 부풀리기도 했어요. 경기 의정부의 한 기업체 사장은 CNC 자금세탁을 해줬다고 주장했고요. 이 중에는 검찰에 제보한 것도 있고, 검찰이 정보제공자의 신원보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제공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검찰은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정보제공자의 신변도 걱정해야 하거든요. 대부분이 경기동부나 부산경남, 광주전남의 구 민노당계 당원들이기 때문에 신원이 드러나면 테러를 당할 수 있어요.”
며칠 뒤, 이 의원은 기자에게 “어제 입수한 부정 회계 견적서”라며 견적서 2부를 보내왔다. 4·11 총선에서 광주지역에 출마한 통진당 한 후보가 점퍼와 모자 등을 구매한 견적서였다. 최초 선관위에 제출하려 한 견적서와 실제 제출한 견적서를 비교하면 40여만 원 높게 구매한 것으로 돼 있었다. “법정 선거비용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풀리기 해 전체 금액을 맞추도록 지시했다”는 자술서 내용과 같았다.
“녹취파일과 녹취록도 있다”
▼ CNC의 대학 총학 선거 개입은 어떻습니까.
“5월 12일 당 전국운영위원회 사태 아시죠? 고성을 지르며 단상 난입을 시도한 사람 대부분이 경기도와 광주·전남지역 당원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소속 대학생이었잖아요? 회의장 밖에 자리 깔고 앉아 의장단의 입장을 막았고요. CNC를 통해 총학생회장을 당선시키고 육성해 지역 시도당이나 지역위원회로 보내서 활동가로 키우고 있어요.”
▼ 활동가도 만들고, 경제적 이윤도 얻는다?
“그럼요. 제가 만난 대학 총학생회 간부들 증언입니다. CNC가 부산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지원하기도 했어요. 현재도 부산대는 NL이 잡고 있어요.”
▼ 매사 그렇게 녹취하거나 증언을 확보하나요?
“아, 아닙니다. 대신 직업상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려는 생각이 강해요. 다음 상황을 미리 준비하는 게 몸에 밴 거죠. 통진당 사태의 경우 다음 상황을 준비하려니 녹취와 증거가 있어야겠더라고요.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는 성격상 거짓말을 못해요.”
▼ 계속 말씀하시죠.
“저는 CNC-사회동향연구소-민중의 소리라는 ‘트라이앵글’은 선거 때마다 개입하고 있다고 봐요. 사회동향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하면 (이 의원이 이사로 재직한) 민중의 소리가 오픈을 하고, 해당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세론을 키우는 방식이죠. 이 때문에 고발도 당했잖아요?”
“상중(喪中) 발언? 고소해주세요”
그가 말한 고발은 4·11 총선에서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김선동 의원 건이었다. 민주당 전남 순천지역 당직자들은 “4·11 총선 직전 사회동향연구소가 김 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해 선거에 활용했다”며 김 의원과 이석기 의원을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고발했다. 고발장에서 이들은 “4월 초에 지방 일간지와 방송사 여론조사에서는 김 후보와 민주당 노관규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나왔지만, 사회동향연구소 여론조사는 김 후보가 9.2% 앞서는 결과가 나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 최근엔 ‘장군님 상중(喪中) 발언’을 폭로했죠?
“네. 4·11 총선에서 전라도에서 당선된 통진당 모 의원이 당원 회식자리에서 ‘장군님 상중이니 술은 자제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썼죠.”
▼ 오병윤 의원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군님 상중 금주’ 발언을 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누가 법적 책임을 지는지를 보면 분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김 의원은 “김정일 사망과 총선 기간은 맞지 않다”고 했고요.
“선거일 120일 전부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은 제한적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지난해 12월 17일 죽었어요. 우리가 보통 ‘상중(喪中)’이라고 하면 49재까지 말하지 않나요? 예비 선거운동기간과 겹치잖아요? 회식 참가자에게서 들었고, 또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했어요. 오 의원이 법적 책임 운운했는데, 누가 책임을 질까요? 고소를 하면 저는 다 밝히겠다고 이미 말했어요.”
▼ 누가 제보를 합니까?
“경기동부 내부 사람이 많죠. 주사파이지만 이석기 의원을 ‘오야붕(리더)’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보를 하죠. 경기동부 내부에서도 이석기 의원의 처신에 불만이 많은 겁니다.”
▼ 제명돼도 계속 비판할 건가요?
“당연하죠. 국회가 제명하지 못하면 CNC의 모든 것을 까서라도 내가 이석기 의원을 감옥에 보낼 겁니다. ‘꿩 잡는 게 매’ 아닌가요. 우리(국민참여당계)는 유시민 전 대표가 뭐라고 해도 안 해요. 유 전 대표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대표로 뽑아준 대리자일 뿐입니다. 당원의 자유로운 생각을 억압하면 비판하고 바꿔야죠.”
그는 ‘당원 중심 정당’에 대해선 확신에 차 있었다. ‘꼭 써달라’며 말을 이었다.
“참여당의 ‘사람 사는 세상’이나,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농민 세상’은 다를 게 없어요. 통진당 만들 때 금정구에서 최선봉에 섰던 사람이 나예요. 참여당은 주권당원제, 민노당은 진성당원제 아닙니까? 그런데 통합해놓고 보니까 민노당은 진정한 당원제가 아니었어요. 가입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이석기 새내기 당원’이 비례대표 경선에서 27%를 득표해 1위를 하는 걸 보세요. 조직적 부정선거 아니면 가능하겠어요? 그가 대중 정치인입니까? 이런 당원제는 의미가 없어요.”
▼ 김재연 의원은 어떻습니까?
“사실, 김 의원은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김 의원은 경기동부가 ‘차기 이정희’로 만들 정도의 인물이었다고 봐요. 상상도 못할 중앙위 폭력사태가 나니까 이석기 의원과 함께 ‘묶여’버렸어요.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김재연 의원은 ‘차기 이정희’
경남 사천 출신인 이 의원은 사천고와 강릉대(현 강릉원주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지만 조직에 가담하지는 않았고 한다. 현재는 인공관절 등을 취급하는 의료기기 대리점을 운영 중이다. 평범한 가장이던 그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국민참여당 창당에 참여했고, 2010년 6·2 지방선거 때 ‘해처먹지 않겠습니다. 세비는 전액 기부하겠습니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마해 당선됐다. 공약은 계속 지키고 있다고 했다.
“통진당 사태 이후에는 매월 300만 원 가량 적자예요. 통진당 문제 신경 쓰느라 영업을 못한 탓도 있고, 의사들이 싫어하는 통진당 소속 의원인 게 알려진 탓도 있어요. 매월 250만 원씩 주던 생활비도 50만 원 줄여서 주고 있어요. 두 달 전에는 처음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했고요.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시작하면 뿌리를 뽑아야하는 ‘이놈의 성격’이 문제죠.”
현재 검찰은 △중복투표 및 소스코드 사전 열람 의혹 △CNC의 선거비용 과대계상 및 국고 편취 혐의 △4·11 총선 직전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작 의혹을 중심으로 수사 중이다. 최근에는 김선동 의원 등에게 유세차량을 제공한 CNC 협력업체를 압수수색해 CNC가 허위 신고한 규모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11 총선 관련 범죄 공소시효가 10월 초에 끝나는 만큼 9월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를 정리할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네”하고 전화를 끊고 e메일을 확인하던 이 의원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주말인데, 참 빨리도 결정했네.”
그는 ‘당 강령 정신에 현저하게 반대되는 입장의 정당이나 조직 활동에 참여했고,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당규약 제6조에 의해 이날 제명됐다. e메일은 부산시당이 보내온 당기위원회의 제명 의결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