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구태 정치인 솎아내고 '노무현 신당’ 띄운다

386 정치조직 ‘제3의 힘’

  • 글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4-2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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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후보를 화끈하게 밀어주었던 386 운동권 출신들이 정계개편과 내년 총선을 겨냥해 ‘새로운 한국, 제3의 힘’이라는 정치조직 재건에 나섰다. 노대통령 측근 상당수가 이 조직 출신이거나 현재 이 조직에서 활동중이다. 제3의 힘은 ‘세대교체’ ‘학생운동 출신자 중용’ 등 노대통령의 코드에 딱 들어맞는다. “노대통령측의 민주당 전면개편 또는 신당창당 시나리오와 맞물려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구태 정치인 솎아내고 '노무현 신당’ 띄운다

    ‘제3의 힘’ 회의 모습

    2003년 4월11일 서울 마포구 ‘새로운 한국, 제3의 힘’ 사무실. PC가 놓여진 책상 6개와 회의용 긴 탁자가 놓여진 두 방을 ‘전대협 동우회’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실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전신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일대기와 주요 행사 사진들을 모은 자료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만큼 ‘제3의 힘’과 ‘전대협’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이는 전대협 출신자들이 정계로 진출할 때 제3의 힘이 1차 통로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노대통령의 386 측근 그룹들은 대부분 ‘총학 간부’ 출신으로 지금도 전대협 출신자들과 상당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제3의 힘은 이들 정치권 안팎 개혁세력을 규합하고 정치세력화해 외연을 확장시키는 ‘사랑방’ 혹은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제3의 힘을 이끌고 있는 인사들은 1980년대 학생운동사에서 화려한 명성을 날렸던 사람들이다. 김종욱 간사에 따르면 이인영, 김서용, 강영추씨 등 3인이 제3의 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씨는 고려대 국문과 84학번으로 제1기 전대협 의장,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김서용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81학번)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그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비서를 지냈다. 강영추씨는 서울대 공대 79학번으로 지하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제3의 힘의 이들 3인방이 민주당내 신주류, 노대통령의 정치적 우군인 개혁국민정당 세력,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은 노대통령 측근그룹을 각각 대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인영씨는 민주당 서울 구로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대선 당시 선대위 인터넷본부 기획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후보를 위해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현재는 민주당 구주류에 대항해 ‘인적청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수도권 신주류의 일원이다.

    학생운동 주역들 다수 참여



    대선 당시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 공동대표는 노무현 후보 공개지지를 선언했고, 김원웅 공동대표(대전 대덕 국회의원)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노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충청권에 설파하며 노후보 당선에 기여했다. 강영추씨는 현재 개혁국민정당 기획위원장을 맡으면서 이 당의 정치적 행보를 총괄 기획하고 있는 인물이다.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 공동대표(서울대 78학번), 김태경 조직국장(국민대 84학번)도 제3의 힘 회원이다.

    인수위에서 나온 뒤 김서용씨는 내년 총선 때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 출마를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는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는 충청도 동향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오고 있는 사이다. 민주당 신주류 사이에서 안희정, 정윤제(민주당 부산 사상 지구당위원장·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서용 등 3인은 노무현식 개혁이념을 지역구로 전파시키는 ‘하방운동’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제3의 힘은 지난 1999년 처음 결성돼 당시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으나 2000년 총선이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양당구도로 치러지면서 거의 와해됐다. 그러나 2003년 1월 전대협 출신 정치인, 변호사 등 일부 인사들은 산행을 하며 제3의 힘 재건을 합의했다고 한다. 3월 30여 명이 두 번째 모임을 갖고 구체적 일정을 잡았다. 매월 포럼을 개최하며 회원을 늘리고, 9월 정식 창립대회를 열어 정치개혁 분위기를 띄운다는 계획도 세웠다. 현재 회원 수는 50여 명.

    1999년보다는 상황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리해졌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1999~2000년의 경우 기성 정당이 주도하는 정치구도에 학생운동권이 하부구조로 편입되는 구도였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청와대 등 권부에 학생운동 세력이 대거 포진해 정치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학생운동 세력이 정치권의 주류로 급부상할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제3의 힘이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 그룹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 조직에 소속된 한 정치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천호선 청와대 참여기획 비서관, 김만수 청와대 춘추관장, 권혁기 송진옥 청와대 행정관 등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386 측근들이 제3의 힘 소속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현재는 청와대 재직 등의 이유로 모임을 떠나 있지만 제3의 힘 회원들과는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자치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주도로 김두관 현 행정자치부 장관은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자치연대의 결성에는 제3의 힘측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임종석 의원(전대협 의장 출신), 우상호 지구당위원장(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등이 제3의 힘 소속이다. 임의원은 대선 당시 노후보의 전위조직인 국민참여운동본부에서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현재 신주류 내에서도 강경파로 분류된다.

    이외 이정우 변호사(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이규희씨(연세대 81학번·2002대선 민주당 천안갑 선대위원장 역임), 연예인 권해효씨(한양대 연극영화과 85학번), 80년대 초기 학생운동의 전설로 통한 최민씨, 김학준씨(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보좌관) 등도 제3의 힘 회원이다. 벤처기업가인 최모씨(한양대 84학번), 한의사 김모씨, 무역회사 대표 김모씨(서울대 82학번) 등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386 사업가, 전문가 집단도 이 조직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내년 총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주류와 연대해 총선출마 대비

    제3의 힘과 전대협동우회는 공동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복기왕 전대협동우회 회장(명지대 총학생회장 출신)이 제3의 힘 회원으로 되어 있다. 제3의 힘이 진보적 사회단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의 일부 특보단은 내부 회의를 갖고 “대학가에서 투표참여 바람이 의외로 강하게 일고 있고, 이것이 이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각 대학 부재자투표 참여율을 일일이 체크하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선 투표참여 캠페인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정도로 효력을 발휘했던 것. 이 캠페인은 ‘2030유권자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가 주도했다. 그런데 전대협 출신 한 관계자에 따르면 2030유권자네트워크는 내부적으로 제3의 힘 소속 인사, 진보적 사회단체, 현 대학 학생회 조직이 결합해 움직여 나갔다고 한다.

    진보적 사회단체들에는 전대협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는 앞으로도 제3의 힘이 진보적 사회단체 인사들과의 네크워크를 재가동해 총선 결과에 영향을 주는 제2, 제3의 사회운동을 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3의 힘의 최종 목표는 내년 총선에서 소속 회원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이뤄 노무현식 정치 개혁의 튼튼한 기반이 구축되도록 한다는 대통령 측근들의 이해관계와 거의 일치한다.

    당장 노대통령 측근과 신주류가 민주당의 인적청산을 단행하거나 신당을 띄우려면 우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기존 정치인들을 대체할 진보성향 정치세력의 수혈, 정계개편에 대한 범(汎) 진보세력의 지지와 참여가 그것이다. 제3의 힘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줄 조건을 구비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개혁국민정당과 민주당 신주류 일부 인사들, 노대통령 측근,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제3의 힘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계되어가고 있는 것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그러나 제3의 힘 한 관계자는 “제3의 힘은 이름 그대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이다. 우리가 노대통령측과 연결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조직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하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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