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위기가 첨예해지면서 발사 여부를 두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관심이 집중돼온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 “최대사거리가 1만km에 달해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됐던 이 미사일의 개발시험장에서 지난해 늦가을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 대포동 미사일 기지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02년 2월 촬영된 대포동 미사일 시험장 위성사진. ①번 원 안은 발사통제시설,②번 원 안은 발사대,③번 원 안은 폭발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엔진시험장.
미·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보도한 요미우리 신문의 기사는 “대포동 발사기지인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올해 1월 미사일 엔진 부분의 분사시험이 행해진 사실이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치현의 강연회에서 있었던 아베 신조 부장관의 발언 또한 “북한이 동해를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대통령의 질문에 “북한이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단언했다. “한국과 미국이 함께 확인해 본 결과 발사 징후는 없으며 포착된 것도 없다”는 김충배 합참정보본부장의 보고였다. 또 김정보본부장은 “북한의 훈련 장면을 일본이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방부가 일본에서 흘러나온 ‘대포동 미사일 발사 징후설’을 단호히 부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엔진시험 도중 폭발사고”
대통령 업무보고 이틀 뒤인 3월17일경, 국방부에서는 비공식적인 자문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날의 회의는 대북현안과 관련해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부정기적인 모임. 국방부 대북정보 담당자들과 북한전문 연구자, 교수들이 참석해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날 회의의 핵심은 군사정보 분석을 맡고 있는 한 장성의 발언이었다고 참석자는 말한다. 가급적 대외비를 요청하며 제공한 정보는 다름 아닌 대포동 미사일에 관한 것. 그러나 이는 일본에서 흘러나왔던 ‘발사 징후설’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참석자에 따르면 이 장성이 한 이야기는 “지난해 늦가을 대포동 미사일의 시험장에서 엔진시험 도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대형사고는 아니었지만 시험장비 등이 적지않게 손상되어 대포동 미사일의 발사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것. 복구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량으로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이 참석자는 “이같은 정보는 미국 정찰위성이 찍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인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3월1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방부가 발사 징후설을 일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정보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대북관련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사실상 대부분의 내용을 확인해주었다. 그대로 옮기면 “엔진성능을 시험하는 공장에 이상이 있으나 아직까지 공장 정비가 끝나지 않아 당분간 발사시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자나 정확한 예상 지연기간 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대신 이 당국자는 “대포동 2호 발사 등의 주요첩보는 한·미 당국이 갖고 있는 각종 정보채널을 통해 상당기간 전에 확인이 가능하다”며 “아직까지 북한에서 주목할 만한 군사동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기지는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정찰위성에 의해 그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 동해안 바닷가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이 전세계를 놀라게 한 가장 큰 계기는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광명성 1호’ 인공위성)을 일본 열도 건너 북태평양으로 날렸던 사건. ‘대포동’이라는 이름은 개발지인 이 마을의 옛 지명인 대포동(大浦洞)을 따서 붙인 것이었다(북한은 얼마 전 1998년 발사된 대포동 1호 미사일의 정식 명칭이 ‘백두산 1호’라고 공개했다).
또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야인’ 시절이었던 1998년 미 의회와 CIA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현재 미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사거리 9980km급 대포동 2호를 개발중”이라고 밝히면서(상당수 군사 전문가들은 실제 사거리는 3600~6000km 정도일 것이라며 럼스펠드 보고서가 과장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지는 각국의 첩보위성과 정찰기들이 하루도 빼지 않고 쉴새없이 감시하는 ‘초특급 요주의 지역’이 되었다.
‘신동아’가 인공위성 ‘퀵버드’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디지털 글로브’사로부터 입수한 대포동 기지의 위성사진(북위 40.8, 동경 129.6)은 이 발사시험장의 면모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2월 촬영된 이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포동 기지의 외양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초라한 편이다.
“개발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세 시설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30m 이상으로 추정되는 발사대. 그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50m, 폭 20m 가량의 대형 건물이 미사일 조립 및 엔진시험장으로 보인다고 국방연구원의 부형욱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윗꼭지점에 해당하는 건물은 발사통제시설. 발사대로부터 충분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치라는 설명이다. 엔진시험 도중에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면 사진 왼쪽에 있는 엔진시험장 건물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사일이나 로켓의 개발과정(이 둘은 사실상 그 원리가 동일하다)에서 폭발사고는 ‘없으면 이상할’ 정도”라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KSR-3 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발사에 성공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로켓엔진연구그룹의 설우석 박사는 “외국의 경우에도 개발과정에서 수 차례씩 사고가 일어난다. KSR-3 개발과정에서도 40개가 넘는 엔진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하다 버렸다”고 설명했다.
엔진성능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가장 폭발사고가 잘 일어나는 단계는 점화시험. 점화시험이란 연소실 안에 유입된 연료에 불이 잘 붙는지, 필요한 시간만큼 잘 연소되는지, 원하는 출력이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엔진시험에 있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부분이 바로 점화시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소실 안에 불이 붙지 않은 추진제가 지나치게 많이 유입될 경우 한꺼번에 연소되어 압력이 수십 배 높아지면 연소실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전문용어로 ‘하드 스타트(hard start)’라 한다.
KSR-3 로켓도 지난해 2월 ‘하드 스타트’가 일어나 엔진이 폭발했다. 폭발력이 얼마나 컸던지 시험장 방화문이 날아가고 시험시설이 상당부분 파손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KSR-3 발사는 7개월 가량 연기된 바 있다.
국방연구원의 부형욱 연구위원은 “복구에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는 정도의 폭발사고라면 시험장 안에 있던 각종 계기와 시험장비들이 상당부분 파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잖은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각국 정보기관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 새로 이들을 구입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늦가을에 발생한 사고의 최소 복구기간이 6개월이라면 그동안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복귀기간이 최대 1년임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6개월 가량은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는 셈. 새로 장비를 구입해 엔진시험에 성공한다 해도, 이를 다시 평양 인근 산음동 공장에서 생산되는 본체와 연결해 발사를 준비하는 일에 또 최소한 수주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본체를 발사대 인근까지 이동시켜 조립한 후, 기상레이더 가동→액체연료 주입→미사일 추적레이더 가동 등의 단계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진시험이 있었다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나 아베 관방 부장관의 발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뿐 아니라 3월 초순 일본의 신문과 방송은 ‘대포동 미사일 위협’에 대해 집중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3월2일 하루만 해도 후지TV, 니혼TV, NHK, TV아사히 등 일본 방송의 주요 시사프로그램들은 모두 이 문제를 이슈로 다뤘다. 각 프로그램에 출연한 토론자들은 “일본도 최악의 사태에 본격 대응해 선제공격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도 ‘발사 징후설’을 부인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련의 보도에 대해 일본 외무성과 방위청 당국자들은 3월3일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정보는 확인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중이었던 토머스 파고 미 태평양 사령관도 3월31일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징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징후설’ 용인한 주변국의 속내는?
일본 언론들의 이같은 ‘강경 분위기’는 이번 정기의회에서 통과될 예정인 자위대법 개정안 등 3개 유사법안, 3월말로 예정돼 있던 2기의 첩보위성 발사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양대 정치학과 김경민 교수는 “일본의 최근 대북 위기설 부채질은 오히려 자국의 안전보장 강화를 노린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대포동 미사일기지의 폭발사고가 사실이라면 지난 6개월간의 모든 대포동 미사일 관련 논란은 ‘불필요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 미국과 일본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징후가 없다’고만 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혹 미사일 위협의 실체와 관계없이 자국 이익이나 지역 안보의 주도권을 위해 ‘대포동 공포’를 용인했던 것은 아닐까.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박 터지는 두뇌싸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