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막강해진 ‘일본의 눈’… 한반도엔 숨을 곳이 없다

日 첩보위성 발사 A to Z

  • 글: 김경민 한양대 교수, 국제정치 kmkim@hanyang.ac.kr

    입력2003-04-25 1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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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세계가 이라크전쟁에 주목하고 있던 지난 3월28일,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2A 로켓이 정보수집위성 2기를싣고 발사됐다. 일본 우주개발사업단은 “이 위성들은 앞으로 고도 400∼600㎞ 상공을 돌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기지 및 핵 관련 시설을 감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한반도 전역이 일본의 ‘눈’에 의해 감시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막강해진 ‘일본의 눈’… 한반도엔 숨을 곳이 없다
    이번 H-2A 로켓 발사는 일본의 우주개발 역사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에 있어서도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주요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우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군사력 증강을 기피하고 터부시하던 일본 내의 분위기는 이미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급속히 약화되었지만, 이번 발사는 그러한 흐름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재래식 무기의 질적 측면에서 세계 정상급에 올라 있는 일본이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이제는 정보대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1968년 중·참의원에서 ‘우주를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의한 바 있는 일본에 정보위성 발사의 핑계를 제공한 것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첩보위성 보유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올 여름 예정대로 또다시 첩보위성 2기가 발사되면 일본은 하루에 한 번씩 한반도를 정찰할 수 있게 되어 남북한은 그야말로 일본 첩보위성 앞에 발가벗은 꼴이 된다.

    인공위성이 지구의 강한 인력에 끌어 당겨지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려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지구를 선회해야 한다. 고도 500km 상공이라면 초속 8km 정도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지구에 가까운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일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지구를 선회해야 하는 것. 고도 3만6000km에서 궤도를 도는 위성은 한번 선회하는 데 약 24시간이 소요되어 지구의 자전 속도와 거의 똑같이 돌게 된다. 지구에서 보면 우주의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위성을 정지위성이라 한다. 세계적인 SF 작가 아서 C. 클라크가 착안한 이 정지궤도는 이후 방송위성, 통신위성, 기상위성 등에 이용되어 인류의 생활에 막대한 공헌을 해왔으며 정지궤도에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강대국 여부를 가르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 국력의 시험무대가 되었다.

    ‘정보대국 일본’의 숨은 손 나카소네

    그러나 정지위성은 전파의 혼선과 위성충돌 등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이를 차지하기 위해 우주개발 분야의 선진국들은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다. 정지궤도에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막강한 로켓 능력을 선점한 미국이 1963년 7월 통신위성 시콤2를 정지궤도에 발사해 24시간동안 지구를 선회하는 데 성공하고, 이듬해 시콤3을 정지궤도에 투입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다. 중량 39kg의 시콤3이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전세계에 중계하는 쾌거를 이루자, 정지위성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놀란 일본은 우주개발사업을 복격적으로 추진해 독자기술로 정지위성을 발사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본 우주개발 역사의 초석을 놓은 사람은 1959년 6월 제2차 기시(岸)내각 당시 과학기술청 장관을 역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였다. ‘일본도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과학기술청 주도로 로켓 개발에 착수했던 나카소네 당시 장관은 이와 함께 핵무기 개발능력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년장교’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군사대국 일본의 기틀을 만든 주역임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몇해 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펴내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 도지사의 정신적인 버팀목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첩보위성 제작능력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1992년 고도 570km에 발사한 민간위성 JERS-1(지구자원관측위성)에 첩보위성에서 사용되는 합성개구(合成開口) 레이더와 광학센서를 탑재하고 분해능력 18m의 비교적 규모가 큰 위성을 2년간 운용했다. 합성개구 레이더는 항공기의 레이더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파를 발사해 그 반사를 포착함으로써 구름이나 안개 같은 대기상태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표를 관측할 수 있다. 또한 가시광선은 물론 단파장 적외선 대역까지 감지하는 광학센서는 어군(魚群)탐지 등 단순한 자원탐사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명목은 단순한 자원관측위성이었지만 일본 방위청 관계자들은 이 위성으로 얻은 데이터를 군사용으로 사용해왔다.

    현재 세계 최고의 정찰위성이라 불리는 미국의 KH-12는 지상의 항공기와 전차 등을 해독할 수 있고, 병력 수송차량의 숫자는 물론 병기 배치상황까지 분석해낸다. 수송로, 교량, 도시 등의 건설상황 변화를 모니터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이 운용해온 지구자원관측위성은 미국의 KH-12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미국의 렌드샛, 프랑스의 스포트 위성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일본 정부는 오래전부터 우주로부터의 정보수집을 실행해왔던 것이다. 세계 최정상급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이를 교묘히 감추고 있듯, 일본은 위성을 통한 정보수집에도 군사위성 대신 민간위성을 사용해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능상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1996년에 발사한 지구관측플랫폼기술위성(ADEOS)은 문자 그대로 전지구를 관측하는 위성이다. 일본이 1967년부터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획득사업을 개시하면서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가 커지자, 일본 정부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1968년 ‘우주의 평화이용원칙’이라는 중·참의원 결의를 마련해 스스로 족쇄를 채우기에 이른다. 당시만 해도 핵무기 개발능력의 축적이 더 급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첩보위성 개발을 위한 노력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첩보위성이 일본의 ‘국가적 목표’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일본이 올해 안에 개발을 목표로 추진중인 육역관측(陸域觀測) 기술위성 ALOS에서도 나타난다. 이 위성은 가시광선은 물론 근적외선 영역까지 감지하는 광학센서와, 1992년 발사한 지구자원관측위성에 탑재된 합성개구 레이더보다 훨씬 고도화된 차세대형 합성개구 레이더를 탑재하고 분해능력 2.5m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상 300~600km 높이에 떠 있는 위성을 통해 지상에 있는 가로세로 2.5m 크기 이상의 물체를 상세히 관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말만 민간위성이지 사실상 첩보위성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일본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첩보위성은 분해능력 1m급. 지상에 주차해 있는 차량의 종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최첨단 첩보위성을 통해 일본은 북한이 대포와 미사일을 어디에 배치해놓았는지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남한의 군사시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첩보위성은 광학위성과 레이더 위성 두 개가 한 세트를 이룬다. 광학위성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 우주공간에서 비디오 카메라로 지상을 촬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빛이 통하는 가시광선 영역에서만 관측이 가능하다. 상당히 선명한 화상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대로 야간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관측이 어렵다. 때문에 목표물에서 방출되는 열에 포함되어 있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를 함께 탑재해 야간탐지능력을 보강하고 있다.

    레이더 위성은 지상에 전파를 쏘아 그 반사파를 화상 데이터로 바꾸어 지상을 관측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파에 의한 관측이므로 악천후나 야간에도 관측할 수 있어 24시간 전천후 사용이 가능하지만, 광학위성만큼 선명한 화질을 얻을 수는 없다. 일본이 두 가지 위성을 동시에 쏘아올리는 것은 두 시스템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하여 더욱 세밀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통합정보본부 발족

    첩보위성은 그 목적상 의심이 가는 목표를 치밀하게 탐지하기 위해 자주 옮겨다녀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수명 5년 내외의 첩보위성 두 세트를 보유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지난 3월28일 발사된 한 세트 외에 오는 여름 또 한 세트를 발사해 총 4기의 위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첨단 정보위성을 제작할 수 있으면 고도의 첩보획득은 완성되는 것일까. 이 위성이 획득한 데이터를 해석해 의미 있는 정보로 가공하는 능력은 정보위성 제작보다 더욱 중요하다.

    지난 1991년 북한 영변에 핵관련 시설이 있다고 발표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일본 도카이대학 사카다(坂田) 교수가 사용한 데이터는 분해능력이 18m급에도 못미치는 프랑스의 스포트 위성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이 데이터를 높은 수준의 기술과 배경지식으로 판독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국제사회에 공개한 것이다. 이렇듯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촬영한 사진을 제대로 판독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술이 더없이 절대적이다.

    해석능력의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은 이를 위해 1997년 1월 방위청의 내국과 통합막료회의,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의 정보관련 부문을 통합하여 정보본부를 발족시킨 바 있다. 눈여겨볼 것은 인공위성에서 보내온 지구탐사 데이터를 정보처리하는 화상부(畵像部)를 신설했다는 사실이다. 위성사진을 전문적으로 판독하는 요원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해 국가정보력을 높이겠다는 일본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뿐 아니라 정보본부 내에 통신감청과 해독을 담당하는 1300명 규모의 전파부를 정비한 것도 눈에 띈다. 인공위성을 통한 화상정보뿐 아니라 통신정보 획득능력도 제고하겠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이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동북아 전체를 한눈에 커버할 수 있는 정보대국인 것. 당장은 1m급 분해능력을 가진 첩보위성으로 시작했지만, 장차는 미국의 KH-12 같은 10~20cm급 분해능력 위성을 통해 덕수궁 뜰 벤치에 앉은 사람이 무슨 신문을 읽고 있는지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갖기 위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우주정책을 키워가고 있다.

    막강해진 ‘일본의 눈’… 한반도엔 숨을 곳이 없다
    뛰어난 첩보능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 관건은 위성을 우주공간에 띄울 수 있는 로켓 능력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로켓능력은 어떠한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선진국들에 비해 한 발 늦게 출발한 일본의 로켓개발은 1975년 9월 N-1 로켓을 이용해 기술시험위성(ETS-1)을 최초로 발사함으로써 그 막이 오른다. 이후 일본은 1992년 2월11일 H-1 로켓으로 쏘아 올린 JERS-1에 이르기까지 17년간 24개의 위성을 발사했는데, 당시까지 발사 성공률 100%라는 믿기 힘든 수치를 기록하며 신뢰성에 있어 세계 1위를 달렸다.

    이후 1998년과 99년 H-2 로켓의 발사에 두 차례 실패했지만 일본의 로켓 발사 성공률은 여전히 90%가 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2002년 3월말 현재 미국은 델타 로켓으로 290회(실패 16회), 아틀라스 로켓으로 136회(실패 13회), 타이탄 로켓으로 200회(실패 20회)를 발사했고, 유럽은 아리안 로켓으로 149회(실패 9회) 발사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일본 H-2 로켓의 두 차례 발사 실패는 모든 우주개발 선진국들이 경험한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일본의 로켓 개발계획은 우주개발사업단(NASDA)과 문부성의 우주과학연구소, 과학기술청의 항공기술우주연구소가 중심이 되고 미쓰비시, 도시바, 일본전기 등 200여 개의 민간회사들이 협력하여 시행되고 있다. H-2 로켓의 발사 실패에 크게 자극받은 일본 정부는 우주개발사업단, 우주과학연구소, 항공기술우주연구소를 통합해 독립적인 우주개발 추진기관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일본은 H-2 로켓 발사를 전환점 삼아 ‘21세기 초엽에 우주왕복선을 발사하고 달과 화성에까지 로켓을 발사한다’는 장기계획을 수립했다. 그만큼 일본의 우주개발사업에서 H-2 로켓 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H-2 로켓이 순수 일본 국내산 로켓이라는 점이다. H-2 로켓은 직경 약 4m, 총길이 약 50m, 중량 264t의 2단식 로켓이다. 1단에는 액체수소와 액체질소를 사용하는 추력 110t의 LE-7 엔진 1기와 함께 총합계 추력 320t의 고체 로켓부스터(SRB) 2기를 양 옆에 탑재한다. 2단에는 H-1 로켓에서 개발되었던 LE-5 엔진의 개량형인 LE-5A 엔진을 1기 장착했다.

    로켓 발달과정 초기에 만들어진 N-1, N-2 로켓은 라이선스 생산방식을 통해 제작한 것이었고, H-1 로켓에서는 1단 엔진만 라이선스, 2단은 국산이었다. 그러다가 H-2 로켓에서는 100% 순국산 로켓으로 기술의 완전 자립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H-2 개발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주엔진인 LE-7 엔진 제작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우주개발사업단은 1993년 1월21일 LE-7 엔진의 연소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주엔진의 국산개발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정지궤도에 약 2t의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장래 대형 위성 혹은 복수의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H-2 개발은 우주개발사업에 획기적인 발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상업용 위성 발사수주에 있어서도 큰 경쟁력을 갖는 전기가 된다. H-2의 발사능력은 유럽의 아리안-5, 미국의 스페이스 셔틀, 타이탄-4 등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국제 위성발사사업 시장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일본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최근 H-2A 로켓 증강형과 확장형 개발에 돌입했다. H-2 로켓시대가 국산화 작업을 위한 노력의 시기였다면, H-2A 시대는 외국부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만든 보다 저렴하고 강력한 로켓으로 국제 위성발사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국산화 넘어 세계시장 장악 모색

    프랑스의 아리안-4 제작비용이 약 900억원인 데 비해 H-2는 1900억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H-2A 시리즈부터는 제조단가가 약 850억원으로 떨어졌다. H-2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는 부품 하나까지 순국산을 지향해 단가가 대단히 비쌌기 때문이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그만 부품을 생산하는 능력에서부터 종합적인 조립능력에 이르기까지 자립능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의 전후 군수산업 육성과정에서 어김없이 목격되는 현상이다. 일단은 가능하면 부품 하나까지 국산화를 시도해 외국에서 무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비싼 자체 무기체계를 고집하고, 대신 유사시에는 이 첨단 무기를 마음껏 생산할 수 있는 기술축적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H-2A부터 외국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 최근 일본의 로켓정책에 대해 문부과학성 시바타(芝田) 우주정책과장은 “순국산 로켓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190억엔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H-2 로켓을 만들었다. 이제 필요한 기술은 모두 배웠으므로 외국 부품을 사용하는 85억 엔대 H-2A 로켓시대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막강해진 ‘일본의 눈’… 한반도엔 숨을 곳이 없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공장에서 제작중인 H-2A 로켓

    최근 일본은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 온 로켓생산을 미쓰비시 등 민간기업에 이양하는 새로운 우주정책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대형투자가 필요하고 전략적 사고가 병행되어야 하는 초기 우주개발 기술 축적은 정부가 앞서서 이끌어나가는 것이 유리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정책운용의 효율성과 유연성이 떨어져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민영화에 의한 제품경쟁력 강화, 제조가격 절감, 서비스 향상 등이 기대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선진국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21세기 일본의 우주개발계획은 H-2A 로켓을 기간(基幹) 로켓으로 해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즉 향후 10년간 세계 상업위성시장은 정지궤도에서 기능하는 5.5t 규모까지의 위성발사가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4.1t의 환경관측기술위성 ADEOS-2는 H-2A202형(型)으로 발사하고 4.5t의 운수다목적위성(運輸多目的衛星) 1호기 MTSAT-1R은 H-2A2022형 로켓으로 올해 안에 발사할 예정이다. 2004년에는 5t 규모의 데이터 중계기술위성을 H-2A2024형으로, 6t 규모의 기술시험위성 8호를 H-2A204형으로 발사하는 등 H-2A 로켓 표준형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대신 2005년 이후에는 H-2A 시리즈의 증강형(增强型) 실험을 개시해 7.5t 규모의 위성을 H-2A212형으로, 8t 규모의 위성을 확장형(擴張型)인 H-2A+ 형으로 발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로켓발사능력은 명실공히 프랑스의 아리안-5나 미국의 델타-5, 아틀라스-5와 어깨를 겨루게 된다.

    로켓 제조가격을 낮추는 일본의 최근 행보는 미국 등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크기는 작으면서도 기능은 뛰어난 일본의 첨단위성 개발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로켓 제조가격을 낮추면 상업용 위성발사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고, 위성을 작게 만들면 여러 개의 위성을 한꺼번에 쏘아 올려 그만큼 위성발사 가격이 낮아지게 된다. 예전부터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뛰어난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발휘해온 일본인들이 아닌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의 세계시장 석권에 충격을 받았던 선진국들의 관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리랑 2호의 치명적 약점

    장기간의 투자와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역을 감시권역으로 삼은 일본.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움직임은 어떨까. 한국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우주센터를 건립한다는 목표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5년부터 인공위성 자력발사 체제를 갖추어 2015년까지 과학위성 5회, 다목적 실용위성 4회, 예비발사 26회 등 모두 35회에 걸쳐 위성을 발사하게 된다.

    이 중 관심을 끄는 것은 2004년 4월 발사 예정인 아리랑 2호 위성. 분해능력 1m급인 이 지구관측위성은 첩보위성의 광학위성과 마찬가지로 안보 및 정보획득 분야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비록 다목적 실용위성이지만 비로소 한국도 첩보기능을 갖춘 위성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리랑 2호의 경우 광학위성 기능만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했듯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첩보위성들은 광학위성과 레이더 위성이 한 세트로 구성된다. 그러나 아리랑 2호는 레이더 위성이 없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악천후일 때는 위성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첩보위성 정보가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절실한 한국이지만,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한 힘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한국도 하루빨리 레이더 위성을 확보해 본격적인 첩보위성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또한 위성 수명이 평균 5년임을 감안한다면 첫 발사 이후 적어도 3~4년 내에 후계 위성을 발사해 정보공백에 대비할 수 있는 장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위성의 자력발사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른 나라 로켓을 빌려 위성을 발사하는 데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GPS나 방송통신위성 등 위성이 제공하는 서비스 없이는 단 하루도 살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시간에 위성을 발사하지 못하면 그 혼란은 나라 전체에 파급된다. 프랑스가 아리안 로켓 개발에 뛰어든 것도 독자적인 발사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위성발사를 부탁받은 미국이 프랑스에 ‘향후 위성발사사업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요구하자 비로소 독자적인 발사능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정보는 힘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위성을 통한 정보획득 능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동북아 전역을 내려다보는 일본의 정보능력에 견주어볼 때 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정보수준은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정보격차는 유사시는 물론 평화시에도 외교나 힘의 균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한국도 시간을 다투어 일본처럼 라이선스 생산을 통한 기술축적에 국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첨단 위성발사능력이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시대, 지금 우리 머리 위에는 주변 강대국들이 쏘아 올린 첩보위성들이 돌며 한반도 곳곳을 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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