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영(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수연구원)의 ‘조선후기 유림의 사상과 활동’(돌베개) 역시 저자가 그런 복합적 연구방식을 통해 발표해온 성과들을 보완하고 또 새로 첨가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는 이미 이황과 최한기 등에 대한 계발적 연구성과를 제시한 바 있지만, 본 저서는 18∼19세기 조선 유학에 대해 저자가 그간 다듬어온 독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항 이후의 조선후기 학계 분석
저서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선 호락(湖洛)논변과 임헌회, 유신환, 김평묵, 정윤영 등 기호학계 인물들을 분석했다. 2부에서는 퇴계 학맥의 한 축을 이루는 안동지역 유림과 남명 학맥의 한 축을 이루는 강우지역 유림의 활동을 분석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18∼19세기 조선 성리학계의 특성을 학단(學團)의 흐름과 연계해서 파악한다. 저자가 읽어낸 특성은 조선후기 학계가 지역과 학파의 다양한 분화를 통해 발전하다 개항 이후 반외세 투쟁을 통해 교류가 확대되고, 다시 지역성과 당파성을 넘어 통합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점을 학통의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한 학단들 사이의 쟁론과 그에 얽힌 정치적 이해를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밝혔다.
먼저 기호학파의 경우 저자는 호론과 낙론의 분열을 이론적 측면에서 검토한 다음, 화양서원묘정비 건립과 송시열의 영정 봉안, 그리고 한원진의 시호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전개한 쟁론을 ‘이재난고(헊齋亂藁)’와 ‘화양서원묘정비(華陽書院廟庭碑)’ 등 자세히 연구되지 않은 새로운 사료들을 이용해 세밀히 추적했다. 또 송시열 이래 기호학통의 정통성을 자파에 두어 기호학단의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양측의 노력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면서, 한편으로 양측의 이론적 입장이 정치적 태도와 연관되는 양상을 밝히고 있다.
낙론계 인물인 임헌회와 유신환의 활동에 관해, 저자는 임헌회를 중심으로 홍직필-임헌회-전우 라인과 이항로-유중교·김평묵 라인 사이의 학설과 출처를 둘러싼 쟁론을 분석하면서, 명덕(明德) 개념에 대한 주기와 주리의 대립, 임헌회와 김평묵 사이의 토론(星田夜話), 임헌회의 사후 학통을 둘러싼 쟁론 등을 자세히 드러냈다. 저자는 임헌회측이 김병기, 민규호 등 관료측과 가까이 지내면서 개항 전후 척사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이항로-김평묵 라인으로부터 비판받았다고 본다. 그리고 임헌회측 역시 근본적으론 척사를 주장하는 보수적 유학자들이었지만, 학통과 사회적 처지를 지키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에 당시 대내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척사운동 전개에 지장을 줬다고 파악한다.
‘영남만인소’ 초본 내용 등 새 자료 제시
김평묵과 정윤영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병자년(1876)과 신사년(1881)에 활발히 전개된 척사운동의 성격을 해명한다. 병자년 개항 시기 김평묵의 척사론은 반외세의 성격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남인-소론-개화세력들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위기의식이 결합된 성격을 띠지만, 신사년에 이르면 반외세에 초점을 둔 근대 민족운동에 접근해간다는 것이다.
19세기 척사론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독법은 유치명 일파의 척사운동과 신사년 영남만인소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어진다.
저자는 유장원과 남한조를 통해 이상정의 학통을 계승한 유치명이 이황-김성일로 이어지는 호학(湖學)을 영남학파의 정통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들을 세밀히 추적한다. 호계서원에 이상정을 추향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 고산서당 강회를 통해 자파의 세력을 확대하는 양상, 1855년 장헌세자 추숭을 요청하는 소(疏) 등을 상세히 기술한다. 그러면서 유치명이 남한조를 통해 안정복의 ‘천학문답(天學問答)’ 등의 영향을 받으며 척사의식에 접하고, 1848년 유건휴가 편찬한 ‘이학집변(異學集辨)’을 통해 구체적 인식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유치명 학파의 척사 관념은 유치명의 다음 세대에 이르러 서원훼철반대와 복설운동을 통해 구체화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돈우 등에 의해 개인적으로 개진되는 형태였다고 본다. 또 1880년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퍼지면서 척사의식은 반외세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바뀌고, 1895년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격이 변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1881년 영남만인소의 전개과정을 자세히 재구성하면서, 초기엔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정치투쟁적 성격을 가졌던 것이 반외세의 척사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고 있음을 관찰해내는데, 승정원에 올리기 전 ‘영남만인소’의 초본 내용을 비롯해 학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을 통해 매우 구체적인 정보들을 제시하고 있다.
위정척사운동을 반제민족운동의 연속선에서 해석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 18∼19세기 유림 활동의 구체적 실상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시기 유림의 활동을 시대에 뒤처진 비현실적 퇴행으로 읽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적이고 당파적인 활동이 반외세 민족운동으로 변화해가는 흐름을 실증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위정척사운동을 반제민족운동의 연속선에서 해석하는 독법에 힘을 실어준다.
그런 점에서 본 저서는 지역적으로 복잡한 사정들 속에 전개된 조선말기 유학사를 생산적으로 읽는 하나의 지도로서 관련 전공자나 일반 독자에게 값진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상사 연구에서 늘상 쟁점이 되는 한 가지 문제는 사상노선을 정치 등 여타 활동과 정합적으로 연계하여 해석해내는 문제다.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견해 차이를 토대로 호론계와 낙론계의 정치적 입장을 새롭게 해석하는 독법들이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본 저서에서도 호론계의 인물성이론은 인간과 금수,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분하는 춘추의리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과 맞물려 있고, 그를 통해 신분적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본다. 반면 낙론계의 인물성동론은 성리 개념의 해석에서 금수보다는 인간의 인륜을 밝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보편적(?) 해석에 머무르고 있어 호론계에 비하여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입장을 취하며, 그 때문에 청(淸)문화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갖고 탕평책을 수용하는 등 유연한 입장을 갖는다고 해석한다.
성리설-당파 연계한 정합적 해석 부족은 아쉬워
인물성동이론은 미발(未發) 상태의 심(心)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계된다. 논쟁이 구체화되는 것은 한원진과 이간 사이의 토론에서 비롯하지만, 이론상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성혼과 이이 사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송시열에 와서는 미발 개념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이 부분이 본 저서에서는 검토되지 않아 아쉽다.
송시열은 미발의 심체가 순선하며 성인과 범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 주희의 정론이라고 해석하여 이이의 입장을 정당화하는데, 이이-송시열로 이어지는 미발심체순선론은 곧 인물성론에서 동론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호론계에서 송시열을 자파로 정당화하는 것은 송시열 자신의 입장과 별개의 논법이다.
송시열은 이이가 당파에 대하여 조제보합론을 주장한 것을 비판하고, 군자소인론으로 대체하는데 이는 호론계의 주장과 연속된다. 즉 송시열은 이론적으로 낙론의 노선과 연계되지만 정치적 태도에서는 호론에 연속된다. 낙론계의 경우, 김창협 등 서울 주변에서 활동하고 해외의 지식에 비교적 쉽게 접근하였던, 애초에 송시열의 위세에 덜 압도되었던 그룹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 자세를 보이지만, 반면 조정에서 관리를 지냈더라도 노론의 당론에 충실하였던 이재(李縡) 등 친(親)송시열 그룹은 이론적으로 낙론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탕평책을 비판하는 등 매우 보수적 태도를 견지한다. 따라서 성리설에 대한 입장 차이와 여타의 활동을 당파와 연계하여 정합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좀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