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인간의 광기(狂氣)를 부추긴다.
- 암이 온몸에 전이되는 것처럼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 그러나 스포츠는 인간의 광기를 다스린다.
이라크 남부도시 바스라 외곽에 설치된 임시보호시설에서 이라크 민간인들이 영국군 전차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라크전쟁으로 수백명의 민간인이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쿠투조프가 지휘하는 러시아군은 퇴각을 거듭할 뿐 거의 싸움을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1세 러시아 황제는 “설사 캄차카까지 물러난다고 해도 항복은 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계획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퇴각한다”고 말했다.
나폴레옹군은 더위와 식량난, 음료수 부족 그리고 퇴각하는 러시아군과의 끊임없는 작은 전투 등으로 지칠대로 지쳐갔다. 9월15일 악전고투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나폴레옹군은 불과 11만명. 텅 빈 모스크바는 러시아군이 파괴하고 떠나버려 보급품을 현지 조달하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동장군(영하 10∼30℃)이 찾아왔다. 여름에 파리를 출발한 나폴레옹군에게 변변한 방한장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10월19일 나폴레옹은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때 퇴각만 하던 러시아군이 돌연 방향을 틀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코사크병들도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끈질기게 앞길을 막았다. 12월, 마침내 파리에 귀환한 나폴레옹군은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친 수만 명의 거지군대로 변해 있었다.
후세인 참수공격 주효
2003년 3월20일. 미국과 영국군은 막강한 공군력을 앞세워 이라크 침공을 단행했다. 미국은 개전 이후 2주일 동안 하루 평균 3000t의 폭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700개가 넘는 토마호크 미사일과 9000개 이상의 정밀 유도탄을 1600여 대에 달하는 헬기 전투기 폭격기들을 이용해 쏟아부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수뇌부는 “후세인 부류만 콕 찍어 외과수술처럼 도려낼 수 있는 ‘첨단 족집게 인도적 폭탄’으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뒤 가볍고 기동성이 높은 경보병과 특수부대를 바그다드에 진격시키면 쉽게 후세인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시 압도적인 군사력(1년 국방비 이라크 14억달러, 미국 4000억달러)을 사용한다’는 이른바 파월독트린 대신 ‘스피드에 의한 속전 속결 전략’을 택한 것이다. “뱀은 머리만 장악하면 끝”인 것과 같이 이라크도 바그다드의 후세인만 없애면 사실상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은 이라크군의 핵심인 공화국 수비대를 집중 공격했다. 그러나 종전 후에도 후세인 정권은 건재할 뿐 아니라 더욱 강화됐다. 따라서 이번에 미국은 곧바로 후세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른바 후세인 참수(斬首)공격(Decapitation Attack)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태평양전쟁 때 맥아더가 사용한 개구리전술(괌 사이판 과달카날 오키나와 등 일본의 심장 도쿄 공략을 위해 전략적 가치가 있는 섬만 장악하고 나머지는 우회)을 전개했다. 바그다드 진격을 위한 최소한의 전략 요충지를 빼놓곤 그대로 통과(bypass)해 쾌속진군한 것이다.
초기 미국이 이라크 침공 때 투입한 병력은 24만명(미군 20만명, 영국군 4만명). 40만 군대의 후세인은 “우리는 도시에서 싸우기를 원한다. 미·영군은 주요 도시가 아닌 사막만을 장악하고 있을 뿐”이라며 “미군은 500㎞ 길이의 뱀처럼 미끄러져 들어왔지만 우리는 이 뱀을 죽 늘어뜨린 다음에 잘게 썰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개전 초기 후세인은 미군의 보급선이 500㎞에 이르자 본격적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해 미국에 부분적인 타격을 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마침내 미국은 바그다드를 포위했고 후세인은 100㎞에 이른다는 바그다드 시내 지하 터널에 숨어 마지막 결전을 외쳤지만 바그다드는 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의 칼싸움’이라 불리는 시가전 사상률은 보통 30%선. 시가전에선 공격군이 3∼5배의 병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런 전략도 미국의 첨단장비와 융단폭격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개전되자마자 지휘 통신체계가 무너져버려 후세인은 손발이 완전히 잘려버렸다. 이라크군은 산발적으로 저항했을 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이라크군은 미군과 전투다운 전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도대체 사담 후세인의 군대는 어디에 있는가.
전쟁은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거대한 이해의 충돌이다. 또한 전쟁은 정치적 도구이기도 하다.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이란 단지 다른 수단으로 행해지는 정치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쟁은 게임인가? 미국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걸프전 때 펜타곤에 앉아 있으면 가끔 전쟁이 스케일 큰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람이 목숨을 잃지만 않는다면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파월은 자마이카 이민 후손으로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난 흑인. 1975년쯤엔가 한국 동두천 근처 캠프 캐시 미군 2사단 대대장(중령)을 지내기도 했다. 파월은 같이 근무한 한국군 카투사에 대해 “한국군은 당시 맥주 한병 값에 불과한 한 달 3달러의 월급을 받았지만 매우 절도 있고 모범적인 군인들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전쟁은 가끔 게임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게임이란 뭔가. 그건 ‘놀이’를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놀이인가? 그건 아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일 뿐이다. 전쟁 뒤엔 늘 냉정한 계산이 따른다. 정치적 이해 관계가 뒤따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한마디로 ‘주유소 습격사건’이라 말할 수 있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1125억배럴. 사우디아라비아의 2618억배럴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의 석유매장량(알래스카지역 제외)은 304억배럴로 지금 같은 소비추세라면 10.7년이면 바닥난다. AFP통신은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면 이라크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터키와 시리아는 물론 석유 수입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는 OPEC 국가들까지 미국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것도 다 이해관계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하락하면 러시아 재정수입은 연 10억달러가 줄어든다. 더구나 러시아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의 쿠르나유전(매장량 110억∼115억배럴) 개발권까지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는 20억달러의 손실을 입는다. 마즈눈유전(매장량 120억∼200억배럴)과 나흐르 우마르유전(매장량 40억배럴) 개발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도 마찬가지. 프랑스는 이외에도 현재 7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유전 개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라크 남부 알아흐다브 유전 개발권을 가지고 있다.
전쟁 닮아가는 현대 스포츠
이 세상의 모든 놀이(게임)는 즐겁고 신난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도 즐겁고 신나게 하면 놀이가 된다. 놀이와 노동이 하나가 되면 사람이 꼭 ‘신들린 것’처럼 하는 일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일본에서 ‘요리의 철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조 로쿠사부로는 “젊었을 때는 앞뒤 안 가리고 내 멋대로 요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요리를 만든다기보다 요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의해 요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고백한다. 일본 스모경기에서 69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요코즈나(천하장사) 후타바야마는 “요코즈나와 보통 장사의 차이는 뭔가. 장사에게 정신 기술 체력은 기본조건이다. 차이가 있다면 ‘씨름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씨름이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대 스포츠는 점점 전쟁을 닮아간다. 지느냐 이기느냐의 여부는 현대 전투처럼 ‘체력(화력)과 스피드(기동성)’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방어자는 지형의 이점을 갖고 공격자는 기습의 이점’을 갖는다. 유리한 방어 진지에 있는 적을 공격하여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을 때 하는 말이다. 공격자가 방어자보다 수십 수백 배 이상 강하면 별 의미가 없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들로 이루어진 드림팀과 한국 농구대표팀 간의 게임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드림팀의 스피드와 체력은 한국팀의 그것에 비해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축구 야구 농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팬들은 게임을 보면서 ‘놀이’를 즐기고 어느 땐 무아경으로 그 경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정작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은 ‘놀이’가 아닌 ‘노동’으로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노동, 농구노동, 야구노동….
바스라를 점령한 영국군 해병대원들이 이라크 주민들과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비록 계산된 ‘쇼’일지라도 전쟁보다는 훨씬 낫다.
‘뉴욕타임스’는 “3월29일 현재 사망이 확인된 미군 28명 중 엘리트 대학을 나왔거나 유복한 가정 출신은 3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돈이 없어 고등학교만 졸업했거나 2년제 대학 졸업 후 노동에 종사하다 군에 입대했던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월남전 이후 모병제를 버리고 지원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원병제를 실시했던 시절인 걸프전에서도 부유층 자녀들은 거의 군대에 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전사계급은 노동계급처럼 세습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싸우는 자’와 ‘싸우기를 요구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균열이 심각해진다. 현재 미국민들 중 같은 나이 내 흑인 비율은 12.7%. 그러나 군대 내 흑인 비율은 22%이며 여군 중 흑인 여성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바그다드 주부 움우다이는 “공습이 끝나자마자 난 정원으로 나가 꽃을 심는다. 그렇게라도 해야 불안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요르단에서 조국 이라크로 싸우러 간다는 어떤 이라크 청년은 “난 전쟁의 자식이다. 난 사이렌 소리를 음악으로 들었고 수시로 떨어지는 미사일 틈에서 자랐다. 전쟁이 내 인생이지만 난 부당한 침략에 굴복할 수 없다”며 울먹인다.
왜 싸우는가. 누가 싸우게 만드는가. 결국 죽어나는 건 일반 시민들뿐이다. 운동선수들을 죽자살자 뛰게 만드는 것도, 전장의 병사들을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 속으로 등떠미는 것도 모두 ‘싸우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은 결코 게임이 아니다. 규칙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없다. 그러나 스포츠는 게임이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사역’이 아니다. 게임엔 일정한 규칙이 있다.
게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즐겁고 온 정신을 다해 해야 한다. TV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갬블러이자 포커 플레이어 차민수씨는 “모든 게임은 정신 자세와 승부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축구에서 슈팅을 할 때나 농구에서 3점슛을 할 때 무아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해야 골인이 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약팀이라고 생각했던 팀이 한번 상승세를 타더니 우승까지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즐겁게 하면 살아 숨쉬는 조직이 된다. 일본의 전 럭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히라오 세이지는 “사람의 몸은 매우 잘 만들어져 몸 안에 이상이 발생하면 그것을 보완하려는 능력이 발동한다. 예를 들어 눈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청각이 매우 뛰어나고, 손이 불편한 사람은 다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팀이라는 조직 안에서도 그런 현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일본 럭비팀에서도 나약한 부분을 발견했다. 당연히 수정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멤버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나약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것이 팀워크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피가 통하는 숨쉬는 조직이다”고 말한다.
전투는 유한하다. 스포츠게임도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전쟁은 무한히 계속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지금은 오사마 빈 라덴(후세인)이 한 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100명이 생겨날 것”이란 말은 의미심장하다. 후세인만 도려낸다고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
전쟁은 인간의 광기(狂氣)를 부추긴다. 암이 온몸에 전이되는 것처럼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포츠는 인간의 광기를 다스린다. 폐허가 된 바그다드 시내 공터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은 슬픔과 노여움을 그것으로 삭인다. 전장터에서 영국군 병사들과 이라크 청년들이 가진 축구경기. 아마도 이 장면은 영국이 연출한 고도의 ‘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전쟁보다는 백번 천번 낫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