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로또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당첨자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직 그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로또가 오래 전부터 성행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 해외토픽에서 그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85% 정도가 파산하고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이 대다수라고 했다. ‘인생 대(大)역전’이 아니라 ‘인생 대패망’이 된 셈이다.
그들이 로또에 당첨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다면 ‘평화’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 통계를 보면서 새삼 평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현재의 평화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현재 내 인생의 평화 속에서 진짜 ‘로또복권’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 마치 숨은 그림처럼 여기저기 숨어 있는 즐거움, 설렘, 웃음, 희망… 그것들이야말로 로또 이상의 행복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것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심히 살아간다.
다행히도 나는 ‘철’과 ‘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함량미달 인간. 짧게 말한다면 철딱서니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야말로 ‘로또 복권밭’임을 이미 깨달아버렸다.
모든 것이 즐겁고 신기하고 행복한 것투성이다. 여기를 클릭하면 기쁨의 복권이 와르르^ 쏟아지고 저기를 클릭하면 놀라움의 복권이 와르르^ 쏟아진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나에겐 모두가 로또복권처럼 다가온다. 이 사람은 이래서 예쁘고 저 사람은 저래서 멋지다. 나에겐 웬만하면 모두 감동의 물결이다.
아마도 ‘내 인생의 첨부파일’을 클릭한다면 두 개의 키워드밖에 없을 것이다. ‘뿅’과 ‘뻑’이라는 두 개의 단어만 보석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평소에 귀를 토끼처럼 쫑긋 열어두고 살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가 쏙쏙^ 잘 들어온다. 할머니 몇 분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글쎄 우리 옆집에 괴짜노인이 살고 있는데 말여. 그 아들며느리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만 이뻐하고 그 영감을 잘 섬기질 않았대는구먼.
어느 날(아들며느리가) 강아지까지 데리고 외출하면서 글쎄 영감 혼자만 뎅그러니 남겨뒀대잖여? 괴짜영감은 화가 나서 강아지집에 들어가 있었대지 뭐여.
저녁 때 아들며느리가 돌아왔겠지? 할아버지가 강아지집에 있으니 난리가 난 거여. 아버님이 치매 걸리셨다, 망령이 드셨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난리가 났나벼.
그 영감이 동네방네 떠나가도록 이렇게 말했대여. 이눔들아, 느그들은 나를 강아지 취급도 안하잖여? 나는 차라리 여기서 강아지하고 살란다. 그러면 강아지 주는 고기허고 밥은 때 맞춰 줄 것 아녀? 아들며느리가 두 손 두 발 싹싹 빌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괴짜 영감은 강아지집에서 나왔다는 거여.”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할아버지를 성원하는 동병상련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고, 오죽하면 그랬겄어? 요즘 아들며느리들 정말 반성해야 혀….” 혀를 끌끌 쯧쯧 차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나는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사실 로또복권에 당첨된다면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아마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아누워야 할지도 모른다. 간절히 갖고 싶다고 열망할 때, 그 순간은 행복하지만 막상 그것을 갖게 되면 상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가 UFO처럼 튀어나오기도 한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으면 그동안 얼굴도 모르던 친척들까지 나타나 손을 벌릴 것이다. 집안에 전자감시장치를 달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로또복권이란 말인가?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한다.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나 직업도 천차만별이다. 파릇파릇한 중학생부터 대학생,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교도소 재소자들, 그것도 전국에서 모인 20∼30대의 강력범들. 그런가 하면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의 사장님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실 직원들에게도 강의를 한다. 만나는 대상이 다양하다 보니 느낌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상도 지역의 시청공무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난 후였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나니 꼭 쓰레기더미 속에서 금반지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은 또 하나의 로또복권에 당첨된 듯한 감격으로 출렁였다. 띨띨하기로 소문난 나에게 용기를 준 그 순박한 남자의 웃음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우리 앞집 아이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도 몇 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웃음을 나에게 선물했다. 유치원 단짝이 이사가니까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는 아이.
“엄마, 준이 보고 싶어 어떻게 살지? 나도 준이 따라갈 테야!”
하루도 못살 것처럼 슬퍼하던 아이는 일주일쯤 지나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준이 보고 싶어?”
엄마가 묻자 아이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물었다.
“엄마, 준이가 누구야?”
아무리 딸이지만 너무 심하다면서 웃는 젊은 엄마.
그러나 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 뺨을 꼬집어주었다.
어휴, 이 귀여운 것!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해 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그러나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발생하면 택시를 탄다. 어제도 지방대학원 강의를 하느라 새벽에 귀가하게 돼 택시를 탔다. 시간은 새벽 2시45분. 나는 기사아저씨에게 물었다.
“언제 나오셨어요?”
“아침 9시에 나왔는데 이제 들어가려던 참이에요.”
“세상에?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시다니 얼마나 피곤하실까?”
“내일은 쉬니까요!”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데 오늘은 얼마쯤 버셨어요?”
그는 싱긋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오늘은 많이 벌었어요. 10만원하고도 5만원이 넘습니다.”
나는 재빨리 산수를 해봤다. 18시간 정도 ‘쌔 빠지게’ 일하고 번 돈이 15만원!
그 수입이 다른 날에 비해 많은 편이라며 웃는 아저씨!
그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강변도로를 시속 13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핸들을 움켜쥔 그의 손을 보며 문득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핸들을 잡은 채 달려가는 저 손! 오늘도 그렇게 보석처럼 소중한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목욕탕에 자주 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새벽에 가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등을 밀어주며 듣는 인생이야기는 나에겐 그대로 한편의 휴먼 다큐다.
스물둘 꽃띠에 동갑내기 신랑을 만나 결혼해서 20년 넘게 야채장사를 하고 있다는 50대 후반의 여성. 지금은 2남1녀 시집장가 다 보내고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친 평생 웬수 영감이랑 행복하게 산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발음해내는 ‘행복’이라는 단어엔 왜 그렇게도 향기로운 꽃잎이 가득 쌓여 있는지!
어디선가 스쳐 읽은 시 한 편이 들려온다.
‘인생은 깊고 깊은 것이로다. 웬만큼 이름 불러선 못 만나고 돌아가는 것이로다!’
나는 평소에 낯선 이들의 메일을 많이 받는 편이다. 나처럼 ‘쏠림 현상’이 극심한 불량인간을 그래도 괜찮다고 여겨주는 사람들은 영혼이 순수한 게 분명하다.
어느 날 사이버 우체통을 열어보니 육군사관학교에 다닌다는 생도가 이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책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편지를 씁니다. 저는 평소엔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 스님처럼 조용한 글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도서실에서 선생님의 책을 보고 새로운 매력을 느꼈습니다. 탁! 쏘는 탄산소다를 마신 것처럼 청량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꽤 길게 써내려간 사관생도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끝났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충성!!!”
나는 그가 우렁차게 내뱉는 충성이라는 단어에 박장대소했다.
아휴, 씩씩하기도 해라!
그 순간 나는 또 한 장의 로또복권이 내 인생 속으로 펄럭이며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날마다, 매순간 사소한 것에서 ‘별 5개짜리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로또복권, 그거 당첨되지 않았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까짓 거 당첨된다고 반드시 행복한 게 아니랍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을 예쁘게 보아주셔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귀하게 여겨보셔요.
저 먼 곳에 있는 틱낫한 스님만 ‘영적 스승’이라고 추앙하지 마세요. 내 곁의 어린아이에게서도 진리는 깨달을 수 있답니다.
돈벼락을 맞아야만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별것 아닌 일에 깔깔껄껄^^ 뒤집어지게 웃고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부자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