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하나에서 열까지 치밀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다. 깨끗하다. 환경친화적이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도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다.
캔버라 전경. 가까이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기준으로 방사형 도로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 관청과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다.
밤이 오면 캔버라는 더 적막하다. 밤 8시, 서울이라면 퇴근길 시민과 밤 약속 나서는 사람들로 북적일 시간이지만 캔버라의 도심에선 인적을 찾아볼 수 없다. 노천 카페에서 반주를 겸해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보일 뿐, 도심은 한적하기만 하다. 인적이 드무니 밤길도 어둡다.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사는 도시인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캔버라는 어엿한 호주의 수도다. 호주의 행정수도로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90년이나 됐다.
행정수도 캔버라의 탄생과정은 어쩌면 새 행정수도를 만들려는 우리 현실과 비슷하다. 호주는 7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시드니가 주도(州都)인 뉴사우스웨일스주와 멜버른이 주도인 빅토리아주를 중심으로 확장돼 오늘날 7개의 주로 성장했다.
7개의 주로 연방국가를 구성하면서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그 과정에서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 등 세력이 강한 지역 주변의 주, 즉 태즈메이니아와 호주 서부의 주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 강대 주 가운데 한 곳에 수도가 들어설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당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군소 주의 문제제기로 논란 끝에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닌 제 3의 장소에 수도를 정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7개 주의 주도가 모두 해안에 위치한 까닭에 새롭게 건설할 연방수도는 내륙에 정하기로 하고 좋은 조건을 갖춘 땅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발견한 땅이 캔버라였다.
지역통합의 상징 캔버라
즉 캔버라는 지역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호주의 수도가 되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의 배경에도 지역 통합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의 신수도 건설 경험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캔버라의 등장은 호주 전체로도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호주 사람들은 “캔버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호주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캔버라가 있음으로써 이질적 대륙국가인 호주가 통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행정수도의 등장이 기존 도시를 위축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캔버라 건설과정의 특징이다. 시드니는 지금도 명실상부한 호주의 상업적 수도다. 멜버른도 큰 도시이고 특히 교육기관이 잘 발달해 있다.
캔버라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로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중립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인구 350만의 시드니와 320만의 멜버른 등 주변의 거대도시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생력을 갖춘 새로운 도시로 성장했다.
캔버라는 철저히 계획된 도시다. 1908년 수도로 선정돼 전세계 도시공학자들을 대상으로 도시계획 공모를 거친 결과 미국인 벌리 그리핀의 작품이 새 도시의 모델로 선정됐다.
수도로 정해지기 전 캔버라는 건조한 초원지대로 모래먼지만 날리던 황량한 곳이었다. 겨울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고 여름에는 고온 건조해 사람이 살기에는 그다지 유리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 인공호수를 만들고 꾸준히 나무를 심으면서 도시의 기온 자체가 바뀌어갔다. 지금은 연평균 기온이 13℃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곳이 되었다. 동서로 흐르는 몰롱글로강을 이용해 만든 인공호수(벌리그리핀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모양의 광장과 환상(環狀)·방사선·바둑판 모양의 도로가 질서정연하게 배열돼 있다.
벌리그리핀 호수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연방정부 의사당과 각 관청이 있고, 북쪽에는 교육기관과 시청사 지구 및 그 배후에 상업지구가 발달해 있다. 캔버라의 중심지는 반경 5km 이내에 집중돼 있는데, 큰 건물들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주택가가 발달해 있다. 모든 건물은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통제된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에 듬성듬성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도 이런 계획과 통제 때문이다.
도심의 주택가 외에도 캔버라 외곽에는 주거형 위성도시들이 발달해 있는데 이들 위성도시는 철저히 주택과 주거를 뒷받침하는 상업지구로만 구성돼 있다. ‘캔버런(캔버라 사람)’들이 나름의 문화와 여흥을 즐기는 곳도 바로 이 주택지구다. 저녁시간 도심은 텅 비지만 캔버런들은 이곳 간이 상점에서 술도 마시고 파티도 한다.
국회의사당은 24시간 개방돼 있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요금만 내면 일반인도 본회의장을 빌려 쓸 수 있다.
하지만 첫 방문자에게 캔버라는 시시한 느낌을 갖게 한다. 시끌벅적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방문자라면 더 그렇다. 인구 2500만 국가의 수도치고는 너무나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어 적막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 도시의 웬만한 건물 간판에는 ‘어마어마한’ 형용사가 붙어 있다. ‘국립(National)’이라는 수식어가 바로 그것. 국립도서관, 호주국립박물관, 국립수도전시관, 국립영상음향자료관, 국립식물원, 국립과학기술센터, 호주국립대학 등이 호주 전체를 통틀어 오직 하나뿐인 캔버라에만 있는 기관들이다. 여기에 국회의사당, 전쟁기념관까지 들어서 있어 캔버라는 비록 작지만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라는 자부심이 넘쳐나는 곳이다. 시드니가 인구도 훨씬 많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시여서 찾는 외국인도 많지만 시드니의 박물관은 그냥 ‘시드니박물관’일 뿐, ‘국립’이라는 수식어는 없다.
캔버라가 명실상부한 호주의 수도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호주국립대학(ANU)이다. 호주국립대학은 늦게 출범했지만 시드니대학 멜버른대학 등 호주의 전통적인 명문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대학이다. 시드니대학 등 대도시의 유명대학들이 응용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호주국립대학은 아카데믹한 학풍을 자랑한다.
행정수도 캔버라를 디자인한 미국인 건축가 벌리 그리핀의 흉상.
캔버라 주재 한국대사관 서정인 서기관은 “호주국립대학 같은 명문 대학이 도시 전체적으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국적 명문대학이 캔버라에 있음으로써 좋은 인재가 유입되고, 기술관련 산업이 발전해 도시의 부를 축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
캔버런은 다른 도시 사람들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캔버런은 유별난 정보욕구로도 유명하다.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 주민들이 자신들의 도시에만 관심을 갖는 데 비해 캔버런의 관심사에는 제한이 없다.
7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캔버라 지역 유일의 지역일간지인 ‘캔버라타임스’ 잭 워터포드 편집국장은 “다른 도시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만 보지만 캔버라 사람들은 캔버라에서 발행되는 신문 외에도 타 도시 신문을 몇 종씩 구독한다. 이곳 사람들은 늘 정보에 목말라 있다”고 말했다.
캔버라에서는 택시 운전사들도 시사문제에 정통하다. 시드니 등 대도시 택시기사의 상당수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고, 필요한 말 외에는 관광객들과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지만 캔버라 택시기사들은 외국인 손님에게 도시의 형성과정 등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또 기자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North Korea or South Korea?”라고 되묻기도 했다. 낯선 도시 캔버라의 택시기사가 분단된 나라 한국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벌리그리핀 호수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이런 높은 세율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이를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캔버라에서는 다른 주보다 대학진학 비율이 높다. 대학교육의 수준도 높다. 캔버라에서는 주거비용도 적게 든다. 물가도 시드니 등 대도시에 비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싸다. 생계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높은 세금에도 주민들은 큰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분명 캔버라의 소득이 다른 도시보다 높다. 소득의 40% 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내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싼 비용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손해 보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이 ‘commonwealth(공익)’다.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호주의 건국이념이다. 호주 전체적으로 이 이념이 잘 지켜지고 있지만 캔버라는 이 이념에 가장 충실한 도시다. 시드니만 해도 슬럼가가 있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지만 캔버라에는 슬럼가도,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24시간 개방된 국회의사당
이런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캔버라에서는 모든 행정업무에 주민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한다. 자기 집의 나무를 벨 때도 이웃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최근 캔버라 시당국은 도시발전계획을 내놓으면서 2010년까지 인구 40만의 도시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거센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곳 어디에 10만명을 더 수용할 공간이 있느냐”는 게 반대의 이유. 현지 언론에는 이런 주민들의 의견이 활발히 실리고 있다.
캔버라의 힘은 투철한 경영마인드를 갖춘 공무원들의 경쟁력에서도 나온다. 캔버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조형물이 국회의사당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사당과 달리 캔버라의 국회의사당은 24시간 개방돼 있다. 누구라도 국회의사당에 들어갈 수 있고 몇 시간이고 머무르며 의사당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있는 수도 캔버라의 또 다른 상징 전쟁기념관. 이곳에는 건국 이후 호주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기록과 관련 기념물이 보관, 전시돼 있다.
일반인들도 국회 부속건물은 물론, 비회기중에는 국회의사당도 빌려 쓸 수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결혼식도 하고 돌잔치도 할 수 있다. 동창회나 친목모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어떤 경우든 대여료를 내야만 한다. 이처럼 호주에는 권위주의 대신 실용주의가 공무원의 확고한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행정수도 캔버라의 저력은 이처럼 실력 있는 대학과 민주적 소양을 갖춘 시민, 그리고 경쟁력 있는 공무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 도시에도 허점은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집단의식, 위기의 순간 극적인 반전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는 게 캔버런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워터포드 국장은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호주의 여러 도시에서 오다 보니 공동체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거리에서 활기차게 서로 어울리는 대신 일을 마치면 집에만 머무는 것이 일반적인 이곳 주민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공통체 의식은 동고동락(同苦同樂)하고 있다는 유대감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캔버라도 자연스럽게 캔버런만의 독특한 공동체의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워터포드 국장은 “지난해 여름 산불이 심하게 났을 때 모금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서로 돕고 사는 연대의식이 생겨난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단점은 캔버라가 더욱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환경친화적인 도시라지만 캔버라에도 선진국형 사회문제는 있다. 마약 등 청소년들의 탈선은 이곳에서도 골칫거리다. 특히 젊은 남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곳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목적의식을 자극할 만한 직업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그 원인을 설명한다.
국립수도전시관에서 바라본 벌리그리핀 호수와 국립도서관. 미국인 건축가가 디자인해서인지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캔버라의 행정수도 건설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캔버라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도시다. 토지수용에 따른 갈등도 없었고 기존 도로나 거주지가 없어 자유롭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입지조건을 갖춘 지역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워터포드 국장은 “이같은 결정적 차이 때문에 호주의 신수도 건설경험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 캔버라의 경험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 처지에서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0년 동안 수도 건설에서 얻은 캔버런의 피땀 어린 경험에서 몇 가지 원칙만은 따라 배워도 무방하지 않을까.
워터포드 국장은 “신 행정수도를 만들려는 한국인에게 네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맨땅에서 시작하려면 독립된 경제기반을 우선 갖춰야 한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면 시민들에게 피해가 온다. 신 수도 지역에는 자생적 경제기반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둘째, 수도 이전은 장기적인 사업이다. 캔버라도 90년 이상 수도를 건설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고 계획을 세워야 실패하지 않는다. 셋째, 가능한 한 도시 계획과 건설의 수준을 최고로 유지해야 한다. 최고 수준에서 시작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최고의 수준을 유지할 능력이 안 된다면 기다리는 것도 지혜일 것이다. 일단 완성되면 이 수도가 한국인이 생각하는 수도의 모델이 될 것이고 세계인이 한국 하면 떠올릴 도시의 모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수도이기 전에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규모에 맞게 자연을 가꿔나가고 계획해야 한다.”
캔버라 국회의사당 정문에 서면 곧게 뻗은 길이 보인다. 그 길은 벌리그리핀 호수를 건너 맞은편 안작퍼레이드로 이어지고, 그 끝에는 전쟁기념관이 우뚝 서 있다. 3km 남짓한 이 길에 캔버런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고 길가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정성을 기울여 관리해왔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방사선으로 뻗은 도로와 거대한 생태공원처럼 우거진 도심의 숲들, 그리고 그 사이를 막힘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흐름을 바라보노라니, “최선이 아니라면 섣불리 시작하지 말라”는 조언이 뜻하는 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