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논밭에서 금비와 농약으로 가꾸는 재미 없는 나물 이야기는 그만두고 들나물 산나물 이야기나 하겠다. 이른봄 자연에서 가장 먼저 얻어먹을 수 있는 나물이 냉이다. 누구든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긴 겨울 동안 갇혀 있던 방에서 나와 오늘은 햇살이 제법 따스하구나, 이제는 양지쪽 산기슭 잔디밭에 할미꽃이 피어날는지도 모른다 하고 사립문을 나서서 흙담 골목을 돌아 나오며 발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 흙담 밑 땅바닥에 아, 연두빛이 도는 조그만 냉이들이 오박조박 나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기쁜 소리를 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야아, 날생이다! 얘들아, 이리 와봐, 벌써 날생이가 나왔어!
그러나 골목길 돌담 밑에 냉이가 연두빛으로 돋아나기 며칠 전부터 벌써 언니들은 아직도 찬바람 부는 산기슭 양지쪽을 날마다 찾아가서 냉이를 캐고 있었다. 냉이는 지난해의 명(목화)밭이나 배추밭이나 조밭이나 어디를 가도 흔하게 나 있는데, 아직 그 잎들이 풀빛으로 물들지 못하고 흙빛 그대로, 더러는 잎들이 얼어서 겨울 바람에 말라 시들어 있기도 하지만, 땅은 녹아서 호미로 캐면 하얀 뿌리가 나온다. 그것을 종다래끼에 한가득 캐면 그날은 온 식구가 냉이국 냉이무침으로 밥상 앞에서 봄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향긋하고 달콤한 냉이는 바로 새봄의 향기였고 새봄의 맛이었다. 한 해 동안 자연이 주는 온갖 선물 가운데 가장 반가운 첫 선물이 냉이었던 것이다.
냉이를 캐면서 또 함께 캐는 나물이 씀바귀다. 씀바귀도 냉이처럼 아직 그 잎이 겨울 추위에 얼어서 말라 있는 것을 그대로 캔다. 씀바귀는 무쳐 먹는데 그 맛이 씁쓰름해서 아이들은 즐겨 먹지 않았다. 어른들은 “쓴 나물이 밥맛을 돋우고 몸에도 좋다”고 했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더구나 늙은 나이가 되니 씀바귀 맛을 알겠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이 씀바귀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 나물 캐는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꽃다지 모두 캐보자 / 종달이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지금 40대에서 60대가 되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모두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 노래에 냉이와 함께 달래와 꽃다지가 나온다. 꽃다지는 잎에 잔털이 많이 나 있고 노란 꽃이 피는데 잎을 먹는다. 왜 봄나물의 대표로 씀바귀가 안 나오고 꽃다지인가? 아마도 쓴 나물 이름보다 ‘꽃’이란 말이 들어 있는 나물이름이 봄 노래에 더 잘 어울린다 싶어서 이렇게 지었으리라. 그런데 달래, 이 달래는 냉이와 씀바귀를 캐러 다니다 보면 며칠이 안 가서 만나게 된다. 달래는 아무데나 많이 나 있지 않아서 그것을 보게 되면 여간 반갑지 않다. 한 곳에 무더기로 소복하게 실 같은 잎으로 돋아나 있어서 몇 무더기만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한끼 반찬거리로 온 식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달래는 파처럼 맵다. 익히면 달기도 하고, 독특한 향기가 있다. 냉이는 달고, 씀바귀는 쓰고, 달래는 맵고. 이래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달고 쓰고 매운 갖가지 자연의 오묘한 맛을 이른봄부터 골고루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것이다.
종달새 소리를 들으면서 나물을 캐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냉이는 자라나서 줄기가 뻗어오르고 잎도 세어진다. 그러면 쑥과 미나리를 하러 간다. 쑥은 냇가에도 있고 논둑 밭둑 산기슭 어디를 가도 흔하다. 쑥은 국으로 끓이고 죽으로 쑤어 먹고 떡으로 만들기도 하기에 아주 많이 뜯는다. 미나리는 미꾸라지들이 숨어 있는 도랑에서 뜯는다. 홀때기(버들피리)를 불면서 쑥을 뜯고, 찔레를 꺾어 먹으면서 미나리를 나물칼로 자르다가 또 돌나물을 만난다. 돌나물도 논둑 밭둑 산기슭 가는 곳마다 흔하다. 그늘진 바윗돌에도 붙어서 잘 뻗어나는데 여름까지 먹을 수 있다. 돌나물이 한창 날 때는 벌써 온 산과 들의 나무들이 새잎을 눈부시게 피워서 꾀꼬리가 울고, 그러면 온갖 산나물이 나오게 된다. 참취, 곰취, 고사리, 더덕, 고춧대…그 많은 산나물들! 서른 몇 해 전 내가 어느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산나물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그 수가 쉰 가지도 더 넘었다. 온갖 향기와 맛을 지니고 있는 그 많은 나물들은 또 온갖 병을 다스리는 좋은 약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알고 보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나물은 옛날부터 먹어서 누구나 그 이름을 잘 알고 있는 산나물 들나물뿐 아니라, 그 밖에도 또 얼마든지 있다. 몇 가지만 들면, 봄부터 가을까지 어느 들판에 가도 흔하게 풀밭을 만들고 있는 토끼풀은 아주 부드럽고 맛있는 나물이 된다. 민들레잎도 나물이고, 새로 피어난 뽕잎도 영양값이 많은 나물이다. 다래잎은 봄에 훑어서 삶아두었다가 겨울에 먹는 것으로만 모두 알고 있지만, 한여름에 뜯어서 쌈으로 먹으면 구수하다. 보기에는 잎이 두껍고 억세지만 먹어보면 아주 부드럽다. 우리가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산과 들을 깔아뭉개지 않고, 거기 독약을 뿌리지만 않는다면, 그 산과 들은 우리에게 한없는 먹을거리를 대어준다. 그렇게 좋은 땅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그런데 그 땅을 다 죽이면서 약을 뿌려 가꾼 몇 가지 나물이며 열매만을 다시 또 온갖 약품으로 맛을 들여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다시 우리말 이야기로 끝을 맺겠다. 씀바귀, 냉이, 달래, 잔대, 더덕은 뿌리를 캔다. 쑥은 손으로 뜯으면 된다. 돌나물은 걷는다고 한다. 다래잎은 훑고, 고사리는 꺾는다. 미나리는 나물칼로 자른다.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을 하는 재미있는 말이 또 어느 나라에 있겠는가? 그런데 한자말은 ‘채취한다’ 한 가지뿐이다. 그래서 이 ‘채취한다’는 한자말이 그만 ‘캔다’ ‘뜯는다’ ‘걷는다’ ‘벤다’ ‘자른다’ ‘훑는다’ ‘꺾는다’ ‘뽑는다’ 따위 말을 모조리 죽여놓았다. 한자말은 이래서 우리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가 되어 있다.
내가 자라난 경북에서는 냉이를 날생이라 했다. 냉이를 가리키는 말은 나생이, 나싱개, 나새… 따위로 사전(한글학회)에 올려 있는 것만 해도 서른세 가지나 된다. 이 말이 본래는 ‘나이’였는데, 이것이 ‘나이’와 ‘나시’로 되었다. 그래서 ‘나이’로 된 것이 ‘냉이’로 바뀌어 이것이 표준말로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시’로 된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온갖 재미있는 소리로 발달하여 영남과 호남과 충청도, 곧 남한 각 지방에서 서른 가지도 넘게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이→냉이’는 한 가지 소리밖에 없는데, 서울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이것을 표준으로 삼았으니 잘못한 것이다. 일본말도 이 나물을 ‘나즈나(ナズナ)’라고 하는데, 우리말이 건너가서 ‘나-나나’가 된 것이 분명하다.
달래는 우리 고향에서 달랭이라 했다. 사전엔 달랑구, 달랑개, 달롱개…따위 스물세 가지가 올려 있다. 이것도 표준말로 되어 있는 ‘달래’보다는 달랭이, 달랑구, 달랑갱이 따위 말이 그 뿌리 모양까지 재미있게 떠올리게 하여 훨씬 좋다. 돌나물은 우리 고향에서 ‘돌찐이’라 했다. 돌찐이, 얼마나 귀여운 이름인가. 질경이는 ‘뺍쨍이’였고 명아주는 ‘도트라지’였다. 질경이, 명아주도 좋지만 뺍쨍이, 도트라지도 말맛이 좋다. 정다운 우리말을 이런 나물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겨레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의 싹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