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이인제 버리고 심대평 카드로 권토중래

마지막 ‘3김’ JP의 청사진

  • 글 : 장덕수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dsjang@kmib.co.kr

    입력2003-04-25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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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민주연합은 우리 정당사의 아이러니다.”
    • 김종필 총재(JP)가 2003년 3월31일 자민련 8주년 기념사에서 지적한 말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는 비교도 안 되는 국회의원 11명의 미니정당인데도 연륜은 가장 오래됐으니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 스스로를 낮추는 말 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 이 말 속엔 “내년에도 계속 생존해 남겠다”는 각오가 배어 있다.
    이인제 버리고 심대평 카드로 권토중래
    자민련은 최근 원철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금쪽 같기만 한 의석이 한 석 더 줄었다. 소위 DJP공동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초 55석이었던 것에 비하면 5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1998년엔 당 사무처 직원도 2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16대 총선 직후 100여 명으로 줄더니 지난 3월 2차 구조조정 후 현재는 30여 명만 남아 있다. 3년 전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 중부권 수권정당 비전을 호언하던 자민련은 잊혀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17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요즘 이 오래된 정당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자민련과 충청권을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 정계개편이라는 태풍의 상륙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도 자민련의 현 상황과 진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민련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우선 기자실이다. 자민련 출입기자 대부분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함께 맡고 있다. 말하자면 자민련은 다른 일 하다가 시간 나면 가끔 전화하거나 들르는 곳이 됐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대다수 언론사들이 출입기자를 철수시킬 때도 연합뉴스는 자민련 전담기자를 뒀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정국이 시작되자마자 연합측도 출입기자를 뺐다. 더욱이 충청권의 지역신문들마저 자민련 전담기자를 두고 있지 않다. 많을 때는 수십 명의 출입기자들로 붐비던 자민련 기자실은 요즘 언제나 텅 비어 있다. 먼지도 많지 않다.

    두 번째 풍경은 서울 마포 당사 내의 적막한 선거관련 부서들이다. 자민련은 4·24 재보궐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는 3곳 모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이와 관련 2003년 4월 JP를 진노케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4·24 재보궐선거 후보등록이 끝난 다음날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출마한 하나로국민연합 후보와 선대위 사람들이 자민련 마포 당사를 찾아왔다가 내쫓긴 것이다. 하나로국민연합은 자민련 전 총재였던 이한동 의원이 대선 출마 때 만든 정당으로 최근 자민련과 통합설이 나오긴 했다.

    인사차 각 사무실을 돌면서 이들은 “자민련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으니 이웃 사촌격인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환영한 일부 당직자도 있었지만 결국 ‘열 받은’ 몇몇 당직자들이 그들에게 “나가라”고 한 것이다. 나중에 보고를 받은 JP는 “누가 그런 놈들을 (당사에) 드나들게 했어”라고 버럭 화를 내며 경위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젊은 당직자는 “국회의원 후보조차 낼 힘이 없다면 간판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탄식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당은 연일 침통한 분위기인데 JP만큼은 회춘을 한 듯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발걸음이 가볍다. 골프광인 JP는 “아주 공이 잘 맞아. 휭휭 날아가”라는 말도 한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말이다.

    JP, “요즘 공이 잘 맞아”

    JP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달 말쯤. 청와대 만찬에서 돌아온 뒤 기분이 좋아졌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그러다가 4월2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연설, 다음날 한나라당 하순봉 최고위원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JP의 얼굴은 더 활짝 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17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권한을 이양하겠다”고 말한 것이나 하최고위원이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고 국정혼란과 국론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할 때”라고 주장한 것을 JP는 내각제 개헌을 위한 정계개편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내각제 개헌에 대해 현재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JP가 자민련 총재직을 유지하고 정치권 안팎의 은퇴요구를 당당히 물리칠 수 있었던 유일한 명분이 내각제인데 그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JP의 기분은 좋아졌다는 것이다. 함량미달 평가를 받았던 노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은 살 길 막막했던 JP와 자민련에겐 구원의 빛 한줄기 그 자체였다.

    JP는 4월7일 자민련 담당 기자들을 불러 점심을 샀다. 그 전에는 “할 말 없다”는 이유로 기자들과의 티타임조차 피했던 그다.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식사 도중 남녀간의 스킨십에서부터 봄 날씨, 골프, 술 얘기를 늘어놓던 JP는 마지막에 내각제 문제를 꺼냈다. “내 소원은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내각제의 형태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겠다”고 덧붙였다.

    JP는 또 “노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에서 내각제 개헌을 먼저 제의했다”고 했다. 이어 “국회에 팀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정말 좋은 정치질서가 무엇인지를 찾자”는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내각제가 언제쯤이나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JP는 함박 웃으며 “그동안 기자들을 안 만났는데 이제는 조금 운이 떨어지고 기운이 보이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야. 앞으로 자주 보자”라며 특유의 선문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JP는 요즘 가는 곳마다 내각제 개헌 가능성을 언급한다. 내년 17대 총선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자민련의 재건을 이루어내겠다고도 호언한다. JP는 이를 “정치인생의 마지막 견마지로”라며 특히 충청권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흥미 있는 대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연설이나 발언이 읍소에 가까웠는데 요즘엔 목소리가 당당해졌다는 점이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창당 당시 의석(50석)을 회복하고 제3당으로 정계개편에 참여, 내각제 개헌을 이루어내겠다고 한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재건에 베팅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된다. 그러나 정치라는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종합예술이어서 그런지 요즘 이해가 안될 정도로 자민련의 진로를 놓고 물밑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인제 버리고 심대평 카드로 권토중래

    정우택 의원은 최근 당 개혁안을 JP에게 제출했으나 JP는 이에 대해 답을주지 않고 있다.

    자민련의 진로를 말하기 전에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JP와 이인제 의원(IJ)의 관계다. JP는 당 총재이고 IJ는 총재권한대행이다. 지난해말 IJ가 입당할 당시만 해도 JP-IJ 투톱체제, IJP 공조, 포스트 JP 등 두 사람의 원만한 관계를 예상하는 보도가 많았다. 그로부터 만 3개월 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사람은(JP) 5층 살고, 또 한 사람(IJ)은 7층 옥탑방에 있잖유.”

    측근들의 말을 종합하면 JP는 IJ를 처음 영입할 때 ▲교섭단체 구성 ▲당의 활성화 ▲재정난 해소 등 세 가지 정도를 기대했다. 대표직 승계까지 고려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 JP는 당 공식회의에서 IJ를 가리켜 “그 사람 야무지고 잘할 것 같았는데, 영… 그래”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물론 IJ는 자리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IJ는 현재 JP의 경영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 같다. 조만간 당고문으로 직함이 바뀔 것이라는 소문도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처럼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IJ는 요즘 어떤 심정일까. 그의 측근들에게 IJ의 근황을 물어보면 “공부하고 계시다”는 답변을 종종 듣는다. 또는 “때를 기다리시지”라고 말한다. 아직 IJ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IJ 입장에서도 JP와 자민련이라는 울타리를 몹시 답답해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는 사실. IJ는 “자민련은 JP당”이라며 가급적 자민련 내부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달 초 기자는 자타가 인정하는 IJ의 오랜 측근을 만났다. 그는 “애초부터 IJ가 들어앉기에 자민련은 너무 좁았다”며 속이 타는지 소주를 연신 마셨다.

    그런데 JP와 IJ가 결별하더라도 자민련 내에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전지역의 자민련 소속 한 구청장은 IJP를 내세운 총선전략에 대해 “그러면 지지. 자민련은 끝이지”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자민련 한 지구당 사무국장을 18년째 하고 있는 A씨는 “JP가 요즘 견마지로니 뭐니 얘기하지만 그 사람 말을 누가 믿어요. 평생 자기 혼자 좋아놓고서,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해서 믿겠어요?”라고 말했다.

    정우택 보고서는 JP 서랍 속으로

    이같은 충청권의 분위기 때문에 자민련 소속 의원이나 중앙당직자, 충청권 지역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인적교체를 통한 ‘자민련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논의가 한창이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비하면 두꺼비 눈 껌뻑거리는 정도지만 나름대로는 열기가 있다.

    자민련은 대선 직후 정우택(50)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발전쇄신위를 구성, 3월초 당 쇄신안을 확정해 JP에게 보고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당 쇄신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쇄신안이 공식적으로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쇄신안은 현재 총재 1인이 이끄는 순수 단일지도체제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고 정책위 의장과 원내총무를 의원총회에서 경선으로 선출하며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명 개정도 적극 검토하도록 권고했다. 내용만 보면 손색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JP다. 쇄신안이 특위 의결을 거쳐 정위원장을 통해 JP에게 전달됐으나 JP는 아무런 말이 없다. 전당대회도 당초 5월경에 치를 예정이었으나 10월 이후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월에 정말 열릴지도 확실하지 않다. JP는 연기 배경에 대해 “군소 야당이 먼저 설쳐봐야 아무런 득 될 것이 없어. 다른 당 다 하고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한나라·민주 양당의 진로를 지켜본 뒤 자민련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자민련엔 없다. 쇄신안을 뜯어보면 JP의 2선 후퇴, 정계은퇴가 전제되어 있다. 쇄신안을 공개 논의하는 시점이 바로 JP의 퇴진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을 JP가 순순히 따를 리 없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가 문제다.

    쇄신위에 참여한 B씨는 “JP가 여기저기서 내각제다, 17대 총선을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어떻게든 시간을 연장시켜 자신도 살고 자민련도 살 수 있는 길이 트일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라며 “그러나 자민련의 시계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이미 자민련의 시계바늘은 JP를 떠나 새로운 인물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고인 물 같던 자민련에도 포스트 JP를 노리는 당권경쟁의 도화선에 곧 불이 붙을 것 같다. 포스트 JP로 처음 거론됐던 인사가 정우택 의원이다. JP가 율사출신 의원들을 놔두고 정의원에게 당쇄신특위 위원장을 맡기자 올해 초부터 JP가 정의원을 낙점했다는 설이 당 안팎에서 퍼져나갔다.

    정의원은 충북 진천·괴산·음성군 출신 재선의원으로 자민련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차세대 유망주자다. 처음에는 펄쩍 뛰며 부인하던 정의원도 요즘은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한다. 일부에서는 구체적인 당권경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의원은 지도부 경선도전 방침은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뒤질세라 JP로부터 지역구(부여)를 물려받은 김학원 의원도 경선 출마를 사실상 결심했다. 비교섭단체의 원내총무를 맡고 있지만 논리와 추진력에서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는 김의원은 “17대 총선에서 이기려면 과감한 공천개혁을 통해 당을 확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충남·대전지부장으로 새 인물 수혈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당권경쟁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조부영 의원도 출마여부를 신중히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이에 호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김 두 의원에 대해 한 당직자는 “젊고 자민련의 뿌리를 가진 사람으로 지난해 대선 직전 당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는 점에서 당의 대표로 충분하다”고 긍정 평가했다.

    지역에선 다른 분위기도 있다. JP를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17대 총선에 희망을 걸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JP를 딛고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리고 차기 당 대표는 본인은 물론 다른 출마자들의 당선까지 보장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거론되는 것이 심대평(62) 충남지사다. 대전시의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심대평 대안론’은 충남을 거쳐 현재 서울로 빠른 속도로 북상중이다.

    C시의원은 “JP, IJ로는 당이 점점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충청인의 중론”이라며 “자민련이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심지사를 전면에 부각시켜 총선을 치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차기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현역 구청장 모두 심지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심지사가 출마할 지역이 거론되고 있고 JP의 지역구 출마, K의원의 도지사 보궐선거 출마설까지 제기될 정도다.

    심지사는 공식적인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자민련 당권경쟁에 나서기 위해서는 내년 선거에 출마해야 하기 때문에 단체장직을 중도 사퇴해야 한다. 심지사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무척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했지만, 주변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민련 당권도전에 나설 뜻이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심지사는 최근 당내 상황, 심대평 대안론, 다양한 자민련 재기계획이 논의되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당권도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사는 ‘인물교체론’에 대해 “정치나 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면서 회의를 표시했다. 최근 당 기자실과 당 홈페이지에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심대평 지사를 총재로 선출해야 한다는 자료가 유포되기도 했다. 심지사는 “그런 얘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인 때문에 당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당의 시스템 개혁을 주장했다.

    심지사는 “16대 총선에서 충청권 민심이 우리를 떠난 이유는 JP 리더십 때문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당의 정책과 이념 때문이었다”면서 “당이 변화의 중심에 우뚝 서, 수권정당으로 인정받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미 자민련 재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상당한 준비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사는 “JP 혼자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면서 “JP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당을 떠난 사람이 우리 당을 정말 어렵게 한 것”이라고 탈당파를 비난했다. 향후 자민련 부실 책임론이 제기될 경우 JP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심대평 대안론 급부상

    JP와 당이 당 총재 경선 출마를 요청하면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내 역할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하고 있다”며 “적절한 시기가 되면 (JP에게) 구체적인 말을 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답했다.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회피했던 두 달 전에 비해서는 상당한 진전이다. 자민련의 17대 총선에서의 재기 가능성을 묻자 심지사는 “충청인들은 충청권의 정치적 파트너를 자민련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 심지사는 행정전문가로 은퇴하느냐, 아니면 다시 한번 정치라는 격랑으로 뛰어들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심대평 대안론이라는 공이 JP와 자민련에게 넘어온 것이다. 심지사는 JP와 자민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지역에서는 심대평 간판을 내세워 신장개업만 하면 곤두박질하던 주가가 하늘로 치솟고 죽어가던 환자가 벌떡 일어나 뛰어가듯 자민련이 지난 1995년의 녹색바람을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흥미로운 것은 자민련 당직자나 당원이 아니라 외부인사들이 주로 심지사 불가론을 제기하고 있는 점이다. 여의도 정치컨설팅 전문가 그룹에서도 부정적이다. 이들은 “심지사 대안론은 시대변화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신기루다. 실제 선거전이 벌어지면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심지사의 실제 나이는 60대 초반이지만 그보다 훨씬 노숙해 보인다. 고위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내년 총선에 불어닥칠 세대교체 바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당을 대표할 만한 전국적 지명도가 없는 것도 문제다. 특히 이 문제는 심각하다. 자민련이 대권도전 등 권력쟁취의 비전 대신 충청권 지역당 사수에 집착하는 퇴행성 정치집단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지역 한 당직자는 “충남지사인 심대평씨가 당 총재가 되면 자민련은 충남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1998년 중부권 보수정당에서 2000년 충청 지역당으로 축소된 데 이어 내년 총선에선 충남 지역당으로 왜소화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한편 심지사의 자민련 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헌개정으로 당 대표(총재) 경선을 거쳐야 하는데 심지사 진입을 반대하는 비(非)충남지역 대의원들이 심지사 이외의 인물에게 표를 몰아주는 ‘이변’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당헌개정에서 충남에 대의원을 더 배정되도록 수정했으나 전체 1만 여 명의 대의원 중 충남지역 대의원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자민련의 재기와 진로를 낙관하기는 힘든 상태다. 누구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당 일각에선 JP의 내년 총선 목표는 충남당이고 충북은 이미 포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목표의석도 대전·충남 17석 중 과반수 이상 의석으로 하향 조정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10석은 100석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JP로서는 크게 욕심 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JP에게는 내년 총선 이후 정계개편과정에서 베팅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석만 있으면 되는지도 모른다.

    “일단 공주부터 지키자”

    충청지역에서 정치컨설팅 전문가로 유명한 S씨는 “자민련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면서도 “한나라당은 얄밉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담스러워 하는 충청권의 정치정서 때문에 자민련이 대표교체 등 변신노력을 보여주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 충청권 21석 중 절반 이상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자민련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정계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민련을 살리는 정계개편은 역 정계개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계개편은 형식적이라도 전국정당화, 정책정당화를 지향하는데 자민련을 살리는 정계개편은 지역분할 정당구조의 창출을 의미한다. 즉 민주당이 노무현신당과 과거 평민당으로 양분되고 한나라당이 쪼개져 부산신당이 출현하는 대(?) 정계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이 살아나고 JP는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 양당체제로 전환되면 자민련의 입지는 좁아진다. 자민련 의석은 양당으로 분산 흡수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JP의 보수이념이나 정치 노하우는 쓸모 없는 고물이 된다. 17대 총선에서도 충청권 유권자들이 행정수도 이전이나 보혁구도로 관심이 쏠린다면 충청당 재건을 주장하는 자민련의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결국 자민련은 외부변수에 운명을 맡기게 될 공산이 크다. 이는 충청권 주민들이 자민련을 당당하게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JP와 자민련이 심혈을 쏟는 일이 있다. 바로 공주시장 보궐선거다. 공주시장 선거결과가 곧 ‘자민련 미래의 바로미터’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혈을 쏟을 일이 생겼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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