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3월24일 낮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콩나물밥을 담던 중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청와대 안팎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전 정권에서는 대통령 연설문은 실무자인 홍보수석에게 올리고 홍보수석은 대통령에게 들고 가 결재를 받는 게 전부였다. 실무 행정관이 관저에 출입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하면서 토론을 벌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번 노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작성에 홍보수석은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행정관에서 대통령으로 ‘다이렉트’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노대통령은 4월3일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또 다른 ‘깜짝 쇼’을 연출해낸다. 노대통령은 32분간 준비해간 연설문을 읽은 뒤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한 말씀드리겠다”며 운을 뗀 뒤 시시콜콜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뒷얘기까지 다 털어놓았다. 이날 연설시간은 예정보다 6분이나 늘어난 38분이나 돼서야 겨우 끝났다. 대통령은 참모들과 상의 없이 국회로 가던 자동차 안에서 논란거리가 된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잇따른 ‘깜짝 쇼’
이날 국회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에도 들러 KBS 사장 선임경위를 둘러싸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 대통령은 “말리는 참모들을 밀쳐내고 기자실에 왔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은 오전 11시40분부터 12시10분까지 30분 동안이나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기자들에게 구구절절이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경위를 해명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대통령은 이날 밤 KBS 노조 간부들과 시민단체 대표들까지 청와대로 불렀다. 이 역시 공식일정에 잡히지 않은 ‘돌발 사건’이었다. 노대통령은 “방송을 장악할 생각은 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노조나 시민단체에서 환영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선의’로 서동구씨를 추천했을 뿐인데 정말 난감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KBS 노조에 “서동구 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약속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대통령은 회의에서 “어제는 취임 후 최악의 날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은 “파격에 파격을 더하다 엉켜버렸다”고 보도했다.
노대통령의 파격 행보는 3월 중순경에도 드러났다. 노대통령이 TV 생중계를 통한 ‘평검사와의 대화’를 전격 제안할 때 참모들 사이에서는 무모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갈등의 현장이 바로 정치의 현장이고 갈등을 푸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의지를 관철시킨다. TV로 생중계되던 토론회에서 노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주도하는 실세로 논란을 빚었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 민정수석과 박범계(朴範界) 민정2비서관을 평검사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노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생중계 토론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자 참모들에게 “이번에 검찰은 꽉 쥐었는데…”라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