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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행정관과 ‘직거래’ 경비단원과 점심식사

파격! 경악! 노무현 청와대 50일

  • 글 :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1965@hanmail.net

행정관과 ‘직거래’ 경비단원과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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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신선하다는 반응도 얻었지만 일부 국민들에게는 낯설게 비쳐진 게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진짜’ 대통령이 됐는데도 ‘온갖 일에 다 나선다’는 말도 꼭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혹평도 들린다.

대통령의 이런 파격 행동은 뿌리깊다. 2000년 하반기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노무현 장관은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마치고 해양수산부 청사로 들어가려던 중이었다. “청사 앞에 경북 후포에서 올라온 아주머니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비서관의 연락을 받은 노장관은 후문으로 청사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현장의 시위 아주머니들을 만나 즉석 간담회를 했다. 이들과의 대화가 제대로 안 되자 아예 사무실로 데려가 토론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시위대의 민원은 사안의 성격상 해수부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노장관이 민원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시위 아주머니들은 결국 노장관에게 설득당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노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386 세대의 한 청와대 참모는 “평검사와의 즉석 대화나 KBS 노조 간담회는 대통령의 문제해결 방식을 읽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중요한 핵심문제를 대통령이 정면 돌파하지 않을 경우 리더십이 생기지 않는다고 대통령은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가 전체의 시점에서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개 공사의 사장 선임 문제를 대통령이 국회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일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핵심 국정 현안’이라는 대통령의 기본 마인드에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상 행보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파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예전 정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노대통령에게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03년 4월9일 청와대 본관. 노대통령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추진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28명에게 위촉장을 주려고 위원들 앞으로 다가섰다. 의전 절차대로라면 위원들이 위촉장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야 했지만 대통령이 먼저 다가서 위촉장을 주려고 했다. 당황한 의전팀의 만류로 결국 정해진 룰에 따라 위원들이 앞으로 나왔지만 대통령은 “임명장도 아니고 위촉장이어서 앞으로 나와서 받으라고 하기가 뭐해서 그랬는데…”라며 겸연쩍어했다. 노대통령은 위촉장을 받는 위원들이 꾸벅 인사를 하자 “너무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나중에 사진이 흉합니다”라며 목례(目禮)로 대신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형식을 따지지 않는 노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이 의전의 파괴로 이어지는 현장이었다.

대통령이 의전 절차를 따지지 않는 모습은 신임 군 간부 임명장 수여식 때도 나타났다. 대통령은 계급 순으로 임명장을 주었지만 악수는 서열 반대 순으로 해 참석자들이 당혹해했다. 대통령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실수로 그랬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의 눈에는 이 또한 이례적인 장면으로 포착됐다.



대통령의 격식파괴가 장관의 파격 행보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러 청와대 회의실에 들어갈 때 대통령보다 앞장서서 걸어가기도 했다. 의아스러운 일로 비쳐졌다. “파격도 좋지만 의전상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장관은 업무보고에서도 간부들을 소개할 때 통상 본부 간부를 먼저 인사시키고 나중에 산하단체장을 소개하는 관례에서 벗어나 산하단체장을 먼저 소개했다.

“미자씨,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네요”

대통령 취임 후 이틀이 지난 2월27일 노대통령은 비서동을 깜짝 방문했다. 비서들이 예고 없는 노대통령의 방문에 놀란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보좌관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나하고는 초면이죠”라고 말을 건네며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악수합시다. 악수해야 친구에게 자랑하죠”라며 악수를 청했다. 비서동을 청소하던 아주머니들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참여기획비서관실에 가서는 평소 알던 행정요원에게 “미자씨, 청와대 오니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네요”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이메일을 보낸 한 초등학생에게 직접 친필 답장도 보냈다. 4월3일 구로2동 영일초등학교 6학년 5반에 재학중인 김대길 학생이 노대통령에게 북한 핵문제를 잘 해결해달라는 소망과 함께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때 줄 선물은 무엇이 좋은지, 권여사님께는 어떤 선물을 했는지”를 묻고 답장을 부탁했다는 것. 대통령은 부속실 직원 보고를 받고 친필로 답장을 썼다. 답장 내용도 파격이었다. “궁리만 하다가 아무것도 안 보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괜찮더라.” 대통령은 김군에게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선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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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196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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