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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행정관과 ‘직거래’ 경비단원과 점심식사

파격! 경악! 노무현 청와대 50일

  • 글 :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1965@hanmail.net

행정관과 ‘직거래’ 경비단원과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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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9일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대통령이 수행 비서진에게 “오늘 점심은 청와대 경비대(충정관) 구내식당에서 하자”고 즉석 제안했다. 역대 대통령이 경비단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은 경비단이 만들어진 1963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통령은 같은 달 11일에는 청와대 본관 구내식당에서 경호원과 본관 기능직 직원들과 점심을 했다. 일부 신문에는 배식을 받던 대통령이 식판에 떨어진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국무회의에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타나 장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 대통령은 장관들이 모두 착석한 후에 들어오는 것이 관례다. 3월18일 노대통령은 회의 시작시간 13분 전에 나타났다. 미처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출현에 한명숙(韓明淑) 환경부 장관이 “이렇게 불쑥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라고 하자 노대통령은 “옷 다 입고 있는데 뭘…”이라고 조크해 장관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3월초 수석비서관과 보좌관 회의에서 노대통령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의 앉은키가 커 보이자 “의자에 앉으니 내 앉은키가 작아 보인다. 유수석은 의자 밑에 뭘 깔고 있나요”라고 농을 던졌다.

노대통령의 ‘파격’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절에도 노대통령과 같은 특유의 파격은 없었다. 대통령의 행보엔 대통령의 유머가 양념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노대통령이 농촌의 서민 출신이라는 점에서 권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행동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순간도 적지 않다.

소탈함인가, ‘불안한 파격’인가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한 우리 정부 입장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TV생중계 과정에서 대통령은 방송시작을 알리는 ‘Q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때문에 생중계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지금 얘기해도 됩니까”라며 촌극을 연출했다. 또 국회 국정연설에서도 카메라를 향해 “지금 시작하면 됩니까”라며 실수를 빚었고, 3월19일에는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개관식 축하 영상메시지 촬영을 위해 손짓 대신 고개를 꾸벅하는 VIP용 Q신호가 나왔으나 대통령이 한참 뒤에 이 신호를 알아차려 NG를 낼 뻔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의 행보에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에 8개월 정도 재임한 뒤 대통령 출마준비를 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변 참모들이 “그래도 장관을 했는데 비서를 3명 정도 둬야 한다”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라해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볼보코리아 사장과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을 봐라. 그 사람들은 해외 출장도 혼자 다닌다고 한다”고 잘라 말했다. 노대통령은 겉치레보다는 실속과 효율을 중시한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대통령 취임 후 50일 동안의 노대통령 행보는 분명 이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대통령을 잘 아는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은 “지금은 권위적이던 최고권력자의 상이 바뀌는 시대”라고 말했다. 윤태영 연설담당비서관은 “국민들은 권위적인 대통령을 싫어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소탈한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서도 당혹해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을 오랜 세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참모들의 눈엔 대통령의 행보가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보는 뭔가 정리되지 못한 ‘불안한 파격’”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신동아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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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영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hchoi196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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