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산대로에 있는 벤츠 강남전시장 내부
이렇게 도산대로가 바빠진 것은, 수입차업계가 지난 1996년 1만315대로 처음 1만대 판매를 달성한 이후, 지난해엔 1만6119대를 팔았고, 올해엔 2만대 이상의 판매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라크전쟁이나 북핵 문제 등 대내외적 상황이 좋지 않고 장기 불황에 대한 불안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련의 문제들이 잠잠해지면 다시 판매에 불이 붙으리란 것이 업계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국내에서 수입차 판매가 시작된 것은 16년 전.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뀐 셈이다. 더구나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가 몰려오는 요즘이고 보면 변화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
사과 궤짝에 담긴 1억원
1987년 1월, 정부는 2000cc 이상 대형차와 1000cc 이하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했다. 이듬해 4월에는 배기량 규제를 풀어 완전 개방했다. 당시 수입차에 대한 인식은 이제 갓 성장기로 들어선 국내 자동차산업을 위축시키고 외화낭비, 과소비와 사치풍조를 불러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판매실적도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 첫해 수입차 판매를 시작한 업체는 한성자동차(벤츠), 효성물산(아우디/폴크스바겐), 한진(볼보), 코오롱상사(BMW) 등이었고 판매실적은 벤츠 10대가 전부였다. 또 따로 판매사 없이 수입업체가 직접 차를 팔았으며 영업사원은 업계를 통틀어 4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현재는 고진모터임포트(아우디/폴크스바겐)와 한성자동차(포르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체들이 한국 법인을 세웠으며 70여 개의 판매사가 운영되고 있다. 전체 영업사원 수도 초기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1000여 명 수준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볼보가 업계를 주도했으나 중반에 접어들며 벤츠, 포드, 사브가 강세를 보였고 4년 전부터는 BMW로 주도하는 형세로 바뀌었다. 고객층이나 영업방법 역시 변천을 거듭해왔다.
시장규모가 작았던 초기의 주 수요층은 기업체 회장이나 사장, 재일 교포, 연예인 등으로 아주 제한적이었다. 이들은 노출을 꺼려 영업사원들이 열심히 차를 팔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대기업 회장의 경우 전시장을 방문해 차를 사는 게 아니라 영업사원을 직접 회사로 불러 각 차종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영업사원에 대한 대접도 VIP 수준이었다. 회사 정문에 도착하면 비서실장이 영접(?)을 나올 정도였다 한다.
또 고객이 차를 인도하는 영업사원에게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시 벤츠 판매 영업사원이던 K씨는 “과거에는 구매자들이 자신의 귀중한 차를 갖다주는 영업사원에게 AS 등 계속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용돈을 주거나 선물을 줬다”며 “나도 최고 100만원까지 돈을 받은 적이 있고 한번은 십전대보탕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한 때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공기업 관련회사에 있거나 남의 이목이 두렵고 세무조사가 걱정되는 사람들은 수입차를 사지 못했다. 또 지금처럼 할부제도가 없어 차량 대금을 전액 한꺼번에 내야 했다. 수표번호 조회로 본인의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시 소비자들은 1억원 이상 되는 차량 대금을 만원짜리 현찰로 지불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쇼핑백이나 사과 궤짝 같은 데 넣어온 돈을 세는 것도 일이었다.
요즘에는 과거보다 수요층이 넓어졌다. 3000cc 이상 국산 대형차 소유자,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중소규모의 자영업자 등이 구매대상자다. 세무조사나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수그러들고 소비자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이로 인해 고액 연봉을 받는 영업사원이 탄생하는가 하면, 소비자 중에는 특정 브랜드 마니아까지 생겨나고 있다. 당연히 영업활동 또한 치열해졌다. 영업사원들은 불특정 수요층에게 DM발송, 전화방문, 시승차 운영 및 크고 작은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통해 가망고객을 발굴, 차를 판다. 가망고객들의 소비심리도 합리적으로 변해, 여러 전시장을 돌며 가격, 성능, 옵션 등을 비교해 차를 사므로 영업사원들의 판촉전은 점점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