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호박도 보급 나선 무예인 김인만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4-28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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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전통무예로 널리 알려진 당랑권(螳螂拳)이 동이족(東夷族)의 무예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있다.
    • 한국에서 중국으로 전파된 우리 고유 무예가 청나라를 통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한족(漢族)의 무예로 잘못 알려졌다는 것.
    • 당랑권을 ‘호박도(虎搏道)’라 개칭하고 보급에 적극 나선 무예인 김인만씨를 만났다.
    “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호박도 동작을 보여주는 김인만 관장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한 호박도 도장. 단아한 공간 가득 차 향기가 그윽하다. 이 도장의 김인만(金仁萬·53) 관장은 마치 사자와 같은 풍모를 지녀 누구라도 한눈에 무도인임을 알아챌 수 있을 듯하다. “수박도라는 이름은 귀에 익은데, 호박도라는 이름은 생경하다”고 말을 꺼내자 김관장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2000년에 개칭한 이름이기 때문이죠. 수박은 고구려의 전통무예인 수박희(手搏戱)를 뜻하며, 이는 우리 민족 무예의 원류로 추정됩니다. 수박과 맥을 같이하는 실전 무술 당랑권(호박도)은 고조선에서 시작돼 고구려-발해-요-금-청나라로 전해진 북방민족의 무술입니다. 불행히도 이 북파(北派) 권법은 조선조 500년과 근세 100년을 거치면서 국내로는 전수되지 못했어요. 만주족 국가인 청에서 꽃을 피운 뒤 중국 공산화를 계기로 당랑권의 몇몇 핵심 인사들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다시 싹을 틔웠습니다. 그 본류인 ‘태극매화당랑권’이 호박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죠.”

    -태권도나 태껸 등도 수박도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는데요.

    “고구려의 수박희는 손을 중심으로 하는 무예인 데 반해 태껸은 발을 쓰는 게 기본입니다. 동이족의 무예에는 원래 뛰거나 발로 차는 게 없어요. 태껸은 무예라기보다는 민중들의 놀이에 가깝습니다. 또한 태권도는 전통적인 ‘3박자’ 무예가 아닙니다. 이에 비해 당랑권은 17세기 청왕조 때 북파권법이 집대성되어 권보(拳譜)가 전해내려오는 몇 안 되는 무예죠. 만주족의 당랑권이 수박희의 맥을 이어온 겁니다.”

    -그렇다면 당랑권이 우리 민족 고유의 무예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당랑권은 산둥(山東)성 일대와 만주족 귀족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전해왔습니다. 청나라는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나라 아닙니까. 청나라는 우리와 형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나라의 역사는 곧 우리 동이족의 역사예요. 이런 해석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당랑권이 중국인들의 무술이 아니라 18개 북방무예가 총집결된 정통 동이족 무예라는 사실은 수긍할 것입니다. 소림권법으로 잘 알려진 남파권법과는 체질적으로 달라요.”

    호랑이 움직임 응용

    -북파권법의 특징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먼저 동이족의 신체적 특성에 맞도록 고안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상체보다는 다리와 허리의 힘이 강해요. 호박은 허리와 하체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또한 단순하게 가격하고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힘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합니다. 그러려면 고도로 정교한 손 기술과 두뇌가 필요하죠. 북파권법은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선(禪)의 호흡법을 활용하기에 근육 단련보다 내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3박자 무예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파권법의 대표적 문파인 소림권법은 기술 단련법이나 동작이 일본의 가라테처럼 딱딱하게 보이는데, 그래서 ‘강권(强拳)’이라고 하죠.”

    “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호박도 동작을 보여주는 김인만 관장

    -호박도는 어떻게 전파됐습니까.

    “호박문(虎搏門)의 스승들이 전하는 호박의 시조는 왕랑(王郞) 선사이고, 저의 직계 스승은 송계처사(松鷄處士) 한상열 선생입니다.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송계처사는 중국 공산화 이후 산둥성에서 건너와 부산에 기거한 화교 강경방(姜庚方) 선생으로부터 무예를 전수받았죠. 송계처사는 강선생과 수십년을 함께 생활하며 무예를 익혔는데, 제가 호박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87년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무예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마흔이 다 된 나이에 호박권을 접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지금껏 당랑권으로 알려진 무예를 호박도라고 하니 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직후 대규모 무예대회를 열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였던 만큼 한족 무예인들과 만주족 무예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벌였는데, 산둥성 출신인 이병소라는 청나라 무사가 각 문파 고수들을 모조리 제압하는 대이변이 벌어졌어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중국인들이 그의 무술이 사마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낮춰 부른 데서 당랑권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권보에 나와 있듯이 사마귀가 아니라 호랑이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동이족의 전통무예죠. 그래서 호박(虎搏)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호박도와 다른 무예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든다면.

    “호박무술은 우리 민족이 동물의 왕이라 칭송해온 호랑이의 공격과 방어 동작을 모방해 고안한 무술입니다. 즉 하체를 대지에 깔면서 상체를 세운 상태로 허리의 힘과 손바닥으로 상대를 얽어채거나 가격하죠.

    상대를 굴복시키는 기술을 무술이라고 한다면 호박도는 이제까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어떤 무술보다 뛰어납니다. 원시시대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생태계의 생존논리 속에서 살아남은 기술이거든요. 이런 무술 덕에 북방민족인 동이족이 세상을 호령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겁니다. 또한 자연의 원리를 기본 이념으로 삼고 이를 인체를 통해 구현하므로 아름답고 과학적이기도 합니다.”

    부드럽되 실전에 강한 무술

    이 대목에서 김관장은 무예 시범을 보여줬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제대로 들어간 움직임으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 동작은 ‘번신배산수(?身?山手)’라는 동작입니다. 잉어가 물 속에서 노닐 때 힘차게 몸을 뒤척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몸을 틀면서 비탈진 바위산에 자라는 풀뿌리를 힘차게 낚아채듯 팔목을 움켜잡는 것이죠.”

    -부드러운데도 대단히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태권도의 움직임은 일직선에 가깝지만, 호박도의 동작은 곡선을 그리기에 부드러워 보이죠. 세 수, 즉 3박자에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물리치는 것으로, 인간의 신체와 심리상태를 꿰뚫는 지극히 과학적인 무예입니다. ‘죽은 무술’이 아닌, 살아 있는 무예죠. 무술을 배운다고 해서 모두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호박도는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용 무술입니다.”

    김관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전북지역 명문고인 전주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당랑권을 접하고 깊이 빠져들었다. 청년 시절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고 자질도 보였지만, 직업적으로는 고려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당랑권과의 만남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1992년 스승 송계처사와 함께 대한당랑권협회를 창설했고, 2000년에 이를 한국호박도협회로 개칭했다. 한학을 공부한 덕분에 그는 한문으로 전수되어온 호박도를 한글화하는 작업도 병행할 수 있었다. 동이족 무예의 역사와 호박도의 수련법을 담은 책 ‘동이족 무예 호박도’를 펴냈고, 호박도 홈페이지(www.hobakdo.com)도 개설했다.

    “무예란 게 그렇습니다. 한번 빠져들면 끝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 헤어나기 어려워요. 저 또한 공연히 고난스런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호박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맥이 끊어질지도 몰라요. 이것이 중국의 ‘사마귀 권법’이 아니라 동이족의 ‘호랑이 무예’라는 사실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전해주고 싶습니다. 제 남은 생은 호박도의 실체를 알리는 일에 매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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