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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군단의 ‘담임선생님’ 이백천의 음악인생 下

이연실에서 전인권까지… 노래를 위해 삶을 벗다

이연실에서 전인권까지… 노래를 위해 삶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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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청담스님처럼 요청을 받아 젊은이들 앞에 섰을 때,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막 열을 올리려는데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간사가 달리듯 돌아와 숨찬 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청담스님은 “오늘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적이 일찍이 없었다”며 “젊은이들과 더 어울리다 가면 안 되겠느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을 시종스님이 겨우겨우 차로 모셨다고 했다. 마지막 떠나는 차 속에서도 “꼭 잊지 말고 또 불러야 해” 하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청개구리집. 1970년대 청년문화의 주역인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투코리안스, 라나에로스포, 방의경, 최안순 등을 배출한 젊은이의 안방. 누구도 허세를 부리지 않았고 체면 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서로를 믿었기에 서로에게 관대할 수 있었던 명동 한복판의 청개구리집. 그 날 어쩌면 청담스님도 그 분위기가 좋아 속으로 스님 나름의 가락을 뽑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좌절된 ‘학원 십자군’

내가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대학 동기이자 TBC의 상무였던 김규는 이미 회사를 떠나 퇴계로에 ‘선진문화’라는 광고기획사를 차리고 있었다. 동아제약 강신호 사장, 후라이보이 곽규석, 작곡가 길옥윤, 화가 박영일 씨 등이 주주였다. 방을 하나 그냥 내주면서 무엇이든 하라기에 통기타 1세대들, 그러니까 쎄시봉과 청개구리집 멤버들에게 알려 찾아오게 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코코브라더스의 박상규 장영기, 투코리안스의 김도향 손창철, 김민기 임문일 방의경 등.



누가 먼저 얘기를 꺼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국대학 순회공연을 기획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캠퍼스 크루세이더스(학원 십자군)’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보니 그럴듯했다. 스폰서도 구해야 하고 사회 저명인사의 격려글도 받아야 했다. 네 분을 미리 정해 찾아 나섰다. 누구보다 먼저 조계종 총무원장실로 청담스님을 찾았다. 한자로 여섯 자를 써주었다.

‘화랑혼(花郞魂) 풍류도(風流道)’

“왜 화랑도가 아니고 화랑혼이냐”고 물었다.

“꽃 지듯 젊은 목숨 아낌없이 바치는 것은 ‘도’가 아니고 ‘혼’이라야 맞지. 초개같이 생명 버릴 마음이 서 있고, 그리고 풍류를 아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풍류를 즐길 줄 알아. 절뚝발이 가난뱅이도 지게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갈 때 혼자서 흥얼흥얼 풍월을 읊으며 스스로 즐길 줄 알아. 즐기는 것은 ‘도’야. 젊은이들이 혼을 알고 도를 즐긴다면 그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나.”

TBC 때부터 얘기 손님으로 종종 모셨던 중앙중학 동창 오병열군의 아버님, 언론계의 대선배, 동서종교철학을 비교 연구하고 강의하던 석천 오종식 선생을 프레스센터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한자로 여덟 자였다.

‘師心 使氣(사심사기) 怡神 養性(이신 양성)’

“자기 마음이 곧 스승이야. 자기마음보다 좋은 스승은 이 세상에 없어. 기를 쓰라고 해. 우주의 기운은 아무리 써도 줄지 않아. 그 기가 다 제것인데 부러울 게 무엇이겠어. 신에게 몽땅 맡기고 의지해. ‘소원하는 모든 것 이루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미리 감사하는 거야. 행여 ‘이루어주시면 고맙겠나이다’ 같은 조건부 기도는 하지 마. 그런 기도 안 받아주셔. 자신이 곧 스승이고, 우주의 기운이 다 내 것이며, 하늘이 내편인데, 그럴 때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야겠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타의 성(性)을 가꾸고 키워내야 하는 것 아니겠어.” 오선생의 설명이었다.

이어 김수환 추기경을 찾았다. 김추기경은 ‘맑은 마음 밝은 사회’라는 글을 한글로 써주었다. 음성이 곱고 밝았다. 그러면서도 쓴 것을 다시 읽을 때, 어딘지 모르게 찌르는 듯한 어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해군 군악대 시절 교관인 이교숙 선생과 이대 무용과 육완순 교수였다. 이교숙 선생은 나의 주선으로 ‘동키클럽’이라는 작곡 클래스를 열어, 신중현 씨를 비롯 여러 대중음악 작곡가들에게 현대 화성악과 작곡법을 지도한 사람이다. 그 제자 중 민들레악단 출신의 세 사람, 그러니까 김형찬 맹원식 이덕재가 3년 연속 문화공보부 장관이 주는 음악상을 탔다. 김도향과 최희준, 펄씨스터스의 언니로 광고음악을 하던 김복순씨도 한때 ‘동키클럽’ 멤버였다. 이교숙 선생은 ‘축발전(祝發展)’이라는 세 글자를 써주었다.

마지막으로 육완순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육교수는 이대 무용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무대에 올려 장안의 화제를 모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캠퍼스 크루세이더스 발족에 뺄 수 없는 것이 젊은이들의 신체적 동작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에서 그를 지목한 것이었다.

그러나 육교수는 “나 그런 것 관심 없어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대학교수가 젊은 ‘딴따라’와 어울리는 것은 당시로선 금기였다. 천재냐 광기냐. 장발에 어쩌면 마약에 젖어 있을 수도 있는 일부 젊은이들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글은 다 받았으니 다음에 할 일은 스폰서 구하기였다. ‘코카콜라’ 본사를 지목했다. 거기서는 광고대행업체에 알아보라 했다. 전용버스와 운전기사, 기본적 음향장비에 야간공연에 대비한 조명기구만 있으면 우리는 전국 대학을 누비며 대학 내 ‘스타’들과 함께, 식물적(植物的)이 아닌 생동하는 젊음의 축제를 열 심산이었다. 대행업체의 대답은 “내년에나 가서 보자”였다. 결국 야심 찬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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