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하의 도시 쑤저우엔 곳곳에 이런 운하가 흐르는데, 시민들은 이 물을 생활용수로도 이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정원이 권력자나 돈 많은 부자가 조영한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수양을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모두 인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쑤저우에는 화려한 궁전도 없다.
정원이란 자연 경관의 축소판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산림의 정취를 느끼고, 몸은 설령 번잡스런 도심에 있다 해도 숲과 샘물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영한 공간이다. 쑤저우에 이런 정원이 여럿 있는 것은 물론 물이 많아서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심미안과 상상력, 산수를 즐기려는 마음, 그리고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원엔 병풍이 펼쳐지고
호텔에 짐을 풀고는 가까운 유원을 먼저 찾았다. 잎이 무성한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 6월의 대낮이건만 한참을 걸었는데도 땀이 나지 않았다.
유원은 글자 그대로 그저 ‘머무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입구에 ‘어슬렁거리며 노니는 곳’이란 뜻으로 ‘Lingering Garden’이라 번역해놓았다. 뜻밖이었다. 하지만 어슬렁거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를 곧 깨달았다. 요즘 자주 입에 올리곤 하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중국 정원의 정신적 뿌리는 불교나 유교가 아니라 도교라 봐야 할 것 같았다.
유원은 오래 거닐 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그 한가운데 자리한 연못을 중심으로 괴석과 회랑, 정자, 누각, 수목, 가산(假山), 석교 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아기자기한 풍경을 마치 병풍처럼 보여줘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서야 ‘대부분의 중국 정원은 병풍의 그림을 한 폭 한 폭 감상하듯이 정원을 돌아다니며 잇따라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폐쇄된 회랑을 지나면 갑자기 확 트인 전망이나 시계와 마주치게 해 경이로움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느끼도록 한다’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구절이 떠올랐다.
중국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개인이 계곡을 낀 산 하나를 통째로 가질 수는 없다. 한정된 공간 속에 자연의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한다면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병풍의 개념은 그래서 동원됐다. 아울러 ‘방 안’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 둘레를 높은 토담이나 수목으로 에워싸 외부와 차단했다.
밝음과 어둠, 직선과 곡선, 높고 낮음 등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을 교묘하게 배치해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서 나는 몸통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범상치 않은 형상의 괴석들에 한동안 눈길을 보냈다. 모두 쑤저우 근교의 타이후(太湖)에서 캐낸 것이라는데, 회색을 띠고 있었다. 쑤저우뿐 아니라 중국의 이름난 정원들은 어김없이 타이후석(石)으로 단장돼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괴석이라면 타이후의 것이 최고라는 사실과 함께.
가만히 생각해보니 타이후석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기묘한 형태를 하고 있는 데다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고 굴곡이 심한 것이 병풍의 장치를 고안해낸 그 정신과 닿아 있는 듯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시각에 찾은 졸정원은 중국 정원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유원에서 중국 정원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얼마간 눈으로 익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까무러칠 뻔했다.
그런데도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명나라의 왕헌신은 고향 쑤저우에 은거하고자 당나라 시인 육구몽의 사저를 사들여 별장으로 고치면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며 ‘졸정원(拙政園·The Humble Administrator’s Garden)’이라 이름붙였다. 겸손도 지나치면 오만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한동안 그를 어떻게 봐야 할지 어리둥절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겸손 쪽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자연의 일부가 되려 한 그를 도저히 오만하다고 할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