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3-04-28 19: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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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을 수 없을 때 과일이 넘쳐나고 그걸 좋다고 사서 먹고 살았으니 철모르고 산 셈이다. 내 몸 움직여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철없음을 실감한다.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모내기철이 되면 인사가 모두 모내기 이야기다.

    농사를 하면서 농사법이 자연스레 바뀐다. 농약과 비료 안 준다고 유기농업이라 부르지만 그 속은 천 갈래 만 갈래다. 첫해는 남들 하듯 하나하나 따라가며 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쓰고 농사해도 제대로 될까. 마을 어른들이 수없이 걱정하시기에 비료와 농약 안 쓰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되었다. 씨를 구해 하나하나 심고, 자라는 모양새를 보며 가꾸고 거두는 그 일만으로도 신기하고 신기했다.

    계곡 옆에 작은 밭이 있다. 가을에 마늘을 심었다. 마을 어른들이 우리 동네는 마늘이 잘 안 된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겨울 이웃마을에 놀러갔다가 솔가리(소나무 낙엽)가 잔잔히 깔린 밭을 보았다. 저게 뭐냐고 하니 마늘밭이란다. 솔가리를 덮은 밭이 포근해 보였다.

    풀과 더불어

    겨울에 해 따스한 날 산에 올랐다. 땔감이라도 해야지 하고. 하루 종일 식구들과 복닥대다가 혼자 산에 오르니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뒷산 길도 익히고, 내려오는 길에 잔가지 한 단 해 내려오고, 그러다 솔가리를 긁어모아 마늘밭에 덮어주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제법 긁어모았다 싶었는데 밭에 뿌리니 보자기 덮을 만큼 된다. 그래도 다음날 또 한 포대. 며칠 뒤 다시 한 포대. 산은 나를 활기차게 한다. 온몸을 확확 휘두르며 움직인다. 그 맛에, 뭔가를 모으는 맛에 재미나게 했다.

    마늘밭은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밭이다. 그래 책에서 본 대로, 밭을 갈지 않고 봄에도 검불을 해다 덮고, 가을에도 해다 덮고, 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덮어주었다. 검불 아래 지렁이가 살아나고 지렁이 덕에 거름을 따로 넣지 않아도 땅이 검어지면서 비단같이 보드라워졌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지렁이 판에 두더지가 안 나타날 수 있나. 두더지가 땅속을 차지하고 말았다. 온 밭 속이 두더지 굴이라 발을 디디면 푹푹 들어갈 지경이 되었다. 마늘이 잘 안 된 게 두더지 때문인 것 같았다. 두더지가 그리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뿌리가 자랄 수 있겠나 싶으면서.

    한마디로 지렁이는 좋은데 두더지는 싫었다. 두더지를 없애고 싶었다. 그러던 참에 그 밭에 감자를 캐는데 감자 줄기 밑동을 잡고 쭈욱 뽑고 나니 두더지 굴을 따라 손을 넣어 감자를 꺼내면 됐다. 호미조차 별 쓸모가 없었다. 그 뒤로 두더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더지는 적이 아니라 우방이 됐다.

    농사는 풀을 이겨야 한다. 풀에 치이면 웬만한 곡식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오죽하면 ‘풀과의 전쟁’이라 할까. 할머니들은 ‘다른 거하고는 친해져도 어째 풀하고는 친해질 수 없냐’며 징글징글해하신다. ‘풀약’이라는 다이옥신 제초제를 뿌려 풀을 홀딱 데쳐버린다.

    나 또한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봄맞이꽃이라도 어린 싹 가까이 있으면 뽑아낸다. 이른봄에 맛있다고 먹던 벌금자리, 고수덩이, 이런 봄풀도 뽑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늘 김을 맨다. 몸도 고단하지만 마음도 편하지 않지. 사람이 자기 좋자고 풀 목숨을 빼앗은 셈인데….

    그러면서도 다시 김을 맨다. 작물이 자라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김을 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검불을 해다 덮어 풀이 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풀은 자란다. 땅이 살아나면 풀도 멋지게 자란다. 위풍당당하게. 그걸 손으로 잡아 뽑으면 땅이 부드러우니 뿌리까지 빠진다. 뽑힌 풀은 그 자리에 놓는다. 다시 땅으로 돌아가거라.

    바꿔 생각하면 풀은 농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풀이 자라 거름이 돼준다. 풀거름(녹비)이다. 호밀이나 자운영을 뿌린 뒤 갈아엎는 것도 이런 이치다. 우리도 전에는 이렇게 하다가 이제는 밭을 갈지 않고 자연스레 풀이 자라게 하고 그걸 손으로 맨다.

    그러니 밭에 가면 늘 나물거리가 있다. 밭에서 손으로 김을 매고 그 가운데 먹을 나물을 고르고, 닭과 오리가 좋아하는 풀도 챙긴다. 풀이 자라는 걸 보며 여기가 얼마나 거름진지, 지금이 어느 땐지 알 수 있다. 풀을 없애는 게 아니라 풀과 더불어 살면서 풀을 알아가는 만큼 자연에서 사는 지혜도 살아나리라.

    산에 오르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봄에 산나물 하러 다니는 재미가 좋다. 혼자서 다니는 게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물 하러 가는 곳을 피해 발 닿는 대로 접어든다.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긴장감도 좋다. 우리 집 둘레 산은 리기다소나무나 낙엽송을 조림한 사유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우리 소나무인 육송이나 참나무 숲을 만나면 산 기운이 바뀌는 걸 느낀다. 천천히 걸으며 그 기운을 한껏 들이마신다.

    취를 꺾어 모으고. 산달래도 눈에 띄고. 다래덩굴을 만나면 다래순도 꺾고 두어 시간 다니다 돌아온다. 이렇게 산을 쏘다니다 멍하니 앞산을 보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내 안에 내 할머니, 그 할머니… 그 할머니 때부터 쌓은 지혜가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걸 보면 왠지 움츠러들고. 어떤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 한 잎 넣고 싶어지고. 그게 무언지 몰라도 왠지 안에서 나오는 반응. 이걸 보면 내 안에 다 들어 있는데 그 길을 여는 방법을 까먹은 게 아닐까?

    학교 다니며 책에 나온 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배우고 익혔다. 어른이 돼서도 무얼 알고자 하면 책을 찾고 정보를 찾고. 남한테서, 나보다 더 전문가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과연 그런가. 이러느라 내 속에 들어있는 인류의 지혜를 묻고 살아온 건 아닐까?

    사십이 되도록 늘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살아왔다. 내가 진정 누군지 스스로 찾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서 진짜 내가 누군지, 내가 진정 하고픈 일이 무언지 더욱 궁금해졌다. 더 늦기 전에 그 길로 접어들어야지, 초조했지만 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자연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 조금씩 자신을 찾는 길에 들어섰나 보다. 혼자 호미질 낫질을 해도 머릿속으로는 늘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 떠오르곤 한다. 그 시간이 내 마음에 엉킨 사연들을 베어내는 시간이 고, 내 마음에 새싹을 심는 시간이었나 보다.

    그 덕에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했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떨어져나온 듯 혼란스러웠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고, 그러다 제 마음에서 우러나 공부하는 걸 본다. 아이들은 직관으로 알게 된 듯하다. 자연만큼 좋은 친구이자 스승은 없다는 걸. 요즘 세상에는 더욱더.

    어린이날이 아니라 고추 모 내는 날

    5월은 입하(立夏)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여름 기운이 일어서는 철이다. 늦서리도 맥을 못 추고 사라지니 비닐집에서 가꾸던 모종들이 모두 밭으로 나온다. 이곳에 와서 처음 맞는 어린이날, 딸애 친구들과 함께 놀고파서 초대를 했다. 한데 아무도 안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은 어느 집이고 고추 모를 내야 하기에 아이들도 모두 거들어야 하는 날이었던 것. 5월5일은 어린이날이 아니라 고추 모 내는 날이다. 고추 모만 있나. 가지 모, 토마토 모, 오이 모, 호박 모… 부지런히 옮겨 붙여야 한다. 그러고 나면 땅콩, 동부, 유두콩 싹이 안 난 곳에 따로 마련해둔 모를 옮겨 붙여 빈자리를 채워야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처음에는 뻐∼꾹, 뻐∼꾹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다 뻐뻐꾹 하고 빨라진다. 그 소리만큼 일손도 빨라져야 농사일을 할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뻐꾸기 울음이 시작될 즈음은 콩 심기 좋은 때다. 날이 한여름처럼 더워지고 비가 오면 모내기를 한다.

    우리 농사는 2000평쯤 된다. 그 가운데 논이 네 다랑이, 모두 500평이다.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들여 윗논부터 계단처럼 물을 댄다. 그래 모내기를 하려면 논둑을 깎고 논둑을 다시 발라야 한다. 논둑에 구멍이 있으면 물이 새나가 논이 마르기 때문이다.

    논둑을 삽으로 비스듬히 깎으면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난다. 논에 물을 대고 논흙을 곤죽으로 만든 뒤 그걸로 논둑을 바른다. 농사하기 전에는 논둑을 깎고 바르는 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딸애 말이, “전에 논둑을 깎은 걸 보고 저러다 논둑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어. 그때는 논을 넓히려고 논둑을 깎는 줄 알았거든.”

    이 일이 만만치 않다. 솜씨 좋은 일꾼이 바른 논둑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산을 따라 굽은 논둑이 가지런히 발라져 있는 모습. 내가 막상 해보면 생각처럼 안 발라진다. 일이 서투르니 금방 허리가 아파지고. 그래도 논둑 깎을 때가 되면 삽을 들고 논에 나가 조금이라도 해본다. 자꾸 해보면 몸에 익는 날이 오겠지.

    올해는 음력과 양력이 나란히 간다. 음력 보름이 5월15일이다. 열매작물은 달이 차오를 때 심으려고 모내기도 앞당겨 잡았다. 그러니 올해는 바쁘겠다. 모내기할 날이 돌아오면 먼저 모판에 모를 찐다. 논바닥에서 자라는 모를 쪄(뽑아) 한 손에 잡힐 만큼씩 묶어 모춤을 만든다. 그리고 모춤을 모내기하기 좋게 논에 골고루 헤쳐놓는다. 판자로 배를 만들어 거기에 모춤을 싣고 논을 오가며 골고루 모춤을 놓는다. 작년에 이 일을 우리 아이들이 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맨발로 논에 들어와 배를 끌고 다니며 재잘거리며.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는 걸 늘 지켜보며 자란다. 자기들 맘에 드는 일거리가 눈에 띄면, “해 봐도 돼요?” 한다. 어른이 한 발짝 물러서며 아이가 해보도록 한다. 한두 번 해 보다 그만두기도 하고 뜻밖에도 끝장을 낼 때도 있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한테 끌리는 대로 하는 일은 신이 나지 않는가. 아이들은 놀이하듯 그렇게 일을 한다. 일이 제대로 되면 ‘나도 한몫을 했다’고 뿌듯해한다.

    시골서 자란 작은애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먹을 양식은 이렇게 농사해 먹는 줄 안다. 모내기를 처음에는 이웃들과 함께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잔뜩 긴장도 하고 여럿이 품앗이하는 재미도 느껴보고 싶고. 이웃들, 귀농학교 후배들…. 모내기를 참 거창하게 했다. 손님이 많으니 나는 밥 해대고 참 해대느라 정작 모내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남편도 손님 대접에 정신을 뺏기고 그 품을 갚느라 며칠이고 일하러 다녔다.

    그 다음에는 우리 둘이 해보기로 했다. 얼마나 걸릴까. 둘이서 모를 내는 데 이틀하고 반나절 만에 다 끝냈다. 허리가 아프면 어쩔까. 걱정과는 달리 거뜬하게 해냈다. 모내는 순간순간 고요히 일을 하면 모에서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내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심었다는 그 뿌듯함도 내게 힘을 준다.

    논에 모를 내놓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볼 때 얼마나 예쁜지. 한데 이웃 논과 견주면 다른 세계다. 마을 어른들은 비닐을 이용해 일찍 못자리를 하고 이앙 기계에 맞춰 모판에서 30일쯤 키운다. 기계는 줄을 맞춰 촘촘히, 그리고 한 곳에 일고여덟 포기씩 뭉텅뭉텅 심는다.

    모를 내고 나서 며칠 뒤 비료를 뿌려 논을 보면 벼 잎이 시퍼렇다. 우리는 못자리를 늦게 하고 모를 40일 가까이, 그러니까 모 한 포기 한 포기가 튼실할 때까지 기다려 모내기를 한다. 심을 때도 드문드문 심는다. 모 하나하나가 제 힘껏 자라라고. 모가 튼실하면 한 포기씩, 그리 튼실하지 못하면 두세 포기씩 심는다. 그러니 이때 마을 논을 보면 시퍼렇고 우리 논을 보면 논바닥이 들여다보인다.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인사가 모두 모내기 이야기다. 집집이 모두 모내기를 한다. 작은애가 어릴 때 이렇게 농사해 거둬 밥을 먹는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쌀농사를 지어?” 하고 서울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걱정을 했다. 아이는 누구나 논농사를 지어 밥 먹는 줄 알았나보다.

    보릿고개 소만

    보름이 지나 달이 이울기 시작하고 소만(小滿)이 다가온다. 이 산 저 산 뻐꾸기 울어대고 아카시아 필 때다. 아카시아 필 때 여기는 때죽나무꽃이 좋다. 때죽나무꽃은 하얗고 깨끗한 것이 아래를 보며 핀다. 그 단아한 모습이 예쁘고 꽃에 든 꿀도 좋다.

    해가 일찍 뜨고 낮에는 한여름 날씨다. 더운 기운으로 자라는 오이에 암꽃이 피어난다. 수수 모, 검은콩(서리태) 모를 본밭에 낸다. 모내기 뒷정리를 하고 오리를 논에 넣는다. 모내기 날 태어난 오리가 좋다. 오리가 어려 잘 돌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이고 만다.

    오리가 논에 들어오는 날부터 논농사는 사실 오리 돌보기로 바뀐다. 아침이면 오리 집 문을 열어주고 해거름엔 오리를 집에 넣고. 아침저녁으로 오리한테 문안 인사를 한다. 사람이 오리한테 정성을 들일수록 오리는 즐겁게 논농사를 대신한다. 누가 처음 생각을 해냈는지 벼와 오리의 조화가 신기하다.

    밭에 심은 작물들 뒷정리도 해야 한다. 이빨 빠지듯 빠진 곳은 새로 심는다. 밭을 갈지 않고 검불로 덮어 농사를 하니 자람새가 일정하지 않다. 또 비둘기와 까치가 어찌나 설쳐대는지 콩 싹과 옥수수 싹은 보이는 대로 죄다 뽑아먹는다. 때를 놓치면 안 되니 심기는 심어야 하고 그 넓은 밭에 새들을 어찌 막겠는가. 싹이 뾰족이 올라오면 새벽같이 쏙쏙 뽑아 뿌리 쪽에 달린 씨를 쪽 빼먹는다.

    작년에는 옥수수를 세 번 네 번 심어야 했다. 어느 해는 새벽부터 밤까지 남편과 내가 번갈아 밭을 지키기도 했다. 까치 울음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까치가 날면서 까악 하면 ‘여기도 먹잇감이다’ 외치는 기분이다. 나중엔 옥수수를 얼마나 많이 심었는지 늦옥수수를 잔뜩 거두었다. 올해는 좀더 지혜롭게 새를 피할 길을 찾아야 할 텐데….

    더운 기운에 후딱 자라는 참깨를 심는다. 깨는 금방 자라는 편인데 자기복제능력은 상당하다. 처음에 참깨 씨를 구했는데 한 움큼이다. 한데 그 넓은 밭에 다 심고도 남아 두어 번 보충을 하고도 남았다. 씨 하나가 수천 배 자기 복제를 한다. 참깨는 싹이 워낙 여려 싹이 날 때가 어렵다. 너무 가물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소나기가 오면 쓰러진다. 그래 두 번 세 번 심게 되니 해마다 참깨 심을 때면 종종거리게 된다.

    들나물에 이어 산나물이 쇠고, 사람이 심어 가꾸는 작물은 이제 자라날 때다. 밀 보리는 이삭을 맺기 시작하고 지난해 농사한 알곡은 벌써 바닥이 보인다. 쌀이 넉넉지 않다면 바로 이때가 보릿고개겠지. 보릿고개를 모르고 서울서 자란 나는 보릿고개가 이때라는 걸 지난해에야 알았다.

    장날 과일전에 과일이 풍성하다. 서울 살 때는 과일을 좋아해 늘 먹었다. 그 습관이 남아 있어 과일이 당긴다. 하지만 과일전을 눈 딱 감고 그냥 지나간다.

    먹을거리 가운데 과일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게 있을까? 남의 집 콩이 잘 여물면 덕담을 하며 지나가지만 남의 집 담 밖으로 나온 앵두는 한두 알 따먹지 않는가. 그런 과일이 가게에 넘쳐난다. ‘조기 재배’ 수박과 참외, ‘저온 저장’ 사과, 바다 건너온 바나나와 오렌지…. 5월이면 날이 더워지니 수박을 먹으면 시원해 좋겠지. 그렇지만 참아본다. 철이 들기 위해….

    5월은 여름 작물들이 자리잡고 자라기 시작할 때다.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 멀었다. 수박은 소만을 지나서 모종을 본밭에 옮긴다. 일찍 옮기면 추워 꼼짝도 못하고 목숨만 붙이고 있어 그렇다. 수박 모종은 본잎이 나와 덩굴이 막 뻗어가려는 정도다. 그것도 비닐 집에서 키워서 그런 거다. 이 수박이 자라 암꽃 피고 수박 열매를 맺어 빨갛게 익는 건 빨라도 초복이 지나서고, 중복 무렵이 돼야 한창이다. 그러니 수박은 한여름 땀을 충분히 흘리고 난 다음 먹는 과일이다. 토마토 역시 그렇다. 참외도 그렇고.

    과일나무는 4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5월까지 꽃을 피운다. 그러니 삼사월 봄은 자연에서 나는 과일이 없을 때다. 먹을 수 없을 때 과일이 넘쳐나고 그걸 좋다고 사서 먹고 살았으니 철모르고 산 셈이다. 내 몸 움직여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철없음을 실감한다.

    봄에 입맛이 없어 새콤한 과일을 찾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봄나물을 날마다 실컷 먹으니 입맛이 없는 날이 없고, 싱싱한 봄 푸성귀를 골고루 먹으니 밥상에 싱싱함이 가득하다. 아이들도 찔레 순 꺾어 먹고, 수영 잎 뜯어 씹으며 잘 자란다. 아이들과 딸기밭을 가꾸고. 과일나무에 오줌이라도 누어 주게 한다.



    5월 중순이 되면 딸기가 하나하나 익어가고, 뒤이어 올앵두가 활짝 익는다. 딸기가 익으면 아이들은 날마다 딸기밭에 가 엉덩이를 들고 딸기 잎 사이에서 빨간 딸기를 찾는다. 딸기를 따먹고 밭에서 일하는 우리한테 달려와 입에 넣어주고.

    앵두가 익으면 나무를 타가며 앵두를 따먹는다. 새콤하고 산뜻한 앵두. 바로 이 맛을 보려 이제껏 기다렸지. 나물은 어른이 부지런히 해다 아이들 주지만 딸기와 앵두는 아이들이 부지런히 해다 우리를 준다. 이렇게 앵두와 딸기로 입가심을 하노라면 어느새 6월이 다가오고, 뽕나무에 오디가 까맣게 익으면 그때부터 과일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농사하는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 화제가 ‘이 세상이 얼마나 철없이 돌아가나’로 이어졌다. 그 후배 말이, “그래서 제가요, (도시 사는 친구들한테) 유기농산물 찾기보다 제철을 찾으라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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