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마우리치오 폴리니 ‘베토벤 소나타’ 외

  • 글: 전원경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4-29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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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우리치오 폴리니 ‘베토벤 소나타’ 외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의 잇따른 등장으로 바랜 감이 있지만 마우리치오 폴리니라는 이름은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에게 하나의 신화다. 쇼팽 콩쿠르에 우승하고서도 한동안 공식 무대에 나타나지 않고 칩거하며 수련을 계속한 점이나, 괴팍하기로 소문난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미켈란젤리의 제자라는 점, 국제 무대에 데뷔한 후 엉뚱하게도 물리학 공부를 시작한 점 등 그를 둘러싼 일화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걸출한 테크닉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음악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를 손꼽을 때 폴리니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머리 페라이어 등과 함께 첫손에 드는 인물이다.

    그런 폴리니가 처음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집을 피아노의 구약성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라 부른다. 이토록 비중 있는 레퍼토리를 65세가 돼서야 녹음한 점이 의미심장하다. 칠순에 들어 비로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집을 녹음하며 “온 힘을 다해 연주했다”고 토로한 로스트로포비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 음반에 담긴 곡은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23번을 비롯해 22번, 24번, 27번 등 4곡. 폴리니는 이 음반을 시작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이어 쇼팽 녹턴 전곡을 녹음할 계획이라고 한다.

    폴리니 음악의 생명력은 터치에 있다. 그의 터치는 차가우면서도 빛이 나는 듯한, 명료함의 극치를 이루는 음색을 자랑한다. 때문에 약간 냉정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음반에서는 그러한 차가움 대신 힘과 감성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의 손끝에서 살아난 베토벤은 젊고 싱싱하다. 특히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떠올리며 작곡했다는 ‘열정’ 소나타 1악장의 연주는 마치 거대한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듣는 이를 압도한다.

    30대 시절에 이미 대가였던 이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끝없이 성장하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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