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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말기 유학사 ‘생산적’으로 읽는 지도

‘조선후기 유림의 사상과 활동’

  • 글: 이봉규 인하대 교수·한국철학 lbkinha@inha.ac.kr

조선말기 유학사 ‘생산적’으로 읽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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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치명 학파의 척사 관념은 유치명의 다음 세대에 이르러 서원훼철반대와 복설운동을 통해 구체화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돈우 등에 의해 개인적으로 개진되는 형태였다고 본다. 또 1880년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퍼지면서 척사의식은 반외세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바뀌고, 1895년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격이 변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1881년 영남만인소의 전개과정을 자세히 재구성하면서, 초기엔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정치투쟁적 성격을 가졌던 것이 반외세의 척사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고 있음을 관찰해내는데, 승정원에 올리기 전 ‘영남만인소’의 초본 내용을 비롯해 학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을 통해 매우 구체적인 정보들을 제시하고 있다.

위정척사운동을 반제민족운동의 연속선에서 해석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 18∼19세기 유림 활동의 구체적 실상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시기 유림의 활동을 시대에 뒤처진 비현실적 퇴행으로 읽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적이고 당파적인 활동이 반외세 민족운동으로 변화해가는 흐름을 실증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위정척사운동을 반제민족운동의 연속선에서 해석하는 독법에 힘을 실어준다.

그런 점에서 본 저서는 지역적으로 복잡한 사정들 속에 전개된 조선말기 유학사를 생산적으로 읽는 하나의 지도로서 관련 전공자나 일반 독자에게 값진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상사 연구에서 늘상 쟁점이 되는 한 가지 문제는 사상노선을 정치 등 여타 활동과 정합적으로 연계하여 해석해내는 문제다.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견해 차이를 토대로 호론계와 낙론계의 정치적 입장을 새롭게 해석하는 독법들이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본 저서에서도 호론계의 인물성이론은 인간과 금수,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분하는 춘추의리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과 맞물려 있고, 그를 통해 신분적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본다. 반면 낙론계의 인물성동론은 성리 개념의 해석에서 금수보다는 인간의 인륜을 밝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보편적(?) 해석에 머무르고 있어 호론계에 비하여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입장을 취하며, 그 때문에 청(淸)문화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갖고 탕평책을 수용하는 등 유연한 입장을 갖는다고 해석한다.

성리설-당파 연계한 정합적 해석 부족은 아쉬워

인물성동이론은 미발(未發) 상태의 심(心)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계된다. 논쟁이 구체화되는 것은 한원진과 이간 사이의 토론에서 비롯하지만, 이론상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성혼과 이이 사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송시열에 와서는 미발 개념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이 부분이 본 저서에서는 검토되지 않아 아쉽다.

송시열은 미발의 심체가 순선하며 성인과 범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 주희의 정론이라고 해석하여 이이의 입장을 정당화하는데, 이이-송시열로 이어지는 미발심체순선론은 곧 인물성론에서 동론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호론계에서 송시열을 자파로 정당화하는 것은 송시열 자신의 입장과 별개의 논법이다.

송시열은 이이가 당파에 대하여 조제보합론을 주장한 것을 비판하고, 군자소인론으로 대체하는데 이는 호론계의 주장과 연속된다. 즉 송시열은 이론적으로 낙론의 노선과 연계되지만 정치적 태도에서는 호론에 연속된다. 낙론계의 경우, 김창협 등 서울 주변에서 활동하고 해외의 지식에 비교적 쉽게 접근하였던, 애초에 송시열의 위세에 덜 압도되었던 그룹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 자세를 보이지만, 반면 조정에서 관리를 지냈더라도 노론의 당론에 충실하였던 이재(李縡) 등 친(親)송시열 그룹은 이론적으로 낙론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탕평책을 비판하는 등 매우 보수적 태도를 견지한다. 따라서 성리설에 대한 입장 차이와 여타의 활동을 당파와 연계하여 정합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좀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신동아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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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봉규 인하대 교수·한국철학 lbkinha@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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