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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언제나 진지했던 아버지의 식탁 강의

  • 글: 박근혜 국회의원

언제나 진지했던 아버지의 식탁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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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총탄에 돌아가신 것은 이후 나의 삶과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프랑스에 유학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데 아버지가 공항에 마중 나와 계셨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말할 수 없이 클 텐데, 딸을 생각해서 공항까지 손수 마중 나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아버지는 내가 프랑스로 유학 가 있을 때 청와대 뜨락에 핀 철쭉과 라일락·목련을 손수 사진 찍고 일일이 설명을 달아서 편지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나한테서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편지를 보시려고 몇 계단씩 뛰어서 2층으로 올라오곤 하셨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경황이 없으신 중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손수 편지에 써서 동생 편에 보내주신 분이다. 그런 아버지를 공항에서 만나뵈었을 때, 그 모습이 그렇게 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후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일을 함으로써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나의 정치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당시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나이였기에 감수성이 예민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숨돌릴 겨를도 없이 해야 했던 일들은 한창 흡수력이 빠른 젊은 나이의 나에게 살아있는 가르침을 주었다. 어머니의 빈자리 때문에 청와대가 쓸쓸하고 황량하게 보이지 않도록 채우기 위해서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침에 아버지가 식사하실 때에는 신문을 읽어드렸고, 각종 현안들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많이 했다. 차를 타고 국토를 둘러볼 때에는 지역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히 많이 했던 것은 역사와 안보, 우리 경제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식탁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식사 중에 늘 나라 얘기를 하셨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제, 나라 전체가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자연 나 역시 모든 관심사가 국익과 나라 걱정에 쏠리게 되었다.

그후 오랜 시간이 흘러 정치를 시작한 후 나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국익 최우선’이 아니라 정치인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사, 정치인이 속한 정당의 이익과 집권을 위해서 결정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정말 속상하고 한탄스러워 분노가 일었다.

도대체 정치를 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드느냐’ ‘저쪽 편드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냥 배지 달고 왔다갔다하면서 편안하게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평생 나라 걱정을 하시며 국익을 생각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불효일 것이다.

탁월했던 정리정돈 솜씨

아버지는 정리정돈을 잘하셨다. 의자에 앉아 계실 때도 자세를 흐트리는 일이 없이 늘 곧게 앉아 계셨다. 신문이나 잡지를 본 후에는 대충 놓지 않고 늘 반듯하게 접어서 놓곤 하셨다. 물건뿐만 아니라 생각을 정리·정돈하는 것도 습관처럼 하셨다. 아버지는 ‘나라 일을 하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 많은 일을 일일이 챙기실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생각과 주변을 평소에 정리·정돈해놓으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근검절약이 몸에 배서 청와대에서도 불필요한 전등은 모두 끄셨다. 더운 날씨는 부채로 이겼으며 종이를 아끼기 위해 이면지를 쓰도록 하셨다. 이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나는 학창시절 ‘나는 어떤 면을 고쳐야 하는가? 나의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를 노트에 적어두고 고칠 때까지 노력하곤 했다.

‘인생의 반(半)은 습관을 만드는 시기고, 나머지 반은 자기가 만든 습관에 따라서 사는 때’라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하나하나 좋은 습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자기를 바르게 하는 것의 시작이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지 좋은 습관을 배운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을 때이다. 어머니가 불의에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가장 부러워한 것은 평범한 삶이다. 언젠가 TV에서 한 터키 소녀가 ‘평생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미소 짓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소녀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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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근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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