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이 나온 직후 국무위원 전원회의를 소집한 고건 총리가 회의장을 나서면서 국무위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어깨가 무겁다”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한 고총리는 당장 그날 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등 사회 각계의 원로들을 만났고, 곧바로 주말인 11일과 12일 잇따라 국무위원 전원을 소집한 뒤 차질 없는 국정운영을 당부했다. 12일 회의는 10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을 걸러가면서 진행됐다.
고총리를 둘러싼 최대 관심사는, 과연 그가 행정전반을 관장하는 행정총리에서 재신임 정국을 책임지고 밀어부칠 정치총리의 역할까지 해낼 의지가 있는지,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해낼 역량을 갖췄는지에 모아졌다. 그 해답은 고총리가 살아온 행정가 인생 37년, 참여정부의 총리생활 7개월에 녹아들어 있다.
고총리의 집안에는 세 가지 가훈이 있다. 우리 집안사람들 술 실력이 세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 남의 돈 받지 말라, 누구누구의 사람이란 말을 듣지 말라가 그것이다. 이들 가훈은 행정가 고건의 오늘을 만드는 데 제 기능을 했고, 따라서 인간 고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술을 얼마나 잘 마시면 이런 가훈이 생겼을까. 고총리의 술 실력은 30대 전남지사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전해져왔다. 1970년대말 읍·면장 220여 명과 대작한 일은 그의 술 실력을 가늠케 하는 유명한 일화다. 이를 고 총리에게 직접 확인해 봤다.
“만 37세 때인 1975년에 전남지사로 취임했죠. 요즘은 코드를 맞춘다고 하지만, 그때는 주파수란 걸 맞춰야 했어요. 당시 전남지역 읍·면장들은 제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기선 FM으로 보내는데, AM을 켜고 있었으니까. (새마을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상황에서 그와 관련한) 2박3일간 수련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진로 소주를 곁들인 불고기 파티를 했어요. 젊은 도지사가 50, 60대 읍·면장에게 친해질 요량으로 차례로 술잔을 따랐지요. 한 10여 명 정도나 따랐을까. 한 분이 ‘그럴 수 있느냐(따르기만 하고, 술잔은 받지 않느냐)’며 술을 권하더군요. 그때부터 반배(返杯·술잔 돌려주기)가 시작됐습니다. 나머지 분들과 주거니 받거니를 시작한 거죠. 당시 전남지역에 읍·면이 230여 개 됐으니까 처음 10명을 뺀 220여 분과 대작한 것이지요. 물론 거의 시늉만 한 것이지만 꽤 술을 마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쨌건 다른 사람 신세 안 지고 내 발로 걸어나왔으니까.”
고총리의 술 실력은 튼튼한 위장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총리에게는 ‘헬리콥터 현장시찰의 달인’이란 별명도 있다. 고총리는 올 2월 취임 후 전남 고흥지역의 우주기지 시찰, 새만금 간척사업지역 시찰 등에 나설 때마다 헬기를 애용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한 측근은 “고총리를 수행하느라 헬기를 따라 탔다가 멀미를 해서 토하는 간부들이 여럿 있었다”고 귀띔한다.
역시 전남지사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 전남지역은 다도해 지역 섬의 생활고, 특히 식수해결이 큰 과제였다. 고총리는 헬기나 소형 프로펠러가 달린 일명 ‘잠자리 비행기’를 타고 도서지방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 시절 고총리는 신장결석을 앓고 있었다. 요즘처럼 레이저시술 기술이 없던 때여서 물이나 맥주를 마신 뒤 오줌으로 밀어(?)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 그런 상황에서도 고총리는 헬기 출장을 강행했다.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 결석은 조금씩 흘러내렸고, 결국엔 빠져나왔다. 주치의인 오내과 원장은 “헬기 물리치료로 해결한 전무후무한 사례”라며 감탄했다는 전언이다.
고총리의 신조 ‘知者利廉’
이런 사안은 고총리의 일처리 방식을 드러낸다. 현장을 꼭 방문하고, 현장에선 주마간산(走馬看山)격 점검이 되지 않도록 구석구석을 살피는 훈련을 쌓았다. 한 측근은 “섬마을을 방문할 때면 민가에 들러 꼭 부엌을 들어가봅니다. 솥뚜껑을 열어보고, 쌀뒤주를 살펴보는 겁니다. 제대로 먹고 살 것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