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 시카고 나이트클럽 압사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온 여성들이 구급차에서 산소호흡기를 물고 있다.
흔히 출구를 더 넓게, 그리고 더 많이 만들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문은 좁고, 문들 사이의 간격은 넓어야 안전한 대피가 가능하다.
최근 필리핀대학 물리학과의 캐사르 살로마 교수는 쥐를 이용해 재난시 사람들의 대피 행동을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제까지의 연구가 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존해온 반면 이번 연구는 실제로 살아 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살로마 교수는 한 쪽 방에 물을 채운 다음 30마리의 쥐를 집어넣었다. 그 방의 한 쪽 벽에는 물이 없는 방으로 통하는 출구를 내놓았다. 물에 빠진 쥐들은 사고를 피해 대피하는 사람들처럼 반대편 방으로 가기 위해 출구로 몰려들었다. 연구진은 출구를 빠져나간 쥐와 같은 수의 쥐를 다시 물이 든 방에 집어넣어 혼란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출구에 있었다. 살로마 교수는 이 문의 크기를 쥐 한 마리가 빠져나갈 정도의 넓이에서 두 마리, 세 마리가 동시에 나갈 수 있을 정도까지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또 문들 사이의 간격도 달리했다. 실험 결과 출구의 폭이 한 마리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일 때 가장 안전한 대피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경우 쥐들은 한 마리씩 줄을 지어 출구를 빠져나갔다. 반면 출구의 폭이 넓어지자 곧 줄이 흐트러지면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또 출구 자체의 폭은 한 마리가 빠져나갈 정도라도 다른 출구와의 간격이 너무 좁을 경우에도 혼란이 발생했다.
살로마 교수는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가 건물 설계에 반영돼 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이 뒤엉키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실험에 이용된 쥐가 너무 적다고 신빙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또 인간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