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귀족과 선비, 승부사와 개그맨 어우러진 개성만점 세계

  • 글: 최현호 한국어류 연구가 c113719@chol.com

    입력2003-10-28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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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속은 언제나 신비롭다. 한국의 수중세계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눈길은 수입 어종에만 쏠린다. 전문가조차 우리 연안의 토종 어류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조금만 눈 돌려보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버린 토종 어류가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얘깃거리를 만날 수 있다.
    • 한 재야 연구가가 들려주는 토종 해수어 이야기.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개인연구실 수조에서 사육중인 토종 해수어들을 살피는 최현호씨

    세상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각자 고유한 영역과 존재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힘없는 미물도 그 나름의 독특한 생태환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물의 생명과 문화에 무관심하다. 생활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니 무엇이 사라지든, 혹은 생겨나든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될까.

    다행히 요즘 사회 곳곳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어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연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중 앞에선 환경 보호를 역설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논어에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라 했다. 말로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제주 성산 앞바다에 사는 물고기 중 한 종이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 특별히 보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하지 못해 지금 청와대에서 일하는 모 인사에게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당시엔 환경운동가였음). 겨울을 넘기고 다음해 봄에 다시 가보니 그곳의 환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신의가 없는 사람이 설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한낱 미물이라지만 그놈들에게 호언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전문가조차 잘 모르는 토종 물고기

    자연을 보전하고 환경을 지키자는 데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데 갈수록 자연 속의 작은 생명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그것은 생명체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거나 알지만 귀찮게 여기기 때문이며, 우리 것은 가치 없거나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우연히 들른 지역에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이 있으면 그곳의 시장이나 도지사에게 “이 물고기는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 그것도 이곳에만 살고 있는 귀한 어종이니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관공서마다 있는 열대어 어항에 대해 그곳의 직원들에게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기르기 쉬운 물고기가 있으니 길러보라고 권한다. 열대어는 수입해야 하니 외화가 낭비되고, 온도를 맞춰줘야 해 전력도 많이 소모되니 결국은 혈세 낭비가 아니냐며 은근슬쩍 압력도 넣어본다.

    지난해 열린 월드컵 축제 때는 공항에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토종 물고기를 전시하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는데, 어항을 제작할 돈이 없어 못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왜 우리의 자연과 그 속의 수많은 생물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까? 우리 땅과 연안에 살고 있는 생물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이 살고 있는 숲과 대지와 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청정 바다라는 말도 곧 옛말이 될지도 모른다.

    요즘 많은 이들이 애완동물을 기른다. 애완동물이 이렇듯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신체적 접촉과 시각적 충족 때문이리라. 무릇 사람과 연관돼 있는 모든 것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따라서 늘 가까이 하면 징그러운 동물도 사랑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물속 생물도 사람들 눈앞에 있으면, 그래서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생물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을 갖게 되고 근본적인 대책에 귀를 귀울이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5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해양동물 전시회가 열렸다. 과학관과 해양동물연구소가 공동주관했는데, 전시할 해양동물이 모두 다 박제여서 살아 있는 동물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내게 왔다. 그래서 연구실에 있는 몇 종류의 물고기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관람객 중 대다수가 생물로 전시된 물고기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혹은 수입 어종이려니 여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안타까웠다. 우리 연안의 어종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반증이어서 반가운 가운데 우리 물고기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고기들은 수백년, 아니 수천 수만년을 살아왔는데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것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들의 불행이 곧 우리의 불행과 무관하지 않음을 모르는 것이다. 왜 모든 아름다운 것이 외국 것이라 생각하게 됐을까.

    물고기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딴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우리나라 바다에 이렇게 아름다운 생물이 있다는 것을 전문가라는 사람조차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왜 그럴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식용 어류만 연구해왔지 나머지 물고기나 기타 바다 생물에 대해선 거의 연구를 하지 않았다.

    식용대상이 아닌 물고기엔 연구비가 지급되지 않으므로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종이 사라져도 모르는 것이다. 해수어를 관상어로 수입해 기르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 중엔 우리 연안에 있는 어종도 있으며, 우리 연안의 특색에 맞게 토박이로 사는 아름다운 어종도 상당히 많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어종일수록 보편적으로 수심이 깊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이들이 오염으로 인해 사라진다면 그로 인한 연쇄반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나는 뭍의 오염이 바다로 흘러들어 토박이 생물뿐 아니라 난류를 타고 멀리 해외에서 우리 연안으로 놀러오는 물고기들이 사라지는 불행을 막으려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예전엔 없었지만 요즘 여러 대학에는 행동생태학이란 전문학과가 생겨났다. 물고기의 행동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고 할 만큼 그들의 행동은 다양하다. 애정을 갖고 이들을 대한다면 인간과 물고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더욱이 개인 연구실의 특성상 수백수천 종을 한꺼번에 사육할 수 없어 연구에 필요한 어종을 그때그때 채집해오는 형편이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많은 물고기의 생활사를 알리고 싶다. 어떤 물고기에 독이 있으며 어떤 물고기가 관상어로서 탁월해 수입대체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등도 조목조목 알리고 싶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짤막한 설명과 소수의 어종만 소개해야 해 안타깝다. 여기서는 학문적 용어는 지양하고 이해하기 편한 일반적 용어를 사용하겠다.

    [냉혹한 승부사, 앞동갈베도라치]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앞동갈베도라치

    먼저 앞동갈베도라치를 소개한다. 크기는 전장 8cm, 체고는 1cm 정도다. 주둥이 끝은 뾰족한 편이며 몸의 전체적 형태는 유선형이나 옆으로 측편돼 있다(납작한 모양). 등지느러미는 목 부분부터 시작해 꼬리지느러미까지 이른다. 가슴지느러미 한 쌍이 따로 분리돼 있고 배지느러미 역시 항문의 끝부분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이른다. 눈가에는 하얀색이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고 주둥이와 머리 전체에 검은 반점이 산재해 있다. 눈 뒤에서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까지 굵은 검정색 줄무늬가 몸을 한 바퀴씩 휘감는데 끝으로 갈수록 색이 연해지며 굵기도 가늘어진다. 항문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몸통과 지느러미는 노란색인데 얼핏 보면 허리 밑부분은 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듯하다.

    앞모습은 사나운데 뒤로 갈수록 연약한 여인네처럼 보이지만, 이놈에겐 강한 투지가 살아 꿈틀댄다. 이들의 생태는 자세히 연구된 바 없으므로 여기서는 행동생태학적으로만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앞동갈베도라치의 성격은 너그럽지 못하다. 체구에 비해 과격한 편이다. 동료들 중에서도 비슷한 체구의 수컷과는 피가 나도록 싸워 자칫 심한 상처 때문에 죽기도 한다. 물고기가 싸우는 것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물고 뜯는 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보통의 물고기들도 상대와 겨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협에 그친다. 싸움에서 패한 놈은 상대의 기에 눌려 꼬리를 옆으로 뒤틀거나 뒤도 바라보지 않고 냅다 도망가는 것이 통상적인 싸움 방식이다. 그러나 앞동갈베도라치는 상대의 한 곳을 물고 늘어진다.

    결국 도구를 이용해 싸움을 말려보지만 이들은 수조 속에 놓아둔 돌 뒤로 들어가 또다시 혈투를 벌인다. 어느 한 쪽이 항복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가 사경을 헤맬 때까지 싸운다. 이들은 적당한 것을 모른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의미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 것이리라.

    왜 이렇게 이해와 양보를 모를까. 누군가 이들에게 요즘의 세태를 알려주었을까. 물속 세상만이라도 어지럽지 않은 게 내 소망인데….

    아무튼 이렇게 악착같은 앞동갈베도라치가 사는 곳은 돌이 많은 얕은 곳이다. 돌틈 사이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 경우에 따라서는 돌의 움푹 팬 곳을 휴식처 삼아 달라붙어 지낸다. 돌에 납작 붙어 있을 때는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버틴다.

    앞동갈베도라치의 먹이는 작은 갑각류와 어류다. 수중의 곤충도 이들의 식탁에 오른다. 식사 때가 됐는데도 밥을 주지 않으면 밥 달라고 조르며 물의 중층에 떠서 살랑살랑 허리밑 몸을 흔드는데 그 유연한 몸놀림은 가히 일품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 같은 부드러움은 다른 물고기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앞동갈베도라치를 가정의 수조에서 기를 때는 우선 다른 어종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조금 만만하다 싶은 상대에겐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다른 어종, 특히 성격이 온순한 어종과 합방시키면 어김없이 그들을 공격하는데, 꼭 지느러미 등을 뜯어먹는다. 사람들은 앞동갈베도라치 얼굴에 고약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앞동갈베도라치는 대단히 아름다운 어종이다. 누구라도 한번 보면 감탄과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물고기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여간해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바닷속엔 이보다 더 아름답고 명랑한 성격을 지닌 물고기가 많다. 아무튼 성깔깨나 있는 앞동갈베도라치는 사료로도 충분히 사육이 가능하며, 환경만 조성된다면 수조 속에서 치어도 구경할 수 있다.

    [갯민숭달팽이는 ‘움직이는 꽃’]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파랑갯민숭달팽이(왼쪽)와 흰턱수염갯민숭달팽이

    움직이는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꽃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고 반문할 분도 계시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분명 아름다운 꽃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흔히 달팽이 하면 흐물흐물하고 징그러운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뭍의 달팽이에 관한 일이고 바닷속 달팽이류는 정말 아름답다. 개중엔 화려한 것도 많다. 바로 갯민숭달팽이라는 무척추동물이다. 물론 다른 무척추동물도 많지만 움직이는 것 가운데 이만큼 화려한 것은 보지 못했다. 갯민숭달팽이는 수십여 종이나 된다. 여기서는 갯민숭달팽이류 중에서 화려함이 덜하지만 비교적 쉽게 볼 수 있고 채집 또한 수월한 파랑갯민숭달팽이와 아직은 이름이 명확하지 않아 필자가 국립중앙과학관 전시회때 편의상 작명한 흰턱수염갯민숭달팽이를 소개한다.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산다. 지렁이만 해도 땅속으로 숨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갯민숭달팽이는 아무것도 걸친 게 없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땅을 파는 재주도 없다. 말랑말랑한 몸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바위나 수초에 붙어서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면 몸을 구부리고 바닥으로 떨어져 다가오는 재앙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듬뿍 선사한다. 파랑갯민숭달팽이의 크기는 몸을 움츠렸을 때와 움직이기 위해 몸을 폈을 때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4∼5cm쯤 된다. 몸은 위에서 아래로 납작한 편이며 연체동물의 특성대로 몸의 표면이 매끄럽다. 몸을 움직일 때는 꼬리 부분이 나타나는데 공간을 이동할 때 꼬리로 중심을 잡고 건너다닌다. 몸의 색상은 짙은 청색이고 그 표면과 테두리에 노란색 띠가 길게 쳐져 있다. 주둥이 위쪽에 뿔 모양의 밝은 주황색 촉수가 있고 몸의 후미에 갯민숭달팽이의 백미인 아가미 돌기가 밝은 주황색을 띠며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 연안에 주로 서식하며, 조간대(潮間帶)의 바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들의 산란과정을 지켜봤는데, 편편한 벽면에다 하얀색 젤라틴막으로 싸인 알들을 스프링 형태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종 번식의 안전성을 위해 최소한 3∼4곳에다 산란을 하는데, 이런 작업을 2∼3일에 걸쳐서 한다. 알을 보호하는 젤라틴막은 접착력이 강해 아무리 파도가 세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인구 감소로 상당한 고민을 한다. 모든 동물은 종족 번식을 위해 교미를 한다. 지금 우리는 동물적 종족의 번식은 무지한 이들의 짓이라고 폄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풍조가 계속된다면 말 못하는 미물은 영원할지 몰라도 우리 인간은 소수의 동물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덥고 추운 것은 자연의 이치다. 자신의 핏줄을 잉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란 생각이다.

    아무튼 자신에 맞는 창과 방패 하나 없지만 산란 후 하루가 지나면 젤라틴막은 투명한 상태로 변하며 그로부터 만 하루가 경과하면 그 막을 뚫고 유생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갓 태어난 유생의 길이는 1∼2mm 내외이며 굵기는 0.05mm 정도다. 우윳빛을 지닌 유생은 활발한 먹이활동을 하는데 만약 굶주린 상태에서 자신보다 더 작은 유생을 만나면 먹잇감으로 생각하여 공격한다. 동물의 본능과 비정함은 크건 작건, 뭍이건 물속이나 똑같다. 유생은 1주일이 경과하면 육안으로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머리와 몸이 구분된다.

    흰턱수염갯민숭달팽이는 몸이 우윳빛이다. 다만 등쪽에 붉은 실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다. 길이는 4cm 내외이며 몸은 직경 3∼4mm 내외의 원통형이다. 주둥이 앞쪽 양 끝에는 5∼6개의 촉수가 수염처럼 길게 뻗어 있고 머리의 꼭지 부분에도 양쪽으로 뿔 모양의 촉수가 나 있다. 또 등과 허리와 미추(尾椎) 부분에도 각기 두 쌍의 촉수가 나와 있다. 이들은 좌우로 움직이기가 마땅찮을 때는 꼬리 부분을 발로 삼고 우뚝 일어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적당하다 싶은 곳으로 방향을 잡고 옮기는데 간혹 헤엄을 쳐서 장소를 이동할 때도 있다. 이 경우 그 자세가 기괴할 정도인데, 몸을 구부렸다 펴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옆으로 이동한다. 몸놀림은 크지만 이동거리는 짧아서 대단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사실 헤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어찌 보면 춤춘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다. 저렇게 힘들여서 겨우 몇 cm 정도 갈 바에야 그냥 생긴대로 기어가지 왜 그렇게 히스테릭한 몸놀림으로 시선을 끌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치가 있다. 이놈의 행동도 우리가 이해 못하는 자연의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리라.

    흰턱수염갯민숭달팽이가 중층에 떠서 움직일 때는 볼썽사납지만, 돌이나 수초에서 움직일 때는 대단히 신중하여 걸음걸음이 매우 조심스럽다. 먹이는 수중의 작은 플랑크톤인 것으로 보인다. 파랑갯민숭달팽이와 달리 돌이나 수초에 붙어 있는 미세류를 잡아먹는 것으로 보이는데, 휴식을 취할 때는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자듯이 몸을 구부리며 촉수는 언제나 서 있는 상태다.

    일반적으로 갯민숭달팽이의 유생은 온도 변화에 민감해 온도가 내려가면 바로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온도 변화가 심하지 않은 바닥의 돌틈이나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낸 후 온도가 상승하면 기어나와 활발히 움직인다. 기회가 있다면,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해 이들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해보시라.

    [일곱동갈망둑의 ‘安貧樂道’]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일곱동갈망둑

    내가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돌보는 물고기에 일곱동갈망둑이 있다. 원래 망둑어류는 성격이 난폭하고 행동도 거칠기 때문에 다른 어종과 같이 놔두면 적잖이 문제가 생기는데, 일곱동갈망둑은 이런 일반적 견해와 큰 차이가 난다. 몸 크기는 10cm 정도이고 머리는 약간 납작하며 입은 크다. 몸은 원통형이며 전체적인 색상은 짙은 담황색에 눈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검은띠를 비롯해 아가미 뒤와 등지느러미, 꼬리가 시작되기 전 미병부까지 8개의 검은 줄무늬가 상당히 굵게 쳐져 있어서 몸을 일곱 마디로 구분하고 있다.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엔 몸통의 담황색보다 짙은 적담황색 줄무늬가 있고 등지느러미는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그 끝이 뾰족해진다. 가슴지느러미는 아가미 바로 뒤부터 시작되고 배지느러미는 항문 끝에서 시작해 미병부 부근까지 이어진다. 가슴에 있는 빨판은 혼인 시기에 푸른색을 띠는데, 평상시엔 빨판을 사용하지 않고 보통 어류처럼 중층과 저층에서 산다.

    이놈이 자연상태에서 노는 것을 보면 참으로 여유롭다. 돌무더기 부근에 산책을 나온 듯 자못 의젓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가롭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숨막히게 사는 우리 눈으로 보면 부러울 정도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 욕심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배와 어린 치어들의 배를 채울 만큼만 욕심 내는 이들은 수조에 적응을 잘한다. 무엇이든 잘 먹고 사람도 잘 따르며 놀기도 잘한다. 보통 망둑어와는 달리 벽면에 붙어 있지 않고 언제나 중층에서 생활하며 다른 종류의 물고기와 다투는 법이 없다. 저보다 덩치가 훨씬 더 작은 놈이 먹이를 뺏으러 와도 양보하는 걸 보면 참으로 순둥이다.

    요즘 세상에 양보라는 말이 무색한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일곱동갈망둑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산다면 바보라고 놀림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수중에서도 한번 이놈을 무시해본 어종은 어느 경우든 다시 무시하려고 든다. 놀기도 잘하여 지켜보는 이가 외롭지 않게 놀아주며, 몸매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데 건강미가 넘친다.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그물코쥐치

    다음은 그물코쥐치다. 쥐치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쥐치는 말쥐치라는 어종으로 쥐치류에서는 대형종이다. 그 다음이 쥐치로, 이놈은 육질이 좋아서 남해쪽 횟집에선 고급어종으로 대접받는다. 마지막은 그물코쥐치다. 일반인들이 별로 보지 못한 어종인데 성어의 크기가 전장 5cm 내외이며 체고는 3.5∼4cm이다. 그러니 사각형의 물고기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물코쥐치의 몸색깔은 연회색빛이지만, 수시로 연노란 바탕에 흰 반점의 무늬로 변했다가 푸른 형광빛을 내기도 한다. 머리의 꼭지엔 가시 모양의 뿔이 돋아 있는데 상대를 위협하거나 위협을 받을 때는 이것을 곧추세운다. 그물코쥐치는 다른 어류에 비해 특이한 점이 많다. 우선 주둥이가 뾰족하고 둥그렇다. 또 껍질은 대단히 거칠며 딱딱하다. 이를테면 사람 손으로 물고기를 만지면 미끄럽고 부드러운 게 일반적인 반면 이놈은 사포를 만지는 듯하다.

    또 다른 특징은 이마에 돋은 한 개의 뿔인데 이 뿔이 대단히 단단하며 뾰족해서 아무리 작아도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빨은 강하다. 옥니 형태로 조금의 틈새도 없으며 인간의 치아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지느러미는 투명한 빗살로 돼 있는데 등지느러미는 없고 뒷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배지느러미 등이 있으며 부채 모양의 아름다운 꼬리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이놈을 뜰채로 건져내면 그 뾰쪽한 입으로 물을 쏟아내는데 우리가 입안에 물을 머금고 있다 멀리 내뿜는 것과 비슷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는 행동을 보면 “호오!” 하는 감탄과 함께 웃음이 킬킬 나온다. 생각해보라. 쬐끄만 물고기가 바닥을 후후 불며 먹이를 찾고 다니는 모습을. 물고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짓을 하고 다닌다. 물고기가 어떻게 후후 불고 다니냐고 의아해할 분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몸 속으로 물을 흡입한 뒤 그 물을 강하게 뱉아내는데 그것이 수중 밖에서 보면 마치 후후 부는 것만 같다. 아무튼 바닥을 불면 그곳이 움푹움푹 팬다.

    식사법도 특이해서 보통의 물고기는 삼키는 게 식사요령이지만 이놈은 잘근잘근 끊어서 씹듯이 먹는다. 다른 어종과 싸울 때는 보는 이들을 또다시 웃게 만드는데, 사람들이 다툼을 벌일 때 상대의 턱 밑이나 가슴께에 자신의 머리나 몸을 밀어대며 “좋아, 해볼테면 해보자” 또는 “어디 때릴려면 때려봐” 하면서 상대를 윽박지르듯 대드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밤에는 해조류를 물고서 자는 모습이 플래시 불빛에 비치기도 한다. 이놈에 대해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일단 잡히면 죽은 듯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다. 물밖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오래 있게 되면 살기 위해 퍼덕이며 날뛰겠지만, 다른 물고기와 달리 이놈은 처음 물밖에 나올 때부터 쓸데없이 몸부림을 치거나 허망한 퍼덕임으로 기운을 빼지 않는다. 가급적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묵묵히 참을 수 있는 한 얌전히 있는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다른 어종들과 달리 그물코쥐치는 남해와 제주 연안에 서식하지만, 나는 제주보다는 남해에서 더 많이 보았다. 남해엔 이렇게 독특한 물고기가 수없이 많다.

    범돔은 ‘바다의 호랑이’]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범돔

    독자 여러분은 범돔이란 물고기에 대해 들어보셨는가? 물론 모르실 것이다. 범돔 역시 우리나라 서·남해와 제주 연안에 사는 물고기다. 그러나 서해에선 아주 드물게 보이며 남해에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 연안에는 대단위로 산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범돔도 화려한 어종이 대개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에 놀러와서 그냥 눌러 살게 된 어종이다. 이 땅이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가지 않고 눌러앉아 터를 잡고 뼈를 묻기로 작정한 후 이 나라 어족자원의 일원이 된 것이다. 범돔은 몸에 호랑이처럼 무늬가 있기 때문에 범돔이라 불린다. 누런 황금빛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세로로 죽죽 그어져 있으니 영락없이 수중의 범이다. 화를 낼 때는 범이 갈기를 세우고 꼬리를 치켜들 듯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힘껏 세우고 기세 있게 주위를 맴돈다.

    범돔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 일반적인 돔들보다 체고가 높으며 주둥이에서 꼬리 부분까지는 체고보다 조금 길다. 가장 흔하게 채집되는 범돔의 크기는 전장이 15cm이며 체고는 10cm다. 세모꼴의 끝처럼 뾰족한 주둥이는 머리와 아래턱 부분에서 급격히 축소되는데 주둥이 끝이 송곳처럼 날카롭고 강하다. 주둥이 끝에서 눈을 가로지르는 검은 띠가 아가미 있는 곳까지 여러 줄 있으며 머리 끝 부분에는 가로로 검은 줄무늬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뒤 몸통에는 목 부분부터 꼬리 부분까지 수개의 줄이 이어진다. 범돔의 비늘은 다른 물고기에 비해 거칠지만 매우 약해 손상을 입기 쉽다.

    인간 세상에서도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실상은 연약한 마음을 가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강하게 보이는 것은 살기 위해 그렇게 위장한 것뿐이다. 이놈들도 살기 위해, 적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강한 것처럼 꾸몄을 것이다.

    범돔은 바위가 많고 수심이 10m 내외인 곳에 서식한다. 수온이 내려가면 좀더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먹이는 다양하지만 수조에선 싱싱한 먹이보다 사료를 더 좋아한다. 무리를 지어 행동하므로 여러 마리를 넣어놓으면 그야말로 집 안에 앉아 바닷속 비경을 볼 수 있다. 사람과도 쉽게 친해진다. 눈높이를 맞추고 수시로 접촉하면 금세 자기를 해칠 적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고 경계를 푼다. 보는 이의 입맛을 맞추려 갖가지 형태로 재주를 부리며 놀아준다. 쉬지 않고 움직이므로 먹이의 소화도 빠른 편이며 끊임없이 먹을 것을 요구한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시위를 하듯 돌 뒤로 돌아가 사람의 눈에서 멀어지려 한다. 드물게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약물을 투여하면 효과는 만점이다.

    독특한 매무새 뽐내는 관꽃갯지렁이]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관꽃갯지렁이

    관꽃갯지렁이, 이렇게 말하면 갯지렁이가 무슨 꽃인가 하겠지만 틀림없는 꽃이다. 사는 곳은 조류가 급한 곳으로 주로 수심 1∼30m 이내의 바위틈이다.

    관꽃갯지렁이는 물속을 떠다니는 미세입자를 걸러먹는 여과생물이다. 놀라거나 위험에 직면할 때는 몸을 둥그런 관속에 숨기는데, 이 관은 니질(泥質)을 점액질과 혼합해 만든 관이다. 꽃수술(실제는 강모라 불림)은 매우 민감해 1m 전방의 위험도 느낄 정도다. 관꽃갯지렁이는 색상의 종류로 구분돼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매무새를 자랑하는데,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색상과 무늬가 다른 게 7∼8종 된다.

    특히 아주 드물게 백색의 관꽃갯지렁이가 있는데 현재 필자의 연구실에서 씩씩하게 살고 있다. 갯민숭달팽이가 움직이는 꽃 같다면 관꽃갯지렁이는 움직이지 않는 꽃의 대표격이다.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미숙한 필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누구든 이놈들을 직접 보게 되면 그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새삼 인식해 이놈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놈들이 자리한 삶의 터전이 조간대에 있으면 썰물 때는 어쩔 수 없이 물 밖에서 물이 다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때에는 꽃수술 같은 강모를 둥그런 잿빛 관 속에 넣고 관의 입구를 스스로 봉쇄한다.

    혹 누군가 이것을 채집하려 한다면 미리 삼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놈들은 바위틈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 부근의 전체 바위를 떼내지 않으면 채집이 어렵고 그렇다고 밖에 보이는 부분을 잡아당기면 관만 찢기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돌틈 사이에 서식하는 놈들은 채집이 가능하다.

    [귀족의 풍모 지닌 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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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치

    창치는 귀족적인, 대단히 귀족적인 풍모를 지닌 놈이다. 수중에 있을 때 아름답지 않은 물고기가 어디 있으랴만 이놈은 특히나 다르다. 빛나는 피부라고 표현해야 어울릴 정도이며 몸통의 단순명쾌한 채색은 일품이다.

    또한 노는 형태는 그 어느 어종과도 다르다. 짙은 청록색과 빛나는 몸매, 천사의 날개와 같은 지느러미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창치의 크기는 10cm 내외이며 체고는 4cm 정도다. 역시 입은 뾰족한 편이나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배지느러미 등은 시력이 나쁜 사람이라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다. 꼬리지느러미 역시 투명하지만 지느러미 사이사이에 있는 뼈대는 희미한 홍색을 띠고 있다.

    새우를 즐겨 먹으며 휴식을 취할 때는 바위틈새에도 머물지만 중층에 있으면서 아래로 내려갈 때는 몸을 그냥 물에 맡기는 식이다. 낙엽은 하늘하늘 흔들리며 떨어지는데 창치가 꼭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창치는 다른 어종과 몸싸움을 하지 않지만 상대를 위협할 때는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자신의 영역과 우위를 과시한다. 언제나 신중한 듯하지만 움직일 때의 신속함은 번개와 같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강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듯, 창치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은 누군가요?”라고 묻는 듯, 아니면 “거참 이상하게 생겼네!” 하는 것만 같다. 워낙 투명한 지느러미라 움직임을 모를 정도지만 가만히 보면 갈치의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것처럼 기다란 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들며 서 있기도 한다. 창치를 보며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수중의 선비 같다는 것이다. 배가 고파도 먹이를 달라고 보채지 않고 먹이를 줘도 허겁지겁 먹지 않는다. 야생 상태에서는 바위와 수초가 어우러진 곳에서 지내며 산란시기엔 조간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어종이다. 워낙 만나기 어려운 어종이라 행여 이들이 환경변화로 바다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과묵한 괴도라치]

    괴도라치! 이름부터 뭔가 으스스하다. 처음 대면했을 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날 때 악수를 하듯이 나는 물고기와 처음 대면하면 손을 물 속에 넣어 수온과 같은 온도로 만든 다음 물고기를 부드럽게 만지거나 감싸듯 하면서 내가 적이 아님을 표시한다. 그런데 잠시나마 망설여진 것은 괴도라치의 얼굴이 그리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생김새는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형상 같고 어디선가 비슷한 조각품 내지는 그림을 본 것 같다.

    크기는 한 자 정도 된다. 몸은 원통형인데 등을 지나 꼬리로 갈수록 납작해진다. 끝으로 갈수록 심화돼 꼬리의 끝 부분은 장어나 메기의 그것과 같다. 괴도라치의 생김새를 상술하면 몸의 색깔은 황색이다. 얼굴은 어찌 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둥글넓적하다. 주둥이는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입술도 두텁게 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콧잔등이 있으며 눈은 얼굴에 비해 작은 편이다. 얼굴 가에는 사람의 구레나룻처럼 촉수가 나 있고 턱에도 촉수가 수염처럼 나 있다.

    황색 바탕의 몸에는 희미하지만 얼룩무늬가 있으며 허리를 지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등에서 이어진 검은 무늬가 몸통으로 이어져 있다. 머리털 같은 촉수가 목 있는 부분까지 이어지며 곧바로 등지느러미로 이어진다. 등지느러미는 꼬리의 끝 부분까지 이어지며 지느러미 사이사이로 검은색 무늬가 있어 그나마 아름답게 보이려 노력한 흔적이 있다.

    괴도라치는 생김새와는 달리 무척 점잖다. 서두르는 법이 없고 먹이다툼을 위해 볼썽사나운 몸싸움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과묵하기 때문에 가끔은 사람하고도 비교가 된다. 작은 것 하나에 목숨을 걸고 헛된 욕심과 야망으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 어둡게 하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 세상 아닌가. 자리가 비좁아도 참고 썩 좋은 자리는 아니더라도 만족할 줄 아는 물고기를 보면 옛 선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만물교아(萬物敎我)’란 말이 있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며 지당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다 내게 가르칠 것이 있는 것 같다.

    [‘촐랑이’ 줄자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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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자돔

    기왕에 점잖은 물고기를 소개했으니 이번엔 조금 경(經)한 어종에 대해 알아보자. 제주 바다에는 줄자돔이란 물고기가 있다. 워낙 촐랑대고 다니기 때문에, 사람이었다면 쌍방울이 떨어져도 몇 번은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줄자돔의 성격은 참으로 밝다. 요즘 세상이 힘들고, 학업이 힘들고, 가정이 힘들고, 그래서 우울한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은 줄자돔과 며칠만이라도 같이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금방 토라졌다가도 먹이만 주면 좀전의 불쾌한 일은 잊어버리고 헤헤거린다. 가끔 내가 잘못해서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돌 뒤로 돌아가 두 눈만 빼꼼히 내밀고 저 사람이 왜 저러나, 뭐 화나는 일이라도 있어서 그러는가 궁금해하며 바라본다. 그 모양을 보면 미안하고 안쓰럽다. 넓은 바다에서 맘껏 뛰어놀게 해야 하는 것을, 연구한답시고 가둬놓은 게 마음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알아야 하겠기에 연구실에 있는 물고기들과 가급적이면 사이 좋게 지내려 노력한다. 어떨 땐, 아주 가끔 나도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에 시인 도연명의 인생실난(人生實難)을 읊조리기도 한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적막한 광야에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는 물속의 줄자돔들과 부질 없을지 모르나 대화를 나눈다.

    줄자돔의 크기는 전장 5cm, 체고는 3cm 정도다. 몸은 은회색 바탕에 가로로 연한 줄무늬가 7개 있으며 등에는 등지느러미 기조(지느러미의 첫 번째 뼈대를 뜻함)와 뒷지느러미 기조에 진한 흙빛의 커다란 점이 있다. 워낙 활동적이라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연구실에선 귀염둥이다. 먹이는 주는 대로 잘 먹으나 생식보다는 사료를 더 좋아해서 먹이에 대한 부담은 없다.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쏠종개

    쏠종개는 대단히 위험한 물고기다. 어부들도 쏠종개를 함부로 취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놈을 손으로 만지고 주무르면 큰일난다고 정색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쏠종개의 특성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놈에게 한번 쏘이면(사실은 찔리면) 거의 혼이 나갈 정도로 아프다. 내 친구 중에 쏠종개에 쏘인 이가 있는데 얼마나 아픈지 진통제를 한꺼번에 몇 알 먹고 소주를 몇 병이나 비운 후 술과 약에 취해서 겨우 고통을 잊었다고 한다. 그만큼 가시에 독성이 있지만 쏠종개에 대해 알게 되면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오히려 매운탕을 좋아하는 이들이 군침을 삼킬 만한 어종이다. 독자 여러분도 민물고기인 메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쏠종개는 체형이 메기와 닮았다. 그러나 체형이 비슷하다는 것말고는 틀리는 것도 많다. 쏠종개는 독자적 생활을 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산다. 그리고 물의 중층에서 헤엄치며 이동하거나 놀기를 좋아한다.

    그 행동은 참으로 볼 만하다. 어떻게 수십에서 수백 마리가 한 쪽을 향해 일제히 방향을 트는지 볼수록 신기하다. 행동학의 연구자료로 충분한 어종이라 하겠다. 특별히 우두머리가 있어서 방향을 미리 알려주거나 아니면 누군가 중간에서 “좌로 갓!” “우로 갓!” 하며 구령을 붙이는 것도 아닐진대 앞의 몇 마리가 방향을 동시에 튼다고 생각할 즈음 나머지 수백 마리도 동시에 방향을 바꾼다.

    쏠종개는 눈으로 먹이를 찾지 않고 코로 찾는다. 수조에서 보면 평상시엔 질서정연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이지만 사료를 주면 수십 마리가 제각각 움직여서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감싸고 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뭉쳐 다니던 놈들이지만 먹이 앞에선 자신의 배를 채우려 전체의 안전은 도외시하고 흩어져 버린다. 물론 먹이를 먹고 더 이상 먹잇감이 없으면 천연덕스럽게 돌아와 다시 뭉쳐 다닌다. 오로지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뭉쳐 다니고 살기 위해 먹기 때문에 동료의 몸에서 먹을거리 냄새가 난다면 가차없이 공격을 가한다.

    쏠종개의 크기는 보통 30cm 정도다. 그러나 이 정도 크기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훨씬 큰 것들도 있다. 몸통 색깔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다. 여기에 노란 줄무늬가 주둥이 끝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데 이 줄무늬는 좌우의 등과 측면에 각기 두 개씩 있다. 턱 밑에서 가슴까지는 연노란색으로 물들어 있고 배에서 항문까지는 하얀색이다. 필자의 연구실에는 60여 마리의 치어가 활발히 놀고 있는데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상당히 민감한 어종이다.

    [‘인디언 추장’ 미역치, ‘사냥꾼’ 아무르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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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르불가사리

    미역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독자들도 아메리카의 원주민인 인디오 추장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추장의 머리를 본떠서 나온 액세서리가 많은데, 미역치가 화를 내거나 위협적인 몸집을 할 때는 영락없이 추장의 머리장식 모습이 된다. 몸은 옆으로 납작한 편이며 입은 뾰족하다. 몸에는 진회색 반문과 붉은색이 섞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붉은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까지 7∼8cm 이상 된 미역치를 보지 못했다. 작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미역치는 물위에서 너풀너풀 춤을 추듯 하며 밥을 달라고 몰려든다. 새가 하늘에서 잠시 날갯짓을 쉬고 바람에 몸을 맡겨 비행하듯이 물위에 떠서 조용히 내려올 때도 있고 물의 중층에서 조는 듯 가만히 떠 있을 때도 있으며 수초에 기대어 망중한을 즐길 때도 있다. 다른 물고기는 몸을 평행선으로 하고서 나를 바라보지만 미역치는 꼬리를 밑으로 하고 머리는 하늘로 향한 채 상대를 바라본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아니라는 듯 몸을 흔들며 여전히 고집스럽게 버틴다.

    끝으로 물속의 무법자 또는 우리 모두가 퇴치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아무르 불가사리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한국의 海水魚

    미역치

    아무르불가사리의 움직임은 비밀스럽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드럽고 유연해서 움직여가지 못할 곳이 없다. 몸 밑에 있는 촉수 밑빨판으로 소리없이 움직여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조개부터 활발히 움직이는 물고기까지 종횡무진으로 잡는다. 물론 동작이 그렇게 빠르거나 민첩하지는 못해서 물고기가 쉽게 이놈의 사냥에 걸려들지는 않는데, 다른 물고기가 잠을 자는 시간에 덮치면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 아끼는 물고기가 이놈의 입속으로 빨려든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중의 작은 생물들에겐 말미잘이 절대 피해야 할 위험한 존재지만 그 말미잘도 이놈의 먹성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우리가 연안에서 흔히 보는 불가사리는 사람이 손으로 쥐어도 아프지 않다. 그러나 아무르불가사리는 어른 손으로 쥐어도 아플 만큼 겉이 거칠다. 물론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수중의 작은 생물들에겐 무서운 사냥꾼이다. 먹성이 워낙 좋고 번식력 또한 대단해서 연안 양식장의 피해도 만만찮다.

    아무르불가사리를 먹어치우거나 해치는 놈이 누구인가 보자며 덩치 큰 육식어종 몇몇을 어항에 넣어봤지만 아무도 공격치 않았다. 오히려 이놈이 다가가면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하기만 했는데, 유일하게 돌돔이 이놈을 공격해 다리만 놔두고 먹어치우는 것을 보았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자면야 놔둬야겠지만, 인간들이 뭔가 잘못했기에 이처럼 무서운 사냥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관련부처부터 해수어에 관심 기울여야

    아무리 좋은 음악도 묻혀 있으면 그 빛을 발하지 못하듯 우리 연안에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물고기가 있다고 해도 막상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 학술적, 생태학적, 미학적 가치를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토종 어류들을 살피다 보면 해양의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식탁에 오르는 물고기가 얼마나 깨끗한지도 알 수 있으나 그 기회마저 잃고 만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민물 생물이건 바닷속 생물이건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많은 국민이 알도록 폭넓게 홍보를 해야 한다. 민물고기의 경우 멸종위기에 처한 어종과 보호어종을 법으로 규정해 놓았으나 이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설사 법이 있는 줄 알아도 어떻게 생긴 물고기가 법의 보호를 받는지 대다수 국민은 모르고 지낸다.

    해양 생물은 더 시급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일례로 옴도다리(정확한 학명이 없어서 어민들이 부르는 대로 적음)라는 물고기가 있다. 옴도다리는 맛이 좋다고 해서 성인 손바닥만한 크기가 몇 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옴도다리의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후일 이 물고기가 우리 연안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보다 훨씬 작은 물고기나 기타 생물들은 아예 연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만약 관련 당국의 인력이 달려서 보호활동을 못한다면 일반인 가운데 그런 일에 일생을 바치며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지원을 한다면 그 효과는 대단히 클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한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의 또 다른 과제는 해양동물, 이를테면 무척추동물 등을 포함하여 해양 생물에 대한 명칭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칭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토종 어류에 대해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기초적 자료를 제공해줘야 한다(내가 아는 해양생물 중에는 그 얼굴에 물음표를 찍어야 할 생물종이 많다). 그래야 이중삼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현실적인 대안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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