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동아일보사. 296쪽/ 7500원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이 왜 ‘훌륭한 선택’이었는지 짚어보기 전에, 그의 이름에 관한 혼란부터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내 언론과 학자들은 그의 성을 코에츠, 쿠에츠, 쿠체, 쿠치에, 쿳시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고, 때로는 그의 이름이 요한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나는 1998년 4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쿳시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첫 질문이 이름이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정확한 발음은 쿳시이(kut-SEE)입니다. 두 번째 음절에 강세를 주면서 ‘시이’라고 길게 발음하고, 첫 음절은 풋(put)과 운이 맞는 쿳시(kut)로 하면 됩니다.” 이후 그의 이름을 ‘쿳시이’로 표기했고, 번역서를 내는 과정에서 장모음과 단모음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 ‘쿳시’가 됐다. 현지의 발음은 쿳시아(kut-see-uh), 쿳시어 등으로 우리말로 정확하게 표시한다는 게 힘들지만, 저자가 쿳시로 불리길 원한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쿳시는 1940년 케이프타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우스터(Worcester) 에서 태어나 수학, 언어학, 컴퓨터, 문학 등을 전공했다. 가장 뛰어난 쿳시 전문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애트웰(David Attwell)에 따르면 쿳시는 “지적인 힘과 균형적 스타일, 역사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킨 독창적인 작가다. 한 작가에 대한 평가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는 윤리성, 역사성, 정치성, 문학성 등 작가라면 누구나 도달해보고 싶은 최고의 경지다.
쿳시가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은 얼마 전 출판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를 포함한다 해도 8권에 불과하다. 또 그의 소설들은 분량 면에서 보통 장편소설의 절반 정도로 짧은 편이다. 작품의 수가 많고 적고, 내용이 길고 짧고의 문제가 작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겠지만, 쿳시의 경우는 좀 유별나다. 그럼에도 세계는 그를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가 뭘까. 답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발표한 소설의 수가 적고 그 길이가 짧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한없이 회의적인 작가
그는 소설에서 리얼리즘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온 작가다(그러나 소설과 달리, 그의 산문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가 ‘뉴욕타임스’나 ‘뉴욕북리뷰’ 등에 쓴 글을 보면 그처럼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야만인을 기다리며’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추락’과 같은 미니멀리즘 소설을 썼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의 리얼리티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스토리 전개에 치중하는 리얼리즘 작가와 달리, 쿳시는 최대한의 것을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하고자 한다. 그러니 소설이 마냥 늘어질 수 없는 것이다. 늘어지는 것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속성인 까닭이다.
따라서 쿳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폭발적인 힘은, 사유의 무게를 최소한의 언어로 담아내는 쿳시의 천재성에 기인한다. 결국 그의 소설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 베케트에게서 심오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한오라기의 감상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그 사유의 폭과 깊이를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이 말한 바와 같이, 그는 한없이 회의적인 작가(doubter)이다. 그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이런저런 형태로 존재해온 제국주의, 식민주의, 권력, 성, 인종 등의 문제를 소설 속에서 사유하며 차원 높은 경지로, 거의 종교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작가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소설을 ‘사유의 한 방식’이라 생각하는 그의 독창적인 소설미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남아프리카의 참담한 비극적 식민사가 잊혀진다 해도, 그의 소설이 갖는 보편성과 사유의 깊이는 그대로 남아 그것을 읽고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고두고 편치 않게 만들 것이다.
그 중에서도 ‘추락(Disgrace)’은 쿳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락’은 쿳시에게 영어권 문학의 최고상인 부커상(이는 미국인에게만 주어지는 퓰리처상보다 훨씬 권위 있다)을 세계 최초로 두 번(1983년과 1999년) 수상하게 하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또 쿳시는 ‘추락’으로 1999년 외국인을 위한 퓰리처상이라 할 수 있는 라난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부커상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보이드 톤킨(Boyd Tonkin)은 10월3일, 쿳시의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직후 영국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추락’을 읽고 ‘얼음 깨는 도끼(ice-axe)’로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엄격하고 비정하고 정교하게 쓰여진 쿳시의 소설은 새로 탄생한 남아프리카에 의해 두들겨맞아 개처럼 코너로 꼼짝못하게 몰린, 굴욕을 당한 진보적 학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그는 사랑, 섹스, 정치의 한계만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한계를 테스트했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한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전례를 깨고 다시 쿳시를 선정할 만큼 ‘추락’은 품격 높은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쿳시가 수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후 만찬에도 그의 자리가 비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를 선택했다.”
심사위원들은 쿳시가 “상업성에 휘말리기 싫다”며 첫 번째 수상 때에도 수상식에 불참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톤킨의 말대로 ‘추락’에 나오는 아이러니는 오싹하고 까다롭고 난해하며(delphic) 위협적이다. 그러나 그는 “이 시대 작가들 중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일 뿐 아니라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들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뉴욕타임스’ 서평)을 얘기하려는데 무슨 타협을 할 것인가.
1998년 쿳시에게 남아프리카의 현재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는 현재, 옛것과 새것이라고 희망했던 것 사이의 불안하고 점점 더 편치 못한 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추락’이 1999년에 발표되었으니 ‘추락’을 집필하는 시점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벌어진 틈, 베일에 가려진 것, 어두운 데를 보라
여하튼 사람에 따라서, 남아프리카의 변화된 정치현실에 박수와 갈채를 보내지 않고 그것에 수반된 갈등이나 후유증을 음산하고 우울하게 바라보는 쿳시의 시각이 못마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인정권이 종식되고 흑인정권이 들어서며 ‘무지개 나라’를 꿈꾸는 남아공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지배계층이었던 백인여성이 흑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땅마저 빼앗기는 상황을 묘사한 쿳시의 소설을 읽으며 남아공 사람들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현실이 그렇게 투영되어 있으니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역사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있게 마련인 피해의식이나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쿳시의 소설을 바라보면, 의심과 회의의 눈길로 세상을 관조하며 서구문명이 기초하고 있는 ‘잔인한 합리성’을 해체하고 인간의 심리를 유례가 없을 정도의 깊이로 해부한 그의 성취를 폄하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쿳시는 역사적 리얼리티를 포착하려 하면서도 단순한 리얼리즘에 머무르는 소설을 쓰는 걸 거부해온 작가다. 카프카에게서 낙관적 비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듯, 쿳시에게서 낙관이나 단순한 긍정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애당초 무리인 것이다. 쿳시의 말을 빌리면, 그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벌어진 틈, 거꾸로 된 것, 아래쪽에 있는 것, 베일에 가려진 것, 어두운 것, 묻힌 것, 여성적인 것 등 타자를 읽는 데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러한 입장에서의 세상 읽기라면 그 테두리 내에서 그의 문학세계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어둡고 음산하고 비정할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두움과 음산함과 비정함이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언어적 명징성과 완벽성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읽고 난 후에도 사람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고 “얼음 깨는 도끼로 얻어맞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추락’은 쿳시의 이러한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