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를 얻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는 그는 혹독한 훈련보다도 복싱에 대해 냉담한 사회 분위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1억원 정도의 대회 개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챔피언 결정전이 2번이나 미뤄지는 아픔도 겪었다.
“시합 일정에 맞춰 체중을 조절하며 훈련하다가 시합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김이 확 새버리죠. 하지만 김주병 관장님과 서로 위로하면서 ‘복서는 언제라도 링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이선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미용사 보조, 봉제공장 공원, 트럭운전사, 식품회사 영업사원, 공사장 인부 등 온갖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 아버지와 큰오빠를 잃은 후에는 매일 소주 서너 병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 복싱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전 세계챔피언 킴 메서의 경기를 보게 됐어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바로 도장을 찾아가 열심히 주먹을 휘둘렀는데, 그날은 술 없이도 잠들 수 있었죠. ‘아, 이게 나의 길이구나’ 싶더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10km 로드워크에 나선다는 그는 “40세까지 복싱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돈을 좀 모으면 작은 공장을 만들어 나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