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대통령 리더십 52점, 내각 국정수행 53점

  • 입력2003-10-27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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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성과 자질 중요시한 인사정책 필요
    •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라
    • 국민소득 2만달러·동북아 경제중심 등 구체성 부족
    • ‘저항적’ 리더십 고집해서는 안돼
    • 산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산 정상으로 올라가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저항적 리더십이 문제다’ ‘정치논쟁을 줄이고 경제회복에 주력하라’ ‘말수부터 줄이고 분수를 지켜라’.

    ‘신동아’가 창간 72주년을 맞아 역대 정부의 전직 장관 출신 인사 20명으로부터 들어본 참여정부 국정운영 평가에서는 이러한 지적과 고언들이 쏟아졌다. 전직 장관들은 이러한 지적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에는 평균 52점을, 참여정부 내각의 국정수행 능력에는 53점을 줘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를 나타냈다(20명 중 4명은 무응답).

    ‘신동아’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할 정도로 국민적 지지가 바닥을 향하고 있는 이유를 되짚어보기 위해 전직 장관들 20명의 특별기고를 받아 참여정부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긴급특집을 마련했다. 전직 장관들은 실제로 국정운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온 경험이 있어 정치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내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신동아’가 기획한 참여정부 국정운영 평가작업에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민의 정부에서 각 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 15명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전직 장관 5명이 참여했다(기고문 게재는 가나다 순).

    풍부한 국정 경험을 가진 역대 정부의 전직 장관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내세워온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라는 방향 자체에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인치(人治)와 독선을 배제한 시스템, 양 극단의 상반된 목소리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시스템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정운영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주요 개혁과제를 최대한 선별해 내각에 맡길 것은 과감히 위임해야 한다는 지적에서부터 여소야대 상황을 감안해 개혁 욕심을 축소조정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나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전직 장관들은 대통령의 인사 정책과 관련해서도 ‘연고’나 ‘코드’보다는 전문성과 자질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코드’를 내세우면서 ‘내편 위주의 인사’를 고집하는 것은 또 다른 획일주의와 배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국민소득 2만달러나 동북아 경제중심 같은 국정 어젠더와 관련해서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는가 하면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과정에서 초래될 ‘삶의 질’ 저하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후보 시절의 ‘저항적 리더십’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직 장관들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난맥상을 부채질하는 야당과 언론의 지나친 공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는 했지만 대체로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참여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마지막으로 역대 장관들은 재신임 정국을 과감한 국정 쇄신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신임 정국을 정치공방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국정 운영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산 정상으로 올라가 길을 찾아 내려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내각 스스로 개혁 마인드 갖추도록]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통합신당 국회의원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참여정부의 지난 8개월은 경제사정의 악화, 북한 핵문제 같은 대외적 난제의 대두, 사회적 갈등요인 증폭 등으로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직 출범 초기인 데다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으나 국정운영 시스템에도 문 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국정운영 환경을 보면 정치적으로 여소야대 국회라는 상황에서 여당까지 분열된 데 따른 정국 불안정과, 주요 언론과의 갈등 심화에 따른 대국민 홍보의 한계 등 참여정부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요인들을 무시할 수 없다. 대외적으로는 체제불안을 느끼는 북한의 핵문제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과 협력해서 풀어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참여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운영해온 청와대 조직을 과감히 개편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그 기본 취지는 일상적 국정운영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에 돌려주고 청와대는 주요 개혁정책만 조율하는 역할로 그 기능을 축소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정부 때까지의 청와대비서실 조직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모델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 각 부처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짜여져 있었다. 따라서 민주화와 자율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적지 않은 역기능을 드러내왔다.

    이러한 시스템을 과감히 개편하여 내각의 자율과 책임을 살려보려는 현 정부의 시도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비서실과 내각의 역할 분담이 당초 취지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청와대의 개혁정책도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는 과도기적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과실 있는 참모 과감히 교체해야

    그 책임은 청와대와 내각 모두에게 있다.

    우선 청와대는 단기적 경기대책 같은 문제는 내각이 책임지도록 맡겨두고 특히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과거에는 경제부총리가 경제팀을 장악하고 그 결과에 대해 대통령에게 책임지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왔으나 현 경제각료들간에는 이러한 팀워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코드 맞추기식 인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경제각료 대부분은 직업관료 중에서 발탁했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참여정부가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던 개혁과제 추진 상황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 각종 위원회가 생겨나고 토론도 무성하지만, 청와대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나가고 있기 때문에 각 부처가 이러한 개혁과제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전혀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개혁과제를 최대한 선별해서 내각에 맡길 것은 과감히 맡기고 최종 조율 역할만 담당해, 내각 스스로 개혁 마인드를 갖도록 해야 한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경제부총리 등 경제팀은 결단력 있게 정책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크고작은 국정운영의 잘못에 따른 화살이 대통령에게 모두 돌아가도록 방치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미국과 같은 거대한 나라에서도 미숙한 대통령이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책임질 것과 장관들이 책임질 것이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국정운영이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노대통령이 장관들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 것은 과거 정부들과 차별화하는 좋은 방침일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동시에 명백한 과실이 있는 각료나 참모는 과감히 교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분명한 이유 없이 정치적 이유로 각료를 교체하던 과거의 관례만 답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 과도기를 맞고 있다. 3김 정치시대가 막을 내리고 카리스마적 정당 지도자가 사라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회복하려면 국민들이 정치 안정의 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년 총선이 그 전환기가 될 것이다.

    [부처이기주의 극복할 정책조정 능력 보여라]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 한국유통정보센터 고문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서 조용히 지내야 한다. 국민의 정부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맡은 일에 충실했고 국정을 차질없이 인계하였으니 더더욱 할말을 아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이 증폭되고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성장률 전망 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온다.

    지난해 경제상황은 성장, 물가, 경상수지, 실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또 월드컵 4강 달성, 부산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IMF 위기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국민 모두가 자신감과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정책 불확실성부터 제거하라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은 매우 대조적이다. 국민의 다수가 불안해하고 또다시 엄습한 불황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이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 내각의 책무는 더더욱 막중하다. 이에 도움을 주고자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국무위원 모두가 사명감과 책임감을 새롭게 인식하고 맡은바 소명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각 부 장관은 국무위원에 임명되고 소속부처에 보직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무위원은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고 그것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국가정책은 하나이지 부처에 따라 다를 수 없다. 부처의 입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최종결정 과정에서는 국가의 안보와 국민생활의 안정을 고려하여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부 장관은 노동의 편을 들고, 환경부 장관은 환경만을 앞세우고, 정보통신부 장관은 IT 분야만을 대변하는 등 각 부처의 입장에만 집착하는 인상이다. 그러니 관계부처간 입장이 대결적이고 팀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많다. 이러한 부작용은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만들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

    각 부 장관은 부처이기주의적인 부하 직원의 제안을 잘 수렴하면서도 적절히 통제하고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여 모든 공무원이 충성스럽게 일에 전념하도록 지휘, 감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무위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책무를 다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몸을 던져야 한다. 국민에 대하여 책임질 일은 장관이 소신을 갖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되 관련부처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 한다.

    둘째, 정책 혼선을 피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여 불확실성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한국은 IMF의 구조조정으로 경제사회가 대폭 개방되어 시장경쟁의 힘이 크게 강화된 반면 정부의 기능은 약화되어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로 증권, 금융, 제조업, 서비스업 등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외국인과 함께 경제를 운용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심리다. 이 때문에 기업의 설비투자, 개인 소비 등이 얼어붙고 있다. 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시장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곧 모든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정책을 새로 고쳐보려는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전 정부에서 내려진 정책결정이라 해도 경제장관회의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결정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협의하여 발표한 정책은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

    당정간 협조 부족 심각한 문제

    셋째, 당정협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의 변화로 당정협조체제가 흐트러져 내각의 국정수행이 대단히 어려우리라 짐작된다. 우리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책임제이지만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 의견을 수용하여 국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의 모든 정당과 폭넓게 협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국정에 대한 불안과 비판의 많은 부분이 당정간 협조 부족에서 오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관심을 더욱 많이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국민 정책 홍보에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정보지식화, 세계화, 집적·연계화 등으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 경제사회와 동조화되어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참여정부는 개혁을 주된 국정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내외적으로 정보의 홍수와 변화의 기류에 휘말려 국민은 피로하고 짜증스러울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런 때는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매체가 국정수행에 관해 같은 정보를 보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는 일회성 홍보가 아닌 지속적인 홍보에 나섬으로써 국민의식이 확실히 변화되도록 해야한다. 특히 경제정책의 변화, 환경규제, 안전규제, 부처간 이견조정, 노동관계, 기업규제 등 경제사회의 피부에 와닿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계부처가 한 목소리를 내 합동 홍보 및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지금의 경제사회 현상은 단기적으로는 불안과 고통을 동반하고 있지만 길게 보면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경제사회로 발전해가기 위한 과도기적 변화와 개혁으로 인식돼야 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의 패러다임과 문화로는 2만달러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 국무위원들이 한마음으로 이러한 시대적 소명으로 무장해 창조적 변화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기수가 되길 바란다.

    [공무원을 움직이게 하라]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국민통합 21 대표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개혁과 변화의 열망을 업고 탄생한 노무현 정부도 이제 출범 8개월을 맞고 있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몇 년은 흐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코드, 개혁, 시스템 등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숱한 말과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기억들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노대통령의 당선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안정과 현상유지 일변도의 낡은 틀을 깨는 계기였으며, 젊고 역동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고,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힘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노대통령이 그토록 자주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문화의 코드, 젊은 코드, 개혁 코드, 서민 코드, 지역극복의 코드를 넓게 펼칠 수 있는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시스템 강조만 했지 작동은 안해

    그러나 지금은 실망과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아득한 회의감만 있을 뿐이다. 출범 이후 끊임없이 개혁을 이야기하고 모든 문제를 개혁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보았으나 우리는 어디에서도 개혁적 정책이나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매사 원칙을 말해왔으나 인사에서도, 노동현장에서도, 경제정책에서도 일관된 원칙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시스템을 수도 없이 강조하는 것은 보았어도 실제 시스템에 의한 위기관리와 문제해결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동안 지역주의의 청산과 정치권 개혁을 외쳤지만 민생을 외면한 채 신당논의로 시간을 허비하기만 했다. 대통령은 중립을 표명하며 자신을 지지해주던 당을 떠났으나 정치적 시계(視界)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어디에도 민생은 없다. 경제는 개혁을 말하다 안정을 말하고, 안정을 말하다 성장을 말할 뿐이며, 재벌개혁이니 금융개혁이니 하는 구호도 사라지고 오직 대기업들의 정치자금 문제만 어지럽게 들릴 뿐이다. 조흥은행, 철도노조, 화물연대 파업 등의 사건도 상황에 맞추어 원칙 없는 땜질식 해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흡사 공직사회가 작동하지 않는 듯하고, 기본적인 규칙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검찰이 법리를 적용하기 전에 장관이나 대통령의 참모들이 방향을 제시해버리고, 여론과 민의도 ‘반개혁적’이니 ‘조작’이니 하면서 무시해버린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국민을 보고 간다’면서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조직의 질서를 무시한 채 ‘대통령과의 대화’를 강행한다. 이렇게 시스템을 쉽게 깨버리면서 어떻게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 가능하겠는가.

    시스템은 조직 메커니즘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나온다. 정치와 행정의 오랜 경험이 국가의 골간 조직 속에 소중하게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공무원 조직의 역할을 존중하고 조직위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살려주며, 사회적 공론을 존중할 때만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합의하고 신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가의 위기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시의에만 맞게 행동해야 한다면 공무원 조직이 어떻게 사명감을 갖고 움직이겠는가.

    건국 이래의 소중한 가치와 경험에 대한 시각조정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을 통해 행동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 대통령의 역할이 따로 있고, 장관의 역할이 따로 있으며, 행정부의 국장과 과장의 역할이 따로 있다. 위에서 다 해버리면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지 끌려다녀야만 한다면,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이 만나면 국가의 근간이 쉽게 흔들리는 법이다. 우리 사회 요소요소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조직들을 믿어야 한다.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이 만난 꼴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사람을 선발하여 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인사에도 원칙을 세워 그에 맞는 훌륭한 사람을 찾아내 조직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도 있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이 모두가 우리 국민이다.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 자기 사람을 쓰는 것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의 공개모집, 다면평가와 같은 초기의 요란스러움은 어디로 사라지고 측근과 코드만 남았는가. 더구나 문화계 인사에서 편파인사 시비, 보혁 갈등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진정으로 시스템과 원칙과 개혁이 중요하다. 다소 비판적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겸허하게 사회의 여론을 들어야 한다. 지나친 비판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싫더라도 표현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지하는 정당에 입당하여 책임정치를 구현하면 되고, 민생의 근본에 입각하여 정책을 도모하고 시스템에 바탕한 개혁을 단행하면 될 것이며, 알맞은 인사를 친소의 구별없이 선발하여 쓰면 될 것이다. 국민들은 많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행하면 될 일이고, 신뢰를 주면 될 일이다.

    [‘바람의 정치인’ 또 바람몰이 나서나]유경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장관급)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기자회견을 본 시민 A, B, C의 선문답 같은 ‘정국한담(政局閑談)’이다.

    A씨=‘바람의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론은 큰 바람몰이로 정권의 긴급피난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정권은 ‘해결’을 위한 과감성보다는 ‘관리’의 소극성으로 갈 수밖에 없고…과도정부처럼.

    B씨=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잇따른 측근 비리에다 아들 구속을 겪으면서 버티어 갔는데 50대인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주장은 인내보다 모험을 선호하는 질풍노도성의 극적 선택이라고 보아야 할지….

    C씨=정치에서 바람은 대세의 동력인지라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라크 바람’에 초반 장세를 보다가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우풍으로 재집권의 길을 열어가고 있지요. 모두 타산지석이지요.

    A씨=재신임의 원인(遠因)은 국회와 언론의 환경 악화, 호남권 민심의 이탈이며, 근인(近因)은 검찰수사의 직진(直進)이 도덕성의 고지를 공략해온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검찰의 독립론, 견제론이 혼재한 가운데 고검 검사장의 청와대 비판, 지검 부부장의 송두율 구속론, 일선 검사의 상부 방해론 등 바뀐 세상, 달라진 검찰의 홀로서기가 새 모형으로 다듬어진다면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경계상황이라고 할까요.

    C씨=대통령 임기 5년 중에 처음 2년이 큰 터를 잡는 황금기인데 8개월이 돌처럼 흘러가고 4·15총선도 벅찬데 대선 비슷한 소모적인 공방이 벌어질 판이니 멍들어가는 민생은 뒷전에서 누구를 붙들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A씨=‘미워도 다시 한 번’이냐 ‘안 되는 줄 알면서’냐의 대회전은 임기 초에 임기말 증후군으로 어지러워지고 재신임되어도 외풍은 몰라도 정가의 가풍까지 크게 바뀌기가 힘들다면 정치 비효율의 짐은 국민이 져야 할 판이니….

    B씨=재신임을 얻지 못하면 60일 안에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되고 총선까지 겹치면 선거 풍년의 대차대조는 어떻게 될지….

    C씨=지난 대선 승리의 51% 지지는 팽팽한 긴장의 표출이고 푸근한 행보의 주문이었는데…. 민주당의 분당, 신당 창당이 우군의 절반을 반군으로 돌렸고.

    A씨=‘호남 유권자에게 큰 빚을 졌지만 호남 국회의원들에게 빚진 것 없다’는 노측과 ‘분당과 탈당은 호남에의 배신’이라는 반노측의 내분에 호남권 지지도가 30%대로 밀린다면 신당이 기대하는 부산, 경남권 지지도는 보상이 되는지….

    B씨=영남권 국회의원 64명(정몽준 의원 제외)이 모두 한나라당이고, 호남권 의원 29명이 모두 민주당인 지역주의는 극복 해소되어야 할 명제지만…신당이 명분론에서 지역주의 타파보다 노무현당이라는 역공에 휘말린 상태라고 할까요.

    C씨=인사의 폐쇄성에다 사람과 말의 돌출 독선이 일파만파의 재난을 자초하는 실인심(失人心) 사태가 악재로 이어지고.

    A씨=‘대통령-공화당, 국회-민주당’같은 미국식 형태가 한국정치의 분화균형 형태로 들어서고 국회는 두 정권에 걸쳐 한나라당이 과반 가능한 제 1당인 상태에서 김대중 정권은 2당+3당으로 대처한데 비해 노정권은 2당-3당으로 헌정사상 가장 소수의 집권당을 자초해서 무력상황이 되었으니….

    B씨=‘범인(凡人)의 상식을 넘어서’라는 행로에서 보면 신당의 낙동강 교두보에서 재신임을 인천상륙작전으로 삼아 수도권에 새 바람을 기대하는지도 모르죠.

    C씨=민주당의 불모상태였던 부산에서 청와대 입성의 대반전을 자산으로 ‘꿈이여 다시 한 번’의 행운에 기대고 있다고나 할까.

    A씨=세태변화를 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적은 수의 사람이 많은 힘을 갖고 오랜 기간 누렸던(少多長) 시절에서 많은 수의 사람이 적은 힘으로 나누어 짧은 기간 일하는(多少短) 방향으로 바뀌는 변화가 두드러지지요.

    B씨=지방자치가 한 예이고 행정부의 독주 대신 입법부와의 협주 내지 합주가 불가피한 세상으로 가는데….

    C씨=정당의 집단지도체제, 지휘부의 직선제 등이 이루어졌으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의 국민경선이 논란상태이고, 부작용이 있지만 밀실공천의 폐단에 견준다면 그 길밖에는… 하는 의견들이 다수인 듯, 미국식 원내 정당화는 말만 무성하네요.

    실천전략 없는 ‘2만달러’는 불신 구호

    A씨=대북관계에서 특검 도입으로 일방성, 폐쇄성 해소는 진일보했다지만 쏟아지는 북한난민을 보면서 만반의 태세가 정치권의 몫이어야 할 수밖에.

    B씨=정부와 조중동의 열전은 민심 이반을 자초한 게 아닌지…인쇄매체가 아무리 반대해도 대통령에 두 차례나 당선됐으니 TV 등 영상매체에다 인터넷의 힘이면 된다는 판단인 듯하지만.

    C씨=선진국에선 언론이 특정 정파의 지지를 표방해도 실제는 비교적 형평을 유지하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공정을 내세우는 언론이 더러는 편파시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정들이….

    A씨=정치비리가 워낙 앞서 가긴 해도 경제분야에선 SK만이 문제인가? 자주 불황 탓으로 돌리지만 기업의 선단식 체제, 변칙적 세습경영 등에 대한 대응이 기대 미흡이라는 지적들이 적지 않지요.

    B씨=좋은 경제는 좋은 민심의 필수요건인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전년비 3%대에서 2%대로 맴돌 전망이고,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2차 석유파동때인 1980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니…. 고임금 과격노조의 실력쟁투로 한숨소리가 늘어나고 직장이 문닫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소리도 높지요.

    C씨=국민 1인당 한해 소득 1만달러 목표가 1995년 이후 제자리 걸음인데 실천전략 없는 2만달러는 불신의 구호가 아니냐는 비판을….

    A씨=당국자들은 고충을 얘기하지요. 정권에서 구조조정한다고 공익자금 150조원을 써버린 상태에서 경기 일으킨다고 벤처풍(風), 카드풍, 투기풍, 저금리풍을 잔뜩 부풀려놓고 300만명의 신용불량자, 3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과 춤추는 부동산시장이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으니 하는 푸념들이지요. 그런 어려움들의 해결사로 정권을 탄생시켜 신천지를 기다렸는데, 이 어찌….

    B씨= 총체적 접근 없는 20여 차례의 단발성 부동산대책은 할거행정 ‘시스템 다운’의 표본처럼 돼버렸지요. 투기가 단기 폭리를 노린다면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은 없을까요? 아파트 청약권을 보유기간별로 무리를 나눠 우선순위를 주거나 주택양도세도 보유 10년 기준이라는 한 가지 구분보다 다양화한 장기투자 유도책은 없는 것인지요.

    C씨=여러 정권마다 시작은 장대했지만 끝이 미미한 것은 언리행난(言利行難)이라고 할까. 정권도 불가능한 백화점식 실적보다는 가능한 전문점식으로 국력을 키워가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이젠 되새기겠지요.

    [연고 대신 자질 중시하는 ‘통 큰 정치’ 하라]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서울대 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대통령은 일개 정치인으로 있을 때부터 영호남간 분열과 지역갈등을 한국정치가 해결해야 할 가장 가슴 아픈 문제로 인식했을 뿐 아니라, 지역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통합의 정치를 대통령후보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지역갈등을 해결하려는 그런 단호한 의지와 결연한 행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열과 갈등은 대통령의 1차적 책임

    그런데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후, 이 나라의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 땅은 지금 지역갈등을 넘어 세대갈등, 집단갈등, 거기다 이념갈등까지 격화되어 온 나라가 중심을 잃고 분열과 갈등의 격랑에 휩싸여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의 의도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이 조성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이른바 수구언론과 수구 정치집단과 그 지지세력의 탓”이라고 노대통령 지지세력은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의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1차적 책임을 국정의 최고지도자에게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옛날에는 흉년이 들어도 임금의 탓으로 여겼다. 천재지변도 아닌, 분열과 갈등이라는 인재(人災)의 책임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묻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열과 갈등의 격랑 속에서 국가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가 추락하여 또다시 빈곤의 수렁에서 헤매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국민의 마음속을 파고들고 있다.

    이 어찌 서민들만의 걱정거리이겠는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번뇌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입가에서 ‘대통령 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하는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때를 아는 사람이다. 때에 적합한 생각을 할 줄 알며, 때에 알맞은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오늘은 어떤 때인가? 문명의 대전환기를 향해 용틀임하는 때다. 이 엄청난 격변의 시대에 지난 시절 유행했던 그 어떤 생각의 한 가닥을 잡고 그것에 의해 세상을 요리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격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착상이요, 새로운 시각이요 새로운 생각의 틀이다. 어제의 틀은 어제로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어제 같은 뜻을 가졌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것도 아름답다’는 생각 아쉬워

    정치의 요체가 사회통합에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그런데 나이가 다르다고 빼버리고 코드가 다르다고 빼버리면 남는 것은 분열뿐이다. 사회통합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자기와 다른 것에서 자신의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배우려는 데서 진정한 사회통합은 시작된다. 같은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획일주의요, 배타주의다. 다른 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하며, 그리하여 자기를 살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참된 사회통합의 전제조건이다.

    우리가 참으로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다른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것은 뺄셈의 정치가 아니며 덧셈의 정치다. 분열과 갈등이 격화되는 나라에서는 경제도, 국가안전도 결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지금 어떻게 이 나라를 분열과 갈등으로부터 구해내느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렇게도 안타까워했던 지역분열과 갈등으로부터 우리 정치를 구해내겠다는 그의 생각과 동일선상에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현실은 그 정반대라는 것이다.

    노대통령을 아끼는 사람들은 그가 처한 지금의 곤경을 히딩크가 초기에 처했던 곤경에 빗대어 바라보면서, 히딩크가 최후에 대역전한 것처럼 노대통령의 대역전 쾌거를 상상해보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대역전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그 모양 그대로를 그냥 밀고 나가면서 역전의 때가 오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려 한다. 나의 예견으로는 그와 정반대의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의 분열과 갈등의 상황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역전은 통 큰 정치적 결단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통 큰 정치란 대화해를 통한 대탕평의 정치다. 대화해란 과거에 대한 고백과 용서를 통해 서로를 끌어안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적어도 해방 후 우리 사회는 반칙(反則)이 정상으로 통하는 반칙사회였다. 반칙사회에서 사는 사람 치고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대로 돈을 크게 벌었거나 권력 근처에서 왔다갔다 한 사람 치고 엄정한 사정의 칼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상황 아래서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집권만 하면 법의 이름을 걸어 서로를 죽이려 든다면 결국 나라는 풍비박산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옛날 몽골로 끌려가서 ‘더럽혀진(정조를 잃은)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홍제천(弘濟川)’의 의식 같은 통과의례라도 만들어 모두가 새로운 깨끗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두웠던 시대를 살면서 더럽혀진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위대한 시작의 출발점에 서야 한다.

    ‘홍제천’의 교훈 배워라

    노대통령이 만일 이같이 대화해와 대탕평의 계기를 마련한다면, 우리나라는 분열과 갈등의 수렁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가는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선행시켜야 할 것이다.

    첫째, 그동안 인간 노무현씨를 자연인으로부터 한국의 최고지도자로 만드는 데 헌신해온 사람들 가운데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원하는 정당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노대통령과의 옛 인연을 끊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대통령이 모든 정당으로부터 중립적인 등거리에 위치하도록 한다.

    둘째, 대화해와 대탕평의 정신에 따라 이제까지 노대통령과의 정치적 연고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업무능력과 직위에 상응하는 사람됨의 자질에 따라 함께 일할 새로운 팀을 구성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됐을 때만 대화해와 대탕평의 통 큰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운영의 성패는 국민생활의 성패와 직결된다. 국정운영의 실패는 대통령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국정운영 실패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국정운영 성공은 곧 국민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나의 두 가지 제안은 바로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한 국민의 간절한 목소리인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는 국제적 고립 자초할 것]이정빈 전 외교통상부 장관·외교협회 고문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국제정세와 환경을 잘 활용하여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가속화시키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과업은 우리 외교의 중요한 몫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부가 어떠한 외교 철학하에 어떠한 외교정책을 어떠한 방법으로 추진하고 있는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한 사람으로서 참여정부의 외교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첫째,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Nationalism)를 강조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국민통합에 크게 기여하는 면도 있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국제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정치이념과 법질서, 지정학적인 여건과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고 경제상황이 상이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제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당연히 이러한 문제들은 한 나라만의 국익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으며 관련국가간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서로 ‘주고받는(give and take)’ 교섭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주체사상을 앞세운 채 특이한 정치체제를 구축해 온 북한은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고, 이러한 외교적 고립은 경제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주민들을 기아선상으로까지 몰고갔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국제사회가 배격하는 핵무기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1970년에 중동 산유국 중 한 나라가 종교 민족주의를 앞세운 정책을 추구한 결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자국의 경제 상황을 최악의 상태로 몰고갔던 사례는 지나친 내셔널리즘이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호실리 통한 공생 지향해야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국익 우선이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입장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하자원이 없고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는 외국과의 무역 거래를 확대하고 외국의 투자를 끊임없이 유치하지 않고는 경제발전을 이룰 수가 없다. 국제사회는 경제논리에 관한 한 일방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상호 실리주의에 따라 공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둘째, 우리나라처럼 중위권 국가(middle power)가 어떠한 외교 현안에 관한 입장을 미리 공개하고 추진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극히 통제된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국가는 국민적 지지없이 외교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없다. 이는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외교적 현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공론화하여 국민여론을 수렴한다든가 외교책임자가 자국 입장을 사전 공개하여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유리한 교섭 결과를 유도하는 것은 훌륭한 접근방법이다.

    그러나 관련 국가들과 비공개 협의를 통해 사전조율을 거쳐 입장을 정립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입장 표명을 했다가 관련 국가들이 동의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경우, 이는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정책에 대한 신뢰 문제를 야기시킬 수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국가의 신의를 크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당사국과의 사전 비공개 교섭을 통한 설득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세계 최강대국의 공개외교도 때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셋째, 우리의 국력에 비추어볼 때 중요한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특히 복잡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주요 외교 협력국의 도움이 필요한 바, 우리의 최대 협력국으로 오랫동안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대외관계가 복잡·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또 미국 외 한반도 주변 관련국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주요 외교 협력자를 달리할 필요도 있겠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 우리나라가 추구하고 있는 정치이념과 경제체제,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질서 등 제반 요인을 감안할 때 미국과의 외교적 협력 없이는 주요 문제, 특히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의 해결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한미동맹 중요성 재확인해야

    우리나라가 지난날 무력침략을 받아 국가안위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같이 피를 흘리면서 이 나라를 지켜주었고 현재도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 안보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우리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자금을 제공하여 주고, 수백만의 우리 동포들에게 행복한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고 있는 나라가 미국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최근 일부 계층에서는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며 주요 외교협력국으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거명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하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넷째, 외교문제는 국익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독립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외교분야에서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어왔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축적된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 외교는 신생독립국으로서 국제무대 진출,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 국가안보와 경제재건, 국제 냉전체제하에서의 대결외교,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외교, 외환위기 극복, 문화와 스포츠 교류 등 여러 분야에서 값진 경험을 쌓아왔다. 참여정부 역시 이러한 값진 외교적 자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돼 온 외교적 시행착오를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질서는 국내 상황과는 관계없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외교정책이 잘못 입안, 추진되고 이로써 국제사회와 궤를 같이할 수 없다면 선발 개도국의 지위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우리에게는 크나큰 국가적 손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 국정위기는 심화]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한서대 노인복지학과 초빙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7개월여만에 재신임을 묻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누가 봐도 그는 현 국면에서 국정운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정혼란과 국민 불신의 문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인식은 국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른 것 같다. 현재의 난국이 야당과 언론의 국정 흔들기에서 비롯됐다는 노대통령의 인식과 참여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대다수 국민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재신임투표 진행 여부와 무관하게 이 문제를 잘못 인식할 경우 문제해결의 방법을 엉뚱한 데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은 이미 그 해법을 야당과 언론문제 해결에서 찾고 있고 정치자금 문제를 전면적으로 파헤쳐 정치권 새 판짜기에 시동을 걸었다. 재신임 카드는 이 작업의 돌파구다.

    그러나 노정권 출범초부터 주변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일 아닌가. 따라서 필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야당과 언론의 지나친 공격도 문제지만 국정운영을 책임진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하고 국민 불만의 원인을 신속히 해소해 나갔다면 외부환경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재신임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든 당면한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제대로 찾는 것은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중요한 일이기 이전에 국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지난 7개월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7개월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국정위기는 심화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진행된 청와대와 행정부의 관계 변화,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자율성 강화 조치, 지방분권과 자치제 권한 강화, 토론과 참여의 기회 확대 등의 작업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관한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일정한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호’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우려는 점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국정 중심을 몰라…톱 이슈 없었다

    나라를 운영하는 최고지도자는 국정운영 목표와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7개월 동안엔 사건만 끊임없이 일어났을 뿐, 가장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려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말하자면 톱 이슈 없이 세월만 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북핵위기 해소에 집중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의 태도가 그랬다고 믿을 국민은 별로 없다. 북핵위기 해소를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로 설정했다면 국가안보를 위한 대책기구를 가동하고 국민들에게 위기상황을 진솔하게 알리고 대처원칙을 명확히 한 뒤 다각적인 국내외적 활동을 전개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북핵해법을 둘러싼 한미간 이견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조야와 언론 학계 기업 등 다양한 계층과 집단에 접근해 한국정부의 원칙을 설득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외교부조차 담당부서를 제외하곤 거의 손 놓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미국의 조야를 설득한다는 건 애당초 난망한 얘기였다.

    지난 7개월 동안 철도· 물류 화물연대 파업 지하철 참사 등 대형시위와 사고가 빈발하면서 당면현안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도 이런 문제에 집중됐다. 그러다보니 톱 이슈가 실종된 채 갈등해법을 둘러싼 부처간 이견은 물론이고 국론분열 양상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어느새 국민들은 국정의 중심이 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든 곧잘 일어나는 현상이다. 야당과 적대적 언론에 의해 집권세력의 국정과제들이 혼란에 빠지고 표류한다. 야당은 끊임없이 집권세력의 실정을 비난하고 중요 현안에 대한 이슈를 선점하려 한다. 언론도 비리와 정책의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국민의 관심을 끌려 한다. 그럴 때마다 최고지도자는 톱 이슈를 제시하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기울임으로써 야당과 언론의 여타 이슈를 왜소화시키고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실패했고 거꾸로 야당과 언론이 제기한 문제만 부각되고 말았다. 북핵위기와 경제난이라는 톱 이슈에 제대로 집중했다면 국민불신과 국정혼란은 최소화됐을 것이다. 톱 이슈를 세련되게 밀고 나가는 수준이라는 게 기껏해야 국정의 표류상태였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톱 이슈를 장악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경제사정이 좋았다면 야당과 언론의 공세는 트집잡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고로 백성들은 ‘함포고복(含哺鼓腹)해야 태평성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과 1∼2%의 국민만 재산이 증가하고 대다수 국민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은 올해 성장률 ‘3% 이하’라는 수치가 단적으로 증거한다. 국민들의 실생활은 이 수치보다 훨씬 어렵다. ‘IMF 언니’라는 말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참여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경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 경제문제 해결을 북핵위기 못지 않은 국정과제로 삼았어야 했다. 불행히도 참여정부 경제팀은 이라크전쟁에 따른 일시적 곤경이라고 안이하게 인식하다 기회를 놓쳤다. 경제팀의 한계를 대통령이 자신의 지도력으로 극복하지도 못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우선 노대통령은 공정한 분배에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둔 것은 아니었을까? 조세전문가를 경제부총리에 앉히고 분배 전공학자를 경제정책의 최고 결정라인에 배치한 것을 보면 노대통령의 초기 인선구상을 읽을 수 있다. 경제팀의 컬러가 이러했기 때문에 구조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성장전략의 수립, 섬유 철강 화학 등 각 제조업종별 당면문제의 신속한 해결, 신산업분야의 추진상황에 대한 점검과 대책 등을 꼼꼼하게 집행해나가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국민 불만의 광범위한 점증이다. 정부가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도, 문제 해결을 위해 씨름하는 모양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가계소비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시중자금은 저금리 조건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에 몰려들었다. 잇따라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참여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야당과 언론의 지나친 공세가 계속됐 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해법이 정치권의 완전한 새판짜기나 언론과의 소송은 아닌 것 같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그런 접근방식은 실패하게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을 넘어선 방식, 즉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정치개혁을 내세운 국민투표 방식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설사 정치권이 합의해서 국민투표를 거쳐 정치판이 바뀐다고 해서 국정운영의 질이 변화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일정한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혁명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완전한 새 판을 짜겠는가. 부정부패나 불법선거자금 모금에 완전히 깨끗한 인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제부터 참여정부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추상적인 정치논쟁이 아니라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제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온 힘을 쏟는 것이다. 이 출발선에서 보다 폭넓은 정치와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농업 경시 시스템부터 고쳐라]정시채 전 농림부 장관 · 전남 사회복지협의회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21세기 새로운 농업여건에 따라 농정 추진체계에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농업은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국가의 기본산업이요, 생명산업이다. 이 점에서 경제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과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또한 새로운 농업환경에 맞는 정책 수립과 그 실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농정에 관한 발전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히려 농정의 지원체제만 약화시켰다. 특히 내년도 농림분야 예산을 0.7%만 증액함으로써 역대 정부가 평균 5% 증액한 것에 비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농정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정부는 ‘농업이 살아야 정부가 안정되고 국가가 산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다음 사항들을 개선 또는 보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행정구조와 관행은 국가의 중요 정책을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직접 챙겨야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화당 정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정책 면에서 수출주도형 중공업 정책을 택하면서도 식량의 자급화라는 강한 의지를 관철해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 농업담당 수석비서관제를 신설했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농업정책을 챙기고 지원체제를 강화한 결과 1970년대에 주곡인 쌀을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 보릿고개를 없애고 가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청와대 농업비서관 없어져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으로 농업이 위기에 처하자 김영삼 정부는 폐지되었던 농업 수석비서관제를 부활하여 WTO체제 출범 이후에 대비한 42조원 규모의 제1차 농업구조개선사업을 입안하고 WTO 협상 후속조치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청와대 농업담당 수석비서관제는 다시 폐지되고 2급 상당 농업비서관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청와대에 수석비서관제는 물론이고 농업비서관제마저 폐지하고 서기관급 행정관 1명만을 둠으로써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사실상 농업비서관제가 없어졌다. 이는 우리 농업의 장래를 위해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림부 조직 및 편제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농림부 기구는 전통적인 농업국가 하에서 식량의 자급화를 위한 생산과 공급 위주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농산물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해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품질을 고급화하고 포장도 세련되게 고쳐나가야 할 때다. 그러므로 농업의 구조 역시 소비와 유통 위주로 바꿔야 하고 이에 맞춰 농림부 기구도 유통과 식품가공 및 개발에 중점을 두는 조직체계로 바꿔야 한다.

    특히 농수산물 수입개방으로 인해 WTO체제 출범 이후 농업에 관한 대외협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농림부 조직체계에서는 국제농업국이 이를 관장하면서 1급 상당의 통상정책관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통상정책관 제도는 사실상 공식기구가 아니고 일시적인 기구에 불과하다. 앞으로 농업분야에 관한 국제통상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해나갈 공식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농림부와 다른 경제부처와의 업무 영역 조정도 중요하다. 농어촌복지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 보건복지부, 농업 분야 예산 편성과 관련이 있는 재경부, 농촌 교육문제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교육부, 그리고 지역개발사업과 관련 있는 행정자치부 등과는 항상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당장 농어촌특별세 시한 연장 문제를 놓고 부처간 갈등을 빚고 있다. 농특세 문제는 농민의 입장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WTO체제 출범 이후 정부는 42조원 규모의 구조개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대책으로 농특세법을 제정하여 시행해왔으나 내년 6월이면 그 시한이 만료된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농특세 시한을 5년 연장하는 법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농림부와 농업계는 도하개발어젠더(DDA) 협상 이후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적극적인 투·융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최소한 10년은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농업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농업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농특세법의 시한은 마땅히 10년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식품관리 체계도 현재 농산물의 생산과 출하까지는 농림부가 관장하고 유통과 소비 분야는 보건복지부가 관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계가 모호할 뿐 아니라 어떤 농산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역추적해야 할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농산물에 관한 한 전문성이 있는 농림부가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부처간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한편 농림부가 농어촌 교육, 복지 등에 관한 농어촌 특별법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회에 제출했으나 보건복지부와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농림부 법안에 소극적이었던 복지부가 ‘농어촌 지역주민의 보건의료 및 복지 증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뒤늦게 나섰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이에 관한 입법에 착수했다. 결국 농림부가 추진한 특별법 제정 작업에 복지부 등이 뛰어들면서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양상이 됐다.

    그러나 이 법안은 적지않은 예산을 수반할 뿐 아니라 정부 각 부처가 서로 관련되는 법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농림부를 중심으로 하여 범정부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농업시장 개방을 앞둔 노무현 정부에서 농정 운영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것이 시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감성적 리더십 바람직하나 신뢰감 못줘]정해주 전 국무조정실장·진주산업대 총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출범 7개월밖에 안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시스템을 평가하고 조언한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한지, 또 나와 같은 사람이 과연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의문이 든다. 다만 지난 정부에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감히 몇 마디 드릴까 한다.

    우선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려면 참여정부의 탄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출범의 태생적 배경이 지난 국정운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참여정부가 탄생한 2002년은 한국민의 역동성이 가장 크게 분출된 해였다. 한국정치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이 있었고, 월드컵 4강 진출과 부산아시안게임, 촛불시위, 네티즌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참여열기가 대단했다. 모두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그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소수파,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의 목소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이들의 목소리를 수렴, 통합하여 이를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는 집단이기주의로 발전해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국정난맥상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참여정부는 개혁의 기치를 들고 개혁적 인사를 주요 포스트에 세우고 개혁의 틀이라는 패러다임을 줄곧 강조해왔다. 국가사회의 어느 조직이든지 그 조직이 새롭게 발전해나가려면 변화와 개혁은 필수다.

    그러나 개혁은 구호나 의지만 가지고는 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틀과 프로그램을 잘 짜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추진해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혁을 하려면 개혁하고자 하는 목표와 비전이 분명하게 전달되고 구성원 모두에게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 개혁으로 당장에 고통이 오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나도 잘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실천프로그램, 즉 개혁의 잣대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왜 나만 손해보느냐 하는 의구심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성원의 합의와 공감대를 도출하는 것이다.

    개혁의 목표와 실천프로그램에 대한 기탄없는 토론과 대화로 최대공약수를 도출하고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개혁의 성공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그룹, 가진자, 기득권자가 먼저 고통을 분담했음을 상기하자.

    이같은 관점에서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는 처음부터 차질을 빚고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본다.

    우선 개혁을 위한 국가적 어젠더가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과거 ‘수출만이 살길이다, 잘 살아보자’라는 국가적 어젠더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어젠더로 350만명이 넘는 국민이 금모으기에 동참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처럼 분명한 국가적 어젠더가 보이지 않는다. ‘소득 2만달러 시대를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만이 동북아시아시대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 최상의 과제라면 이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개혁조치와 갈등 해소에 이를 잣대로 설득하고 조치해나가야 한다. 이 점에서 참여정부는 치밀한 전략적 대응과 국민적 설득이 부족했다.

    물론 이에는 언론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언론보도도 국가이익 우선이라는 차원에서 국가적 어젠더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또한 국가나 기업, 대소 조직을 끌고 가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조직 발전에 핵심적 요소다. 지도자는 조직을 끌고 갈 수 있는 핵심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이에 더하여 21세기형 리더십은 낙관적이고 개방적이며 열성적인 감성을 지녀야 한다.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하드 파워보다는 대화와 설득에 의한 소프트 파워가 훨씬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감성적 리더십은 새로운 시대변화 흐름에 맞다고 본다.

    다만 이런 리더십이 성공하려면 대화와 설득에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일관된 논리로 국민에게 확실한 신뢰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에 비쳐지는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이러한 면을 볼 수가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할 뿐이다.

    [‘견습정권’은 猛省하라!]주돈식 전 문화체육부 장관·세종대 석좌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오늘까지 지켜본 노무현 정권은 국사 처리의 미숙성과 정권 내부의 조율 미흡 등 한마디로 ‘견습정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간판 있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대략 몇 개월간 견습기간을 둔다. 이 기간엔 우선 회사의 짜임새와 전통을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처리에 대해 파악하는 일이다. 견습기간을 훌륭하게 마치기 위해서는 입사 선배와 전임자들의 설명과 조언이 필요한 때가 많다.

    예측불가능한 노무현 정권

    그런데 노정권의 담당자들은 이러한 조언과 설명을 무시하는 것 같다. 정권 부근에 있어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 오로지 ‘하면 된다’는 발상과 의욕으로 국사에 임하고 있다면 엄청난 시행착오를 가져올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독일의 야당이었던 사민당 당수 빌리 브란트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과 연정을 펴기로 합의한 뒤 한 말이 있다.

    “집권에 참여해보아야 국민이 다음에 우리를 믿고 표를 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결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연정 후에 사민당은 집권에 성공했다.

    심지어 호두 하나를 깨먹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한 법인데 하물며 정권의 경우라면 어떻겠는가. 노정권은 이 노하우에 너무나 둔감한 것 같다. 그러기에 나설 사람, 안 나설 사람의 구분이 없고,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는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다.

    이라크 파병 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종결정이야 순리에 따른 절차를 거쳐 이뤄지겠지만, 청와대 측근 참모들이 불쑥 말을 했다가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아지자 “술 먹고 한 말이다”고 발뺌을 했다. 그것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수천 명의 생명이 관련돼 있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명제인 이라크 파병 문제를 술 먹고 취중에 논할 수 있는 배짱이 놀랍다. 하기는 대통령 자신이 이렇게저렇게 말을 자꾸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보니 누구를 문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노무현 정권은 집권 캐치프레이즈가 ‘참여정부’다. 그러나 참여는 조용히 그리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정반대의 말들이 집권층 내부로부터 불쑥불쑥 터져나오면 국민들은 이를 참여라 보지 않고 중구난방이라 볼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서 놀랄 만한 말들이 튀어나오니 정권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해서 ‘개구리’ ‘럭비공’ 등을 인용하는 말들이 나온 것 같다.

    이런 일이 거듭되니 국민이 이런 사례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지 않고 정권에 대한 신뢰성이나 안정성과 연결시킨다. 그것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정권에 대한 국민 불안의 더 큰 요인은 이 정권의 이념적 투명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송두율 교수와 관련된 사항도 그 하나다. 한 공안장관은 송교수 문제와 관련해 처벌에 미온적인 발언을 했고, 국가정보원은 불기소 의견을 내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송교수 사건을 시발점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 보았다. 그가 입국하도록 누가 최종설득했는지, 그가 입국한 후 가벼운 처벌을 받고 끝난다면 다음 단계에는 이를 선례로 기천명으로 추산되는 해외의 반체제인사, 친북인사들이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있지 않은지 등이 그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은 결국 자신이 거주하는 제3국에서 북한과 남한을 자유왕래하는 형식이 된다. 그런데 그들이 북에 가서는 아무 말도 못하든가 안 하고, 남에 와서는 큰 목소리로 북을 일변도로 칭송하는 경향으로 흐를 때 우리의 안보이익이 잠식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정권의 부실 운용과 이념의 불투명성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노정권의 지지율은 30%선, 또는 그 이하로 하락했다. 이런 현상이 시정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친노조 정책 때문에 해외로 이주하고 있으며, 배고픈 실업자는 늘고 있다. 특히 희망을 안고 대학을 졸업하는 고학력 실업자가 점증하고 있다. 졸업하면 곧 실업자가 되는 과정을 잠시라도 피해보고자 졸업을 연기하고 있는 학생도 점점 늘고 있다. 식자(識者)들은 만나면 노대통령과 정부의 비정과 과오를 ‘안주’로 화제를 이어간다. 이런 일이 과거 어느 정권때보다 더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통합 이끄는 강력한 구심체 아쉬워

    나라가 힘있게 전진하려면 정권이 국민이 단합하는 강력한 구심체가 돼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뿐 아니라 많은 인사들이 강조하는 바이다. 기업을 꾸려가는 사업가, 지식인, 일반 서민 등 국민의 다수가 지도자의 언행에 회의와 불안을 갖는다는 것은 효과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증좌이다. 이러한 반대정서는 국민들 사이에 급속히 파급되게 마련이다.

    노정권은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견습을 잘못 마친 사원은 정규사원으로 채용되지 못한다. 견습기간이 끝나가는 노정권에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책임정치와 비전 제시 아쉽다]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한림대 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참여정부가 출범 8개월 만에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지는가 하면, 급기야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참여정부가 이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탈권위주의적이어서 말을 너무 쉽게 하기 때문에 스스로 권위를 잃어가고 있고, 이것이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특성론은 국정운영의 전체적 상황에 비춰보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정치구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정을 수행하는 행정부와 입법부 등 기본 틀은 변함이 없는데 새 정부 이후 정치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구도란 대통령 중심의 책임정치 구도, 국민여론의 환경구도, 정책의 정치기능화 구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정치구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대통령 중심의 책임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중심제 하의 우리나라 정치는 강력한 대통령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싫든 좋든 그것이 우리 정치문화의 전통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부터 이러한 정치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사실상 여당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 민주당은 지금 둘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있는 형편이다. 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해 무당적 상태다. 이처럼 정책을 지지해주는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내각이 책임진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중요한 국가정책에 대해 대통령이 의회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기반이 약한 정치구도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책임정치를 펴나가기 어려운 구도다. 여당이 이처럼 모호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누가 지키며, 누가 정책화하는가? 선거공약마저 챙기지 못하는 정치구도 하에서 책임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참여정부가 국정운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책임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정치구도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투표에 의한 재신임’이나 내년 총선은 이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여론환경이 나빠지고 있다. 노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국민여론에 의지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조직만 하더라도 국민여론을 듣는 기구를 여러 개 둘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여론은 출범 후 점차 악화돼 왔다.

    [국정쇄신의 재출발 기회 돼야]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중앙대 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는 말들이, 그것도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서 자주 들린다. 하물며 그를 싫어했거나 반대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불문가지다.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냐고 성급하게 질책하는 소리도 들리고, 아니면 빨리 5년이 지나갔으면 하는 말마저 서슴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10월10일 노대통령의 국민재신임 선언은 환골탈태의 국정개혁 재출발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그럴수록 지난 8개월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필마단기(匹馬單騎)나 다름없이 극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대통령 주변에 386세대로 대표되는 프레시맨들이 대거 포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자는 의욕이 충천하고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정책도 대폭 뜯어고치자는 의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결같이 의도(意圖)와 객관(客觀)이 불일치하고 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사보타주도 심하지만 지지계층의 성급한 개혁 요구도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코드연(緣)에 얽힌 집단폐쇄성이 문제

    그러나 대부분 정책의 시행착오는 준비(실력) 부족 때문이다. 우왕좌왕 현상은 사전, 사중, 사후의 우군 확보에 실패했음을 뜻한다. 용두사미로 끝남은 철학과 비전과 어젠더(agenda)의 불비함에서 기인한다. 총론에는 강하나 각론엔 약한 것이 운동권의 특징이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모두 나의 적(敵)이며, 나와 우리 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나 남의 잘못에 대해선 추상같은 것이 개혁주체의 관성이다.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른바 코드연(緣)이기 때문이다. 피아의 구별을 위한 코드 챙기기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와 우군 축소 현상을 초래했다.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를 ‘(국민)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정운영방식을 시대변화에 맞게 시민 참여하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참신하고 시의적절한 패러다임이었다. 그럼에도 국정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기를 개혁드라이브의 동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은 코드연에 얽힌 집단폐쇄성 때문이었다. 결국 ‘당신들만의 천국’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참여정부 8개월의 국정운영 교훈이다.

    개혁의 준비가 부족했다면 준비된 경험과 경륜을 갖춘 인재를 과감히 기용해야 했다. 우군이 적으면 다수의 국민들에게 개혁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그 역할을 대통령 혼자 떠안아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명색이 총리제도가 있고 장관직이 있는 이상 이들은 맡은 바 소임, 그리고 개혁의 3D 역할을 몸사림없이 도맡아야 했다.

    개혁추진에 따른 총알받이 역할을 기피하는 행정의 달인이란 있을 수 없다. 설익은 정책, 함량미달의 미숙한 인물, 처세의 달인들만 가지고는 총체적 국정 혼란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노·장·청년층과 보수·진보의 절묘한 배합이 필요하며 개혁주체의 전문성과 도덕성의 구비는 더욱 중요하다.

    주지하다시피 고질적인 정치부패와 당쟁은 우리나라 경제 언론 사회 종교 각 부문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국민통합, 즉 남남갈등과 남북대결 해소, 그리고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도 정권 초기에 해내지 못하면 권력기반의 누수현상으로 물 건너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가 부패 척결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다.

    마침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관련법안을 만들었음에도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연유인지 대선공약인 정치개혁법의 국회통과에 미온적이다.

    다른 한편 이유도 명분도 불분명한, 아마도 세계정치사에 초유라 할, 소수 여당을 쪼개어 분당하는 데 황금의 세월을 축내고 있다. 지역갈등 역시 심화될지 모른다. 이렇듯 분당에 이은 신당 출범에 국력을 훼손하다 보면 송병록 경희대 교수의 말(2003년 10월9일)마따나 노정권은 ‘정치개혁의 기회를 실종시킨 역사의 죄인이라는 낙인’을 면할 길이 없다.

    원래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만이 크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재임중 좋은 평가를 받은 예가 없다. 지난 1세기 동안 시련과 굴절의 역사가 정치에 대한 만성적 불만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쳐온 이념 대립, 세대 갈등, 지역감정의 3대 요인이 모두 부정적 여론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이념적 대립이 양성화되고 있다. 남북문제, 노동정책 등을 둘러싼 보수진영의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데 비해 진보진영의 지지여론은 바람막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세대갈등도 부정적 여론형성에 한몫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386세대를 중심으로 정치를 하고 실제 젊은층 중심의 인사정책을 펴나가면서 여기에서 소외된 세대의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지역갈등 요인도 해소되지 않은 채 여전히 부정적 여론형성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 노대통령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대통령선거 때 지지해준 호남지역의 여론이 돌아서고 있고 대통령의 출신지인 영남지역의 여론도 냉담하다.

    따라서 참여정부가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악화되고 있는 국민여론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특단의 정치적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정책의 정치적 기능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정책수행기능은 물론 내각이 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는 정책수행 면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참여정부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의 이미지를 바꾸고 정책기능은 내각에 일임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들이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와 같은 정치문화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정책의 정치적 기능으로서 중요한 것은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에 대해 책임지는 기능을 말한다.

    이와 같은 정책의 정치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정책기능이 중요하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청와대 조직은 이러한 정책기능을 수행하는 데 허점이 보인다. 행정 각 부의 기능을 전담하는 조직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통합조정하는 기능도 약하게 짜여져 정부정책의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행정부 공무원은 “뭐하나 되는 것이 없다”는 말까지 한다. 이것이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초래하는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복지정책의 예를 들어보겠다. 참여정부에서는 아직까지 복지정책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정책에 관한 대통령선거 공약의 이행 정도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복지정책으로서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제도를 완성하고 중산층 중심의 복지국가로 가는 기본적 틀을 만들었다. 국민의 정부를 계승한다는 참여정부라면 이렇게 만들어진 틀 위에 어떻게 집을 지어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하는 해묵은 논의만 하고 있을 뿐 성장과 분배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려가며 복지국가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복지정책의 철학에도 문제점이 엿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적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연히 서민을 위한 철학과 의지로 복지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과 의지가 담긴 구체적인 정책을 아직까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정책이 갖는 정치적 기능의 중요성을 깨닫고 청와대의 정책수행 및 조정기능을 보강하는 등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장관이 책임지고 해결하게 하라]최선정 전 노동부 장관 및 보건복지부 장관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참여정부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도를 넘을 정도로 좋지 않다. 서민층이건 중산층이건 심지어는 부족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부유층까지 정부가 하는 일이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 사회를 이끌어 온 주류들 대부분이 국외자로 소외된 채 도처에 냉소만 가득하다.

    도대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평판이 나쁜 것일까. 필자는 1971년부터 2001년까지 30년간 역대 정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실무자인 사무관에서부터 과장-국장-실장은 물론 청와대 비서관, 차관, 장관까지 두루 거쳤다. 이제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고 있는, 이른바 백수의 눈에는 참여정부가 이렇게 나쁜 평판을 들을 만큼 크게 잘못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 필자가 봉직했던 역대 정부에 비해 잘못하고 있다고 할 만한 일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내기도 쉽지 않다.

    정부를 못 미더워하는 국민들

    새만금사업,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 부동산 대책, 화물연대 파업, 이라크 파병, 북한 핵문제, 태풍 매미 등 몇 가지 현안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만한 현안들은 역대 어느 정부 시절에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현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늘 잘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혹자는 경제도 어렵고 노동정책도 잘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운 것이 어디 출범한 지 1년도 안 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동정책도 그렇다. 솔직히 지난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필자가 보기에는 적어도 노동분야와 보건복지분야 만큼은 필자가 재임했던 당시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분야 역시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과거에 비해 그다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참여정부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나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따져봐도 구체적인 정책이 잘못되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언론을 적대시하여 대립함으로써 손해를 본 측면도 있다. 또한 여소야대 상황이 빚은 정치적 여건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이미 집권 이전부터 예견됐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금 더 작은 것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참여정부에 대한 세간의 평판은 한마디로 ‘총체적 불신’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정부가 도무지 미덥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정부를 우습게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노동단체는 ‘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를 다 죽인다’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부는 더 이상 안중에 없고 막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미덥지 않고 나아가 우습게 보인다면 이는 곧 무정부상태나 다를 게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상황을 여기까지 이르게 했으며, 또한 어떻게 이 상황을 호전시킬 것인가.

    말수부터 줄이고 분수부터 지켜야

    우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정운영의 방식, 즉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첫째, 말수를 줄여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청와대 참모진과 각부 장관들이 너무 말이 많다. 일반적으로 말이 많으면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참여정부가 미덥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가볍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이 많으면 비록 맞는 말을 하더라도 좀처럼 믿음직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국정 운영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 말로써 경박스러운 인상을 주는 것은 곧 정부 전체가 가볍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분수를 지켜야 한다. 역대정부가 거의 다 그러했지만 참여정부의 각 주체들이 분수를 지키지 않는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청와대가 장관이 할 일에 앞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은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각자가 그 책임에 걸맞는 권능을 행사해야 정책의 혼선도 최소화되고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된다.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과 부처의 권능을 정부내 각 주체들이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이 100조원을 넘어서고 앞으로 조만간 1000조원대까지 늘어나면서 거대기금화할 것이 예상되자, 기금 운영 주체를 두고 정부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기금 규모가 너무 커서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기 어려울 테니 총리실로 이관하자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기금관리 업무를 그와 같은 거대한 기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제도를 입안하고 시행하며 정착, 발전시켜온 일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기금 운용은 연금제도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정부 스스로가 기금의 규모가 커졌다고 보건복지부에 맡겨놓기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느 누가 그보다 더 중요한 연금제도 운영 전반을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해 낼 수 있다고 믿겠는가.

    셋째, 장관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한다. 우스운 얘기 같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기가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애초에 장관으로 임명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일단 그 자질과 능력을 믿고 임명했으면 전권을 맡기고 권위도 세워주어야 한다.

    참여정부 초기 강금실 법무장관의 검찰 인사파동만 해도 그렇다. 그만한 일쯤이면 장관에게 맡겨 두었어야 했다. 다소 반발이 있다고 해서 성급하게 청와대가 나서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평검사들과 토론회를 벌인 결과가 무엇인가. 대통령이 장관의 뒤를 보살펴 준다고 한 일이겠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장관을 작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장관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면 이는 곧 정부가 작고 초라해져 미덥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지적한 세가지 고언은 사실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며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필자는 과거 경험에 비추어 이 사소한 일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노무현 ‘장관’ 시절 기억할지

    2000년 여름 어느날, 김대중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안건 심의를 마치고 당시 국정의 최대 현안이었던 의약분업사태에 대한 자유토론이 있었다. 여기에서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런 얘기를 했다.

    “이 문제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순간 국무회의장은 잠시나마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노무현 당시 해수부 장관의 말은 바로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사실 단군 이래 초유의 의사 총파업은 정부가 대응을 잘못해서 크게 키운 측면이 많았다. 사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보건복지부에 전권을 맡겨 두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공연히 청와대가 지레 겁먹고 나서고, 의료계 대표의 대통령 면담, 여야 영수회담 등을 거치면서 사태의 중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의료계는 보건복지부는 제쳐두고 청와대나 정치권만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태는 갈수록 악화일로를 걸으며 장기화하는 양상으로 번져갔다. 결국 애꿎은 보건복지부 장관만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필자는 사태해결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당시 노무현 장관의 발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다행히도 사태 해결에 관한 모든 권한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맡겨졌고, 비로소 해결의 가닥을 잡아 의·약·정 합의를 도출하게 됨으로써 사태는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장관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던 장관 시절 본인의 말을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천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국민 안심시키는 대통령 기다린다]최인기 전 행정자치부 장관·호남대 총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10월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현안으로 중대한 국면을 맞게 됐다. 외교·안보면에서는 북핵 처리와 이라크 파병문제, 정치적으로는 감사원장의 국회 임명 동의 거부를 포함한 대통령의 당적문제, 사회적으로는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문제, 송두율 교수 처리문제, 민생차원에서는 경기침체 극복은 물론 수도권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 급등, WTO 재협상문제 등 주요 현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취임 초기와 비교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외교안보분야에서 그러한 태도가 돋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6자회담을 기조로 북핵문제를 처리하려는 점도 그러한 예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참여를 통해 경제적 실익을 얻겠다는 것과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흘릴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신중히 검토하면서, 명분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전 참전국인 미국의 요청을 무턱대고 거절할 수도 없는 안보상 문제도 있다. 그래서 노대통령은 “파병을 빨리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고 있음을 내비쳤다.

    외교안보분야 제외하곤 국정 불안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국정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분야의 경우 노대통령은 지난 9월 ‘무당적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러나 한나라·민주·자민련 등 거대 야당과의 관계가 원만히 유지되지 못할 경우 그가 내세웠던 개혁은 실현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이 약화되면 사회분야에서 현안으로 제기된 부안 핵처리장의 원만한 타결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송교수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이념논쟁 역시 확대되어 국론분열로 비화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경제회생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으나 경제성장률은 3%를 밑돌고, 경기침체도 길어질 전망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부동산값을 잡겠다”는 노대통령의 공언이 있었지만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값은 계속 상승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제는 넓은 시각에서 현 상황을 냉철히 조망하고, 국가자원을 총동원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심정으로 국정을 추스려야 한다.

    제대로 작동 않는 시스템이 문제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검토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국정을 관리하는 정부의 인사틀을 재검토할 것을 권한다. 원만한 국정관리는 정부에 적절한 인사를 등용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물류대란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은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예다. 화물연대 파업의 경우 건설교통부가 전담할 일이 아니라 사전에 사회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와 충분한 공조가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소관업무에 한계를 짓고 책임을 회피하는 바람에 정부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심각한 물류대란을 야기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NEIS 파동 역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일이었다. 교육부는 시간이 흘러가면 NEIS가 정착될 것으로 판단하고 학교 재량에 맡기는 것으로 파동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NEIS 파동을 불러일으킨 국민적 피해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얼마 전엔 사표를 낸 행정자치부 장관 후임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양수산부 장관에는 차관을 앉혔다(물론 2주 만에 경질됐지만). 이 인사는 국민들에게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을 위한 인사로 비쳐졌지, 사회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 장관 임명에 신중을 기한 인사로 비쳐지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아무리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직접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국정의 대부분은 자신이 임명한 각료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각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만 국정도 원만히 운영될 수 있다. 전문가 그룹, 개혁적 인사, 그리고 중도적 덕망가를 정부 각 부처 각료로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 부류의 인사들이 각자 필요한 자리에 앉아 하모니를 이룰 때 정부는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역대 정권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도 불러 썼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최근 인사에서까지 ‘코드’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각료의 ‘전문성’은 대통령이 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21세기 최대 과제는 국가경쟁력이며, 이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두 부문의 경쟁력으로 결정된다. 내각의 각료와 공무원의 경쟁력은 바로 공공부문 경쟁력을 좌우한다.

    따라서 국가자원을 총동원해서라도 최고 또는 일류 경쟁력을 가진 사람을 각료로 임명해야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만일 각료로 임명된 뒤에야 일을 배워 국정을 처리하려 한다면 정책은 실패하고,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국가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반면 최고 경쟁력을 갖춘 프로(Professional)는 해당분야 각료로 임명되면 자기 직무에 대해 열정을 갖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그런 프로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소신과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주저없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노무현 정부의 각료 가운데 과연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선거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나 코드가 맞는 인물보다는 경쟁력을 담보하는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난국을 극복해야 할 때다.

    조정자 역할에 충실하라

    둘째,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좀더 중점을 둘 것을 제안한다. 노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아직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은 노조의 경영권 참여나 귀족 노조화 등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천명하지 않아 경제계에 혼란이 일어났다. 파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경제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노대통령도 지난 8개월 동안 정책의 일관성과 중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터득했을 것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최선의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최고의 정책을 선택하는 데 조정자 역할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무당적 대통령으로서 각 정파의 정치지도자들과 협의하면서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책을 현실화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정자의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다.

    셋째,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통령이 될 것을 요망한다. 대통령은 정치와 국민의 정점에 있다. 대통령이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하면 국민은 안심하지만, 정치권과 갈등을 빚거나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을 구사하면 국민은 불안해진다. 호남문제와 관련된 발언만 해도 그렇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되풀이해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해야만 했다.

    노대통령은 참여형 리더십을 지향하지만 지나친 적극성과 개혁적 마인드가 현실과 충돌하면서 불안을 가져온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이제 대통령의 역할을 모두 파악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우회해야 하는가도 알게 됐다. 이제는 원숙한 리더십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다. 그렇게 되면 국민도 난국을 해결하기 위한 현명한 지혜를 함께 짜낼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마인드]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및 통일부 장관· 외교협회 고문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정부의 외교에서 문제는 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mind-set)’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시대와 가치관의 흐름에 대한 인식, 주체사상과 민족주의에 대한 환상, 전문가 경시 등 노무현 정부가 갖고 있는 일련의 ‘생각’들이 우리 외교를 ‘빈곤한’외교로 만들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정권들은 대개 정권 초기엔 외교를 경시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군출신 인사들을 공관장급 외교관에 집중 배치한 기록도 있다. 공관장들이 충성심이 약하고 부지런하지도 겸손하지도 않다는 인식을 가진 탓이었다. 그러나 집권 경험이 쌓이면서 외교 내지 외교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외교에 대한 투자를 늘려, 외교망 확장과 외교관 훈련, 복지 증진에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외교 전문가부터 중용하라

    외교는 전문성이 강한 직업이다. 아무나 다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직종이 아니다. 누가 대사를 맡고 있느냐에 따라 본국과 그가 주재하는 나라와의 관계가 긴밀해지기도 하고 냉담해지기도 한다. 대사는 주재국의 생각을 파악해 보고하기도 하고, 본국의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하기도 하면서 양국간의 관계를 협력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 강화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외교관은 본국의 신임도 받아야 하지만 주재국의 신뢰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외교관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서는 세계 정세와 역사의 흐름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국내의 코드만이 아니고 국제사회의 코드를 잘 읽어야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은 중간국가는 세계 정세의 현황과 국제 여론의 흐름을 더욱 잘 읽고 있어야 외교의 방향을 제대로 정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외교의 시대에 외교관은 외교이슈와 우리의 외교방향을 국민에게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해 지지를 얻도록 노력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다. 이 때에 외교관은 정직하고 분명하게 설명하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작은 이익,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장래의 이익, 전체의 이익을 내다보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는 상호의존도를 높이며 일체화되는 동시에 경쟁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한번의 오판이라고 할지라도 후유증을 오래 남길 가능성이 크다. 외교는 국가경영의 일부이지만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따라서 국정 전반의 모든 정책 결정은 그 외교적 함축을 포함하여 토론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세계는 지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두 기둥으로 하여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안보와 평화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과 테러방지라는 두 기둥으로 세계규범의 기초를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과 움직임 속에서 우리 외교가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처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최고의 외교관

    북한이 왜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포위되고 있는가. 북한이 어떻게 이에 대응하고 변해갈 것인가.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남북한의 평화공존, 평화통일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국과 중국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하여야 하는가. 통일한국은 어떠한 가치관과 위상을 가져야 하는가. 이것을 어떻게 세계사회에 설명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의 외교과제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문제이다. 북한은 인권을 경시하는 일인독재국가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는 소멸하는 추세다. 우리 외교는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이것이 중간국가가 가지는 외교력의 한계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일부의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언론이 후세인의 몰락을 지지한 이유를 음미해 보아야 한다.

    농업정책이나 노동정책에 있어서도 우리는 개방된 자유무역의 흐름, 국제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의 중요성 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만으로는 글로벌 시대에 생존하고 번영하기 힘들다. 이제는 어떠한 나라도 섬나라처럼 고립되어 살 수 없다.

    나라의 최고 외교권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외교의 방향을 잡는 조타수이다. 대통령이 외교의 우선 순위를 옳게 잡아야 우리의 외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전문가를 더욱 중용하여야 한다. 글로벌 시대는 그 경쟁의 속도에 걸맞는, 활기찬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최고급 외교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경제(sustainable economy) 발전정책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노무현 정부는 뭔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이전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 극복에 전전긍긍하면서 완결하지 못한 재벌구조 개혁 등의 조치들이 새 정부 들어서는 아예 뒷걸음 치거나 방임돼 한국경제의 지속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뿐만 아니라, 비록 우리 경제가 외형상으로는 세계 140여 국가 중 GNP로는 13위, 무역액으로는 12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민의 전반적인 삶의 질(quality of life)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다보스세계경제포럼(Davos 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나라별 환경지속가능성 지수를 보면, 부끄럽게도 2001년엔 세계 95위, 2002년엔 136위로 최하위권을 헤매고 있다. 그런가 하면 OECD 30국 중 우리나라의 양곡자급률(30%)은 최하위권인 28위이며 농어민의 실질소득 대신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한결같이 노무현 정부가 심한 환경 및 농업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한탄한다.

    이 정부를 탄생시켰던 중소기업인, 상인, 노동자, 농민 등 서민층의 삶이 시나브로 더욱 각박해지고 중산층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도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일 것인지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수의 농어민과 서민이 파산하고 쓰러져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지 전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게다가 그 해법으로 2만달러 소득달성 캠페인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모재벌 총수가 주창한 것을 고스란히 전수받았다는, 이른바 ‘밑도 끝도 없는’ 이 구호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현대경제학 사조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8년 전 우리 경제가 1만달러 소득을 달성하여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면에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빈익빈 부익부, 지역격차, 도농격차, 계층간 격차, 불가역적인 환경파괴, 마실 물, 숨쉬는 공기, 생활터전(땅)의 극심한 오염 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그 두 배인 2만달러를 이룩하기 위해선 얼마나 더 많은 사회적·경제적·생태적 갈등을 겪어야 할 것인지, 가속화될 삶의 질 저하 문제와 지속가능성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도무지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준비된 인사를 적재적소에 앉혀라

    지난 대선기간 중 노무현 후보는 “농림예산을 전체 예산 대비 최소 10% 이상 확보하고 농림예산의 20%를 직접지불자금으로 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농어업 피해가 1980년 이래 사상 최대인 올해, 국회에 제출한 정부의 첫 농림예산안은 작년보다 더 낮아진 7.5%에 불과하다.

    대북정책 역시 국민이 납득하고 따를 만한 철학과 비전, 그리고 중점과제와 일정이 확연히 제시되지 않아 남남갈등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으로까지 휘말려들었다. 대선 때의 기세등등하던 대미 자주외교론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히려 실체가 불분명한 ‘국익론’만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쑥 나타난다. 대선공약들은 소리없이 사라졌고 공약 따로, 현실 따로의 현상이 두드러졌다.

    헤아리기가 무안할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이같은 정치행태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 가장 주력했어야 할 일은 준비된 인사를 널리 구해 적재적소에 앉히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이제 코드 타령일랑은 제발 다시 듣지 않았으면 한다. 인수위팀이 제대로 작동하였다면, 정권출범 전에 미리 실천가능한 대선공약과 그 우선순위 그리고 실천 불능의 공약을 진솔하게 골라냈어야 했다. 이를 국정 각 부문의 공통된 철학과 비전, 그리고 실천 어젠더와 로드맵을 국민 앞에 당당히 제시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죽도 밥도 아닌’ 국정의 난맥상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상으로 아직도 4년4개월이라는 임기가 남아 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아예 산 정상으로 되올라가 다시 길을 찾아 내려와야 하듯, 참여정부 역시 출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인사, 통치스타일, 비전과 어젠더 등 국정의 패러다임을 새로 손질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최도술씨 사건을 계기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언은 오히려 국정개혁의 재출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음미할 만하다.

    이왕이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국민투표 사례에서 보듯, 노대통령 또한 국정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정치권과 언론의 방해를 정면돌파할 구체적인 주요개혁안을 내놓고 대담하게 진퇴를 가름할 재신임을 묻는 것이 도리어 역사 앞에 떳떳하다고 본다.

    [감정적 리더십, 뺄셈의 리더십이 문제]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민주당 정책위의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지금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사태를 비롯해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 새만금사업 논란, 위도 방폐장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시스템에 의해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제공된 것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며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을 그토록 강조했고, 참여정부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새 정부의 2인자도 시스템, 3인자도 시스템’이라는 주장을 반복했건만 현실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가장 큰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시스템’이란 구성요소 또는 구성원의 내적 정합(內的 整合)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스템은 인치(人治)나 독선의 요소를 배제하고 사회적으로 한정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체의 효율성에 매몰되어 장기적 비전이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약하다는 결점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을 갈망했던 이유는 과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은 국가권력의 사유화 및 권력 남용으로 이어졌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 정치는 대형 부정부패 사건으로 귀결지어졌다. 이로 인해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는 무너졌고 국가경쟁력은 약화되었다. 또 무한경쟁을 본질적 요소로 내포하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대한 대응력은 쇠잔해져만 갔다.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젠더는 국민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올바른 것이었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내세운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 어젠더로서만 존재할 뿐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런 모순적 상황의 근간에는 사상 초유의 집권여당 분열을 초래시킨 노무현 대통령의 ‘갈등의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

    측근에 대해서는 인간적이고 관대한 온정적 리더십, 반대를 용서하지 않는 감정적 리더십, 코드를 강조하고 비주류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저항적 리더십을 법과 원칙에 충실한 이성의 리더십, 분열보다는 통합을 추구하는 덧셈의 리더십으로 바꾸지 않는 한 ‘구성원의 내적 정합’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안착할 여지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뺄셈의 리더십은 ‘구성원의 내적 정합’이 아니라 ‘구성원의 내적 부정합(內的 不整合)’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참여정부 참여자들의 시스템에 대한 인식부재다. 현 참여정부의 위기는 시스템을 제쳐놓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특정인이 국정 현안을 즉흥적으로 좌지우지한 데서 초래된 측면이 있다. 취임하자마자 돌출되었던 KBS 사장 선임 갈등의 현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와 화물연대의 현장에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었다.

    의회에서 행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었을 때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 전부를 쓰레기로 치부하면서 사퇴하지 못하겠다고 버틴 것도, 결국 사퇴를 단행한 것도 정치인을 꿈꾸는 김두관이라는 개인이었다. 대통령은 그의 방종에 가까운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리 의회의 해임건의안 통과가 거대야당의 공세라는 정략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김두관 전 장관의 이러한 정치행위는 의회와 행정부의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마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참여정부 참여자들의 인식의 일단을 노출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참여정부의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치에 의해 국정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각 부처의 자율성에 기초한 국정운영, 총리의 국정 관장 및 조정을 표방하면서 청와대를 정무중심의 비서실과 정책중심의 정책실 및 몇 개의 태스크포스팀으로 개편하였다. 수십 년간 골격이 유지되었던 부처 담당 수석비서관제는 폐지되었다.

    시스템 바꿨지만 人治는 여전

    하지만 이것은 사상누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공약이었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총리의 내각총괄권, 각료제청권 및 해임건의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중과 코드에 따라 장관을 임명하였다. 책임총리제도, 책임장관제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편된 청와대 시스템은 대통령과의 친소관계에 의한 인치의 가능성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었고 잘못된 결정에 대한 훌륭한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행정경험, 전문성보다 코드 맞춰 구성된 진용’ ‘각 부처 중요 현안, 청와대 누구와 협의해야 할지 몰라’ ‘청와대는 보고만 받고 정책조율은 없어’ ‘대통령 관심 많은 노사문제에 수석실 4곳 달라붙어’ ‘청와대 내에 현안 관장할 수석은커녕 비서관도 없어’ 등의 기사들은 적대적 언론의 흠집내기가 아니라 참여정부 국정운영시스템의 현실이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개혁의 주체를 넓히고 대상을 좁히지 않는 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이제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람들과 국정을 운영할 사람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을 당선시킨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과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 성공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은 이를 운영할 사람들을 정확하게 배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실패나 성공이 결국 자신의 책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 현실부터 진단하라]김윤기 전 건설교통부 장관·한·러시아 협회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대통령은 나라의 상징이자 국가의 원수이다. 대통령은 사회의 중심적 존재이며, 그의 품성과 언행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던 간에 누구보다 국민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설 수 있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거부감은 더욱 커졌고,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평가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고,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그 어려움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 있으며,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비쳐질 때 믿음이 가고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겐 나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고뇌하는 모습이 아쉽게 느껴진다.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 각계각층 모두를 감싸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정국에 송두율 교수의 귀국은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할일 많은 나라에 송두율 교수 귀국이 뭐 그리 급하다고 불러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욕구들과 자유민주주의 이념,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인식의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

    튀는 공무원보다 신중한 공무원을

    개혁정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은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에서 추진돼야 하고, 나라를 확고히 지키는 것이어야 하며, 세계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 앞장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개혁은 명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표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 등 굵직한 지표로부터 해외투자 유치규모, 부패지수 등 지표화되어야 할 사항들이 많다. 당장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경제성장률 1% 하락이 몇십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경제 현실을 타개할 처방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여야 한다.

    아울러 중장기적인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는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이라는 명제는 반도국가인 우리가 가질 틈새전략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노사문제, 임금문제, 화물연대의 파업사태 등은 그같은 명제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을 보필할 장관이나 참모진들은 편향된 시각을 가지지 않은, 원만한 인격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 중에서 대통령과 코드가 맞으면 더더욱 좋겠지만 전문성보다 코드를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이 사회에는 나라를 위해 일할 자세가 되어 있는 전문인력이 많다. 공직사회는 튀는 공무원보다는 신중히 결정하되 결정된 일은 추진력을 갖고 밀어붙이는 공무원을 필요로 한다. 그들로부터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인간적인 교감을 만들어가면서 코드를 맞추어가는 게 중요하다.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문제들로 각부 실무자들의 회의와 차관회의를 거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해가 상충될 때에는 국무위원들간의 토론보다는 전문가와 실무자들의 토론을 통해 의견을 종합한 뒤 결론을 내려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소관사항도 아닌 내용을 바쁜 일과중의 국무위원들이 토론하는 것은 정력과 시간낭비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국무위원 토론보다 실무자 토론을

    새만금 문제,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문제, 고속철도 노선문제도 형식적인 명분에 휩싸여 결단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이미 수년간 문제점이 노출되어왔고 한번씩 결론이 내려졌던 사안들이다. 그동안 투입된 막대한 자금을 감안할 때 완공 지연에 따른 낭비는 물론 새로운 민원이 발생하면서 국론의 분열상이 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생존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정부에 몸담고 있는 내각 구성원은 개인적 이견이 있을 경우 드러내놓고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무총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서로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춰져서는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사회의 질서유지는 국가존립의 기반이다. 이익집단들의 위법행위는 냉정히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말 없는 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8개월이다. 차라리 문제가 일찍 노출된 것이 다행인지 모른다.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바로 이끌 수 있도록 국민이 뒷받침해야 한다.

    [균형감각 회복이 관건이다]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서울대 교수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금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집권을 시작했다. 그 스스로가 천명했든 안했든 간에 많은 국민들은 대대적인 개혁을 예감했다. 386세대, IT세대 혹은 그냥 ‘젊은 세대’라고 부른 낮은 연령층의 유권자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매체를 통해 그들의 구미에 맞는 대통령을 뽑았으며, 이것은 기성세대 대다수가 예측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이 일로 타의든 자의든 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주로 젊은 세대라는 윤곽이 아주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고, 따라서 젊은 세대의 호흡에 맞는 정책을 펴리라는 예상이 커지면서 한편에서는 기대가, 다른 한편에서는 우려가 동시에 커지기 시작했다.

    기대보다 우려 큰 대차대조표

    집권 만 7개월을 지나는 이 시점에서 이런 기대와 우려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본다면 단연코 우려 쪽이 큰 것 같다. 기대했던 개혁은 보이지 않고 말썽 큰 잡음만 요란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측근인사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았고, 코드 중심 인사 시비가 계속 불거졌으며, 새만금 사업,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사업, 고속철도 사업, 경인운하와 부안 위도 핵폐기장 등등의 굵직한 국책사업이 모두 멈춰서 있다. 각종 노사분규가 예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고 강성화됐다. 정부가 친노조 성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제조업은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줄어든 취업기회가 이로 인해 더욱 가속화됐다.

    언론과의 마찰도 계속돼, 국민의 뜻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전체 신문 구독자의 70%가 구독하고 있는 동아, 조선, 중앙일보와 청와대가 반목하고 있으며, 여당이던 민주당은 반동강이 나버렸다.

    따라서 7개월 사이에 개혁을 향한 착실한 걸음걸이를 했다는 인상은 없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갈등과 긴장만 연속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 주변 인사들의 행정능력 미숙을 지적하곤 한다. 법을 집행해본 행정경험보다는 행정을 상대로 비판과 투쟁을 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인적 구성은 필연적으로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 쪽으로 기울게 하고, 인치를 하다 보니 코드 맞는 사람을 들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의 특징은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강화해서 개혁을 활성화한다’는 형태를 갖는다. 이런 국정운영 방식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성이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국정운영의 효율성은 커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참여정부는 초기부터 이런 신뢰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노대통령 자신의 잦은 말 실수가 이런 신뢰를 떨어뜨렸고 그 주변의 행정 미숙으로 인해 중대한 실수가 자주 반복되면서 신뢰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집권기간은 아직 4년 넘게 남아 있다. 따라서 7개월 동안의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국정운영 방식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개혁 욕심 축소조정해야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에 대한 욕심을 축소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그림을 새로 산 하얀 캔버스에 전혀 새롭게 그릴 수 있는 초대 대통령이 아니다.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에 약간의 작은 그림을 추가하거나 덧칠할 수 있을 뿐이다.

    노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출발했다. 어떤 종류의 개혁이든 노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은 모두 법으로 완결돼야 하므로 국회를 개혁 파트너로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을 의식해서 개혁 폭과 깊이를 축소조정해야 한다.

    내년 4월에 만약 여대야소 정국이 되면 다시 개혁의 폭을 확대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는 옛말이 있듯이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개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소야대 상황에 맞게 개혁의 폭을 조정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무리를 줄이기 위한 제일 큰 조건이다.

    둘째는 법적 책임을 진 전문 행정관료를 국정운영의 주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와 민주라는 말에 너무 현혹되어서 법적 책임을 지고 공무에 임하는 전문 행정관료들의 기를 너무 꺾어놓은 측면이 없지 않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좋은 예다. 교육부 산하의 모든 공무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NEIS를 전교조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사리 후퇴하려 한 초기 교육부의 태도는 국정운영 난맥의 생생한 예다. NEIS에 심혈을 기울인 공무원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로 국정운영은 예측가능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이하 모든 고위공직자의 언행은 국민과의 약속이고 기대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국민이 결코 손해를 보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국정운영을 투명하게 법대로 하는 것이다. 즉 법절차에 따라서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법에 따르면 국민의 뜻은 국회에서 나온다. 국회 속에서 국민의 뜻을 보고 읽으려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국민의 뜻을 찾으려 한다면, 앞으로도 국정의 파행을 면하긴 어렵다. 균형감각을 갖고 국민의 뜻을 읽어야 한다.

    [정책 구체성 결여, 목소리는 제각각]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경남대 총장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노무현 정부는 2003년 2월 출범 당시부터 외교안보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안고 있었다. 우선 2002년 10월 미국 특사의 방북으로 불거진 북핵 문제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비롯한 북한의 위기고조 행동 속에서 가닥을 잡지 못한 채 한반도를 위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여기에다 신보수주의로 무장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일방주의 물결 속에서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질서를 재편하고자 했고 이 와중에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또 대북송금 의혹에서 시작된 야당의 특검제 주장은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내부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분명 내우외환 속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부여받고 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 된 시점에서 결과만을 놓고 볼 때 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평균점 정도의 업무수행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을 거쳐 8월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 논의구도를 만듦으로써 해결을 위한 출발점에 서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일본, 중국과의 잇단 정상회담을 통해 주변국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을 강조함으로써 6자회담을 이끌어낸 것은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대통령이 선거유세기간 쏟아낸 반미 발언들은 미국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미국사회 내부의 반발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라크 파병과 방미기간 중 언급을 통해 미국에게 신뢰를 심은 대목은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다 지난 7월 열린 제11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을 설득하여 다자회담을 수용토록 하는 데 일조한 것은 진전된 남북관계의 유용성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과 함께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점도 현 외교안보팀의 노력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전 정부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제 수용과 북한의 반발, 정몽헌 회장의 사망, 여소야대 정치상황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자칫 불안정한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운용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인식과 대북강경책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에 미국을 참여하도록 하는 가운데 남북관계를 끌고 가고 있는 현 외교안보라인의 고민과 노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NSC, 부처 의견 조율 못해

    그러나 이같은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외교안보팀은 여전히 불안정성과 함께 현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미숙함을 보여 주변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각 분야에서 시스템을 통한 현안 해결을 강조했다. 이같은 방침이 외교안보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확대로 이어졌지만 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혼선만 가중시킬 뿐 체계화된 정책결정 시스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대통령 보좌진에 중복배치된 외교안보 브레인들은 조율된 목소리 만들기에 실패함으로써 외교안보정책에서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NSC 상임위원회를 거쳐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조율해 한 목소리를 내던 모습은 참여정부에서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말로는 국익을 외치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로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 속에서 조율된 국익은 발견하기 힘들다.

    특히 NSC가 각 부처와의 의견 조율과 이를 통한 목소리 통합, 행정관료 장악에 실패하고 있는 것도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대북지원, 남북교류, 핵문제 등에 대한 각 부처의 통합된 의견은 정부 정책 추진의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다 NSC가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탐색과 논의를 거듭하면서 합리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영입되면서 정책결정을 둘러싼 논의는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정책결정 단계에서는 머뭇거리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일각에서의 지적이다. 정책은 결국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본다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정책결정과 자신감 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참여케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미숙함은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각 부처의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책추진의 축도 없어 결국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나서서 유감을 표시함으로써 국가 권위가 실추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정책추진에서의 무책임성과 아마추어리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현 정부가 지향하는 대북 및 외교안보정책의 구체성 결여도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전 정부의 대북정책인 화해협력정책을 외교 및 경제정책을 아우르는 평화번영정책으로 확장했다. 남북간 및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통한 평화구축과 남북간 경제협력 및 동북아 경제중심에 기초한 한반도 경제번영을 구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개념은 원대한 밑그림에 비해 체계화, 구체화되지 못함으로써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어떻게 평화와 번영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구호’뿐인 정책은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여기에다 평화번영정책이 가지는 원대한 구상이 단순명료한 형태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해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나가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일례로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의 경우, 정책에 대한 찬반은 뒤로 하고라도 국민들이 정책의 지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런 인식 속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가질 수 있었다. 또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국민여론은 정책추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됐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항상 국민의 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북정책에서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평화번영정책과 국민과의 괴리는 점차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햇볕정책에 대한 공과를 국민과 함께 정확히 평가하는 작업을 선행했어야 했고 동시에 햇볕정책의 계승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느 수준으로 계승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 확실한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청와대 보좌관 필요성 재검토해야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교안보정책 추진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해 각 부처가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NSC 사무처가 취합,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외교안보부처 장관들의 모임인 NSC 상임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NSC가 각 부처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각 부처 역시 NSC에서 결정된 내용에 반발해서도 안 된다.

    특히 NSC는 대통령과 각 부처를 잇는 허리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청와대는 보고를 받고 조정은 하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기보다 관련부처 대변인을 통해 발표케 함으로써 혼선을 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과연 현재의 보좌관제도가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정책결정과 추진과정에서 혼선을 야기하는 창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청와대 내에 외교안보 관련 직제가 이런 식으로 방만하게 운용될 때 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우선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각론을 지금부터라도 마련해야만 하고, 국민들을 정책 추진의 원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보다 쉽고 단순화된 논리의 개발이 시급하다.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둘러싼 시급한 현안이 각론 개발에 장애요소가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구체적 내용과 그림을 그려내 국민들 앞에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의 목표를 하향조정함으로써 임기내 실현이 가능한 추진전략을 수립하고 유동적인 상황을 고려한 일정표를 작성함으로써 정책추진의 구체성을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묘수 같은 정책 있을 거라 착각 말라]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

    전직 장관 20명, 노무현 정부에 낙제점
    이 원고의 청탁을 받고 한 지인을 만나 의견을 듣기로 했다. 그와 나는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의견을 달리했던 유일한 이웃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개혁세력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라. 노아무개가 잘할 거야”라며 기대를 보였다.

    그는 주변의 많은 부정적 시선도 당당히 견제하던 전문경영인 출신의 인사다. 비록 의견은 다르지만 그 태도는 명쾌했었다. 그의 뜻대로 새 정권은 출범했고, 그래서 그가 한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를 만나 개혁을 표방하며 탄생한 새 정권에 대해 지금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현 정권에 어떤 평가할 만한 점이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변에서 긍정적 평가를 도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는 개구일성(開口一聲),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민 가야 할까봐.”

    그가 선거 때 보였던 태도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나 달라진 태도를 지적하며 오금을 박기엔 그의 얼굴이 너무 어둡고 불행해 보였다. 포퓰리즘 지향의 현 정권이 좋아하는 대중몰이 방식인 여론조사가 오늘에 이르러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인 한 사람의 어두운 얼굴이 더욱 절망감을 준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 6개월쯤 되었을 때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부시와 나눈 대미외교이고, 다른 하나는 ‘국익을 위해’ 비교적 기민한 방식으로 이라크에 1차 파병을 결정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에서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석을 나는 최고 결정권자의 역할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려야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신선하고 개혁적인 정권으로 출발했을지라도 그 앞에는 여전히 대책 없이 가로누운 현안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부분은 으레 그렇듯이 해묵은 것들이다.

    그런 일들을 해결하는 일을 회피하고는 절대로 전진할 수 없다. 무릇 정권은 그것들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국정이라는 유기체는 살아 있는 생명 같은 것이어서 해결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지고 생명이 위협받는 지경으로 가고 말기 때문에, ‘무능한 전 정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현안이라는 게 대개 명쾌한 해답을 가진 것들이 아니다. 여러 가지 내재 변수와 이율배반의 인자들이 공존하고 있는 모순 덩어리 같은 사안들이다. 그것들이 즐비하게 널부러져서 해결을 독촉하는 것이 바로 국정이다.

    그러한 현안들 가운데는 실시나 집행에서 승산이 확실하게 보증되지 않는 것도 많다.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경기침체의 늪을 헤어나오기 위해 특단의 선택을 하려 하면 인플레의 함정이 으르렁거리게 마련이다.

    승산과 실패의 확률이 50.0000001 대 49.999999 정도인 정책안을 무디고 이 빠진 식칼로 요리하기 위해서는 외롭고 위험한 결단도 해야 한다. 최고 결정권자가 외롭고 힘들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총체적으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 8개월을 맞은 노무현 정권의 특징은 아무것도 결단하려 하지 않는 점인 듯 하다. 자유무역협정 문제도, 고속철 문제도, 2차 파병 문제도, 새만금 문제도 ‘나자빠져 있는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결단하지 않는’ 정권

    참여정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널리 공론을 모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매우 아름답고 선한 말이다. 그러나 ‘공론’처럼 속절없고 무책임하고 심술궂은 것은 없다. 그렇게 공론에만 맡겨놓는 동안 실기(失機)하고 낭비하고 후퇴해버리는 것이 정책이다. 최고결정권자에게 결단하는 용기가 없으면 그가 속한 집단은 확실하게 실패한다.

    그런가 하면 요즘 등단한 개혁세력은 신흥종교 같은 미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기들 눈에만 보이는 묘수와도 같은 새로운 정책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옛날 방법으로는 안 된다.” 입만 열면 그렇게 말하지만 ‘새롭고도 일이 되게 하는 결정적이고 효율 높은 새로운 방법’은 아무것도 못 찾아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으니까. 부동산 정책이나 투기억제책, 입시정책 등 아무리 새로운 것을 내놓아봐야 한결같이 이미 실험을 거친 것들뿐이라는 점이 그 예다.

    그들은 또 옛 정권은 부정하고 게으르고 부실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것을 실시하고 숱하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까 내성이 생기고 잘 듣는 처방이 없어져버렸을 뿐이다. 그들 눈에만 띌 수 있는 신선하고 신기한 해결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실패한 경험을 기억세포 속에 새겨놓은 인력이 개혁세력의 시스템-그들은 이 말을 좋아한다-을 구성하고 있는 인자이기도 한다.

    그것을 작동시켜야 하는 것이 집권층의 운명이다. 실패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도도 해야 하고 과거의 실패를 새롭게 보완해야 한다. 서랍 어딘가에서 꺼내기만 하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들이 공산품처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허망하다. 게다가 개혁을 말하는 세력도 이미 부정과 부패로 오염된 손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미 깊숙한 곳에 환부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일은 아주 힘들어진다.

    지지했던 사람조차 “이민 가야 할 것 같다”는 불행함에 ‘참여’하게 하는 일은 참담한 일이다.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정권의 모습은 그런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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