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에는 바닷가에 인접한 해수 노천온천이 많다.
자연이 만든 ‘식물전시관’
하늘에서 내려다본 야쿠시마는 온통 바다와 숲뿐이다. 한 달에 25일 이상 비가 내린다는 야쿠시마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는데…. 10km에 이르는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둘러보았다.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곧장 솟아 있는 산과 수십 미터는 될 듯한 폭포, 작은 틈새 하나 없이 빽빽한 삼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열대와 온대가 만나는 북위 30도 선상에 위치한 야쿠시마가 독특한 생태계를 갖추게 된 것은, 산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뻗어올라가는 지형과 엄청나게 큰 연교차 때문이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야쿠시마의 평균 연교차는 20.7℃. 솔송나무, 삼나무 등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침엽수부터 밤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활엽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종이 수직 분포대를 형성하고 있다.
군소식물의 분포대 역시 지구촌 어느 곳보다도 그 폭이 넓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 지대에는 철쭉, 두루미꽃, 백두산제비꽃 같은 산지성 꽃이 계절에 따라 피고 지며, 중간 지대에는 월계수, 저지대에서는 열대식물인 맹그로브와 화려한 색상으로 변형된 무궁화 등이 동시에 피어난다. 지구촌 곳곳의 식물군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식물전시관’인 셈이다.
야쿠시마의 등산로는 대부분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
특히 산길을 걸은 지 4시간 만에 마주선 ‘조몬 삼나무(Jomon-sugi Cedar)’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뿌리 둘레 43m, 나무 둘레 16m, 높이가 30m다. 이 나무의 나이는 자그마치 7200세. 선뜻 믿기지 않는 숫자다. 하나의 생명이 이렇듯 긴 시간 동안 지구 위에서 살아남은 것은 연평균 4500㎜에 육박하는 엄청난 강수량과 접근이 쉽지 않은 험준한 산세 덕분이었을 것이다.
조몬 삼나무 인근에는 그 외에도 독특한 자태를 간직한 나무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윌슨 삼나무’.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교토에서 호카사(方向寺)라는 절을 건립하기 위해 벌목한 윌슨 삼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다. 반경 10m가 넘는 나무 속에 들어가 위를 바라다보면 삼나무 줄기들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황홀하다. 등산객들은 한 쪽 구석에 있는 작은 신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야쿠시마의 다양한 나무들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야쿠스기랜드(Yaku-sugi Cedar Land)에 가야 한다. 이 곳에 있는 네 개의 산책로에서는 삼나무, 솔송나무, 노송나무, 가문비나무, 활엽수인 상수리나무와 밤나무에 이르기까지, 야쿠시마에 서식하는 나무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또한 야쿠시마의 대표적인 동물인 사슴과 원숭이, 삼나무를 파먹고 사는 야쿠쥐와 족제비 등 야생동물도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센터와 야쿠스기 박물관, 환경관 등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어 야쿠시마 지역의 자연환경은 물론 지구촌 자연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정보도 살펴볼 수 있다.
등산로와 고지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산열매 색깔이 아릿하다.
그렇다고 야쿠시마에 오래된 나무와 동식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해변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드넓은 바다를 배경 삼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온천과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어촌, 삼나무로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공방 등도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설의 시간을 간직한 자연 생태계 위에 갖가지 볼거리가 함께하는 곳이 바로 야쿠시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