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신임 선언을 통해 국가수장이 의회의 동의와는 무관하게 국민과 직접 상대해 정책정당성을 확보하는 ‘위임민주주의’를 선택한 노무현 정부.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의 경험은, 이러한 ‘국민투표형 정치’가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켜 나라를 파산시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 ‘재신임 정국’의 문제점과 근원적 해법은 무엇인가.
중남미 국가들의 ‘포퓰리즘 정치’는 심각한 내정불안을 야기했다. 지난 1월 차베스 대통령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는 베네수엘라 시위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 년도 안 된 시점에서 대통령이 물러날 의향을 밝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수세에 몰린 정국돌파를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으나, 이러한 초(超)헌법적 작위를 후세의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고뇌의 결단’인가 아니면 ‘간지(奸智)의 충동’인가.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중남미 국가들에서조차 찾기 어려운 이 사태의 의미를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언론매체의 긴급여론조사 결과는 다행히 대통령을 재신임하겠다는 뜻으로 모아지고 있다. 노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을 감안하면, 현실불안을 느낀 국민의 안정희구성향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야당 지지자마저 국정혼란을 우려해 재신임 쪽으로 기우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민압박 -혹은 협박(?)-이라는 노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은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낙마시키려는 세력과 중심을 다시 세우려는 세력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다툼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이제 지루하고 치사한 공방과 쟁투의 재신임 정국이 시작되었다. 내년 제17대 4·15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 개편을 주도하기 위해 여러 정파 사이에 총력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대통령 재신임 결과에 따라 권력구조를 포함하는 일대 정치구도의 변화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신임 국민투표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올인’ 정치는 정상적인 통치행위가 아니다. 법치주의보다는 대통령의 권한에 의지하는 ‘반칙과 월권’이다. 일종의 포퓰리스트적 실험이라 볼 수 있는 재신임 방안은, 직거래를 통한 국민동원과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한위임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이다.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
나폴레옹, 드골, 차베스, 천수이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간파한 대로 민주주의는 불안정한 제도다. 다수가 선택하는 소수의 대표성이 책임성과 결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직접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부단히 바꾸는 이유도 책임성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중시하는 데 있다. 대표성은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국민투표적 성향을 지닌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정규적인 선거도 국민투표 방식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대중동원과 결합될 경우 ‘선출독재(elected dictatorship)’의 묘상(苗床)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 민주주의는 직접형에서 간접형, 대의민주주의를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진화되어왔다.
현대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조화는 지난한 문제다. 한쪽만 강조하다 보면 민주주의의 실속을 잃어버리거나 포퓰리즘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 해답이 바로 대통령제 하에서 독자적으로 선출되는 입법부와 자의적으로 구성되는 행정부 사이의 권력분립 원칙이다.
국민투표에 의해 ‘황제적(Caesarist)’ 권위를 강화한 첫 시도는 나폴레옹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보통선거권을 모든 남성에게 확대시켜 직접투표에 의해 행정부를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민중권력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국민투표형 대중정치의 극단적 왜곡은 20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절정에 달한다.
국민투표형 민주주의를 즐긴 정치인으로는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꼽힌다. 그는 정치위기 때마다 국민투표라는 밑으로부터의 동원전략에 의지해 권력을 유지하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그였기에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적 도박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맨 처음에는 1961년 알제리 독립문제, 다음에는 1962년 자신의 사임과 헌법개정 요구 선택, 세 번째는 1969년 정치·행정개혁과 자신의 퇴임 연계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그는 세 번째 국민투표에서 패배함으로써 대통령직을 떠났다. 패배를 확인한 그가 미련 없이 짐을 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맞은 격이다.
세계적 정치학자 레이몽 아롱은 드골의 국민투표형 민주주의를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교활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개발도상국 지도자들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이용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형 민주주의는 위험부담이 크다. 국민과의 직접상대가 대통령의 독주와 과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강압에 의한 승리의 만끽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 유신독재는 결국 국민투표 4년 만에 내부의 총성에 의해 막을 내렸다.
지난 5월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를 통해 묻기로 결정한 베네수엘라는 이후 정국이 혼미한 상태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가량 지난 현 시점에서 헌법이 용인하는 재신임 투표의 실시시기를 놓고 정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에 대해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을 배후로, 여야와 노사와 군부가 뒤죽박죽 되어 격돌하고 있다. 공수부대 출신의 차베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사이의 다툼이 워낙 심한 가운데 정치 세력들이 대통령 재신임을 서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인 데다 쿠데타설도 난무한다.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도 내년 총통선거를 의식해 “대만독립 문제는 국민투표로 결정짓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개인 스캔들과 중국의 통일협공에 밀린 민진당의 선택은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률적 기초검토 없이 내세운 대만독립 국민투표 제안은 정쟁과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시기와 방법 모두 문제 있다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공론화를 통해 내년 총선전후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재신임을 물을 뿐 아니라 정책연계를 통해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후속 발언도 있었다. 이어진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2003년 12월15일로 날짜를 못박으면서 재신임만 묻겠다고 천명했다. 불과 사흘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무엇보다도 집권한 지 불과 8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이 과연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물을 적기인지 의아스럽다. 굳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묻겠다면, 임기 5년의 3분의 1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재신임에 성공한다 해도 언제 또 재신임 얘기가 등장할지 국민은 불안하다. 국민투표형 재신임정치가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옴직하다.
비록 현실이 어렵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진퇴의 명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기인지도 의문이다. 국정난맥이 있었다면 그것은 새 정부의 정책실패와 인사실패에서 기인한다. 우왕좌왕하는 정책에 민생이 멍들고, 입맛에 따른 코드인사 때문에 정부가 신뢰를 잃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이번 재신임 결정의 배경이라면 국정쇄신의 단안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국회와 언론 때문에 국정혼란이 오고 있다면 왜 야당이 국정의 동반자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제도언론이 계속 시비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렇기에 국민투표를 통한 재신임을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국구도의 개편과 연결짓는 대통령의 발상은 국면전환과 권력강화를 위한 승부수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책임총리제를 전제로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 지역구도를 타파하자는 정치개혁 논의는 이미 나온 바 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개방적 선거제도와 투명한 정치자금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후안 페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비타.
오늘의 중남미 국가들에서 포퓰리즘의 유제는 크다. 페루의 혁명민중동맹, 베네수엘라의 행동민주주의,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볼리비아의 전국혁명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포퓰리즘이 대체로 권위주의적·국가주의적·배외주의적인 경향을 띤다는 사실이다.
페론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GNP 기준으로 세계 10위의 경제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지속적인 경제위기와 정치갈등, 사회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배후에는 페론주의가 놓여 있다. 페론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유럽이주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배분을 활용해 밑으로부터의 동원전략을 썼다. 경제가 거덜나건말건 추진된 과도한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가져왔고, 복지혜택에 길들여진 민중은 공공정책의 적실성을 고려치 않고 페론주의자들에게 정권을 맡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까지 불과 보름 사이에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정치갈등과 사회혼란을 겪으며 경제위기가 악화되어, 결국 지금은 IMF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처지다.
페루의 톨레도, 아르헨티나의 메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모두 포퓰리즘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대중동원을 위해 바깥으로는 국가자존, 안으로는 분배증진 같은 정책을 약속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국가정책에 새로운 알맹이가 없다. 두 번이나 집권한 메넴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가져온 것은 극도의 부패, 빈곤, 실업이다. 페소와 달러를 묶는 태환법, 국영기업의 민영화, 금융산업의 외국인 매각은 결국 아르헨티나를 외국 투자자들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군대는 물러났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예치 달러를 통해 언제고 정부를 무력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정부는 ‘시장 쿠데타(market coup)’에 버틸 능력이 없다.
민주화 시대의 포퓰리즘은 예전과 다르다. 이제는 국민동원이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중연설에 강할수록 상징조작은 쉽다. 게다가 여론조사 기술의 발달로 24시간 내에 국민의 태도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 것은 여론조사 기술의 비약적 발달 덕분에 가능했다.
이제 포퓰리즘은 약속만으로는 안 된다.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국가의 주요정책 입안과 집행의 투명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신뢰도와 효율성을 쌓지 않고 국민적 지지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포퓰리스트들은 거의 전부 출범은 거창했지만 말년이 좋지 않았다. 국가정책이란 일종의 공공재다. 멀리 보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 잘되면 번영이지만 못 되면 재앙으로 돌아온다.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안목과 비전이 필요한 이유다. 정책 입안과 집행에 앞서 현실적합성을 면밀히 따져보고 기능과 역기능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개혁’은 실종되고 ‘통합’은 저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정경험 부족이 근인(近因)이라면, 포퓰리스트적 접근이 원인(遠因)일 수 있다.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의 조합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근 인사탕평과 정책탕평을 통한 국정쇄신 요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정책을 투명하고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신뢰도와 집행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정책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통해서만 국가의 권위와 중심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받는 정책을 통해 리더십이 바로 서야만 국민으로부터 제대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8개월 사이에 90%에서 30%로 급락했다. 이것은 새 정부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국정난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래 국민으로부터의 지지력(followership)은 정부의 지도력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지금의 국면은 지도력의 위기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지도력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국민투표에 의한 재신임인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은 험난한 역정을 걸어왔다. DJ 간판으로 부산에서 두 번이나 출마한 것이나 개혁신당으로 서울에서 나선 것은, 당락을 넘어선 그의 외유내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그는 어려울수록 대중에 호소하는 ‘정감의 정치’를 활용해 정면승부를 벌여왔다. 2001년 11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팽배한 ‘이인제 대세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부산·경남·울산 광역선거에서 한 곳도 이기지 못할 경우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광역선거 참패 이후인 2002년 6월 그는 “8·8 재보궐선거 이후 누구든지 입당시켜 원점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을 다시 하자”며 재경선카드로 당내 반노·비노 세력을 또 한번 압박했다. 2002년 11월 대선 막판에는 불리한 대세를 뒤집기 위해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를 주장했고, 끝내 드라마틱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로 볼 때 재신임 국민투표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니다. 나쁘게 얘기하면 모험주의요 좋게 보면 원칙주의다. 그러나 이번 재신임 선언에는 원칙주의로 인한 결벽증보다 현실적 모험주의의 혐의가 더 짙다. 지금처럼 국가현안이 얽히고 설킨 여건에서, 현실적 모험주의는 지도자의 책임지는 자세라 하기 어렵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와중에 국민을 위한 민생개혁은 표류할 공산이 크다. 이후 ‘동북아 중추국가’나 ‘국민소득 2만달러’ 같은 국가비전과 당장 시급한 각종 민생법안이 국회에서 공전한다면 대통령 또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서 과연 누가 피해자인지 물어봐야 한다. 답은 국민이다. 대가에 비해 비용이 크다. 국민을 볼모로 하는 정치게임은 소모적이다. 국력낭비와 국정혼란은 자명하다. 측근비리에 대한 국정감사와 재신임 국민투표가 적법한가를 둘러싸고 앞으로 두 달은 온 사회가 시끄러울 전망이다. 정치개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민생과 경제의 붕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적잖이 걱정이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초법적 선공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하려는 ‘올인’이라는 비난을 모면키 어렵다. 이미 여야 4당은 재신임 정국의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정국장악을 둘러싸고 당리당략이 판치다 보면 국회의 입법과 심의 기능은 정지한다.
참여정부는 새로 태어나야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1년도 안 된 마당에 재신임을 통한 권력복원을 시도하게 만든 원인을 검토해야 할것이다. 김영삼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으로 이어진 제1기 민간정부가 과거 권위주의의 타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면, 노무현 정권은 미래 민주주의의 건설에 매진해야 하는 제2기 민간정부의 시작으로서 그 역할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 5·16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산업화세력’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결집한 ‘민주화세력’의 등장을 알린 것이 노무현 정권의 정치사적 위상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은 미래지향적인 개혁과 통합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은 소수정부의 한계 때문에 국민참여를 중시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지극히 가식적(假飾的)으로 이루어진다는 한계를 갖는다. 한국사회의 중심과 주변 사이의 역학관계가 바뀌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 참여가 본래의 의지와 달리 형식화되고 있으니 불행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코드를 중시한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추구라기보다는 서로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작당하는 배제의 의미로 편용되고 있다. 개혁세력의 외연을 넓혀도 모자란 판에 끼리끼리 패거리를 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이 벌인 실책 중 하나로, 고립과 단절을 스스로 택함으로써 화합보다 분열을 증폭시켰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상표는 개혁성과 도덕성이다. 그러나 개혁성이 실종된 지금 도덕성의 훼손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치명적이다. 연달아 터지는 핵심보좌역의 비리와 부정 연루의혹은 참여정부의 존재에 대해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정권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불신임 국민투표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참여정부는 남북관계, 한미갈등, 경제붕괴, 집단갈등 등 국내외 현안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신당창당의 와중에서 거야소여(巨野小與)가 만들어짐으로써 대통령은 당적이 없고 실질적인 여당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겉으로 보기에 초당파 대통령이지만 실제는 힘없는 대통령이다. 자신이 임명한 핵심각료가 국회에서 해임을 당하는가 하면 주요 권력부처 지명자가 야당에 의해 거부당하는 현실이다. 의회주의를 따르고 싶어도 따를 여지가 없다.
노무현 정권은 로버트 달이 지적한 ‘소수자들의 지배(minorities rule)’에 바탕하고 있다. 개별정책에 있어서는 소수지만, 중첩되지 않는 별도 지지세력들의 총합을 통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형태다. 이러한 지배는 전체 국민 중에서 다수를 제쳐놓고 소수가 주도세력이 되는 모순을 낳는다. 때문에 국회 바깥에서도 다수 아닌 다수라는 이중적 ‘소수정부’의 한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대미협상, 이라크 파병, 북한관계 등 중대한 국가정책을 변경할 경우 소수자들이 이탈함으로써 지지연합이 무너지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최근의 지지율 하락은 그 결과다.
이중적 ‘소수정부’의 딜레마
한국정치의 미래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 바탕색을 갖는 정책정당으로 환골탈태할 때 비로소 대표성에서 세대와 계층과 이념을 아우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지역할거로는 여야 사이에 엘리트 카르텔만 형성할 뿐이다. 3김 시대는 물리적으로 종료되었지만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주의는 아직 건재하다. 4당 체제 아래에서 정당간 연합은 당리당략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게 마련이다. 사람 사이의 제휴와 야합은 있어도 정책을 통한 대화와 협상은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정치개혁은 중차대한 화두다. 그러나 그것을 재신임과 연계하는 국민투표는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정권이 소수정부임에도 과거와 달리 합종연횡, 의원 빼내기, 혹은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감시와 통제 없이 국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진일보한 면모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신당창당의 성공을 위해 정치개혁안을 대통령의 불신임과 연계하려 한다면 정략적이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치개혁이 국회 안에서 합의될 수 없다면 다른 방도를 찾으면 된다.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는 높다. 각계각층의 지지로 구색을 맞추기보다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는 것이 신당창당의 명분과 실리를 확보하는 데는 더 낫다. 지난날과 다르지 않은 구태 정치엘리트들의 ‘헤쳐모여’로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양면성을 지닌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 맞서게 되어 있다. 이것이 ‘소수정부’가 집권했을 때 권력대치가 일어나는 배경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밑으로부터의 국민동원을 통해 의회와 맞서려 할 때 권력대치는 악화된다. 차라리 지금의 거야소여 아래에서는 권력대치를 권력분립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분점정부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결국 대화와 협상의 의회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정신에 충실한 방안이다. 의회를 배제하는 국민과의 직거래는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로 이어진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상대하는 방식은, 분립은커녕 행정·입법·사법기능마저 약화시키고 대통령의 월권과 독주를 낳을 수도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험을 비교해 볼 때 노무현 정권은 포고령주의(decretism), 위임통치주의(mandatism), 의회주의(parliamentalism), 조합주의(corporatism) 등과 같은 개혁전략에 의존할 수 있다. 집권당이 소수당이라는 한계 때문에 개혁입법의 국회동의가 어려울 때 국가수장이 직접 법령을 선포하는 것이 포고령주의다. 민주화 과정의 중남미에서 흔히 나타난 현상이다. 위임통치주의는 의회의 동의와 무관하게 국가수장이 나서는 경우다. ‘철의 여인’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은 절대적인 국민지지를 확신하고 위임통치주의를 애용했다.
집권당이 다수당인 경우엔 대화와 타협, 소수당인 경우엔 제휴와 연합을 이용해 국가수장이 국회 안에서 개혁정책을 심의하는 것이 의회주의다.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의회주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조합주의는 이익집단과 사회부문 사이의 이해조정이 의회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형태다. 과거 중남미에서 노조포섭에 악용되었고 현재 서부 유럽에선 노사정 협조에 활용되고 있다.
‘예측 가능한 정치’
우리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위임통치주의에 의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합주의를 편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회 내에서 다수여당이었음에도 철저하게 위임통치주의에 의해 개혁을 밀어붙였다.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자만심이 그에게 위임통치주의라는 허상을 심어준 셈이다. 이 시기 의회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개혁추진 과정에서 법치가 빠지다 보니 여러 계층, 집단, 부문들 사이의 이해갈등을 추스르지 못했고, 결국 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회 안에서 소수여당의 한계를 안고 노사합의라는 조합주의에 의해 개혁을 시도했다. 의회는 애초부터 경시되었다. ‘국민의 정부’라는 깃발 아래 그는 ‘제2건국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 같은 조합주의적 기제를 통해 사회동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합주의는, 한편으로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일부를 포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다수를 배제하는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포퓰리스트적 국민동원을 통해 위임통치주의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성패의 확률을 떠나 대단히 위험한 시도다. 한국 민주화의 진전을 가로막는 붕당적 정당정치와 패권적 의회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올인’ 정치는 대담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현실정치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의도한 효과’를 넘어서는 역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측 가능한 정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