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구도시가 공존하는 생 크리스토프 마을 전경. 멀리 보이는 교회는 12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곧게 뻗은 고속화도로(A15)를 따라 30분 남짓 달렸을까. 각양각색의 건물과 숲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도시가 눈앞에 서서히 떠올랐다. 마치 대형 극장에 앉아 갑자기 거대한 화면이 스크린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걸 보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실제 경관을 보면서도 마치 영상화된 파노라마를 보는 듯했다. 인구 18만명에 면적 8000㏊의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 예전엔 시야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세르지 코뮌이고, 오른쪽은 퐁투아즈 코뮌이었는데 지금은 하나의 신도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코뮌’이라는 자치도시가 활성화돼 있는 국가다. 코뮌은 12세기에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립된 도시형 자치체로, 현재 프랑스 전체에 모두 3만6000개나 구성돼 있다.
퐁투아즈는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지역이다. 한때 왕이 살기도 했다는 이곳은 바이킹과 노르만족이 프랑스를 침략했을 때 파리를 지키는 마지막 요새였다. 때문에 오래된 교회와 성당, 박물관 등 많은 유적과 함께 크고 잘 다듬어진 농장이 많다. 19세기 중순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카미유 시세르의 작품 중에도 ‘잘레의 언덕, 퐁투아즈’ ‘퐁투아즈의 강변과 다리’ 등 퐁투아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적지 않다.
오래되고 고즈넉한 도시 분위기 때문에 정년을 마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고급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파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개발 이전, 이곳의 인구는 2만명 정도였다.
이에 비해 세르지는 고작해야 시민 500∼600명 에 불과한 조그마한 코뮌이었다. 퐁투아즈에 왕족이나 귀족들이 살았다면 세르지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곳이다. 세르지·퐁투아즈에는 이 2개의 코뮌 외에도 9개의 코뮌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지역도 세르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발 이전 세르지와 퐁투아즈를 포함해 11개 코뮌 전체 인구는 4만명을 넘지 못했다. 현재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상상하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퐁투아즈의 유물과 유적들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돼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세르지에는 대형 쇼핑몰과 행정관청, 대학, 병원 등 행정, 교육, 상업 등 각종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세르지 중심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변에 세워진 대형 쇼핑몰은 연간 고객이 3000만명에 이른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또 100만명이 거주하는 파리 서북쪽 발두와즈지역을 총괄하는 행정기관인 도청이 이곳에 세워졌고, 그 주변에는 수천 평의 공원 등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다.
교육시설로는 세르지·퐁투아즈 종합대학을 비롯, 프랑스 최고수준의 상경계열 그랑제콜(5년 과정의 대학원대학) 에섹(ECCEC), 국립예술학교, 국립전자공학대학, 교육대학, 고등농업학교 등 10여 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신도시 전체적으로는 초등학교 및 유치원 83개, 중학교 18개, 고등학교 11개가 있다. 풍부한 교육시설 덕분에 초등학교의 평균 학생수는 80명으로 한 학년에 한 반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