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집 외 얽는 일을 도와주는 필자.
봄에 콩을 심고, 새하고 싸우며 새싹을 지키고. 풀과 싸워 이기면 여름에 콩 꽃 구경할 수 있다. 가뭄에 목말라하지 않나, 태풍에 쓰러지지 않나, 벌레가 너무 많지 않나… 드디어 콩이 영근다. 콩잎이 떨어지면 거두어들인다. 낫으로 베어 말렸다가 도리깨로 턴다. 그러면 콩깍지 부스러기, 덜 여문 콩, 잘 익은 콩, 벌레 먹은 콩이 뒤섞이게 마련. 거기서 잘 여문 콩을 고른다. 된서리가 내리면 메주 쑬 때다. 메주를 매달아야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처마 밑에 메주가 매달린다
메주콩 삶은 냄새를 기억하는가? 메주를 빚는 곁에서 집어먹던 콩 맛을 아는가? 요즈음 도시 아파트 살림에서는 사라진 메주 쑤기. 나 역시 농사를 시작하고서야 메주를 쑤기 시작했다. 처음이니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 남편과 함께 가마솥에 불을 때며 콩을 삶았다. 불 때느라, 그 다음에는 콩물이 끓어 넘치지 않게 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아궁이 불길이 잦아들고, 뜸이 푹 들 무렵. 얼마나 더 익혀야 하나? 둘 다 모른다. 다른 건 어찌 귀동냥을 했는데 이건 못 알아놨다. 앞집에도 가보고, 뒷집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도 계시지 않는다.
이거 어떡하지? 그러는데 가마솥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졌다. 그래, 이게 메주 냄새야. 어릴 때 맡아보던 그 냄새. 둘이 눈을 마주보며, 머리로는 먼 시간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 맡아본 냄새를 따라 그때 기억 속으로.
이제는 메주를 빚을 차례. 뜨거운 콩을 퍼내 큰 그릇에 담고 쿵쿵 찧는다. 아이 어른 힘을 모아서. 그리곤 메주를 빚는다. 틀에 넣고 밟아서 빚는데 아이들도 잘한다. 연신 콩을 집어먹으며. 온 식구 몸무게를 모아 단단하고 반듯한 메주를 빚는다. 그러고 나면 아침 먹고 시작한 일인데, 깜깜하다. 메주를 하룻 밤 식힌 뒤, 볏짚으로 솜씨를 부려 처마 밑에 매단다.
처마 밑에서 아침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메주가 마르면 안방 아랫목에 메주를 모시고 띄우기 시작한다. 고롬고롬한 메주 뜨는 냄새.
겨울에 아랫목을 차지하는 게 메주만 있나. 담북장, 보통 청국장이라 하는 장도 있다. 이건 또 냄새가 어찌나 놀라운지. 담북장을 띄우고 나면 며칠 동안 방안에서 냄새가 사라지질 않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익숙하다. 한 방에서 냄새를 맡으며 먹고 자고. 담북장과 하나가 된다. 집에서 만든 담북장은 콩과 볏짚이 뜨겁게 만나 이룬 맛이다.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며 냄새도 더 지독하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내 손맛이 있다.
시골 살면 전염된다. 초겨울에 메주 쑤고, 한겨울에 담북장 냄새 풍기고 싶어한다. 주부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남정네들도 열심이다. 올 초 마을 회의를 하는데, 회의 끝내고, 메주 띄우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남정네들이 더욱 열심이다. 시골집에서 이 일은 주부들만의 일이 아니다. 남편도 함께 불을 때고, 메주 빚고, 매달고…. 메주는 이렇게, 부부가 힘을 모아 일년 농사하여 마련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