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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벗으면 될걸 고백하면 될걸 왜 복잡하게 사나”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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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년 동안 대학로 문화판을 호령하던 박의순씨가 동숭동 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떠났다. 박씨의 부재 이후 사람들은 소극장 운동의 메카였던 바탕골이 사라질까 발을 구른다. 1986년 개관 이후 끊임없이 화제를 일으킨 바탕골의 역사와 문화판 여걸 박의순씨의 삶.
‘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양평 바탕골예술관 박의순 대표는 한때 사람을 만나면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지옥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톨릭 신부에게도 묻고 개신교 목사에게도 물었다. 유명한 시인에게도 묻고 이름난 학자에게도 묻고 나라 살림을 맡은 높으신 어르신에게도 물었다. 빠른 말씨로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지옥이 정말 있어요?”

반응은 천태만상이었다. 신성모독이라는 듯 화를 내는 이도 있고, 빙그레 웃는 이도 종종 만났고, 말없이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구상 선생이 이 질문에 고개를 흔들었고 공부의 경계가 까마득히 높다고 소문난 정양모 신부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얼른 그 앞에다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얼른 여기다 사인하세요.” 그는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노상 즐기면서 살아왔다. 종교인이되 지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굳이 모아보고 싶은 것은, 쓸데없이 ‘목에 깁스한 사람들’을 눈 뜨고 못 봐주는 박 대표의 기질이었다. 격정에 차서 위선과 상식을 통렬하게 비웃어주는 판을 기획했고, 온갖 시련을 견뎌내며 그런 마당을 쉬지 않고 펼쳤다.

“한때는 예수님 장가 보내자고 지랄하고 다녔어요. 아니 예수님도 불알 달고 나왔으면 장가를 가야 할 거 아니에요. 하하하.”

그런 말을 하면서 깔깔 웃는 박의순씨는 뻔뻔스럽거나 저돌적이거나 거칠기는커녕, 여리고 곱고 유순하기 짝이 없다. 얼굴빛과 골상과 이목구비를 흐르는 윤곽선에서 험한 말, 험한 꼴을 당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종의 귀티가 해말갛게 흐른다. 눈이 맑다. 예순일곱의 초보할머니인데 얼굴에는 어린애 같은 호기심과 장난끼가 넘쳐난다.

종횡무진 욕으로 안기부 제압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을 그대로 옮겨담으면 대중매체에 올리기 어려울 만큼 강도가 높지만 실제의 울림은 전혀 다르다. 나오는 말이 파격적일수록, 주변을 둘러봐야 할 만큼 욕설의 단위가 커질수록 나는 유쾌, 상쾌, 통쾌한 웃음이 뱃속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거짓말에 까만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 있다더니 욕에도 그런 색깔이 있다면 박의순 대표의 욕은 단연 ‘하얀’ 욕이다.

“내가 신부님을 만나면 막 떠들어요. 솔직하게 말해보자고요. 하느님이 잘 하라고 달아준 불알을 멍청하게 썩히는 예수라면 그거 고발해야 된다고요. 우리, 예수님 장가 보내드립시다. 이러고 나서면 신부님들이 못 말리겠다 싶은지 하하 웃어요.”

거드름부리거나 엄숙주의에 파묻혀 있거나 위선적인 기운이 느껴지면 그의 욕은 종횡무진, 천의무봉으로 퍼부어진다. 용솟음치는 그의 기운을 억누르는 세력이 행여 나타나면 그의 기운은 화산처럼 폭발한다. 이런 그에게 사건이 넘쳐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바탕골소극장, 우리나라 소극장 문화의 출발점, 미술관과 극장과 커피숍과 아틀리에를 한 건물에 가지고 맹렬하게 문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살아온 박의순씨를 새로 옮긴 양평의 바탕골에서 만났다. 눈에 띄게 흰 피부에 윤곽선이 섬세한 얼굴, 나는 내심 그 소문난 욕이 언제쯤 시작되려나 흥미진진하게 기다렸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굴에 웃음을 담고 지금은 남의 손에 넘어간 동숭동 바탕골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박종철 추모식 사건부터 터져나왔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 죽었잖아요. ‘턱’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스쳐갔어요. 당장 연극하는 기국서씨를 불렀지. 그래서 ‘물고문’이라는 퍼포먼스극이 만들어진 거야. 현수막 대신 바탕골 전면에 검은 만장을 내걸었지. 그런데 ‘동아일보’가 바탕골에서 박종철 추모식이 열린다고 써서 난리가 났지. 어느날 안기부라며 전화가 왔어요. 대뜸 ‘당신 죽고 싶어, 살고 싶어?’ 하는 거야. 나는 안기부가 뭔지 몰랐어요. 중앙정보부라고 했지 어디 안기부라고 했어야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뭐가 뭔지 모르니 겁날 게 없지. 안기부를 나는 안건사라고 들었거든. 왜 그 의자 만드는 안건사 있잖아. 나도 참 무식하지. ‘남이야 죽고 싶던 살고 싶던 니가 무슨 상관이야? 의자나 잘 만들면서 처박혀 있어라 이 나쁜 놈아’ 그랬지. 그랬더니 그쪽에서 되레 이 여자가 뭘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큰소리 치는구나 싶었던 모양이야. 찔끔하더니 끊어버리데.”

박종철 추모제 이후 바탕골은 ‘9일장’ 사건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박의순을 말하려면 일단 9일장 이야기부터 풀어놓는 게 낫겠다. 그의 감각과 순발력과 에너지와 추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 거기 다 들어 있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동숭동에 바탕골예술관 문을 연 것은 1986년 4월이었다. 개관 이래 연일 화제만발이었다. 매일 무용을 공연했고 기발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사람들을 불러모아 시낭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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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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