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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벗으면 될걸 고백하면 될걸 왜 복잡하게 사나”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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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 욕쟁이’ 바탕골예술관 대표 박의순
이듬해 7월, ‘바탕골’이란 이름이 문화계 전반에 커다랗게 돋을새김되기 시작할 무렵, 공연하기로 했던 연극이 갑자기 펑크가 났다. 9일 정도 극장이 비게 생겼다. 박 대표의 머릿속으로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지나갔다. 굿을 하자! 내가 무당이 되어 굿 한판 벌여보는 거야!

진작부터 굿에 관심이 있었다. 개관 기념으로 만신 김금화를 불러 걸진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종합예술이다, 뭐다 이전에 그저 한바탕 시끌벅적한 판을 벌이는 것이 좋았다. 그는 기질적으로 타고난 무당인지도 모른다.

당장 대규모 행위예술 마당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아니, 계획은 아니었다. 그는 즉흥의 대가다.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주먹구구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저돌적으로 추진했다. 대신 ‘무당답게’ 번뜩이는 영감이 있었다. 세상을 향해 아무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놓을 줄을 알았다.

1987년이었다. 6월항쟁이 막 지나고 서슬퍼런 독재가 한풀 꺾일 즈음이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젊은 목숨들이 수두룩했다. 원한을 풀어줘야 할 혼령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해 1월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 죽었다. 6월에는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고 친구 어깨에 기대어서 죽었다. 그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니 박 대표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큰 굿을 한판 벌이고 싶었다.

“내가 젠장 정치를 알어? 민주투사이길 해? 애국심은 무슨 개뿔…. 그냥 한바탕 큰소리 치면서 지랄 떨고 놀고 싶었던 거지.”



시작은 단순했다. 바탕골을 열면서 마당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았다. 그 나무가 뿌리를 못 내리고 비실거렸다. 비싼 나무이기도 했지만 푸른 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꼴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기가 싫었다. 광목으로 그 나무를 감싸보면 어떨까 싶었다. 광목을 감싸는 뜻은 환생을 비는 마음이었다.

나무를 감쌀 생각을 하다 보니까 건물 전체를 모조리 광목으로 두르고 싶어졌다. 3층 건물을 흰 천으로 친친 동이자니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광목이 필요했다. 서울시내 광목을 모조리 사들였다. 1000마의 광목을 사는 데 그때 돈 200만원이 들었다.

극장 입구에는 탄생을 상징하는 금줄을 걸었다. 죽음은 탄생과 맞물리는 절차 아니랴, 하다보니 죽음뿐 아니라 부활까지도 염두에 두게 됐다. 현관 원통형 홀에는 검은 종이로 신주를 만들어 모셨다. 사자밥도 짓고 문 앞에 짚신도 준비하고 넋전도 만들고 사람 형상을 크게 오려 삼층 꼭대기에서 아래로 늘어뜨렸다. 극장 앞에 있던 돌조각에도 흰 광목을 감쌌다. 조각의 허리에 새끼줄을 둘렀더니 음산하고 기괴해졌다. 죽음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검은 상복을 입은 박 대표가 모든 의식을 주관했음은 물론이다. 사실 눈물도 철철 흘러넘쳤다. 예술관 전체가 영락없는 초상집이었다.

청와대와 안기부와 경찰은 물론이고 구청과 동사무소까지 이 초상집을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공연계획은 극비에 부쳐졌고 찾아오는 기자들도 쫓아냈다. 그러나 소문이 새나가 바탕골 주변을 빙빙 돌면서 감시하는 눈길들이 늘어났다.

“퍼포먼스라는데, 공연예술이라는데, 더구나 주인이 입만 열면 욕을 바가지로 퍼부어대는데 잡아죽일 수도 없고 말야, 하하하….” 그러나 견제와 압력은 여러 통로로 들어왔다. 아까 말한 안기부 전화도 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가 최고의 존경을 바치는 구상 선생을 통해 공연을 막으라는 압박이 있었다. “내가 그 영감님이라면 깜빡 죽지. 학식도 외모도 인품도 신앙도 시(詩)도 완벽에 가까운 분이거든.” 그래서 한 발 양보했다. 상청에 박종철, 이한열의 위패를 걸려던 것을 취소했다. 대신 그림과 시를 내걸었다. 시는 산골소녀 김옥진의 것이었다. ‘조금 아픈 것은 참 고마운 아픔’이란, 생명과 삶에 감사하는 눈물겨운 내용이었다.

“우리 모두가 박 여사의 원숭이네”

구상 선생의 코치로 검은 무명을 사와 아홉 개의 고(묶음)를 만들었다. 9일장이니까 하루에 한 개씩 그 매듭을 풀기로 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시낭송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했다. 타의에 의해 파괴되는 생명과 그 분노를 담은 기국서의 행위예술 ‘방관’, 이를 춤으로 표현한 임경숙의 ‘우리의 아벨’, 판소리 심청가를 행위예술로 각색한 ‘청의 죽음’, 춤과 행위예술의 결합공연인 신영성의 ‘아굴의 기도’, 무세중의 ‘통일을 위한 피의 살풀이’.

이런 흐드러진 육체언어의 난장을 끝낸 후 마지막날엔 광목을 벗겨 태우고 지신밟기와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바깥 포장마차에다 맥주와 땅콩, 막걸리와 부침개를 푸짐하게 늘어놓아 행인들에게 마구 나눠줬다. 이런 진정한 의미의 축제를 벌이면서 그는 살맛이 이글이글 솟는 것을 느꼈다.

예술관 실내 곳곳에는 50개의 비디오 화면이 설치됐다. “당시만 해도 비디오가 어디 흔했나. 외국기자가 광주사태를 찍어놓은 화면을 수녀들이 치마폭에 숨겨다니면서 성당 안에서 몰래 틀곤 했거든. 그걸 바탕골 곳곳에 잔뜩 비출 계획이었는데…” 그것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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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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