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농협의 ‘대통령 사돈 자리 만들어주기’

임시주총 열고, 회사정관 고치고, 없던 직책 새로 만들고…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2-27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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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 사돈의 농협 자회사 특채를 둘러싸고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 노 대통령-썬앤문-농협의 유착의혹에 이어 대통령 사돈의 위인설관 논란까지 가세했는데….
    농협의 ‘대통령 사돈 자리 만들어주기’

    노무현 대통령 사돈 배병렬씨의 고위직 특채를 결정한 주주총회 의사록.

    농협중앙회 자회사(농협측 지분 60%)인 농협CA투자신탁운용(주)은 2003년 1월28일 설립됐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배병렬씨는 이 회사 ‘비상임감사’로 취임했다. 2002년 12월25일 배씨의 딸이 노무현 대통령 아들 건호씨와 결혼한 지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같은 해 8월1일 배씨는 농협CA투신의 ‘상임감사’로 임명됐다. 배씨는 경남 김해 모 단위농협 전무 출신이다. 농협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농협은 농협중앙회와는 관련 없는 독립 법인이다. 지방 중소도시 단위농협 전무는 농협중앙회 과장급이어서 배씨의 발탁은 몇 계단 건너뛴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배씨는 3년여 전 퇴임한 상태였다.

    최근 기자가 입수한 농협CA투신 임시주주총회 의사록에 따르면 배씨의 상임감사 임명엔 일련의 특별한 조치들이 작용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3년 7월24일 오후 5시30분 서울 여의도 본사 대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농협CA투신 경영진과 농협중앙회(장) 대리인(상무) 등 3인이었다. 안건은 배씨 관련 사안 한 가지였다.

    주총 참석자들은 첫 번째 안건으로 회사 정관 제29조의 개정을 의결했다(감사는 비상임으로 한다 → 감사는 상임 또는 비상임으로 할 수 있다). 이어 참석자들은 두 번째 안건으로 신설된 상임감사 자리에 배병렬씨를 선임했다. 배씨의 임기는 대략 3년을 보장해줬다.

    ‘주주총회 의사록’의 회의진행 상황을 좀더 살펴보자. “의장은 상임감사 선임 및 상임감사의 급여, 수당, 퇴직금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다. 승용차 지급조항에 기사는 제공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히다. 본 제안이 농협의 급여지침 등을 공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다. 비어 있는 회의실을 개조하여 배 감사의 사무실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대답하다. 의장이 승인을 요청하자 농협중앙회 대리인 등이 동의해 통과되었음을 선언하다. 의장은 이상으로 폐회를 선언하다.” 배씨는 상임감사에 선임됨으로써 농협중앙회 급여 지침에 준하는 급여, 수당, 퇴직금, 승용차, 개인 사무실을 제공받게 된 것이다.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은 썬앤문-노 대통령측과의 유착의혹으로 2004년 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바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배병렬씨의 감사 임명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농협CA투신 외국인 사장에게 “배병렬씨의 감사 임명과 관련,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의 요청이 있었나”라고 물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CA투신의 대주주이고 정 회장은 농협중앙회 주주를 대표한다. 농협CA투신의 외국인 사장은 묘한 이메일 답장을 보내왔다. “최종결정은 양 주주(농협중앙회와 농협CA투신의 주주)간의 상호 협의에 의해 내려졌다.” 분명한 사실은 배씨의 상임감사 임명은 ‘농협중앙회(장) 대리인’의 동의하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농협CA투신 사장은 “30년 이상 회원조합에서 근무한 배 감사 경력은 아주 적절한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30년 이상 근무한 단위농협 임원 출신은 전국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신생회사가 설립 6개월여 만에 정관을 뜯어고치고,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고, 상당한 인건비를 감수해가며 없던 자리까지 새로 만들어 배씨를 거기에 앉힌 까닭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배병렬씨와 사돈을 맺은 다음날(2002년 12월26일)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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