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가” 되묻는 추리소설 ‘철학적 탐구’

  • 글: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jjambo@nownuri.net

    입력2004-03-02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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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가” 되묻는 추리소설 ‘철학적 탐구’
    섣부른 예측일지 몰라도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한스미디어)은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될 것 같다. 약간 과장하면 전철 칸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이가 한 명씩은 꼭 있다. 발간 4개월 만에 60만 독자라니 이 추세라면 100만부 돌파는 무난할 듯하다.

    이 책의 성공은 의미가 깊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책을 사재기하는 장난을 치지 않았고, 방송사의 추천도서로 선정된 적도 없으며, 출간 직후 출판 지면에 제대로 소개되지도 못했다. 이 책은 제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신생 출판사의 노력이 시류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30만부를 넘어설 즈음, 출판사 대표는 책이 너무 많이 팔려 두려울 정도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이 책은 이제 욕먹을 일만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곧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베스트셀러라는 목표물이 나타나면 사방에서 달려들어 이리 물어뜯고, 저리 흠집 내려고 난리가 난다. 게다가 이 책은 비판적인 독자들이 한 수 접고 보는 경영 처세서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지면과 술자리에서 접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보다 부정이 많다. 그러나 ‘생활 철학서’ ‘환상을 심어주는 책’ ‘노동자의 아침 시간마저 쥐어짜려는 자본의 계략’이라는 세 갈래 평가 중에서, 나는 삶의 철학을 제시했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좋은 일 아닌가. 야밤형인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어졌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단순한 이유다.

    수사과정이 곧 철학

    그러나 추리소설은 다르다. 빈번하게 묘사된 살인장면을 따라하게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잔혹한 광경을 읽고 남을 해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추리소설 읽고 남을 해칠 자는 추리소설을 읽지 않아도 남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라는 책을 읽고 아침 일찍 일어날 마음이 생겼을 뿐, 나는 아직 야밤형 생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은 살인 매뉴얼이 아니다.



    문득 처세서와 추리소설에는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출판계에서 천대받는 장르이며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이 바로 추리소설을 잘 안 읽는 내가 추리소설을 옹호하고자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가 그럴 엄두를 낸 것은 ‘철학적 탐구’(필립 커 지음, 임종기 옮김, 책세상)라는 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철학적 탐구’는 추리소설이란 시간 때우기용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만만찮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추리기법을 활용해 철학을 했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처럼 폼을 잡지도 않는다. ‘철학적 탐구’는 추리소설의 장르적 속성과 문법에 충실하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하면서도 만만찮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철학적 탐구’는 중의적 표현으로 일단 수사과정을 가리킨다. 이 점은 소설에서 이사도라 제이코비치 경감이 자문하는 철학교수이자 저명한 탐정소설가인 제임슨 랭 경의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 “범죄 수사와 철학은 모두 어떤 것은 밝혀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만들어내요. 우리의 활동 무대에는 현실의 참된 그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함께 맞춰야 하는 단서들이 수반됩니다. 경감님이나 저나 모두 각자가 노력하고 있는 것의 핵심은 어떤 이유에서든 숨어 있는 의미와 진리를 찾는 것이죠. 외관의 배후에 존재하는 진리 말입니다.” 랭 교수는 철학자가 명제를 검증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사관은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검증하려 한다고 덧붙인다.

    다른 하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가리킨다. 프랑스 릴 3대학 교육학과 교수인 이브 뢰테르는 ‘추리소설’(문학과지성사)에서 “추리 장르가 독자성을 갖게 되는 현상은 하나의 역사를 가정한다”면서 어떤 작가들은 “그 독자성의 기반을 증명하기 위해 매우 오래된 원천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필립 커 역시 그런 부류의 작가다. 이 소설에는 키르베로스,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과 인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명작, 그리고 여러 작가의 추리소설이 언급된다. ‘장미의 이름’의 한 구절도 인용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은 역시 비트겐슈타인이다. 필립 커는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소설의 뼈대로 삼았고,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로 살을 붙였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무시하고 넘어가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그러한 독서는 ‘진귀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필립 커가 비트겐슈타인의 수고(手稿)인 ‘청색노트’와 ‘갈색노트’까지 소설적 장치로 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정신과 의사 토니 첸 박사가 최면을 통해 떠올린 코드명 비트겐슈타인의 인상착의는 바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그것이다. “키는 중간 정도, 갈색의 물결 모양 머리, 크고 날카로운 푸른 눈, 골똘해 보이는 얼굴 표정, 그의 이마는 항상 생각에 열중하고 있는 듯 날카로워 보여요. 코는 매부리코에 가깝군요. 입술은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데, 여자 입술과 닮았다고나 할까요. 거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야위었는데 건강해 보이지 않아요.”

    최근 번역된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개봉 영화의 내용을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잠재적인 독자에게는 김새는 일이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500쪽이 넘는 소설의 내용을 두루뭉실하게 정리해보겠다. 소설의 배경은 2013년 영국 런던이다. 그러니까 SF 스릴러로도 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지명이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런던 경찰청은 연쇄살인사건을 추적중이다.

    이 사건들은 이른바 ‘롬브로소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 ‘롬브로소 프로그램’은 유럽공동체 차원에서 마련한 일종의 예비검속 또는 범죄예방책으로, 남성의 호전적 반응을 억제하는 뇌의 ‘시상하부 배 안쪽의 핵(VMN)’이 결핍된 잠재적 범죄자를 첨단기술로 가려내 보호하는 프로젝트다. 말이 보호지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사전 예방적 조치인 셈이다. 2011년 이후 영국 거주 남성 400만명을 대상으로 VMN결핍검사를 시행한 결과, 0.003%(120명)가 반(反)VMN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쇄살인의 남성 희생자는 모두 반VMN 판정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 프로그램’이라는 한글판 부제목은 ‘롬브로소 프로그램’이라 하는 것이 더 나았을 성싶다.

    마르크스 이론 강의도

    희생자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의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부여한 코드명이 서양 철학자의 이름이었다. 결국 제이코비치 경감과 런던 경찰청 수사관들의 활약으로 범인의 윤곽이 잡힌다. 물론 독자는 소설 속의 경찰들보다 먼저 누가 범인인지 알게 된다. 여성 연쇄살인범에게는 약간의 트릭이 설정돼 있다.

    이 소설에는 ‘소설가 소설’로 읽히는 대목도 더러 있다. 추리소설 전문서점의 썰렁한 저자 사인회 광경도 그렇지만 제이코비치 경감의 독서취향에서 보여지는 추리 작가들의 외모 묘사는 더욱 그렇다. 책 날개에 실린 필립 커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다. 또 필립 커는 코드명 비트겐슈타인의 입을 빌려 연쇄살인범의 행동을 사적 유물론의 산물로 보는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사회의 근본적인 희생자가 사회의 적대자로 변모한다고 설명한다.”

    펭귄판 ‘자본론’의 서문을 집필한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이후)은 이러한 관점에서 범죄소설을 분석했다. 이 책에서 만델은 추리소설과 범죄를 다루는 비(非)통속문학을 구분하는데, 그 기준은 작가의 주관성이다. “통속문학의 경우 이러한 주관성이 부재하고, 그 상업적 목적으로 인해, 독자들이 지녔을 것이라고 추정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한에서만 사회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나는 통속문학임을 부인할 수 없는 필립 커의 ‘철학적 탐구’에 진정한 문학의 면모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기술 본위 사회의 암울한 미래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데 있지 않다. 이 소설의 진정성을 말해주는 징표는 다음 한마디로도 충분하다.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할 논리적 이유가 없어서 나는 살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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