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만인보’ 외

  • 입력2004-03-02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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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보’ 외
    만인보 고은 지음시인에게 운명적인 시가 있다면 고은에게는 ‘만인보(萬人譜)’가 아닐까. 저자는 1980년 여름 신군부 세력에 의해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죄로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 갇혀 있는 동안 ‘만인보’를 구상했다. ‘시로 쓴 인물사전’이라 불리는 ‘만인보’는 지금까지 15권이 나왔고 7년 만에 719편의 시를 추가해 새로 5권을 펴냈다.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5권은 식민지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기 전후의 인간군상을 다뤘다. 산정리 비탈에서 터지는 중포탄, 머리를 처박은 ‘그 아낙’의 처참한 모습이 담담히 묘사되고, ‘나라의 불행을 잘 쓰고 나라의 모순을 잘 쓰고 남긴’ 이승만을 기억한다. 2~3년 내 ‘만인보’ 30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비/각 340쪽 안팎/각 8000원

    변동기의 한일정치 비교 최장집 외 지음 1996년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구축한다’는 기본적 인식에서 한·일 중견학자들이 결성한 ‘한일공동연구포럼’ 제1기 연구성과를 모았다. 게이오대 소네 야스노리 교수는 ‘민주화, 제도개혁, 금융위기’에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양국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전환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의 ‘권력블록(국가와 경제 지배계급의 연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 : 일본사회당의 실패에 관한 한 해석’을, 와세다대 시노다 도오루 교수는 ‘바야흐로 생디칼리슴의 세기인가? : 한국 노동운동의 풍경’으로 양국의 노동환경을 비교했다. 아연출판부/363쪽/1만8000원

    눈의 역사 눈의 미학 임철규 지음“눈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이며, 인식한다는 것은 전체 중의 부분만을 파악한다는 것이기에 눈이란 진정 감옥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했지만 인간에게 눈이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눈은 전체 가운데 부분을 떼내어 ‘틀 짓는’ 인식의 감옥인 것이다. 그는 ‘눈’이라는 주제로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바타유, 벤야민, 데리다 등의 현대사상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인문학적 탐사를 시도했다. ‘눈과 태양, 신 그리고 빛’ ‘눈과 성기’ ‘성상논쟁’ ‘낭만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길사/440쪽/2만2000원

    고대로부터의 통신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지음우리 고대사 연구의 기본자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문헌자료이나 이 두 책은 삼국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여러 전승자료를 모아 편찬했기에 일차로 가공된 자료다. 반면 금석문은 누군가의 해석이 가미되지 않은 당대의 생생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는 지난 3년 동안 신라왕족의 로맨스를 새긴 ‘천전리각석’, 고구려 건국설화가 남아 있는 ‘모두루무덤 묘지’, 고대 한일 관계사의 실마리를 풀어줄 ‘칠지도’ 등 18가지 금석문을 분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구려사에 대해서도 수많은 벽화와 설명문, 묘지 등이 풍부한 ‘정보 창고’역할을 해준다. 푸른역사/412쪽/1만4000원

    인생의 참스승 선비(전2권) 이용범 지음저자는 조선시대 유학자로 대표되는 선비의 개념을 넓혀 ‘아는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다리 아래 살갗을 도려내고 갈대 위를 걷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저항하다 끝내 불타 죽은 신라의 박제상, 전쟁터에서 구차하게 살아돌아온 아들 원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지소부인(김춘추의 셋째딸이며 김유신의 아내) 등 삼국시대에서 항일기까지의 선비 234명을 일화 중심으로 엮었다. 허균이 “군자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채워 뒷사람에게 남기는 것”이라고 했으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이 시대에 ‘선비’라는 그리운 이름을 다시 불러 보게 된다. 바움/420쪽 안팎/각 1만5000원



    종가의 제례와 음식(전3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편참 의미는 사라지고 부담스러운 의무로 변해버린 전통 제례의식의 의미를 되살린 책. 1권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 2권 서흥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와 반남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3권 월성손씨 양민공 손소 종가와 청주한씨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 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종가의 내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불천위 제사의 제례 봉행과정 전반과 제사음식의 종류, 조리과정 등을 사진과 함께 수록했다. 제사란 흔히 설소과(設蔬果-제물 진설) 등 의례가 중심이 되기 쉬우나 이 책은 장보기와 제사음식 만들기, ‘군자는 날것을 먹는다’는 설에 근거해 익히지 않은 고기를 상에 올리는 풍속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담아냈다. 김영사/각 150쪽 안팎/각 1만900원

    ‘만인보’ 외
    지낭(전3권) 풍몽룡 지음 / 이원길 옮김‘고금소설’ ‘봉선연의’ ‘동주열국지’로 널리 알려진 중국 명나라 작가 풍몽룡이 54세에 중국 고대인들의 지혜를 총망라해 썼다는 기서(奇書).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 3000여년 동안 제자백가의 경전과 역사기록뿐 아니라 패관야사를 아울러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한 2000여가지 이야기를 수집·정리했다. 그동안 ‘상술’ ‘변론술’ ‘용병술’ 등 발췌본이 나왔으나 완역은 처음이다. 1권은 상등의 지혜, 현명한 지혜 편이고 2권은 관찰, 담력, 방법, 기민한 지혜로 나뉘어 있다. 3권은 언어, 군사, 여인의 지혜와 마지막에 잡다한 지혜 편으로 정리했다. 신원문화사/각 600쪽 안팎/각 2만1000원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노형석 지음독도 지킴이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 근대사 부문 최고의 서지학자 고(故) 이종학 선생이 소장했던 희귀 사진자료 391장을 통해 근대 한국을 재조명했다. 먼저 물질적 하부구조인 전 국토의 시공간과 물질적 기반의 변화가 한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목한다. 철도, 전기와 통신, 도로, 상가 등의 근대 물질문명에 얽힌 보통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 농민들, 막 형성된 공단 노동자, ‘모던보이’와 ‘모던걸’로 통칭되던 도시 부르주아와 룸펜들이다. 1920년대 경성 시내 판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희귀지도(1924년 교통실업사가 제작한 경성상가지도)가 첨부돼 있다. 생각의 나무/384쪽/2만9500원

    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 김희상 옮김수염, 머리카락, 눈썹과 속눈썹, 겨드랑이털, 다리털, 음모에 이르기까지 털에 관한 모든 것. 역사적으로 남자의 수염은 힘과 성적 욕망을 상징했지만 여자의 털은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또 2002년 가을 이란 테헤란의 거리에서 대학생들이 학문의 자유와 개방을 요구하며 이렇게 외쳤다. “더이상 수염 난 남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 마르크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호치민, 트로츠키, 레닌 등으로 대표되는 ‘혁명가의 수염’이 어느 순간 ‘반동의 수염’으로 전락한것. 시저 시대 로마 남자들은 겨드랑이털이 토가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혐오했지만, 영국해협 건너 켈트족 전사들이 콧수염과 머리카락만 빼고 전신, 심지어 종아리 털을 면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대와 편견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털의 문화사. 작가정신/240쪽/9800원

    이계홍의 휴먼스토리 이계홍 지음30년 가까이 언론 현장에 있었고 소설집 ‘틈나면 자살하는 남자’ ‘저 미망을 향하여’를 펴내는 등 소설가로 활약해온 저자가 인간적 체취와 온기가 머무는 14명을 인터뷰했다. ‘호기심을 먹고 사는 바람의 딸’ 한비야와 ‘딩동댕 21년’의 송해, 4전5기의 신화 이후 도발적 언행과 스캔들로 살아온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 무기수로 20년20일을 감방에서 보낸 신영복 등 다양한 삶의 철학을 갖고 있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동아일보 문화부 재직시 필자와 담당기자로 만났던 신영복 교수와 10년 만에 재회해 기자로서 오랜 연륜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아드림/354쪽/1만원

    대학혁명 제임스 J.두데스탯 지음 / 이철우·이규태·왕인 옮김“지금부터 30년 후 거대한 대학 캠퍼스는 유적지로 남을 것이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 미시간대 총장을 역임한 저자는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변화의 도전을 지적하며 구체적인 개혁과제(비전 2000과 비전 2017)를 제시했다. 그는 “학생은 학습자로, 교수 중심의 대학은 학습자 중심의 대학으로, 교육은 능동적인 학습으로, 학생은 학습 공동체의 평생회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현실을 적시했다. 이 말 속에는 20세기적 대학은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옮긴이들이 ‘대학개혁 및 고등교육 패러다임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대학 교직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책이다. 성균관대출판부/544쪽/2만5000원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임계순 지음필요할 때는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신용할 수 없다”고 비난하는 조선족과 한국인. 1992년 한중수교로 한국인의 중국 진출과 조선족의 고국방문이 본격화한 이후 양측이 서로 비방하기에 바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완전히 다른 체제와 사회에서 성장하고 생활해온 문화적 배경과 이에 대한 이해부족을 지적하고 동북3성의 조선족 역사를 연구했다. 연구는 중국의 한국인들이 ‘조선족’으로 불린 1952년부터가 아니라 한족(韓族)인 ‘조선인’이 중국 동북지역에 살기 시작한 18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간도 분쟁’ 속에서 조선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21세기 동북아시대에 한국과 중국의 융합을 이룬 조선족의 이중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술한다. 현암사/424쪽/1만5000원

    ‘만인보’ 외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고미숙 지음‘열하일기’를 재해석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으로 고전평론가가 된 저자가 자신에게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제공해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소개했다. 소수의 국문학 연구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던 공간에 사회과학자들이 합세하고, 밥상을 함께 쓰면서 삶과 지식이 하나가 되는 기묘한 공간으로 자리잡기까지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그 자체가 연구대상이다. 이 책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록이며 비전탐구서이기도 하다. 이진경의 ‘노마디즘’,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선태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등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휴머니스트/296쪽/1만원

    현대가족이야기 조주은 지음‘현대자동차 노조설립 17년 부끄러운 기록-무분규 타결 단 한 번’ ‘제몫만 챙기는 대기업 노조=현대차 1인 연 1000만원 올라 평균연봉 5000만원 넘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어느새 ‘노동귀족’의 대명사가 된 현대자동차 노동자. 정말 그럴까. 저자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조와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자의 가족에게 눈을 돌렸다. 즉 노동자의 부인들을 직접 인터뷰해 노동자의 삶을 재구성하는 형식이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저자 자신이 대학 졸업 후 늦깎이 운동권으로 청년단체에 상근하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남편과 결혼하여 울산에서 노동자 가족들과 5년간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가서/348쪽/1만5000원

    몽골비사 유원수 역주‘집사’ ‘원사’와 함께 몽골 제국 3대 사서로 평가받는 책. 앞서 두 책이 각각 이슬람과 중국에 의해 쓰여졌다면, ‘몽골비사’는 몽골인이 직접 쓴 유일한 역사책으로 북방 유목민족사 연구의 필수 사료로 꼽혀왔다. 우리의 환웅과 웅녀에 해당하는 몽골인의 조상 부르테 치노(잿빛 푸른 이리)와 코아이 마랄(흰 암사슴)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몽골의 역사, 생활문화, 철학, 신화, 사회·군사제도, 언어 등을 망라했다. 현재 위구르어로 기록된 원전이 전해지지 않아, 역자가 원말명초에 편찬된 한역본 ‘원조비사(元朝秘史)’를 당시 한어 방언의 음가를 추적해 최초 원전에 가까운 위구르식 몽골어로 재구성한 후 그것을 현대 한국어로 옮긴 과정 자체가 놀라운 역작이다. 사계절/552쪽/3만2000원

    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배병삼 지음동양고전에 능통한 정치학자. 저자에 대한 가장 간략한 소개가 아닐까 싶다. 두 권짜리 ‘한글세대가 본 논어’를 펴낼 때의 우직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 산문집은 말 없이 설명한다. 화장실 재털이로 전락한 스테인리스 대접을 바라보며 ‘늙어야 할 때 늙지 않고, 늙어서도 젊은이처럼 사는 것’이 미덕인 오늘의 세태를 돌아본다. 그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곳은 상가, 공중목욕탕, 전철역, 큰어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 위다. 책 제목은 본래 병법의 삼십육계 가운데 열세 번째 계를 풀어 쓴 것으로 ‘변죽을 울려 중앙을 흔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제목의 의미를 곱씹으며 산문을 읽는 맛도 일품이다. 문학동네/320쪽/8800원

    상업의 세계사 고바야시 다카시 지음 / 이진복 옮김저자는 페르낭 브로델의 ‘세계-경제 이론’(자본주의 확산 이전 세계 제국 주변부에 성립한 일정한 교역권을 가리킴)에 입각해 고대 문명에서 근대까지 문명간 상업적 교류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브로델은 세계-경제를 담당한 유목민과 바닷사람들이 활동한 주변부를 중심부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부의 정보를 선택적으로 축적하고 행동해온 ‘성공한 주변’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한 아시아의 본래 모습은 해양아시아와 대륙아시아며, 2차세계대전 후 주변부의 성장은 동아시아 경제권의 중심축을 내륙에서 다시 해양경제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황금가지/272쪽/1만2000원

    뉴욕타임스로 논술을 잡아라 황호택 지음동아일보 논설위원인 저자가 서울을 떠나 기숙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위해 이메일로 논술을 지도한 내용이 책으로 엮어졌다. 아버지는 외국 신문의 좋은 사설이나 칼럼을 골라 아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주고, 아들이 번역을 보내오면 첨삭지도를 해주다 필요한 시사상식을 추가하면서 코멘트의 내용은 점점 풍부해졌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영자신문과 시사잡지, 단행본 등에서 발췌한 30개의 사설과 칼럼은 영어공부만 아니라 문장 그 자체로도 훌륭한 논술교재다. 또 서울산업대 윤홍근 교수가 출제한 관련 논술문제와 EBS 영어강사인 김정호씨의 영자신문 활용법을 추가했다. 동아일보사/ 292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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