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국의 국방비를 비교·분석하는 연차보고서 ‘군사력 균형(Military Balance)’으로 유명한 영국의 민간 전략연구기관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지난 1월말 ‘북한의 무기프로그램 : 최종평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북한 전력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시도한 이 보고서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부분.
- 북핵 문제의 이해 당사국이 아닌 나라의 권위 있는 독립 연구기관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당분간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분석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편집자).
1990년대 초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대치 및 미국과의 제네바합의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이 시기 평양의 주요목표가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보유량과는 관계없이 국제사회가 ‘한두 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이는 이 시기 워싱턴의 공식적인 분석결과였다)고 인식하는 동안 평양은 일정 수준의 ‘핵 안전상태’를 누렸다.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대신 ‘한두 개 핵무기 보유’라는 확신만이 굳어져왔다.
과연 북한의 핵 능력은 어느 수준이며, 이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 보고서는 이에 대한 종합 분석을 위해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할 것이다. 우선은 핵보유를 위해 북한이 그간 기울여온 노력을 살펴보고, 영변 핵 단지 내에 위치한 IRT-2000, 5MW, 50MW, 200MW 원자로 등의 시설과 여기서 생산 가능한 플루토늄 양을 분석한다. 또한 플루토늄과 함께 핵무기 원료로 사용되는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한 북한의 프로그램도 점검한다. 덧붙여 북한이 이 핵물질을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어떤 수준인지, 이를 과연 노동미사일 등에 탑재할 수 있을지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반세기에 걸친 노력
핵 보유를 위한 북한의 노력은 크게 네 시기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기초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기간(1959~80년)에 북한은 대부분의 지원을 소련에 의존했고, 소련은 북한 과학자들을 훈련시키는 한편 소규모 연구용 원자로인 IRT-2000과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실험실을 제공했다. 또한 이 시기 북한은 박천과 평산, 선천 등에 우라늄 광산과 가공시설을 마련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의혹은 1980년에서 1994년에 이르는 두 번째 기간에 제기되었다. 1980년을 전후해 북한은 상당한 양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 건설사업에 착수했다. 영변에 지어진 5MW 원자로와 여기서 나온 폐연료를 플루토늄으로 가공하는 재처리시설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우라늄 원석 채굴-우라늄 연료 제작-원자로 가동-플루토늄 재처리’라는 일련의 핵물질 자체생산 사이클을 보유하게 되었다.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북한은 이러한 시설의 존재를 부인하다가 1992년에 이르러서야 IAEA 전면사찰을 수용했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의 플루토늄 생산량을 확인하고자 하는 IAEA의 협조요청을 거부함에 따라 1993~94년 이른바 1차 핵위기가 발생했고, 이는 1994년 10월 북미간 제네바합의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영변의 플루토늄 생산시설은 동결되고 IAEA의 감시를 받게 됨으로써 핵위기가 해소된 듯 보였지만, 북한이 그 전까지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확보했는지는 이후에도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략 핵무기 1~2개 분량의 플루토늄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세 번째 단계(1994~2002년)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핵 동결 시기다. 이 8년 동안 영변에 건설되어 운영중이던 5MW 원자로와 완성 직전이었던 50MW 원자로, 태천에 건설되기 시작한 200MW 원자로 등 플루토늄 생산시설은 모두 가동 및 건설작업이 중단됐다. 5MW 원자로에서 꺼낸 8000여 개의 폐연료봉 또한 IAEA의 감시하에 놓였다. 이로써 플루토늄을 확보할 길이 막히자, 평양은 1990년대 후반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 시기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확보를 위한 비밀계획이 공개됨에 따라 핵 동결이 붕괴된 2002년 말부터 현재까지다. 북한은 그간 멈춰서있던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재가동했고 보유하고 있던 폐연료봉으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주장해왔다(이러한 주장은 아직 제3의 방법으로 검증된 바 없다). 고농축우라늄 생산능력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영변을 포함한 대규모 핵 단지에서 자체 생산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방안, 다른 하나는 외국으로부터 원심분리기술을 도입해 자체 생산한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우선 플루토늄 부분을 살펴보자.
2002년 말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면서 북한은 5MW 원자로, 폐연료봉 보관용 수조, 재처리 시설 등에 설치돼 있던 IAEA의 감시장비를 철거하고 사찰관들을 추방했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1994년 5MW 원자로에서 꺼낸 8000개의 방사성 폐연료봉(대략 플루토늄 25~30kg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다. 재처리시 손실률을 10~30%로 가정하면 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 양은 17.5~27kg이 되는데, 1세대 내폭형 핵폭탄 한 개에 5~8kg이 필요하다고 볼 때 추출된 플루토늄은 최소 2~5개의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재처리시설은 가동이 중단된 8년 동안에도 부분적인 유지관리 작업이 계속 이뤄졌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 개월 정도면 재가동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작업은 2002년 말 사찰관들이 추방된 직후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재처리공장의 한 개 라인이 8000개 폐연료봉(50t)을 재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개월. 물론 이는 작업이 꾸준히 계속되고 기술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다고 가정할 때의 이야기다.
재처리 시작했지만 끝내지는 않은 듯
북한이 폐연료봉의 일부 혹은 전체를 재처리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2003년 초 미국의 정찰위성은 영변 저장소에 와 있는 운반차량을 촬영했는데, 이는 폐연료봉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폐연료봉을 다른 재처리시설이나 군사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같은 해 6월 북한 인근에 있는 미국의 감시장비는 재처리시 발생하는 방사성 기체인 크립톤85(Kr-85)의 농도가 미미하게 상승했음을 반복적으로 감지했다. 그러나 이 배출량을 근거로 얼마나 많은 폐연료봉이 재처리됐는지 추정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재처리 과정에서 나온 Kr-85나 바람의 방향 등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이다. 특히 재처리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더욱 그렇다. 북한이 영변 재처리시설에 Kr-85 배출량 경감설비를 설치했는지, 북한 어딘가에 제2의 재처리시설이 숨겨져 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6월을 끝으로 Kr-85 농도 증가는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고 분석가들은 재처리시설이 완전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정부 분석가들은 북한이 6월에 영변에서 핵무기 한두 개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양의 플루토늄을 제한적으로 재처리했지만 전체 폐연료봉을 모두 처리하지는 않고 중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재처리시설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가동일 수도 있고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전술일 수도 있다. 혹은 재처리를 시작했다가 기술적인 어려움에 봉착했을 가능성도 있고, 워싱턴으로부터 강력하고도 은밀한 경고를 받아 자제력을 발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라면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지난해 10월 평양의 공개선언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포석이거나 장차 재처리 완료를 결정하게 될 때를 대비한 작업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공개선언이 사실이며 첩보수단에 의해 감지되지 않은 채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일단 추출이 완료된 후에는 어떤정보자산을 동원한다 해도 북한 내에서 이 플루토늄의 행방을 감시하거나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올 여름 새 플루토늄 추출 가능
북한이 단시간 내에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양은 제한돼 있다. 2002년 말 동결을 해제한 후 영변의 5MW 원자로에는 새 연료봉이 공급되었으며 원자로 냉각탑의 수증기 관찰 결과로 미루어볼 때 2003년 3월 무렵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원자로는 8년간의 가동중단에 따른 후유증으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출력으로 300일간 가동할 경우 5MW 원자로는 매년 7.5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데 대략 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지난해 10월의 성명에서 북한은 “5MW 원자로에서 사용중인 새 연료봉을 가능한 한 빨리 재처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적으로 이 연료봉은 2004년 봄부터 원자로에서 꺼낼 수 있으며 냉각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2004년 여름이나 가을에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북한이 얼마나 많은 분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을 지는 1994년 핵 동결 당시 건설중이던 50MW와 200MW 원자로의 완성시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점을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1994년까지 건설작업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동결 기간 동안 유지관리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평양이 이 작업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결 기간 중에 북한이 핵심 부품들을 비밀리에 제작했는지 혹은 필요한 자재를 도입해두었는지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두 원자로 가운데 50MW 원자로는 1994년 당시 거의 완성 단계였다. 북한 관리들이 IAEA와 미국측에 8개월 후면 최초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당시 평양은 합의과정에서 건설상황을 과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50MW 원자로의 예상 완성시점이 빠르면 빠를수록 제네바합의에 따라 받게 될 중유의 양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년 뒤 북한이 제공받은 중유는 5만t에서 50만t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북한이 50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놓친 에너지의 양을 중유로 환산해 제공하기로 했던 까닭이다.
동결 및 봉인조치 당시에는 50MW 원자로 건설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동결 기간에 영변을 방문한 IAEA 사찰관에 따르면, 주 원자로 건물의 외부작업은 완성된 상태였고 원자로 압력용기도 설치가 완료됐다. 원자로 노심(爐心)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흑연 블록은 절반 이상, 초기가동을 위한 연료봉 조각은 3분의 1 가량이 근처 창고에 적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IAEA는 연료봉 장전을 위한 기계설비나 이산화탄소 냉각재 순환장치 등 원자로 완성에 필수적인 몇몇 부분의 상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2002년 말 동결이 해제된 이후 50MW 원자로의 가동이 재개됐음을 시사하는 징후(주변에서의 활동증가 등)는 포착되지 않았다. 핵심 부품들이 모두 준비된 상태라 해도 실제 원자로를 완성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연료봉을 제작하는 작업은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과정이다. 영변의 연료봉 생산공장 작업라인의 일부 금속부분은 동결 기간에 적절히 관리되지 못한 탓에 불소 잔여물에 의해 심각하게 부식된 상태여서 재가동하려면 불가피하게 새로운 설비를 장착해야 한다.
북한이 순수 연료봉이나 생산시설을 따로 갖고 있지 않는 한 기존의 공장을 수리해 새 연료봉을 만들기까지는 대략 1년이 소요된다. 또한 원자로에 연료봉이 장전된 후에도 완전출력 상태까지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험기간을 거쳐야 한다.
기술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해도 평양이 50MW 원자로를 완전히 가동하기까지는 최소한 수년 이상 걸린다. 또한 영변 현장에서의 공사재개나 주요 부품 설치작업은 위성을 통해 감시할 수 있다. 50MW 원자로 가동준비와 함께 재처리시설의 두 번째 라인을 완성해 재처리능력을 증강시키는 작업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50MW 원자로에서 매년 꺼낼 수 있는 폐연료봉 100t을 충분히 재처리하고도 남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론적으로 300일 이상 완전출력 상태로 가동한 50MW 원자로는 매년 55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고 이는 핵무기 5~10개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실제 추출량은 가동기간과 출력에 따라 줄어들 수도 있다.
한편 태천의 200MW 원자로는 1994년 당시 초기 개발 상태였고 동결기간 중 관리부실로 인한 손상도 입었기 때문에 몇몇 전문가들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흑연 블록이나 연료봉 등 핵심부품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더욱이 이 원자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을 처리하려면 북한은 추가로 재처리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원자로는 매년 핵무기 수십 기 분량에 해당하는 수백 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지만 이 200MW 원자로가 가동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증거들
우라늄 농축기술 확보에는 이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1994년 영변 원자로 가동이 중단됨에 따라 평양은 1997년 무렵부터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기술을 도입하려 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핵심적인 의혹은 파키스탄에 노동미사일을 제공하고 대신 가스 원심분리 방식의 농축기술(G-2형 원심분리기)을 제공받았다는 것. 이 무렵 파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원조가 단절되어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두 기술의 결합은 양국 모두에게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결과물을 얻는 지름길이었다(자세한 내용은 406쪽 ‘북한·파키스탄, 원심분리기와 탄도미사일기술 맞교환 내막’ 기사 참조).
그러나 북한의 원심분리기 도입 프로그램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요소들이 불명확한 데다, 평양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파키스탄이 정확히 어떤 형태의 기술과 장비를 얼마만큼 지원했는지가 불분명하다. 시험 가동용 설비 한 세트(보통 수백 대의 기계로 구성)가 통째로 넘어갔다 해도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을 매년 생산하려면 별도로 대량의 기계설비를 제작·조립해야만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 원심분리 시설을 조립하는 데 필요한 부품과 자재, 설비를 모두 구입했는지 혹은 자체생산이 가능한지 여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북한이 지금도 이를 구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2003년 4월 프랑스와 독일 당국은 22t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이 선적되는 것을 저지한 바 있다. 총 200t에 달하는 수출예정분량의 첫 선적분이었던 이 알루미늄관은 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G-2형 원심분리기의 몸체용으로 쓰이기에 적합한 품목이었다. 가공과정에서의 손실을 감안해도 알루미늄관 200t은 대략 원심분리기 3500개 분량이며, 이는 매년 핵폭탄 세 개 분량인 75kg의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1세대 내파형 우라늄 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우라늄은 20~25kg).
한편 2003년 4월에는 일본 정부가 홍콩과 함께 세 개의 전류변환장치를 도입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좌절시킨 바 있다. 이 장치는 원심분리기의 동력인 직류전력을 생산하는 데 소요될 수도 있고 미사일 유도장치에 사용될 수도 있는 종류였다. 각각의 원심분리기는 자체모터로 가동되기 때문에 공장 규모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전류변환장치가 필요하다.
알루미늄관 선적 적발 사건은 북한이 대규모 원심분리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평양이 아직도 핵심 부품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알루미늄관은 원심분리시설 핵심 부품들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핵물질 가공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금 처리된 축차, 베어링, 전자부품 등 보다 주요한 부품들은 자체생산이 더욱 어렵다. 물론 북한이 전혀 탐지되지 않은 도입경로를 개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입저지 노력 때문에 도입 일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양산단계까지는 장시간 필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는 원심분리 설비뿐 아니라 주재료인 가스 상태의 우라늄, 즉 UF6(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가 대량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3500개의 G-2형 원심분리기로 만들어진 농축공장에는 매년 13.5t 정도의 UF6가 소요된다. 영변의 핵연료 제조시설은 대량의 천연 우라늄(U3O8)을 UF2(우라늄 다이옥사이드)로, 이를 다시 UF6의 전 단계인 UF4(우라늄 테라플루오라이드)로 가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처리시설은 심하게 부식된 상태라 UF4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수리와 조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북한이 영변 이외의 다른 지역에 UF6 원료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다.
원심분리 공장이 완성된다 해도 이를 완전가동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험기간이 필요하다. 본래 원심분리기는 불안정하기로 악명이 높다. 빠른 속도로 가동하다 보면 운영상의 실수로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부서진 기계를 교체하거나 수리할 때는 전체 생산라인을 중단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전류의 변동이나 간섭만으로도 원심분리기는 치명적인 해를 입는다. 북한의 전력시스템이 극히 신뢰할 수 없는 상태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력시스템과는 별도로 독립된 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대량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워싱턴의 분석은 사실적인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가정과 추정에 근거해 상정한 ‘최악의 경우’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미국측의 분석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산업·과학·기술잠재력으로 대규모 원심분리 시설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즉 북한이 이미 필요한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의 자원 전부를 쏟아 붓기로 했다는 가정하에 진행된 평가인 것이다. 100% 확언은 불가능하지만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많은 기술적 장애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때문에 대규모 시설의 완성은 ‘2000년대 중반’보다 훨씬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북한이 핵물질을 확보했을 때 과연 이것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해보자. 북한의 핵무기는 1세대 내폭형 구조를 바탕으로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핵무기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나라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과 같은 1세대 내폭형 폭탄에는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 같은 핵분열 금속이 단단한 공 혹은 심 형태로 핵심부를 이루고 있다. 이 공은 천연우라늄 같은 금속 충전재/반응재에 둘러싸여 있고 고강도 폭발물이 주위에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이 폭발물이 터지면서 가운데의 핵물질이 수축되면 순식간에 엄청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초기 내폭형 핵폭탄 ‘팻맨’(오른쪽)과 히로시마에 떨어진 건타입 핵폭탄 ‘리틀보이’(왼쪽)
내폭형 이외에도 소량의 우라늄을 대량의 우라늄에 쏴서 대형 핵분열을 유도하는 ‘건타입(Gun-Type)’ 폭탄도 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내폭형과 달리 건타입은 오로지 우라늄으로만 만들 수 있는데, 기폭장치가 덜 복잡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간단하고 비교적 만들기가 쉽지만 대신 같은 폭발력의 내폭형에 비해 핵물질이 많이 들어간다. 따라서 보유량이 한정되어 있는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내폭형에 관심을 기울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내폭형 핵무기 제작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수 차례의 고폭실험을 실시했다. 1992년 이전에는 영변 핵 연구단지에서도 핵 관련 고폭실험을 실시했다고 전해진다. 1990년 2월22일 작성된 구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보고서에 따르면 구소련 정보당국은 이미 북한이 영변 단지에서 ‘핵폭발 체계’를 완성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영변 인근 용덕동에 위치한 보다 정교한 시설에서 고폭실험이 실시됐다는 정보도 있었다. 국회에 보고된 한국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인공위성이 용덕동에서 총 70회의 고폭실험을 감지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고폭실험을 했다는 정보가 그대로 핵개발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폭실험은 다른 재래식병기를 개발할 때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고폭실험이 다른 고폭실험과 구별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거의 비슷하다. 반면 천연우라늄이나 열화우라늄을 진짜 핵분열물질 대신 사용하는 방식의 고폭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전면적인 핵실험 없이도 효율적인 핵무기 설계안을 만들 수 있다.
고폭실험이 있었다는 정보가 수집된 지 상당기간이 흘렀고, 특히 북한은 재래식무기용 고폭체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또한 초보적인 내폭형 폭탄 설계에 관한 기본정보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래, 북한이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을 충분히 확보하면 간단한 내폭형 폭탄 한 개를 설계·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이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북한의 고폭실험은 계속됐고 미국은 북한이 ‘간단한 수준의 핵무기’를 핵실험 없이 완성했으리란 분석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단순 핵폭탄’ 1기 보유?
북한이 초보적인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관심은 이 핵무기의 무게와 크기로 옮겨간다. 이는 운반수단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평양이 이 핵무기를 노동미사일 등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만큼 경량화·소형화하고 싶어하리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미사일 탑재는 비행기를 이용한 폭격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성공가능성도 높다. 일본이나 미국 등 한반도 이외의 목표물을 위협하는 데도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은 매우 강력한 수단이다. 북한과 파키스탄의 협력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노동미사일의 대가로 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의 소형 핵탄두 제조기술을 북한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한 개 혹은 최대 두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최근 미국의 분석은, 북한이 충분한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간단한 내폭형 폭탄을 만들 만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전면적인 핵실험 없이 완성했고, 평양이 핵 결정권을 가지기로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여러 가지 상황을 전제로 해서 내려진 결론이다. 1993~94년 1차 핵위기 때 그 단초가 마련된 이러한 판단에 대한 확신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북한 과학기술진이 1세대형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그 개연성은 더욱 증가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 여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는 북한 핵 능력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우선 북한은 1992년 이전까지 핵무기 1~2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개연성이 높고, 제네바합의가 붕괴된 2002년까지 이 같은 보유량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2002년 말 이후 북한이 스스로 공언한 대로 폐연료봉을 재처리했다면 핵무기 2~5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은 앞으로 2003년 2월 재가동된 5MW 원자로에서 매년 핵무기 1기 분량의 플루토늄이 함유된 사용후 연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북한의 현재 핵물질 보유량은 최대 핵무기 4~8기 분량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이 수치는 매년 1기씩 증가하게 된다.
수년 후 50MW 원자로나 우라늄농축시설이 완성되면 북한의 핵 능력은 급격하게 증가할 수도 있다. 50MW 원자로에서는 매년 핵무기 5~10개 분량에 해당하는 55kg의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다. 우라늄농축공장의 경우 구체적인 생산능력을 알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공식보고와 북한의 구매노력 등으로 보아 매년 75kg 분량의 고농축우라늄을 목표량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대략 초보적인 내폭형 핵무기 3기 분량이다.
이들 시설이 언제 완성될 것인지 정밀하게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향후 1~2년내에 건설이 완료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물질 생산능력은 매년 8~13기 분량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과 국제적인 저지 움직임 등으로 인해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0년 무렵까지는 완성되기 어렵다고 보는 게 신중한 결론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당분간 북한이 보유할 수 있는 핵무기는 소량에 불과하며, 따라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제거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양은 점점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다는 점, 이에 따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점점 어려워지리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